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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87/270)
  • 부활

    다음 날, 베이포트 FC의 수석 코치인 브라운 키드는 평소와 같은 시각에 출근했다. 출근 후,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감독인 동민의 사무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조금뿐이지만 무거워 보였다.

    ‘요즘 강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꽤나 걱정스러운데…….’

    최근 몇 경기 동안 베이포트 FC는 시즌 초반과 같은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를 약점을 파고드는 놀랍도록 날카로운 움직임이나 유연한 대응은 떨어졌고, 가끔은 오히려 상대 팀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진이라 할 만큼 심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즌 초의 막강한 모습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베이포트 FC의 경기력이 떨어진 것은 동민의 태도가 흔들리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 때에 완전히 경기력에서 밀린 이후로 강이 꽤나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데.’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전술과 경기력 자체에서 압도된 이후 동민의 지시는 어딘가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의 강점을 읽어내고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던 그의 지시는 마치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떨어진 건지, 아니면 상대 팀들이 대응을 잘하는 것인지 어딘가 어긋나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어딘가 애매한 상태로 보이는 그에게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데…….’

    브라운 키드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쏟아냈다.

    동민의 문제가 명확하다면 그 것을 일깨워 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며, 동시에 그가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동민의 잘못인지, 아니면 상대 팀들이 대응을 잘하는 것인지 애매한 상황에서는 그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또한 무엇보다 이 이유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애매한 부진에서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감독이라는 자리가 강동민에게 역시 너무 큰 짐인가 싶기도 하지만… 나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아. 앨런에게 동민이 흔들릴 때 바로 옆에서 바로잡아주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이런 상황이라니, 만나게 되면 뭐라고 말할지 상상도 안 되는군. 젠장.’

    그는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노크를 하고, 동민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요 몇 주 내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동민의 어두운 표정이 아니라 밝은 미소였다.

    “아, 키드 수석 코치. 어서 와요. 이따가 선수들 전술 브리핑 시간에 이야기할 게 있는데 그 전에 코치진들부터 다 모이라고 대신 전해줄 수 있을까요? 다음 경기인 보스턴 레인저스 경기에 대해서 괜찮은 생각이 하나 났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눈은 요 며칠 동안 그래왔듯 피곤에 절여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또한 뒤로 기울어진 의자와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목 배게는 그가 이 사무실에서 밤을 새웠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피곤에 물든 눈에서는 지난 며칠 동안 보이던 피곤과 고민, 절망이 아니라 즐거움과 희망이 드러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둡기 그지없었던 동민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을 보면서 브라운 키드는 혹시 자신이 어제 마신 술이 덜 깬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어… 강?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까 전에 한 시간 조금 넘게 눈 좀 붙여뒀으니까요. 아, 그리고 이것 좀 미리 봐줘요. 이따가 다른 코치들 의견도 들어볼 거긴 한데 당신이 먼저 보고 의견 좀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걱정스러워하는 브라운 키드의 말을 가볍게 흘리며 동민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노트를 건넸다. 그 안에는 다음 상대인 보스턴 레인저스에 대한 정보와 그들을 상대로 어떤 전술을 들고 나설지에 대한 이야기가 동민답게 세세하게 쓰여 있었다.

    그것을 훑어보면서 브라운 키드는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어제까지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의심에 지친 사람이 아니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이 무슨 이유에선지 완전히 돌아왔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자신과 앨런 휴즈가 보았을 때 놀랐던, 자신의 전술과 분석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있는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확인하고, 이따가 전술 브리핑에 앞서 모든 코치진을 소집하도록 하겠습니다.”

    브라운 키드는 그렇게 말하고 마지막에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감독님.”

    “지난 몇 경기 동안 우리 팀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맞아요, 지난 6경기 동안 1승 2무 3패. 시즌 초반의 가팔랐던 상승세에 비하면 확실하게 주춤하고 있고, 어느새 순위도 5위로 떨어졌죠.”

    동민의 차분한 목소리가 훈련장에 모인 선수들 사이를 파고든다. 선수들은 동민의 말에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즌 초반만큼의 폭발력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고, 최근 경기들에서는 날카롭게 상대를 찌르던 모습들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다.

    언론에서는 승격 팀의 돌풍이 끝난 것이라며 감독인 동민의 경험 부족과 하위권 팀 특유의 얇은 선수층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원인이 뭐든 최근 그들의 성적이 잘 나오고 있지 않은 것은 그들의 책임이었다.

    “외부에서는 우리가 시즌 초반만큼 강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곧바로 그 원인을 저에게서 찾기도 하고, 혹은 우리 팀이 프리미어리그 경험이 없다는 것 자체에서 찾기도 했죠. 마치 우리가 떨어지길 지금껏 기다려 온 것처럼요.”

    동민은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 선수들의 표정을 보았다. 그들의 눈 안에는 다음번에 동민이 어떤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과 최근 경기들에 대한 죄책감 등이 조금씩 엿보이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했어요. 저도 시즌이 흘러갈수록 제 방식이 들어맞지 않는 팀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잃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혼란에 빠지기도 했으니까요. 여러분들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동민의 고해성사와도 같았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 이후, 자신의 방식이 맞는지 흔들렸던 것을 솔직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언론에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도, 그리고 제 방식에 대한 회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국 같으니까요.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찾아내고, 상대를 농락하듯 그들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찔러서 경기를 이기는 거죠.”

    그의 말은 선수들의 귓가에 파고들었고, 동시에 최근 처져 있던 분위기와 선수들의 심장을 직접 주무르는 듯했다.

    “최근에 경기에 몇 번 졌든, 몇 번 이겼든, 몇 점 차의 경기가 되었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이번 경기부터 이기면 됩니다. 상대가 우리의 방식에 걸려들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한다고 해도, 우리 또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이기면 됩니다. 이번 보스턴 레인저스와의 경기가 분수령이 될 겁니다.”

    그것은 순수한 동민의 본심이었다.

    상대가 어떤 경기를 치르든, 자신들의 방식에 한계가 있어 보이든 관계가 없었다.

    어젯밤, 다비드 페레즈가 어떤 축구를 목표로 했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주 예전에 병렬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는 이기는 축구를 목표로 하고 싶어요. 상대에 맞춰서 상대의 장점을 막고 단점을 파고드는, 상대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런 팀을 만들고 싶어요. 상황에 맞춰서 어떤 전술이든 소화해 낼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팀이요.

    그 말은 너무나 당연해서 동민이 한동안 잊고 있던 말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난 처음부터 그런 축구를 원했던 거였어.’

    다른 이들이 감독을 꿈꾸면서 아름다운 축구나 압도하는 축구, 튼튼한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뒤엎어 버리는 축구를 바랐다면, 동민은 처음부터 때에 따라 바뀌면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축구를 바랐다.

    그것은 동민이 프로 세계에 들어오며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짜낸 것이 아니라 동민이 처음부터 바라던 자신의 팀의 모습이었다.

    ‘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당연하지. 약점 없는 전술은 없고, 사람이 짜내는 일에 한계가 없는 일이 있을 리가 없어. 내가 그런 일을 해낼 정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그게 내 방식인데 온갖 변명하고 이유를 대면서 바꿀 필요는 없어.’

    그것이 다비드 페레즈와의 대화 이후 동민이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다. 이기는 축구라는 것에 얽매여 한계가 있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닐지 의심했었지만, 처음부터 자신에게는 그것이 목적지였다.

    그 이후 동민의 행동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그가 향한 곳은 숙소가 아닌 자신의 사무실이었고, 그곳에서 당장 다음 상대인 보스턴 레인저스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이미 며칠 동안 EPL 팀들의 전술들을 분석하느라 무리를 했던 몸이지만, 그리 심하게 피로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그는 자신의 답을 찾았고, 그 답을 구하려는 노력이었으니까.

    머릿속에서 여러 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자신과 그 길들을 알아보고자 했던 자신, 그리고 그중 한 가지 길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 나가는 자신이 겹쳐지는 듯했다.

    ‘나는, 베이포트 FC는 지금까지처럼, 아니, 더욱 상대에 맞춰서 변해가는 축구를 목표로 하겠어. 그게 내 방식이고, 그 방식으로 어떤 팀이라도 이길 거야. 상대가 스톡포트 시티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든, 반드시 상대할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그의 결의였다.

    그의 결의는 지금 베이포트 FC선수들에게 전해졌다.

    지난 몇 경기 동안 혼란스러웠던 팀에 다시 한 번 확실한 의지가 뻗어져 나갔고,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그리고 동민의 결의와 생각으로 다시 묶인 베이포트 FC가 정확하게 창을 들이밀고 있는 대상은 바로 다음 경기 상대인 보스턴 레인저스였다.

    “다음 경기를 확실히 잡아내면서 우리가 시즌 초중반까지 보여주었던 모습이 결코 허상이 아님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줍시다. 그리고 박싱 데이에 더욱 우리의 순위가 떨어질 거라는 언론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해주자고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오랜만에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많은 도박사들은 베이포트 FC와 보스턴 레인저스의 경기에서 보스턴 레인저스가 최소한 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 전, 리그 2위인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까지도 홈에서만큼은 잡아냈던 그들이었기에 흔들리는 베이포트 FC라면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전광판에는 5 대 1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가 나오고 있었다.

    베이포트 FC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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