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재할 수 없는 팀 (178/270)
  • 존재할 수 없는 팀

    ‘생각보다 더 일방적인 경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전반전을 지켜본 버턴 유나이티드 팬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아무리 시즌 초반이라지만 9경기 동안 6승 2무 1패라는 대단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쉬운 경기를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경기력은 단순한 승격 팀의 경기력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이기지는 못해도 이렇게 밀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베이포트 FC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버턴 유나이티드는 꾸준히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최근 5년간 단 한 번도 10위권 밑으로 시즌을 마감한 적이 없는 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쉽지 않은 경기가 될 수 있다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버턴 유나이티드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반전까지의 내용은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뛰어넘고 있었다.

    베이포트 FC는 수비 라인을 올리고 양 풀백까지 모두 중원 싸움에 합류시키면서 버턴 유나이티드의 역습을 사전에 차단했고, 미드필드 지역의 수적 우세를 등에 업고 짧은 패스들을 돌려가면서 버턴 유나이티드의 공격 기회 자체를 거의 내주지 않았다.

    버턴 유나이티드 공격의 핵심이자 창의적인 패스를 책임지던 심형만이라고 해도 비좁은 중원과 그 안에서의 수적 열세 앞에서는 평소만큼 공격을 풀어나가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중앙 수비를 뚫는 스루 패스로 힘들게 만들어냈던 몇 번의 기회는 공격수가 채 잡기 전에 베이포트 FC의 골키퍼가 빠르게 달려 나와 차내거나 볼을 잡으면서 무산되었다.

    버턴 유나이티드가 베이포트 FC의 수비를 뚫는 것에 고전하는 것과는 반대로, 베이포트 FC는 선제골을 넣으며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넓게 벌린 두 명의 윙어는 끊임없이 풀백의 뒤로 침투를 노리며 그들의 오버래핑을 제한했고,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미드필드 지역에서 찔러 들어가는 날카로운 패스가 수비진을 위협했다.

    ‘이번 경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경기가 전반전 내내 베이포트 FC의 우세로 흘러가자 몇몇 팬들의 머릿속에서는 그 생각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경기력입니다. 지금 이대로만 가면 분명 승리를 거머쥘 수 있어요.”

    동민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이 동민이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전반전 내내 버턴 유나이티드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가장 집중해 주문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양 풀백으로 나선 제임스 더커와 피터 아일랜드는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상대가 공을 잡으면 중앙으로 좁혀 들어와서 중원에서의 주도권에 도움을 줄 것.

    두 번째, 발 빠른 측면의 두 선수, 잭 하워드와 야야 둠베흐는 넓게 벌려 서서 끊임없이 상대 측면 수비 뒤로 돌아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취해 양측 풀백이 마음 놓고 공격 지원을 나오지 못하게 만들 것.

    세 번째, 골키퍼로 출전한 폴 맥마흔은 골문 앞에서 골문을 지키기보다는 중원을 지원하기 위해 올린 수비 라인 뒤의 넓은 공간을 커버해 줄 것.

    이 세 가지의 지시는 전반전 내내 버턴 유나이티드를 괴롭혔다. 중원에서의 수적 열세 때문에 심형만은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고, 경기장을 넓게 쓰면서 측면을 노리려던 노력은 계속된 상대의 측면 공략 시도 때문에 무산되었다. 그리고 힘들게 드리블 돌파와 스루 패스로 중앙을 열어 겨우 얻어낸 찬스는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언제든 나올 타이밍을 보고 있던 폴 맥마흔의 수비로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야야 둠베흐와 잭 하워드가 벌려놓은 공간은 박주현과 벤 로이터가 패스를 주고받으며 수비를 농락하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전문 공격수가 아닌 두 사람은 미드필더들의 지원을 받으며 양 측면을 교대로 지원했다. 그 움직임은 양 측면의 고립을 막고 결국 선제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에딘 페트로비치나 로날드 조던과 같은 스트라이커들을 아예 쓰지 않고 중원에 집중한 게 역시 유효했어.’

    동민은 전반전이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간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상대가 심형만을 통한 역습을 노린다는 것을 알고 중원을 장악하려던 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후반전도 전반전처럼만 흘러가면 좋을 텐데…….’

    그는 그렇게 바라며 후반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버턴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눈가를 매만졌다. 전반전 내내 완벽하게 압도당한 것이 큰 충격을 가져온 것이다. 물론, 단순히 경기력에서 밀린 것에 한숨을 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록 하위권 팀들이었지만 세리에A와 분데스리가 등을 거친 경험 많은 감독이었고, 내로라하는 강팀들을 상대한 적도 많았다. 그만큼 패배한 적도, 절망스러울 정도로 상대에게 밀린 적도 두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이만큼 답답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경기를 이렇게 밀리는 상황에서도 어떤 식으로 경기를 뒤집어야 할지 확실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는 거야. 위험을 무릅쓰고 측면을 공략해야 할지, 아니면 우리의 플레이를 포기하고 롱볼을 노려봐야 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어떤 상황이든 모든 전술에는 강점과 약점이 있다. 모든 것에서 완벽한 전술이라는 것은 없으며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전술도 시간을 들이며 분석해 보면 어떤 점에서든 파고들 만한 점은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베이포트 FC를 보면서는 그 약점을 찾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실체 없는 유령처럼 계속 바뀌고 있으니까. 약점을 찾아 찔러보려고 해도 이미 바뀌어 있어. 아니,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대비를 하더라도 그렇게 나오질 않으니 아무 의미가 없어.’

    그는 경기 전 베이포트 FC의 앞선 세 경기를 면밀히 분석했었다. 아무리 확실한 팀의 컬러가 없이 팔색조처럼 상대에 따라 전술을 바꾼다고 해도 그 가운데에 뿌리 깊게 박힌 것은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버턴 유나이티드의 코칭 스태프들이 며칠간 머리를 모아 고민해 보아도 혼란에 빠질 뿐이었다. 결국 그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정말로 베이포트 FC의 강동민이 기본으로 삼는 전술은 없다.’

    그들은 점유율을 중시하면서 상대를 말려 죽이려는 듯 공을 돌리는 경기를 펼치다가도 다음 경기에서는 롱 볼을 이용한 재빠른 킥 앤 러시로 역습을 노리기도 했다. 즉, 그들은 어느 한 가지로 정해지지 않은, 경기마다 제멋대로 바뀌는 유령과도 같은 팀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경악했다. 자신들이 분석하는 것이 맞다면, 베이포트 FC는 있을 수가 없는 팀이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코치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만나보면 전술 변화에도 한계가 있고, 분명히 파고들 수 있는 면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감독들은 상대에 따라서 팀 전술을 다르게 준비하지만, 그래도 바꾸기 힘든 팀 컬러는 있다. 게다가 아무리 예측하지 못한 전술의 변화를 주는 것이 상대를 혼란시킬 수 있다고 해도, 팀 컬러까지 무시하면서 전술을 짜는 짓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익숙해지지 않은 전술로 변화를 줘봐야 선수들에게 혼란만 남을 뿐 생각했던 결과는 나오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 하던 것을 선수들에게 강제로 시키려다가 자멸할 위험성이 높으니까 변화를 줘도 적어도 팀 전술의 철학은 남기지.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하는 녀석은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은 실제로 세상에 존재했다. 그것도 그는 그 시도를 성공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들 매 경기마다 전술을 크게 바꾸지 못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강동민 저 사람은 대체 뭐지?’

    재능 있는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속에서 빠른 바다거북을 땅 위에 둔다면 그 속도를 낼 수 없고 치타를 수영시킨다고 그 속도를 낼 수 없는 것처럼, 맞지 않는 전술에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때문에 선수들이 한정되어 있는 이상, 그들로 짤 수 있는 전술 또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베이포트 FC가 하려는 대로 전술을 계속 바꾸려면 선수들의 풀이 그만큼 넓거나 선수들이 어떤 전술에서도 자기 몫을 할 정도로 유연해야 해. 그런데 승격 팀의 그 좁은 선수 풀로 저게 가능하다고? 게다가 어떤 전술에 선수가 맞게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아보려면 그 또한 시간이 필요해. 대체 강동민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프란체스코 만치니의 반응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민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 베이포트 FC가 한정된 선수들로도 여러 전술들을 병행해 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동민의 능력 때문이었다.

    선수가 많지 않아도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어떤 전술에서 활약할 수 있는지, 동민은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연습 경기에서 그 역할을 맡기고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를 확인한다면 그 역할에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선수들의 특성을 보면서 어떤 역할에 적합할지 경기에 뛰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예상이 가능했다. 그 방법으로 알아낸 역할에 맞는 선수들로, 혹은 가장 유사하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선수들로 동민은 상대에 대한 카운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방법과 상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방법을 동민은 모두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만치니는 그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후반전이 되어 박주현의 추가골로 경기가 2 대 0으로 끝날 때까지, 그는 혼란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흥미롭네.”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리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리에 환호하는 베이포트 FC 팬들과 패배에 낙담하는 버턴 유나이티드 팬들의 표정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러나 흥미롭다는 말을 하는 남자의 표정은 그의 말과는 달리 불쾌하다는 듯 찌푸려져 있었다.

    ‘방송이나 스타우터들이 떠들어대기에 얼마나 대단한 팀일까 기대했는데. 막상 직접 보니 실망을 금치 못하겠군.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난 알 수가 없어.’

    그는 경기 전 베이포트 FC와 강동민이라는 젊은 감독에 대해서 놀랍다며 찬사를 늘어두던 다비드 페레즈를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도 참 허풍이 심하다니까.”

    그는 그렇게 혼잣말하며 경기장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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