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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의 갈림길, 베이포트 FC의 갈림길 (185/270)
  • 동민의 갈림길, 베이포트 FC의 갈림길

    “역시 확실하게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동민은 진지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 이후 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우리의 주된 전술 없이 상대에 맞춰서 전술을 짜나가야 할지, 아니면 다른 팀들처럼 한 가지 전술적인 철학을 기본으로 할 것인지… 이제는 정말로 확실하게 정해야 해.’

    지금까지처럼 상대에 맞춰서 전술을 짜 맞추고 그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상대의 강점을 막고 단점을 노리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의 경우처럼 우리에게 말려들지 않고 무식하리만치 자신들의 전술을 고집하는 팀을 만나면 꼬여 버릴 수도 있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는 상대가 어떤 전술을 취하든 기본적인 자신들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비록 그 방법의 장단점이 상대에게 드러나 있다고 해도, 자신들이 자신 있는 전술을 펼쳐 나가기만 한다면 그 불리함을 뛰어넘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승리는 베이포트 FC라는 멈출 줄 모르던 전차를 멈추는 방법이 되어 다른 팀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물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처럼 단 하나의 전술만 끝도 없이 갈고닦은 팀이 아니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분명 베이포트 FC와 동민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자 힌트였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 이후 베이포트 FC가 네 경기 동안 거둔 성적은 1승 2무 1패,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지금껏 거둬온 성적을 생각하면 분명 주춤하는 상태임은 확실했다. 게다가 상대했던 네 팀이 모두 스톡포트 시티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만큼 리그 톱급의 강팀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더욱 동민에게 고민거리였다.

    ‘이대로 지금의 방법을 고집한다면 대부분의 팀들을 상대로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어갈 수 있지만, 한계는 존재해. 지금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뿐이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팀들도 조금씩 눈치챌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동민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가, 라는 고민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금의 방식을 버리고 한 가지 전술을 찾아 그것에 집중하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시즌은 아직도 반 이상 남아 있으며, 얼마 후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경기들을 치러야 하는 연말과 박싱데이 기간이 찾아온다. 당장 다음 경기들을 대비해서 준비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전술적으로 한 가지 옷을 입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전수들에게 입히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선수들이 적응을 할 수 있을지부터였다.

    ‘지금껏 일부러 전술적인 유동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선수 선발을 했는데 이제 와서 그걸 뒤집으면 선수들이 발 빠르게 적응하기는 쉽지 않겠지.’

    어쩌면 한계가 확실할 수 있지만 안정적인 지금껏 해온 방식을 고수하느냐, 혹은 위험을 감수하고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찾느냐 라는 고민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의 경기 직후부터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확실하게 선택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동민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정말로 선택을 해야 할 때라는 거지. 그렇다면…….’

    자리에 앉아 진지하게 고민에 빠져 있던 동민이었지만, 곧바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다른 전술로 바꾸는 것도 쉽지 않지만, 바꾼다고 결정해도 어떤 전술을 택해야 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어느 쪽을 택하든 일단 알아보는 편이 우선인가. 그럼 일단 확실하게 알아보고 결정하는 수밖에.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동민은 오늘도 어느 쪽인지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밤이 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어찌할지 몰라 방황하고 고민하느라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면, 오늘은 선택을 위한 고민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그리고 이게 나름대로 알아본 결과인가.”

    동민은 피곤한 표정으로 자신이 며칠 밤을 새면서 찾은 결과를 바라보았다. 그는 며칠 내내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서 EPL의 다른 팀들이 어떤 전술을 주로 사용하는지 알아보았다. 지금껏 있던 경기들의 영상을 거의 모두 찾아보다시피 하면서 그들의 전술을 정리해 둔 그의 행동은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였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만큼의 완성도를 가지지는 못하기만 나름대로 그들처럼 역습에 무게를 두고 있는 팀들이 열한 팀, 그리고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공격으로 밀고 나오는 팀이 세 팀, 마치 스톡포트 시티처럼 공을 점유하면서 상대를 압박해 오는 팀이 다섯 팀. 세부적으로 보면 전부 다 어느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정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 정도인가.’

    며칠 내내 수십 개의 경기 영상을 잇달아 봤던 눈을 비비면서 동민은 잔뜩 정리해 두었던 노트를 다시 훑어보았다.

    ‘대체로 역습을 노리는 팀들이 많지만, 역시 그 안에서도 똑같은 전술은 단 하나도 없었어. 각 팀에 따라, 그리고 선수들의 스타일에 따라 모두 달랐지.’

    지금껏 경기 영상들을 보는 일은 매우 익숙했지만,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만 봐오던 그에게 상대 팀들의 전술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것을 참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이었다.

    ‘상대하려고 상대를 분석하는 것과 벤치마킹하려고 분석하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

    지금까지 상대할 팀의 영상을 보면서 동민이 했던 분석은 상대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먼저 찾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상대가 측면 공격에 능숙하다면 그것이 선수들의 어떤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알아내려 하기보다는, 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주된 선수가 누구이고, 어떻게 해야 그 움직임을 깨뜨릴 수 있는지가 동민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강점을 보았을 때 어떻게 하면 깨뜨릴 수 있는지를 보기보다는, 어떻게 했을 때 저런 움직임을 베이포트 FC에 이식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렇게 단단히 준비하면서 알아보긴 했지만, 역시 쉽지 않겠어.”

    시즌 중반에 갑자기 전술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민은 그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게다가 베이포트 FC를 제외한 나머지 19개 팀들의 전술을 보면서 그 안에서 장점을 파악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기왕 따라잡을 거라면 선수들의 성향에 그나마 잘 어울리는 건 역시 스톡포트 시티 같은 타입인가.”

    레오나르도 다 실바와 마이크 반 데부르라는 두 명의 메짤라를 중심으로 상대를 끊임없이 조이고 파고드는 그들의 전술은 해리 맥스웰이나 벤 로이터, 어떤 상황에서는 박주현까지 중앙에서 뛰면서 상대를 흔들 수 있는 베이포트 FC에게 잘 어울렸다. 측면에서 넓게 벌려주는 두 윙어의 역할은 야야 둠베흐와 잭 하워드가 해줄 수 있었고, 두 메짤라를 지원해 주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이안 페트로프나 아르센 디아라가 해낼 수 있었다.

    분명 그들처럼 점유율에 기반해서 상대를 조이는 전술은 베이포트 FC에게 잘 어울렸다. 그러나 문제가 두 개 있었다.

    ‘첫 번째는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 선수층에서 낭비되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

    그들의 전술이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에게 잘 맞는다고 해도 그 말은 경기에 나서는 베스트 11명에 한정되는 말이었다. 이안 페트로비치나 크리스 러셀 등의 선수는 그 전술 아래에서 발을 붙일 곳이 너무나도 좁았다.

    결국 베이포트 FC가 스톡포트 시티의 전술을 토대로 그들처럼 점유율 축구를 구상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선발로 나설 수 있는 11명의 선수들이나 가능한 이야기지, 그들 중 한두 사람이라도 부상당한다면 그 전술을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렇게 해봐야 결국 모조품에 가깝다는 거지.’

    동민은 스스로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다. 상대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맞추어 전술을 짜는 일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예 밑바닥부터 팀 전술의 토대를 쌓아올리는 일은 절대 다른 EPL의 감독들, 특히 명장이니 천재니 하는 감독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벤 로이터와 해리 맥스웰은 레오나르도 다 실바와 마이크 반 데부르가 아니었다. 비슷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말이 그들처럼 플레이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만약 그가 다비드 페레즈의 전술을 참고한다면 어디까지나 그들과 비슷한 유사품이 될 뿐이었다.

    따라잡으려 노력할 수는 있어도, 그들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스톡포트 시티처럼 다른 팀들을 압도하는 경기를 종종 보여줄 수 있다고는 해도, 스톡포트 시티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베이포트 FC가 스톡포트 시티의 전술을 베이스로 한다면 그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과도 같았다.

    ‘그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것이 동민을 붙잡는 갈고리가 되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는 것 정도만 생각한다면, 그저 스톡포트 시티의 유사품처럼 남아도 충분히 잔류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16경기를 거치면서 29점의 승점을 쌓아둔 것도, 그의 세부 전술과 선수들의 호흡도 잔류를 위한 정도라면 차고도 넘쳤다. 리그 상위권은 무리지만, 어쩌면 유로파 리그 정도의 대륙 대회를 노리는 것은 운이 따르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동민이 원하는 것은 그저 리그 내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시즌 중간에 선수들의 적응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전술을 바꾸는 이유가… 그저 리그 중위권 팀을 노리는 것 정도는 아닌데.”

    동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자신의 방식에서 한계를 느껴서 변화를 추구하려 했지만, 그 또한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에 그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결과를 위해서 내가 변화를 가져와야 할까? 선수들이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주요 선수들이 부상이나 대표 팀으로 빠지기라도 하면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전술을?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대로 가자니 그것 또한 한계가 명확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동민은 입술을 깨물면서 주먹을 쥐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와 베이포트 FC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붉은색으로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선이 그어진 것만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동민의 의식을 되돌리는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울렸다.

    “전화? 이 번호는 누구지?”

    처음 보는 번호를 보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그는 이내 전화기를 들었다.

    “강동민입니다. 누구시죠?”

    그리고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그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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