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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팀 (180/270)
  • 흔들리는 팀

    조나단 케인의 스캔들 기사는 곧바로 구단에서 직접 나서서 항의하면서 진화가 되는 듯했다. 베이포트 FC 측은 팀과 선수를 흔들기 위한 악의적인 기사에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면서 강경하게 대응했고, 위클리 메일은 정정 보도를 한 것은 아니지만 후속 기사를 쓰지 않으며 점점 논란은 가라앉았다.

    처음부터 위클리 메일이라는 언론사의 신뢰도가 낮은 편이었고, 조나단 케인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번져 나가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스캔들 소동이 아무런 문제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아…….’

    동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가 어느덧 내일로 다가왔지만 선수들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체적인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었다. 당장 내일이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경기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는 듯 어딘가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런 상황이 되는 게 무리도 아닌가.’

    조나단 케인의 스캔들 기사는 조용히 흘러가는 듯했지만 확실히 본인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스캔들의 장본인인 조나단 케인은 처음 겪어보는 거짓 기사 때문에 꽤나 심리적인 압박감을 받고 있었고, 다른 팀원들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씩은 마음이 무거웠다.

    유명 선수들이 메스컴의 타깃이 되거나, 사생활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피곤한 삶을 사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고의적으로 선수나 팀을 흔들기 위해서 기사가 나오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프로 축구라는 무대에 선 그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지식이나 간접적인 경험으로 알고만 있는 것과, 그 대상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전혀 달랐다.

    ‘유명 팀의 유명 선수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아 버렸으니까.’

    과거에 오랜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하던 벤 로이터나, 몇 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뿐이지만 K리그에서 떠오르는 스타 취급을 받던 박주현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메스컴의 타깃이 된 적이 없었다. 지금껏 악의적인 기자들의 공격 대상이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던 것이다. 심지어 주장인 조나단 케인과 해리 맥스웰조차도 그런 상황이었으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차라리 대상이 나였다면 나았겠지만…….”

    동민은 한숨을 쉬면서 차라리 악의적 관심의 대상이 자신이었으면 나았을 거라 생각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것과는 다르게, 생판 모르는 타인들의 악의를 받는 것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언제나 경험하던 일이었다.

    한때는 그 기억에 사로잡혀 허둥대던 자신이었지만,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나니 지금은 크게 놀라거나 상처받지 않고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화살은 선수들에게 돌아갔고, 그 상황에 동민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이게 바로 그 망할 기자 놈들이 원한 거였겠지만.’

    동민은 엉망이 되어버린 팀 분위기를 보면서 이를 갈았다. 큰 무대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예상외로 이럴 때 발목을 잡고 있었다. 단순히 프리미어리그라는 큰 무대에 올라 강한 팀들을 상대하는 것에 주눅이 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더 많이 받고 더 큰 관심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경험 많은 벤 로이터의 말이나 선수들을 휘어잡는 브라운 키드의 일갈도 흔들리는 선수들의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좋은 성적인 팀에 대한 사람들의 악의 섞인 관심을 처음 겪어보는 선수들은 이리저리 흔들렸고, 동민조차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확실히 내놓기는 힘들었다.

    ‘애초에 경기장 안쪽의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던 나한테는 생각지도 못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나 다름없으니까. 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동민은 당장에 꼬여 버린 이 상황을 풀어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해결할 방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상황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베이포트 FC가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한, 아니, 지금과 같은 성적은 유지하지 못해도 이미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탄 이상 대중들의 관심을 떼어놓기 힘들었다. 이는 조나단 케인과 같은 일이 언제든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의미했다.

    ‘결국 선수들과 팀 전부가 이런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차라리 선수들도 이걸 예방 주사라고 생각하면 앞으로는 조금 덜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나중에 그들이 이런 악의적인 관심에 익숙해져서 이번 같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발판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어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나나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가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해도, 언제든 자신도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본 이상 잘 먹히지 않으니까.”

    언제나 상식적인 이야기가 통하진 않는다는 것을 동민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상식 이상의 감정이나 충격이 선수들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는 그저 뻔한, 입에 발린 말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분한 듯 주먹을 꼭 쥐었다.

    베이포트 FC 선수들이 사람들의 야유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노스 윌드 더비에서 진 이후에는 팬들의 야유와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고, 경기력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에는 따끔한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경기장 안쪽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좋은 경기를 펼쳐서 팬들의 응원에 보답해야 했으나 그러질 못했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사실이 아닌 날조로 이루어지는 흑색선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레 그들의 가슴을 찔러왔다.

    자신들에게 환호와 응원을 보내던 사람들이 경기장 내의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그들에게 악의를 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마치 타르처럼 검고 끈적한 덩어리가 되어 그들 마음속에 들러붙어 있었다.

    ‘결국 방법은 선수들이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뿐인가… 내일 경기에서 최대한 영향이 없길 바라야 하는데…….’

    동민은 그러길 간절하게 바랐다.

    “확실하게 이겨야 한다. 상대는 고작해야 승격 팀이고, 우린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진 팀 중 하나다. 스톡포트 시티 같은 머저리들도 이긴 팀에 우리가 질 수는 없지 않나?”

    메이클즈필드 애슬레틱의 감독, 마르코 알베스는 으르렁거리듯 도발적인 특유의 말투로 선수들에게 말했다. 그의 말은 격려라는 뜨뜻미지근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치 싸움에 나서기 직전에 싸움소들의 화를 돋우듯 그들을 도발하는 그의 어법은 선수들로 하여금 이를 악물고 경기장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런 그의 어법은 지금껏 여러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던 그의 방식이었고, 그가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게 만들어준 그의 재산들 중 하나였다.

    “거기에 상대가 지금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지만 지금은 흔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주장인 조나단 케인의 스캔들 기사가 얼마 전에 터졌었거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일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팀과 주장이다.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어.”

    마르코 알베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우연인지 우리 팀과의 경기 직전에 기자 놈들이 쓰레기 같은 기사를 내던진 거긴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 먹어야지. 그게 승부니까.’

    그는 일부러 경기 직전에 언론사에 사주를 해서 스캔들을 만들 만큼 악인은 아니지만, 이런 굴러들어온 기회를 손 놓고 놓칠 정도로 호인도 아니었다. 축구 경기란 여느 승부가 그렇듯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것이었고, 그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열쇠 하나를 줍지 않고 지나쳐 갈 필요는 없었다.

    “로멜로, 넌 기회가 될 때마다 상대를 계속 자극해. 아마 쉽게 먹혀들지는 않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말려드는 순간 우리의 승리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

    마르코 알베스의 물음에 팀의 원톱인 로멜로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 수비수와 충돌이 잦은 이 타깃형 스트라이커는 튼튼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지능적인 플레이를 장점으로 삼고 있었고, 그런 그에게 이런 주문은 그리 드물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의 축구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상대는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는 팀이다. 경기가 벌어지는 곳은 우리의 홈그라운드고, 상대는 허약하며, 우리에겐 더 뛰어난 선수들과 더 뛰어난 감독이 있다. 이길 수밖에 없는 경기 아닌가?”

    마르코 알베스의 자신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에 선수들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런 마르코 알베스의 태도는 그들에게 이미 익숙했다. 과도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자신감이 지금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었고, 지금껏 두 번이나 트레블(한 시즌에 세 개의 트로피를 차지하는 일로, 대체로 챔피언스리그, 리그, FA컵 우승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을 이룬 그의 자존심이며, 메이클즈필드 애슬래틱의 등을 밀어주는 힘이었다.

    “그럼 가서 이겨 버리라고. 지금껏 운 좋게 쉬운 팀들을 만났지만 그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걸 알려줘.”

    그렇게 말하며 마르코 알베스는 빙그레 웃었다.

    “오늘 상대인 메이클즈필드 애슬래틱은 분명 슈퍼 클럽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의 팀이지만, 우리는 할 수 있어요. 이번 시즌 정신 나간 경기력을 보여주던 스톡포트 시티를 상대로도 자신 있게 붙었던 우리 팀이니까요.”

    동민은 평소처럼 선수들을 붙잡고 최대한 그들의 기를 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도, 그리고 듣고 있는 선수들의 눈 속에서도 평소만큼의 힘은 없었다.

    선수들의 눈에선 아직 경기에 대한 확실한 집중이 느껴지지 않았고 동민의 눈은 그것들을 흐릿하게나마 잡아낼 수 있었다.

    “…모두들 어째서 그 일을 신경 쓰는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강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은 다들 해왔잖아요.”

    동민은 어두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충분히 흔들릴 수 있고,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이게 여러분들이, 우리 팀이 가야 하는 길입니다. 다른 이들의 시샘이나 악의를 받아들이는 일이요.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 때문에 흔들린다면 사람들은 더욱 비웃겠죠.”

    그는 거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

    그의 말을 들은 선수들은 제각각 사람들이 어떤 말들로 그들 괴롭힐지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동민은 분위기를 바꾸어 힘 있게 말을 끝냈다.

    “그러니, 오늘 경기에서 우린 이겨야만 합니다. 그깟 일들로 여러분이, 베이포트 FC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해요.”

    그 말을 하는 동민의 눈은 뜨겁게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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