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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의 대표 팀 첫 출전 (171/270)
  • 주현의 대표 팀 첫 출전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곧 벌어질 경기에서 대한민국 국가 대표 팀의 승리를 바라는 관중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의 우즈베키스탄전은 월드컵 진출로 향하는 길목에서의 마지막 시험대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비록 친선전이라고 해도 반드시 승리를 차지해야 한다며 강하게 국가 대표 팀을 압박하고 있었다. 지난 친선경기에서 상대였던 이란에게 너무나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3 대 0이라는 참패를 당했던 기억을 어떻게든 떨쳐 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친선경기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분위기에서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단 박주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국가 대표 팀이라니… 이렇게 벤치에 앉아 있는데 아직까지도 잘 실감이 안 나.’

    주현은 신영수 국가 대표 팀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매일매일이 믿겨지지 않았다. 골문 앞에서, 또는 중요한 경기마다 흔들리던 탓에 축구의 꿈을 접고 그저 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갈 생각이었던 스무 살의 자신,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대표 팀의 핵심 멤버인 심형만을 대신하여 태극 마크를 달게 `된 자신. 이 두 자신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감이 너무 큰 탓이다. 혹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기 전마다 볼을 꼬집을 지경이었다.

    ‘신영수 감독님도 나한테 기대하고 계신다니까 기회가 온다면 확실히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데.’

    주현은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그 말이 입에 발린 립 서비스라고 해도 국가 대표 팀에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주현의 생각과는 달리, 신영수 감독의 본심은 조금 달랐다.

    ‘최대한 지금 멤버가 잘해줘야 하는데…….’

    지난 이란전에서 참패를 당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그는 싸늘한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국가 대표 팀에 발탁되었다는 기쁨으로 가득한 주현은 모르지만, 그의 발탁은 단순히 현재 잘하는 선수에 대한 발탁이 아니었다.

    지난 경기 참패 이후, 팬들과 언론에서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과 그에 대한 질타가 잇따랐다. 그 전부터 조금씩 어긋나는 경기력을 보여주던 것을 참고 있던 팬들은 이란전 참패가 벌어지자 봇물이 터지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폼이나 실력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과거의 커리어나 이름값만 보고서 선수들을 뽑는 것이 아니냐는 맹렬한 비판이 날아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자신이 뽑는 선수들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곤란하게도 갑작스레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주현이 4경기 2골 2도움, 1경기당 1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꼴로 맹활약을 하고 있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었다.

    ‘박주현을 왜 안 뽑냐, 자기 새끼 챙기기에 바쁜 감독이냐, 한국형 점유율 축구를 보여주겠다더니 정작 보여주는 건 한국식 인맥 축구냐, 그딴 댓글이 가득했으니까.’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대표 팀의 핵심 자원인 심형만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팬들과 언론들의 말대로 박주현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써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욕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이 믿는 선수들로 나갈 것이냐.

    그 선택에서 그는 중간을 택했다. 박주현을 심형만의 대체자로 급히 발탁하되, 선발이 아닌 벤치 자원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전반전에 지금 멤버가 잘해주면 굳이 박주현을 내보내지 않아도 경기에 이길 테니 박주현에 대한 이야기는 묻혀 버리겠지.’

    혹은 결국 그들이 못해줘서 박주현을 투입한다고 해도 그마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박주현을 쓰라는 대중들의 압박 또한 줄어들 것이 틀림없었다.

    그로서는 현재 선발 멤버가 잘해줘서 승리를 가져가는 것이 최선, 그들이 못하고 박주현도 함께 못하는 것이 차선, 박주현이 들어가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차악, 혼자 분전하고도 패배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솔직히 K리그에 있을 때부터 발기술과 다재다능한 점만은 장점이지만 발이 빠른 것도 아니고. 뭔가 한번 반짝 터지는 애매한 선수 같은데.’

    신영수 감독이 보는 박주현은 그런 선수였다.

    K2 리그에서 승격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고작 2부 리거라는 생각이 강했고, 그다음 K리그에서도 팀의 주축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너무나도 짧았다. 곧바로 잉글랜드의 베이포트 FC가 거액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겨우 1, 2년 정도 반짝하고 터졌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선수들이 많아. 겨우 그런 선수들한테 일일이 태극 마크를 달아줄 정도로 국가 대표 팀이 가벼운 곳인 줄 아나.’

    과거 국가 대표 팀에서 100경기가 넘는 경기들을 치르고 센추리 클럽까지 들어간 그인 만큼, 태극 마크에 대한 생각은 보수적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완고했다. 이란전의 참패로 자신과 팀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 날아들지 않았다면, 박주현의 발탁은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훈련에서도 혼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던데. 국가 대표 팀 감독이 앵무새같이 변화만 외치는 그깟 대중들 때문에 이런 보험도 들어두어야 하다니.’

    그는 이를 갈면서 뒤에 앉아 있을 박주현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주현을 얕보면서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가 보았던 훈련의 주현은 영국에서부터 장시간 비행을 거쳐 한국에 왔고, 시차 적응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는 사실이었다. 굳이 국가 대표 팀 감독이라는 자리가 아니어도 생각할 수 있는 점이었지만 완고한 그는 그 점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선발 멤버가 경기를 확실하게 지배해 버리면 굳이 쓸 필요도 없는 보험이야. 우즈베키스탄 정도야 월드컵 예선이 시작되기 전에 먹는 보약 같은 거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선발 멤버의 활약을 진심으로 바랐다.

    신영수 감독의 바람과는 다르게 경기는 우즈베키스탄의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전반전 동안에만 두 골을 내주면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패스는 창의성을 잃고 틀에 박힌 듯 뻔한 패스만 오고 갔고, 그들의 움직임은 유기적인 모습은 없이 그저 뛰어야 하니까 뛴다고 말하는 듯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의 뻔한 패스들은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에게는 역습의 신호탄이나 다름없었고, 어색한 위치 선정과 틀에 박힌 움직임은 손쉽게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게 알려주는 꼴이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실속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점유율만 가져가면서 공을 돌리다가 우즈베키스탄의 날카로운 역습에 당황하기만 할 뿐이었다. 승리를 기대하고 환호성을 지를 준비를 하던 팬들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고, 애써 응원을 이어나가 보려 했지만 응원 소리는 점점 더 줄어들 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후반전이 시작되고도 이어졌다. 계속된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에 팬들이 지칠 무렵, 결국 후반 15분이 되어서야 신영수 감독도 교체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등번호 21번, 박주현의 국가 대표 팀 첫 출전이었다.

    ‘후, 떨리네.’

    신영수 감독의 지시를 받아 경기장 밖에서 투입 준비를 하고 있는 주현은 주먹을 꾹 쥐면서 긴장을 풀려 애썼다.

    우드뱅크 스타디움에서 벌어졌던 스톡포트 시티 전처럼 이보다 더 많은 관중들 앞에서 경기한 적도 있다. 우즈베키스탄 대표 팀보다 더 강한 팀들을 상대한 적도 있다. 그러나 태극 마크의 무게는 그에게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는 다른 긴장감을 주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잘해야 하는데.’

    긴장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그는 문득 귀국하기 전 동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복잡하네.

    -뭐가?

    -일단 지금까지 너를 알고 있는 친구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는 네가 가서 풀타임으로 활약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베이포트 FC 감독으로서는 아니거든.

    -뭐?

    -가능하면 가서 안 뛰고 쉬었으면 좋겠다고. 가서 지쳐서 돌아오거나 만약에 부상이라도 달고 오게 되면 우리 팀의 전술적인 선택지가 확 줄어드니까. 그런 일만은 절대 겪고 싶지 않단 이야기지.

    -그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알겠는데 꼭 가는 사람 앞에서 그대로 말해야겠어?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면 가서 네가 안 뛰면 감독으로서의 내가 좋고, 맹활약하면 네 친구로서의 내가 좋단 거야. 가서 최대한 네 능력을 보여주고 와. 나오든 안 나오든 여기서 잘 봐줄 테니까.

    -…하여간 감독이 사람 격려할 줄을 모른다니까. 못 보던 사이에 종환이 형처럼 성격 한번 고약해졌어. 다녀올게.

    그것이 히드로 공항에서 있었던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대화를 떠올리자 주현은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팀이 지고 있더라도 자신이 할 일은 간단했다. 언제나처럼 공간을 만들고, 수비를 끌고, 찬스를 만들며 때가 오면 그것을 마무리 하는 일. 입고 있는 유니폼이 다르더라도 자신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해서 신영수 감독님한테 눈도장 한번 확실하게 찍어보자고. 덤으로 티브이로 보고 있을 동민이 형도 그렇고.’

    그는 자신감 있는 미소로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그가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자 팬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부천 유나이티드에서의 활약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고, 프리미어리그 4경기 4공격 포인트라는 현재 기록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마다 보는 것은 달랐지만 한 가지만은 동일했다. 박주현이 이 답답한 경기를 어떻게든 바꿔주길 바란다는 것.

    주현은 그들의 바람을 알기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기가 종료된 후,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팬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경기 결과는 3 대 2. 약체라 평가받는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했다지만 기적 같은 후반 역전승이었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패배의 예감에 어깨를 늘어뜨리던 팬들은 승리의 기쁨에 서로를 얼싸안고 여운에 잠겼다.

    그리고 그 승리의 중심에는 교체 투입된 박주현이 있었다. 그는 공격 포인트는 하나도 없었지만, 3개의 골에 전부 연관되면서 선수 한 명이 어떻게 경기를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가 들어가면서 삐걱대던 공격이 곧바로 자연스러워지며 거세게 몰아친 것이다.

    첫 번째 골에서는 측면에서 공을 끌고 두 명의 수비수를 달고 뛰다가 측면으로 패스를 내주며 좌측에서 크로스가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두 번째 골에서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부수는 환상적인 로빙패스로 상대 수비가 우측면에서부터 무너지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직접 3명의 수비수를 농락하고 다시 공을 뒤로 내주면서 상대 수비 진영을 엉망으로 만들어냈다.

    골도, 도움도 없었지만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가 나올 만한 충격적인 경기력이었고 팬들에게 박주현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은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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