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넘을 수 없는 벽 (175/270)
  • 넘을 수 없는 벽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지난 시즌부터 만나던 베이포트 FC는 유난히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챔피언십이라는, 그의 실력에 비해 작은 무대에서부터 그의 발목을 잡아끄는 듯한 베이포트 FC의 움직임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부터 느꼈지만 나를 다 파악하고 붙잡아내는 느낌이야. 그것도 다른 팀들과는 전혀 반대의 방법으로.’

    챔피언십에서는 팀 전체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모습을 뽐내던 모리스톤 타운 AFC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개인 능력이 챔피언십 팀들과는 격차가 컸고, 그것은 곧 모리스톤 타운 AFC가 선수들의 개인 능력에서부터 압도적인 격차로 경기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이 6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이끌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는 크랙의 존재 유무였다.

    챔피언십을 초토화시키다시피 했던 그의 드리블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혼자 힘으로 수비수 3, 4명을 끌고 다니면서 상대 수비진을 휘젓는 그의 모습은 압도적이라는 말이 들어맞았다.

    그러나 베이포트 FC만 만나면 그런 그의 모습은 빛이 바래는 경우가 많았다. 베이포트 FC는 마치 그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그를 막아대고 있었다.

    ‘오늘도 이런 식이니…….’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이를 악물었다.

    상대는 지금까지 모리스톤 타운 AFC를 상대할 때 그랬던 것처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직접 압박하기보다는 주위 선수들부터 조여서 그에게 공이 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모리스톤 타운 AFC의 감독인 알베르토 브루노는 그것을 예상하고 다른 측면 풀백을 공격적으로 올리는 변형 쓰리백으로 맞섰지만, 상대는 곧바로 그 뒤 공간을 공략하면서 풀백의 전진을 방해했다.

    ‘매번 베이포트 FC를 상대할 때마다 마치 노린 듯이 내가 아닌 다른 팀원들부터 봉쇄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내가 공을 받는 위치가 그리 위협적이지 못하게 되고 있어. 반쯤은 내가 그렇게라도 움직이는 탓도 있지만…….’

    지난 시즌 있었던 베이포트 FC와의 무승부, 그리고 그다음 맞대결에서의 패배 이후 그는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한 팀의 에이스가 되는 것이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그 전에는 확실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에이스란 팀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가 아니었다.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경기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그것을 바꿔줄 선수였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빛나게 만들어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팀의 에이스였다.

    그것을 깨달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까지 공이 돌지 않아도 전방의 위협적인 공간에서 공이 오길 기다리지 않았다.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자신이 후방으로 내려가면서 공을 받고 끌고 들어가는 등, 가장 화려한 공격의 마무리 자리가 아니라 궂은 일까지 맡아서 하면서 팀의 승리를 위해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오늘 경기에서는 그런 노력도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혹시나 감독이 바뀌어서 좀 더 쉬운 상대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더 까다로워. 앨런 휴즈 혼자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다는 건가. 현재 성적을 보면 이해는 가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은 그라운드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씹어대고 있었다. 강동민이라는 젊은 감독이 맡게 된 베이포트 FC는 전과 비슷하지만 상대의 전략을 눈치채고 대응하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들의 변형 쓰리백을 파악한 듯 곧바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측의 측면 깊숙한 곳을 공략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며,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전술에 대안 파악,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 전부 앨런 휴즈를 상대할 때보다도 빨라.’

    그 때문에 상대의 중원 압박을 예상한 변형 쓰리백과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모리스톤 타운 AFC는 효과적인 공격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태였다. 전방으로 이어지는 패스는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는 상대의 미드필더진에 의해 방해받고, 반대로 공격의 키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중원까지 내려와서 상대를 끌어내고 활로를 찾으려 하면 상대는 끌려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의 머릿속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베이포트 FC는 안전성과 적극성의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그들을 압박했다.

    ‘거기에 그렇다고 역습이 무딘 것도 아니야. 한번 공을 탈취당하면 순식간에 측면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니까 이쪽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더 올라가기도 쉽지 않아.’

    어떻게 해야 상대를 뒤집어 버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조여오고 있었다.

    그런 알베르토 브루노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복잡한 머릿속과는 달리, 동민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우리 쪽에서 먼저 상대의 전술을 예측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었어. 그조차도 잠시 잊을 정도로 제대로 집중하질 못했다는 건가.’

    샐리와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돌아온 이후, 동민은 곧바로 모리스톤 타운 AFC와의 경기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굳이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 디테일하게 전부 예측해서 할 필요성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불쑥 고개를 든 것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스스로 고개를 저었지만 그 생각은 조금씩 크기를 더했다.

    ‘지금껏 다른 강팀들을 상대할 때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변화해서 나올지 예측하고 세부 전술을 짜놓은 적이 있던가?’

    그 생각은 어느새 동민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상대 특유의 전술의 허점을 노리고, 강점을 약화시키며 상대하는 것이 그와 베이포트 FC의 철학이다. 그만큼 상대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가 기본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들고 나올지 생각하고 그것에 맞춘 준비였지, 상대가 자신들을 상대하려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지에 대한 준비는 아니었다.

    상대가 어떻게 변화를 가져오고, 그걸 어떤 식으로 받아칠지에 대한 고민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깨달은 동민은 그전까지 고민하던 것을 전부 깔끔하게 지워 버렸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어떤 상대든 통할 수 있는 전술을 짜는 게 아니라 상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나가는 일이었지. 가뜩이나 상대를 핀 포인트로 겨냥해서 대응 전술을 짜내는 내 방법에서 상대의 확실하지 않은 변화까지 미리 준비할 수는 없는데 말이야.’

    대신 그에게는 상대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채고, 곧바로 전술을 바꿀 수 있는 능력과 유연성이 있었다. 그것이 스테이터스를 보는 능력을 가진 그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지금껏 그것을 잊고 있던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도 잊고 있었다니… 지금껏 처음 만나는 팀들만 상대하다가 이미 두 번이나 맞붙었던 상대를 만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만큼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했던 탓인지.’

    그것을 깨달은 동민의 해답은 간단했다.

    지금까지와 같이 상대가 주 전술로 나올 것을 상정하고 경기를 준비했고, 만약 변화가 보인다면 임기응변으로 맞대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해답은 확실하게 경기를 잡아내고 있었다.

    상대의 변형 쓰리백을 보고서 좌측면에 있는 박주현을 통해 뒤를 공략하는 것으로 상대 풀백의 전진을 막았고, 예상에 없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중원 가세에는 압박의 자제를 지시하며 너무 과하게 나서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반전 내내 이어진 모리스톤 타운 AFC의 답답한 경기 내용이었다.

    ‘원래는 계속 압박을 넣으면서 전반전 안에 골을 노리고 후반전에는 수비에 집중하려 했지만… 모리스톤 타운 AFC 측에서 준비한 게 많아 보이니 조금 더 조심스럽게 가야겠어.’

    동민은 냉정한 눈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차이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있었다. 후반전이 되어도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베이포트 FC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느 팀이 공을 더 오래 쥐고 있는지 따지자면 모리스톤 타운 AFC가 더 공을 점유하고 있었지만, 경기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그들이 공을 잡는 지역은 상대를 위협하기 힘든 센터 서클 근처나 자신들이 진영으로, 공을 잡아도 빠른 공격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과거에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로잡고 팀의 일원으로 만들었던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도 지금의 상황을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자존심 강한 스타플레이어들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꺾고 팀에 녹아들게 만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였지, 다비드 페레즈와 같은 전술가의 기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면 공을 잡는 일 자체가 줄어버려. 기회를 만들려면 공을 잡아야 하는데 공을 잡으려면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니.’

    그러나 멍하니 입술만 깨물면서 서 있을 수는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탄식을 할 시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뛰고, 한 번이라도 더 공을 잡아서 상대를 뚫어낼 생각을 해야 했다.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또다시 지고 싶지 않아. 나밖에 모르던 때에 졌던 것은 이해할 수 있어, 그때는 내가 모자랐으니까. 하지만 경기장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가 아닌, 팀의 승리를 위해서 뛰는데도 또다시 진다면… 그것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어.’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 아래에서 자신이 빛나는 것보다 팀의 승리에 더욱 큰 의미를 찾은 그였다. 그리고 바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준수한 팀의 성적만으로는 부족했다. 선수들의 개인 능력으로 압도하던 그와 모리스톤 타운 AFC의 자존심을 구겼던 베이포트 FC를 이겨야만 바뀐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만큼은…….’

    그는 그렇게 이를 악물고 중원에서부터 또다시 돌파를 시도하며 상대 수비 진영을 뚫고 들어갔다. 아까 전부터 계속 시도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뺏기던 것과는 달리, 그를 막으려던 수비수가 판단 미스로 공간을 허용한 것이다.

    ‘어쩌면 이 경기에서 한 번뿐이 될지도 모를 기회야!’

    그는 방망이질하듯 두근대는 가슴을 눌러 참으며 침착하게 슛 페이크로 또 한 명의 수비수를 제쳤다. 이제 그와 골키퍼 사이에는 그의 슛을 방해할 수비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골문 구석으로 낮게 깔아 슈팅했고, 그 공을 골키퍼 손을 스쳐 지나갔다.

    골이라고 그가 확신하는 순간, 공은 골대를 맞고 튕겨져 나왔다.

    30분 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모리스톤 타운 AFC의 1 대 0 패배를 지켜보면서 얼굴을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