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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5분 (183/270)
  • 마지막 15분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공격은 마르코 알베스의 분노를 보여주듯 더욱 거세져 갔다. 상대의 중앙 수비가 헐거워졌다는 것을 깨달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선수들은 공을 더욱 로멜로 시몬에게 집중했고, 그는 마치 전장을 휘젓는 전차처럼 빠르고 강하게 상대 수비진을 휘저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세와는 반대로, 더 이상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다.

    ‘이 새끼가 또!’

    로멜로 시몬은 마지막에 자신의 공을 발끝으로 건드려 슈팅 타이밍을 빼앗은 이안 페트로프를 노려보았다. 그가 센터백으로 경기에 나설 때 모두가 했던 생각과는 반대로, 그는 훌륭하게 로멜로 시몬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기본적인 센터백의 움직임과는 매우 달랐다. 상대 공격수가 공을 끌고 들어오면 센터백 듀오의 수비는 대부분 한 사람이 공을 가진 공격수에게 달라붙고, 나머지 한 사람은 동료가 나간 공간을 커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것이 정석적인 수비 방법이었고, 만에 하나 공격수에게 달라붙은 수비수가 쉽게 뚫려 버리거나, 또 다른 공격수가 빈 공간으로 침투할 경우에는 그 위기를 막을 하나뿐인 보험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수비 방법을 위해서라면 두 센터백의 소통은 필수적이었다.

    그것이 선발로 나서는 센터백이 웬만하면 잘 바뀌지 않는 이유였고, 새로 팀에 들어온 센터백이 곧바로 경기에 투입되기 힘든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베이포트 FC의 센터백을 맡은 이안 페트로프와 롭 코튼은 달랐다. 로멜로 시몬이 경기장의 3분의 2를 넘어 베이포트 FC 측의 골문으로 다가오면 이안 페트로프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달려가 공을 따내려 했다. 그리고 이는 롭 코튼도 마찬가지였다. 두 선수는 누구 한 명 커버를 하는 이도 없이 두 명 다 공을 가진 로멜로 시몬을 노리고 달라붙는 수비를 시도했다.

    ‘이것들이 미쳤나? 뚫리기만 하면 골문까지 고속도로인데 나한테 센터백이 둘 다 달려든다고?’

    로멜로 시몬은 두 명의 수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상식적이다. 동시에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크다. 그가 돌파 대신 패스를 선택하기만 해도, 아니, 단 한번만 그들의 수비를 제치기만 해도 그와 골문 사이의 최단거리에는 골키퍼 한 명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달라붙어 공을 빼내려 드는 것이다.

    ‘어디 한 번만 실수해 봐라. 그게 너희의 무모한 수비가 끝장나는 순간이다.’

    그는 공을 빼앗긴 뒤 이를 갈면서 베이포트 FC의 두 중앙 수비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몇 분 뒤, 로멜로 시몬의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좌우 양측에서 달려드는 두 명의 중앙 수비수 사이로 과감하게 볼을 집어넣어 돌파하는 그의 대담한 선택에 베이포트 FC의 두 수비수는 볼을 탈취하지 못했다. 이는 곧 베이포트 FC에게는 끔찍한 위기이자 로멜로 시몬에게는 헤트트릭의 기회였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으로서는 경기를 완전히 끝낼 수 있는 찬스였다.

    ‘멍청한 수비나 하고 있던 두 센터백은 내 뒤에. 이제 와서 더 뛰어와 봐야 내가 슈팅한 이후일 테니까.’

    로멜로 시몬은 이런 기회를 허무하게 놓칠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침착하게 공을 컨트롤하면서 황급히 뛰어나오는 골키퍼를 보았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골문 구석 쪽으로 정확히 슈팅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자신의 뒤쪽에서 나타나 슬라이딩 태클로 슈팅 직전에 공을 막아낸 상대 측면 수비수만 아니었다면 골문으로 빠져 들어갔을 슈팅은,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그제야 그는 롭 코튼와 이안 페트로프의 수비가 그저 눈앞의 그를 붙잡는 것에 눈이 돌아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중앙 수비수가 위로 올라오면서 그를 붙잡는 동안, 양쪽 풀백은 빠르게 중앙으로 좁혀 들어오면서 그들의 뒤를 커버하고 있던 것이다. 그의 시야가 계속해서 달려드는 이안 페트로프와 롭 코튼에 가려지고 있어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가운데로 좁히면서 혹시나 모를 그의 돌파를 경계한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위험하기 그지없는 수비인 것은 마찬가지다. 만일 로멜로 시몬이 공을 잡고 있는 사이 측면에서 다른 선수가 침투하기라도 한다면, 측면은 막아줄 수비수 하나 없이 골문까지 뻥 뚫려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측면 수비를 포기하고 로멜로 시몬만을 막기 위해 중앙에 집중된 수비였던 것이다.

    ‘만에 하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감독이 로멜로 시몬을 이용한 중앙 돌파 역습을 그만두고 측면으로 넓게 펼친다면 완전히 무너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발상이지. 그리고 수비진과 같은 라인상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발을 맞춰보지 않은 이안 페트로프가 치명적인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무너지는 거고. 도박이야.’

    동민은 이안 페트로프를 넣으면서 수비를 중앙에 집중시킨 자신의 전략을 그렇게 평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마르코 알베스는 아마 바꾸질 않을 테니까.”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차가운 눈으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측의 벤치를 바라보았다.

    전반전 내내 아무리 베이포트 FC가 전술을 바꾸고 측면을 공략했어도 자신들의 전략을 유지했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전략을 버리고 측면에 힘을 실을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이 동민의 생각이었다.

    ‘어디 그 고집 계속 끌고 가봐라. 경기를 질 때는 지더라도 한 방 먹여줄 테니.’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교체 카드 두 장을 동시에 빼들었다. 그것은 이안 페트로프를 투입하며 수비 방식을 바꾼 베이포트 FC의 반격의 칼날이었다.

    ‘이번엔 벤 로이터에 크리스 러셀? 어떻게든 쫓아와 보겠다고 하는 건가. 혼자서 자멸하려는 짓을 잘도 하네.’

    베이포트 FC가 동시에 두 명을 교체하는 것을 보면서 마르코 알베스는 코웃음을 쳤다. 베이포트 FC의 이번 교체도 상식적으로 알기 힘든 교체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수비를 중앙에 집중시켰다면 공격에 힘을 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위험한 강을 건넌 이상, 단 한 골이라도 넣기 위해 공격에 집중하는 것이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는 최전방 공격수였던 에딘 페트로비치를 빼고 벤 로이터를 넣었고, 우측 윙어였던 잭 하워드를 빼고 크리스 러셀을 넣었다. 최전방 공격수와 측면 미드필더를 빼고 중앙 미드필더만 두 명이나 넣는 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노리는 게 뭔지는 보여. 하지만 미친 짓일 뿐이다.’

    마르코 알베스의 눈에도 베이포트 FC가 중앙에서의 패스 플레이로 만회 골을 노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그것은 하책 중의 하책에 불과했다.

    ‘바늘 하나 안 들어갈 정도로 공간을 안내주는 우리를 상대로 미드필드 지역에서 패스플레이를 하겠다고? 이쯤되면 그저 고집에 불과해 보이는데.’

    이안 페트로프를 중앙 수비수로 쓰는 기행에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껴서 화가 났던 그는, 이제 화를 낼 기분조차 아니었다. 베이포트 FC와 강동민은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집을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으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가장 큰 장점이 미드필더와 수비라인 간의 좁은 간격으로 파고들 공간을 내주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저런 전술을 구사할 리 없었다.

    ‘질보다는 양이라고 하면서도 그나마 상대를 파악하는 눈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경험이 적다보니 머리에 피가 오르니까 앞뒤 구분할 줄도 모르는 머저리였어.’

    그는 아까까지 노려보던 동민에 대한 시선을 거두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분노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강동민과 베이포트 FC는 그들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본인들의 방법으로 경기를 만들어보겠다며 자멸하는 길을 택한 것뿐이었다.

    ‘이 정도면 시시하다는 말도 아까운데.’

    한순간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던 그의 눈빛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경기는 아직도 15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이미 그는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다.

    ‘어차피 저러다가 혼자서 무너져 버릴 팀이다. 측면을 공략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중원에서 패스를 하면서 활로를 찾아보려다가 패스가 이어지지 않으면 마음만 급해지고, 그럴수록 공격은 하지 못하고 무리한 패스와 중거리 슈팅 시도만 들어나겠지. 풀백을 포함한 수비진이 몇 번 좋은 수비를 했다지만 로멜로 녀석도 바보는 아닌 이상 또 걸려들진 않을 테고.’

    그렇게만 된다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굳이 추가골을 넣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베이포트 FC가 골 찬스를 만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마르코 알베스의 눈에는 이미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베이포트 FC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진심으로 실망스러운데. 겨우 이따위 팀이 저 정도 순위에 올라 있다는 게 믿기 힘들 지경이야.’

    마르코 알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베이포트 FC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힘없이 무너질 순 없어.’

    해리 맥스웰은 마지막 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벤 로이터와 크리스 러셀의 교체 투입 이후 최대한 중앙에서 찬스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선수들은 노련하게 공간을 장악하며 패스가 나갈 길을 모두 막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지는 건 조나단한테 너무 큰 짐을 지워주는 거잖아.’

    그는 축 처진 어깨로 그라운드를 나서던 조나단 케인을 떠올렸다. 만약 만회 골도, 제대로 된 찬스도 만들지 못한 채로 경기가 끝난다면 조나단 케인은 분명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팀의 주장인 자신이 악의적인 스캔들 보도에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퇴장당하면서 경기를 완전히 망쳐놓았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어. 감독이 말한 것처럼 한 골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저놈들한테 먹여주지 않으면 조나단 그 바보는 자책할 게 뻔해.’

    이미 경기의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은 정규 시간은 2분가량, 추가시간을 다 합쳐도 5분 정도가 끝일 것이다. 그 5분 안에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상대로 2골을 몰아넣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단 한 골, 한 골이라도 만든다면 아무런 의미 없이 지진 않는다. 조나단 케인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생긴다.

    그것이 그의 발걸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한 골, 단 한 골이라도!’

    크리스 러셀과 공을 주고받은 그는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최전방 공격수처럼 페널티 박스 앞까지 가 있는 벤 로이터에게 가는 패스 길은 이미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선수들에 의해 완전히 막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측면에서 빠져 들어가는 한 명의 동료가 보였다.

    ‘제발! 닿아라!’

    공은 그의 발을 떠나 그의 기원을 담은 채 좌측면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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