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위와 바위 (181/270)
  • 가위와 바위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것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상대로 하는 동민의 생각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대단한 역사를 가진 팀이며, 명장으로 소문난 감독이 있고, 뛰어난 선수들이 있다고 해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동민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팀들을 상대해 왔고, 경기에서 지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던 베이포트 FC와 동민이었다.

    그 자신감의 근원은 지금까지 있던 경기들에서 충분히 동민의 철학이 먹혀들어 갔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형태가 없이 상대에 맞춰서 그들의 카운터 어택이 될 전술을 들고 나오는 베이포트 FC를 보면서, 상대 팀들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당황하면서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전략 전술의 귀재라는 말을 듣는 다비드 페레즈조차도 생각지도 못한 상대의 모습에 급하게 전술을 바꾸어가면서 상대해야 했고, 여러 리그에서 오랫동안 폭넓은 경험을 가진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상대할 방법을 몰라 멍하니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런 상대 팀 감독들의 반응을 보면서 동민은 자신의 철학인 ‘상대에 따라 변하며, 이길 수 있는 축구’에 대한 자신감이 늘어났다. 어쩌면 승격하자마자 챔피언스리그 출전권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러나 오늘의 경기는 달랐다.

    ‘뭐지? 왜 경기가 이렇게 되는 거지?’

    전반전도 반이 지나고, 동민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오늘의 경기는 지금껏 그가 알던 것과는 달랐다.

    시즌이 시작되고 그가 겪은 경기들은 모두 자신들의 장단점을 정확히 짚고 들어온 베이포트 FC의 모습에 당황하면서 전술을 바꾸거나 허둥대고, 베이포트 FC는 또다시 모습을 바꾸면서 그들을 압박하는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상대의 변화에 대처하면서 당황하는 틈을 찔러 계속해서 한 발자국 앞서나가는 모습이 바로 베이포트 FC의 승리 전략인 것이다.

    ‘그런데 변화를 주질 않아? 아니, 그보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

    지금까지 그가 알던 경기의 흐름이 아니었다. 상대는 조금의 당황도, 변화도 없이 우직하게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치고 있었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전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완벽한 두 줄 수비 이후의 날카로운 역습이다. 확실하게 공간을 통제하는 미드필더와 자리를 지키면서 공격을 끊어내는 수비는 그들이 어째서 3년 연속 리그 최소 실점 팀들 중 하나인지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선수들의 튼튼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역습은 미리 대비를 한다고 해도 막아내기 쉽지 않았다.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한 전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역습 전술이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식이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가진 마르코 알베스는 그런 단순해 보이는 역습 전술에 디테일과 강력함을 추가했다. 수비 진형을 이루고 있는 선수들 간의 거리가 몇 미터인지, 어느 방향으로 몸을 돌릴 것이며 어떤 패스로 공격을 시작할지,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전술과 그 전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과의 조합으로, 그들은 스톡포트 시티에 이은 2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동민은 그런 그들을 막기 위해서 몇 가지 방책을 준비했다. 공격 시에 양 측면으로 넓게 벌리면서 상대의 수비 블록을 와해시키려 애썼고, 중원을 최대한 거치지 않는 빠른 패스로 상대가 수비 벽을 완성시키기 전에 공격을 마무리 지을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수비 시에는 상대의 강한 역습을 막기 위해서 중앙으로 밀집하며 머릿수에서 우위를 가져가도록 했다.

    그 지시는 분명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의 질식 수비를 뚫을 수 있었다. 아니, 뚫을 수 있어야만 했다.

    동민은 만약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상대의 전술 변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을 거라 생각했지만 상대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측면을 파고들면 측면에 힘을 주는 대신 측면을 내주고 그대로 중앙을 수비했고, 상대가 빠르게 공격을 가져간다고 중원의 선수들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공격 시에는 상대가 중앙에 밀집한다고 넓게 펼치며 측면을 공략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우직하리만큼 변화 없이 그들의 전술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베이포트 FC에게 경기력이 크게 밀리지 않고 자신들이 어째서 리그 2위를 달리는 팀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당황하는 것은 오히려 동민과 베이포트 FC 측이었다.

    ‘뚫려야 하는데, 아니면 적어도 전술을 바꾸려 들어야 하는데… 어째서 저들은 조금의 당황도 없는 거야?’

    동민은 경악스러운 눈으로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 측을 바라보았다. 마르코 알베스와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분명 그들이 불리해야 할 경기를 뛰어난 선수들의 개인 기량과 뚝심으로 오히려 유리하게 끌고 나갔다.

    베이포트 FC가 변화를 강요하듯 몰아붙여도, 자신들은 그런 것에 당하지 않는다는 듯 자신들의 축구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전술과 선수들은 그들의 플레이만 똑바로 이어나간다면 절대로 질 리 없다, 라는 마르코 알베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듯 그들은 질식 수비와 강한 역습을 이어갔다.

    그리고 전반 37분, 드디어 동민이 기다리던 선제골이 나왔다.

    그러나 그 골의 주인공은 베이포트 FC가 아닌,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었다. 그들은 밀집된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앙 수비에서 끊은 공을 미드필드 지역을 거쳐 최전방으로 운반했고,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간판 공격수 로멜로 시몬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강슛으로 역습의 마침표를 찍었다.

    “말도 안 돼…….”

    홈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두 손을 높게 드는 로멜로 시몬의 모습에 동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분명히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상대의 장단점을 확실히 분석했고, 그것을 파고들기 위한 전술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역할에 맞는 선수들로 선발을 구성했다.

    그러나 그들은 압도하지 못했다.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 움직임을 하면서도 그들은 끝끝내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을 뚫지도, 막지도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동민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게 질 대신 양으로 승부를 보려니까 닿질 못하는 거지.’

    전반전이 끝나고, 마르코 알베스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은 로멜로 시몬이 한 골을 더 추가하며 2 대 0이라는 점수 차로 경기를 리드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이 경기는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강동민과 베이포트 FC의 전술은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마르코 알베스의 생각이었다.

    ‘갖가지 모양의 모형 검을 수백 개 들고 있어봐야 진짜 검 앞에서는 다 플라스틱 쪼가리나 마찬가지인 것과 같지. 아무리 여러 가지 무기를 가지고 상대를 이기려고 해도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이상 불가능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베이포트 FC와 동민의 철학인 ‘상대에 따라 변하며, 이길 수 있는 축구’는 결국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상대에 따라서 여러 전술을 낼 수 있는 것은 분명 강점 중 하나지만, 그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무리 동민이 스테이터스를 보면서 선수들에게 맞는 역할을 배분하고, 상대의 약점을 찌를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선수들의 재능이나 감독의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전술의 완성도의 문제였다.

    축구에서의 전술은 가위바위보가 아니다. 상대가 가위를 낸다고 자신이 주먹을 내면 무조건 경기에 이길 수는 없다. 자신의 주먹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아 질 수도 있고, 상대 가위가 너무나도 강해서 바위마저 자를 수도 있다.

    지금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동민이 아무리 상대를 카운터 칠 생각으로 전술을 들고 나와도, 결국 선수들의 역량이나, 같은 전술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은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민이 내민 바위가 손을 그러모아 내밀 바위라면, 마르코 알베스의 가위는 진짜 강철을 벼려 날카롭게 만들어낸 가위였다. 그리고 그 가위는 동민의 바위를 무참히 잘라내어 버렸다.

    ‘직접 베이포트 FC의 경기를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저들은 전술을 바꾸면서 자멸하지 않아. 하지만 그게 전부다. 겨우 자멸하지는 않는, 전술을 펼칠 수 있는 정도로 우리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단 한 가지 전술을 위해 계속해서 연습하고 익숙해져 이제는 마치 한 몸처럼 자연스러워진 팀과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매번 다른 전술을 펼 쳐나가는 팀, 두 팀의 경기 결과는 보지 않아도 명확하다며 그는 웃었다.

    거기에 조나단 케인의 스캔들 탓인지 혹은 베이포트 FC의 젊은 감독인 강동민이 당황한 건지, 그 전 경기들보다 베이포트 FC의 움직임이 그리 좋지도 못했다. 어떤 전술로 바뀌든 무리 없이 소화하는 것이 전까지 베이포트 FC의 모습이었다면, 오늘은 어딘가 나사가 녹이 슨 기계처럼 어색했다.

    ‘이런 경기를 지면 바보나 다름없지. 상대의 전술과 우리의 전술, 상대 팀의 컨디션과 우리 팀의 컨디션, 팀의 정신 상태까지. 모든 면에서 우리가 압도하고 있으니까.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경기야.’

    마르코 알베스는 그런 상대에게 자신의 팀이 절대 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자기 자신과 팀에 대한 자신감이 과도하다고 싶을 정도로 넘치는, 그만이 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경기 전 말했던 대로 더 뛰어난 감독과 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는 그들이 질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후반전에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고민하는 대신, 어떤 식으로 더 압박할지 기대하고 있었다.

    ‘완전한 패배다.’

    전반전이 끝난 직후 동민의 생각이었다.

    조나단 케인의 일로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계속된 승리로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었다는 것도 전부 핑계에 불과했다.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과 마르코 알베스가 그저 베이포트 FC와 동민을 모든 면에서 압도했을 뿐이었다. 선수들이 비록 평소보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다지만 자신이 짜낸 전술이라는 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움직였고, 동민의 전술은 마르코 알베스를 넘지 못했다. 그가 차례로 꺼낸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약점을 노리는 변화는 그들을 당황시키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금껏 상대의 당황과 실수를 이끌어냈던 그들의 방법이 오늘만큼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 이 넓은 경기장 단 한 곳에서도 우리는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어.’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충격에 빠진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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