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이언트 킬링 (169/270)

자이언트 킬링

동민은 매끄럽게 이어지는 베이포트 FC의 공격을 보면서 미소지었다.

‘그래, 확실히 컨디션을 올려놓은 효과가 있어.’

그의 눈은 중원을 구성하고 있는 세 선수를 향했다. 이안 페트로프가 피보테를 맡으며 수비진과 앞선 두 미드필더와의 연결 고리가 되었고, 해리 맥스웰과 오랜 부상에서 회복한 크리스 러셀이 메짤라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 동민과 베이포트 FC가 준비해 온 전술은 스톡포트 시티의 전술과 흡사한 3명의 미드필더로 구성되어 있었다. 1명의 피보테와 2명의 메짤라, 이는 미드필더에서의 점유와 패스, 압박을 철칙으로 하는 스톡포트 시티에게 내미는 도전장과도 같았다.

‘일단 저 두 명의 컨디션을 올려놓은 만큼,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한 것처럼 움직여 줄 순 있으니까.’

[크리스 러셀]

24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4.8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1 / 20

선호하는 플레이: 상대를 압박함, 중앙 돌파

장점 - 두 개의 심장, 강철 몸

단점 - 부정확한 패스

현재 컨디션: 10/10

[해리 맥스웰]

26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5.8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9 / 20

선호하는 플레이: 공을 잡고 템포를 조절, 롱 패스 선호

특성 :

장점 - 절묘한 위치 선정, 빠른 발

단점 - 제공권 장악 불가

현재 컨디션: 10/10

동민은 포인트를 사용해 중원을 구성하고 있는 세 명 중 두 명인 해리 맥스웰과 크리스 러셀의 컨디션을 올려놓았다. 포인트에 의해 컨디션이 최고로 올라간 두 사람은 평소보다 가벼운 몸놀림과 발 기술을 선보였고, 베이포트 FC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올 거라 생각지 못한 스톡포트 시티를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상대가 가장 예측하지 못할 방법은 이것뿐이었으니까.’

동민은 중원에서 활약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대담하게 웃었다.

스톡포트 시티와의 경기를 준비하면서 그가 가장 고심했던 것은 상대 전술의 약점을 찌르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최전방부터 이어지는 강한 압박과 빠른 템포의 역습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지난 시즌 있었던 그들의 경기를 보면서 깨달았지만, 이번 시즌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최전방에서의 압박을 90분 내내 이어가기에는 로날드 조던도, 에딘 페트로비치도 적절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실현시킬 선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며칠을 사무실에 틀어박히다시피 생각에 빠졌던 동민이 떠올린 방법은 하나였다.

‘스톡포트 시티는 그들이 가장 자신 있는 부분으로 찔러 들어오리라는 것은 생각 못 할 거라는 것. 그게 핵심이었지.’

그것이 동민이 이런 전술을 떠올린 시작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 했다.

첫 번째, 강한 체력을 가져 압박을 유지할 수 있지만 패스가 모자란 크리스 러셀과,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상대 미드필더들에 비해서는 모자란 해리 맥스웰에게 포인트를 이용해 컨디션을 올린다.

두 번째, 두 사람에게 이어지는 패스 루트를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만들어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인다.

세 번째, 양 측면을 빠른 스피드를 가진 야야 둠베흐와 크로스가 좋은 피터 아일랜드로 구성해 전방으로 보내는 공의 속도를 높인다.

마지막으로 최전방에서 중원을 도와줄 수 있으면서도 순간적인 변수를 만들어낼 선수를 낙점해 상하좌우 할 것 없이 넓게 움직이면서 수비를 뒤흔들게 한다.

동민은 그것으로 완벽하진 않아도 스톡포트 시티에 대한 대응 전략을 짤 수 있었다.

‘왔다!’

박주현은 측면으로 달리는 야야 둠베흐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려는 듯 뒤쪽으로 물러나다가 순간적으로 빠르게 방향을 전환해 전방으로 치고 나갔다.

지금껏 스톡포트 시티의 수비 라인에 머물기보다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해리 맥스웰과 크리스 러셀이 더 매끄럽게 패스를 돌리게 하고 압박을 돕던 그가 갑작스레 수비 사이로 파고들자, 스톡포트 시티의 수비진도 한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안쪽으로 파고드는 타입의 윙어로만 알려졌던 박주현이 중앙으로 온 것만으로도 예상 밖의 상황에서 순식간에 파고드는 움직임까지 대처하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박주현에게 이어진 크로스가 순식간에 스톡포트 시티의 골문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을 보면서 다비드 페레즈는 탄식을 내뱉었다.

‘내 실수다.’

측면 자원이라고 생각한 박주현의 중앙 공격수 기용, 설마 자신들을 상대로 꺼낼 거라 믿지 않았던 중원에서의 승부수, 모두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탓이었다.

‘변칙적인 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그는 답답한 마음에 신경질적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어떻게 해야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박주현의 이른 골에 우드뱅크 스타디움의 4만 명 가까이 되는 스톡포트 시티 홈팬들은 열광적인 응원을 멈추고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주현이 포효하며 동료들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동안 우드뱅크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것은 베이포트 FC의 원정 팬들의 함성 소리뿐이었다.

이른 시간의 실점 이후, 스톡포트 시티는 몇 차례 더 흔들렸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전술과 이른 실점은 그들의 집중력을 뒤흔들었고, 이는 베이포트 FC의 찬스로 이어졌다.

그러나 스톡포트 시티의 수문장인 제임스 하트의 결정적인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고, 전반전도 30분이 지나갈 때쯤부터 다비드 페레즈와 스톡포트 시티는 점차 자신들이 어째서 강팀인지 보여주듯 스스로의 플레이를 찾기 시작했다. 동시에 양 팀의 감독은 차례대로 서로의 전략을 꺼내놓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선제골을 실점한 뒤 마음이 급해진 스톡포트 시티였다. 그들은 양 측면으로 넓게 벌려 섰던 측면 미드필더를 안쪽으로 좁히면서 중앙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자 했다. 엄청난 활동량과 압박을 보여주면서 생각 외로 주도권을 잡아내는 해리 맥스웰과 크리스 러셀을 누르기 위한 방책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에게 패스를 공급하는 이안 페트로프를 잡아내겠다는 생각이었다.

효과는 오래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베이포트 FC는 중원의 주도권을 잃었고, 경기는 스톡포트 시티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동민이 채 대응법을 꺼내놓기 전, 베이포트 FC로서는 뼈아픈 실책이 나오고 말았다.

‘아!’

동민은 이안 페트로프가 공을 받고 도는 순간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강해진 상대의 압박에 수비진에서 이어지는 패스가 정확하지 못했고, 이안 페트로프가 이 공을 받으려는 순간 첫 번째 볼 터치가 어긋나면서 튀어버렸다. 이런 손쉬운 기회를 놓칠 스톡포트 시티가 아니었다.

-동점 골! 우드뱅크 스타디움을 열광에 잠기게 하는 동점 골의 주인공은 카를로스 모레노입니다!

경기장 내의 방송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고, 그 방송을 덮어버릴 정도의 환호성이 우드뱅크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스톡포트 시티의 간판 공격수 카를로스 모레노가 이안 페트로프의 공을 빼앗아 골대 구석으로 정확하게 꽂아 넣으면서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동점 골을 기점으로 경기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홈팀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레오나르도 다 실바의 예술 같은 스루패스가 베이포트 FC 수비를 꿰뚫으면서 이어졌다.

-역전 골! 카를로스 모레노가 멀티 골을 기록하면서 경기를 뒤집어 버립니다!

골키퍼인 토마스 스톤스가 힘껏 손을 뻗어보았지만 공은 야속하게도 골대에 맞으면서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스톡포트 시티의 역전 골을 마지막으로 전반전이 끝나면서 베이포트 FC는 한 점 뒤진 채로 후반전을 맞게 되었다.

“상심하지 말아요. 전반전에 우리는 충분히 잘했고,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후반전에 경기를 뒤집어서 팬들에게 자이언트 킬링이 뭔지 보여주자고요!”

동민은 선수들을 보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다비드 페레즈의 대응이 빠르고 날카로웠던 탓에 연속 골을 내주고 말았지만, 아직 경기는 45분이나 남아 있었다. 게다가 리그 최강 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듣는 스톡포트 시티를 상대로 전반전 30분까지 경기를 지배하고 있던 모습은 충분히 승리를 향한 희망을 가질 만했다.

“후반전에는 약간의 변화를 주겠습니다. 잘 들어줘요.”

동민의 말에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리그 최강의 팀 중 하나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이, 반드시 이기고 싶다는 열망이 선수들의 눈에 넘실거렸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이번에 변화를 가져온 쪽은 베이포트 FC였다.

먼저 해리 맥스웰을 이안 페트로프가 있는 후방까지 밀어 넣어 수비의 안정을 꾀했다. 게다가 우측 윙이었던 피터 아일랜드를 빼고 간판 공격수인 로날드 조던을 넣으면서 더욱 양쪽 윙을 사이드라인에 가깝게 벌려 섰다.

빠른 야야 둠베흐와 기술이 좋은 박주현, 빠르고 결정력이 좋은 로날드 조던을 앞세워 빠른 역습 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후반 18분, 야야 둠베흐의 크로스가 수비에 굴절되었지만, 그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은 로날드 조던의 다이빙 헤더가 동점 골로 이어지면서 승리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다. 아니, 우리가 스톡포트 시티를 상대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치열한 후반전이 점점 더 지나갈수록 그 생각이 베이포트 FC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커져갔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더욱 경기에 집중하고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그들의 발을 재촉했다.

최전방의 로날드 조던부터 골문을 지키고 있는 토마스 스톤스까지, 그라운드 위의 11명의 선수들은 쉬지 않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을 운반하며, 상대 골문 앞에서 찬스를 만들어내려 애썼다. 그들의 간절한 모습은 벤치에 있는 코치들과 후보 선수들, 베이포트 FC의 원정 팬들을 넘어 스톡포트 시티의 홈팬들의 가슴에까지 강한 인상을 주었다.

베이포트 FC의 동점골 이후, 더욱 치열하게 흘러가던 경기가 추가시간에 이르자, 베이포트 FC의 원정 팬들은 점점 더 기대를 키워갔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던 스톡포트 시티의 연승행진을 우리가 끊어낼 수 있다, 아니, 끊어내기 직전이다, 라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후반 추가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심판이 시계를 흘끗거릴 무렵, 마이크 반 데부르가 공을 잡았다. 오늘 경기에서는 비교적 부진하던 그는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강하게 슈팅을 시도했다.

그 슈팅은 골대 위쪽으로 뜨는 듯하다가 골문 앞에서 힘을 잃고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3 대 2. 스톡포트 시티의 재역전 골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경기의 마지막 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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