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포트 시티전, 그 이후
스톡포트 시티와 베이포트 FC의 경기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스톡포트 시티의 승리로 끝났다. 결국 동민이 그렇게 바랐던 자이언트 킬링도 일어나지 않은 채,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골리앗의 승리로 끝났다. 스톡포트 시티는 기존의 3연승에 한 번의 승리를 더 추가하면서 4연승으로 리그 선두를 달렸고, 베이포트 FC의 초반 돌풍은 3경기 무패가 깨지면서 주춤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경기의 내용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예상을 산산조각 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기 주도권을 스톡포트 시티가 가지고, 베이포트 FC는 필드 플레이어들을 전부 페널티박스 앞에 밀집시키고 역습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 실바와 마이크 반 데부르의 패스를 등에 업은 스톡포트 시티의 강한 공격력에 베이포트 FC가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예상이었다.
그저 몇 골을 허용하는가, 정도만 차이가 있었고 전문가들조차도 그 의견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양상은 양 팀이 경기 주도권을 가지고 치열하게 공방을 오고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반전 초반은 오히려 베이포트 FC가 경기를 이끌어 나가며 선제골을 뽑았고, 스톡포트 시티는 전술 변화를 통해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기는 했지만 앞선 세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일방적인 경기가 벌어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이 빗나가고, 두 팀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진땀나는 승리를 거둔 스톡포트 시티는 이겼지만 앞선 세 경기와는 다른 경기 내용에 자존심을 구겼고, 졌지만 대단한 경기력을 보여준 베이포트 FC는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비록 경기에는 졌지만 양 팀 사이의 압도적인 전력 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명승부를 만들어낸 팀에 대한 찬사였다.
그리고 베이포트 FC의 경기 내용에 박수를 보낸 것은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가 감독으로 일하면서 지금껏 만난 팀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들은 빠르고 변화무쌍하며 용감했고, 우리는 그런 그들의 플레이에 밀려 저번 경기만큼의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스톡포트 시티의 감독인 다비드 페레즈는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말했다. 비록 상대 팀이고 패배한 팀이지만 그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이야기한 것이다.
중원이 최대 강점인 스톡포트 시티를 상대로 중원에서 승부를 보려 싸움을 걸어온 것이나,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응은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에게도 감탄할 정도로 놀라운 모습들이었다.
‘선수들의 개인 능력은 우리 팀보다 몇 수는 아래였어. 하지만 팀으로서는 달랐다. 정확히 고정된 자기들의 색채가 없는데도 상대의 수를 읽고 곧바로 반격을 해오는 점, 그리고 예상 밖의 승부수. 전부 경험 없는 젊은 감독과 승격 팀의 것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날카로웠어.’
다비드 페레즈는 경기가 끝나고 악수를 나누며 보았던 그 FC 감독의 얼굴을 떠올렸다. 감독은커녕, 코치라고 보기에도 너무 어려 보이던 동민은 생각과는 다른, 무시무시한 수들로 그를 위협했다.
‘나중에 또다시 만난다면… 그때도 이길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겨야만 하지만 적어도 쉽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긴장감에 손에 땀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만큼 베이포트 FC와 동민을 상대한 것은 그에게 예상 밖의 큰 고전을 몰고 왔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그런 어려운 대결들을 승리로 이끌어온 다비드 페레즈였고, 그것이 그가 명장이라는 찬사를 듣는 이유였다.
‘이번 시즌에는 예상 밖의 팀이 우승 판도를 바꿀지도 모르겠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내년 초에 있을 베이포트 FC와의 맞대결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탓이었다.
“결국 안 됐나…….”
동민은 숙소에 돌아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가 끝나고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단 한순간도 어깨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경기를 패배로 마무리했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던 선수들에게 웃으면서 아까웠다고 박수를 쳐주었고, 함께 전술을 고민했던 코치들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먼 원정길을 나서서 목이 터져라 응원해 주었던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경기를 마무리 짓고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닿질 못했네.”
그렇게 한숨을 담아 혼잣말을 내뱉고 동민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쉬움.
동민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감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 것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팀을 만나 경기 일부분뿐이지만 그들을 누르고 경기를 주도했고, 선제골까지 만들어내면서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고를 했다. 베이포트 FC에서 선발로 나선 11명의 선수들의 몸값을 모두 합쳐도 스톡포트 FC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되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상대는 자신들의 가치가 높은 이유를 보여주듯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들의 플레이를 펼쳐 나갔고, 결국에는 경기를 뒤집어 버렸다.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쏟아부었는데 아직 모자라구나.”
자신의 능력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상대에게 이길 수 없었다는 사실이 마치 벽처럼 그를 가로막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졌다면 아쉬움조차 남지 않았겠지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눈앞에까지 두었던 탓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아쉬움이 절망이나 분노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
이번에 눈앞까지 왔다가 떠나가 버린 승리의 희망이라면, 다음번에는 조금 더 가깝게, 그다음번에는 손끝에 닿도록, 점점 더 가까워지면 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손에 쥘 수 있다.
세계 최고의 팀들을 상대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으니 후회는 없었다.
“다음번에는 이길 수 있도록.”
아직 시즌은 길고, 팀을 이끌고 그런 산들을 넘어설 기회는 더더욱 많았다. 동민은 패배의 절망과 분노 대신, 다음번의 기회를 위한 의지로 마음속을 채우며 다음번의 맞대결을 기대했다.
나이부터 전술 철학, 팀의 특징까지 서로 다른 양 팀의 감독은 다음번의 대결을 기대한다는 유일한 공통점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국가 대표 팀이요? 이미 명단은 나오지 않았던가요?”
동민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네, 나왔었죠. 다만 핵심 미드필더 지원인 심형만의 가벼운 부상으로 대신 박주현을 데려가겠다는 것 같아요.”
브라운 키드의 그 말에 동민은 복잡한 표정은 지었다. 급작스러운 심형만의 부상에 그 대신 주현이 국가 대표 팀에 불릴 거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국가 대표 팀 경기가 벌어지는 A매치 기간은 여러 클럽 팀 감독들에게는 복잡한 시기였다. 매물로 내놓을 소속 팀 선수가 국가 대표 팀 경기에서 큰 활약을 하면서 몸값이 올라갈 수도 있고, 선수들 스스로에게 정신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A매치는 이런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먼 곳으로 떠나는 선수들의 경우에는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컨디션의 저하나,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경기를 치르는 까닭에 체력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위험들 중 가장 무서운 것은 부상의 가능성이었다.
클럽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던 핵심 선수가 A매치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오면서 팀의 성적 자체도 내리막길을 걷거나, 주춤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어쩐다…….’
그렇다고 그런 위험성들 때문에 소속 선수가 나가지 않길 바라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국가 대표 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것은 대부분의 선수들의 꿈이며, 그것을 막는 것이 선수의 동기부여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은 드물었다.
‘시즌이 시작되면서 주현이가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려 나가고 있었고, 저번 경기에는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기도 했어.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만약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전술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확 줄어들게 되는데…….’
이번 A매치 기간을 맞아 베이포트 FC에는 조나단 케인이나 해리 맥스웰 등 국가 대표 팀의 부름을 받는 다른 선수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적어도 연령별 국가 대표 팀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비행시간이 멀지 않은 유럽 선수들이었고, 대부분 국가 대표 팀에서는 쟁쟁한 다른 경쟁자들에 밀려 후보 선수로 벤치에 앉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동민도 큰 부담 없이 선수들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현은 이야기가 달랐다.
‘심형만의 부상으로 대신 뽑는다고 한다면 이번 활약을 보고 앞으로의 활용도를 생각해 본다는 의도가 크겠지. 그러면 적어도 한 경기 정도는 실험적으로 써먹으려 들 테고…….’
게다가 성인 대표 팀이 아닌 청소년 시절이라도 국가 대표 팀의 경험이 있던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주현은 연령별 대표 팀의 경험도 없었고, 태극 마크를 다는 것은 아예 처음이었다.
아무리 주현이 영리하고 성실한 선수라 하더라도 국가 대표 팀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서 본인의 페이스를 넘어 무리를 할 가능성도 있고, 만약 그러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동민과 베이포트 FC에게는 끔찍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안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비교적 늦은 나이에 프로 세계에 들어온 주현이 얼마나 국가 대표 팀에 대해서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동민으로서는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안 물어봐도 비디오겠지만 박주현의 반응은요?”
“예상하는 그대로죠.”
“하아…….”
동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가 끝나고 2승 1무 1패를 기록하면서 5위에 올라 있는 베이포트 FC로서는 지금부터 연이어 있을 강팀들과의 경기가 중요했다. 만약 그런 경기에서 주현이 빠지기라도 한다면 베이포트 FC의 전술적인 폭은 크게 줄어들 것이 틀림없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며 고민을 하던 동민은 입을 열었다.
“뭐 어쩌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수가 잘하고 부상당하지 않고 돌아오길 바라는 것뿐이니까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브라운 키드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예상했다는 듯 동민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팀이 A매치 기간에 선수 차출 문제로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세상일에 절대라는 건 없군요.”
동민은 그런 브라운 키드의 말에 같이 쓴웃음을 지었다.
A매치 기간은 체력 관리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베이포트 FC의 돌풍은 그랬던 상황마저 바꾼 것이다.
“우리 팀과 선수들이 인정받는다는 거니까요. 불안하기는 해도 좋은 일이죠.”
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디 주현이 부상을 입지 않고 돌아오기만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