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최강의 팀
스톡포트 시티의 감독인 다비드 페레즈가 선호하는 전술의 핵심을 세 가지만 고르자면 점유, 압박, 그리고 패스, 이 세 가지를 들 수 있었다.
공을 점유하면서 상대에게 공격권을 내주지 않는 동시에, 언제든 빠르게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으로 상대를 짓누른다. 이를 위해서는 짧고 정확한 패스들로 공을 계속 소유하고 상대의 빈틈이 보였을 때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을 빼앗겼을 경우에는 최대한 상대 진영에서부터 시작되는 조직적인 압박으로 공을 탈취한 뒤, 상대의 수비 라인이 무너졌을 때 곧바로 재역습에 나선다.
이것이 그가 바라는 축구의 모습이었고, 그를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손꼽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런 축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좋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분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이 세 가지 핵심 중 어떤 것에 더 집중할지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뒤로 물러나서 수비를 단단히 하고 롱 볼로 수비진의 뒤를 노린다면 핵심적인 패스 공급처인 선수에게 전방위적인 압박을 넣으며 패스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동시에 수비진으로 하여금 오프사이드 트랩을 철저히 하도록 주의시켜서 상대 공격수가 공을 받는 것을 막아낸다.
반대로 상대가 수비 라인을 올리면서 짧고 빠른 패스와 스피드로 공격을 나선다면 중원에서부터 전체적으로 압박하면서 실수를 유발하고 그 틈을 노린다.
이처럼 그의 머릿속에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기본적인 매뉴얼들이 들어가 있었고, 상황에 맞게 그것들을 고치고 추가하면서 상대를 압도했다.
‘그런데… 이번 상대는 좀 특이해.’
그런 다비드 페레즈조차도 의문스럽게 만든 팀이 바로 오늘의 경기 상대인 베이포트 FC였다.
어떤 경기 방식을 주로 취하는지, 상대 선수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주로 사용하는 포메이션은 무엇인지, 어떤 선수가 핵심이고 어떤 선수가 약점인지, 그는 경기들을 보면서 확신하기 힘들었다.
‘1라운드, 포트베리 FC와의 경기는 승격 팀이라고 보기에는 자신감 넘치는 공격력으로 상대를 압도했고, 중앙에 상대 수비진을 모아두면서 순간적으로 벌리는 방식을 통해 틈을 만들어냈다. 수비의 불안을 빠른 공격으로 메워주면서 약점을 드러내지 않았어. 이것만 보면 이상하지 않아.’
승격 팀 중에서도 공격적인 전술로 돌풍을 일으키는 팀들이 아예 없진 않았고, 시즌 첫 경기라는 변수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베이포트 FC의 경기들은 그의 생각을 완전히 꼬아놓고 말았다.
‘그런데 2라운드 노리치 타운 AFC 원정에서는 또 역습을 노리는 전형적인 4-4-2 포메이션으로 신승을 거두는가 하면, 3라운드에서는 또 경기를 전체적으로 컨트롤하면서 일대일로 경기를 끝냈어. 후반전에 터진 하트풀 FC의 원더 골이 아니었다면 경기는 분명 베이포트 FC의 승리로 끝났겠지.’
베이포트 FC는 앞선 세 경기에서 어떤 방식을 주로 삼는지 모를 정도로 전술들을 바꿔가며 상대를 상대했다. 이는 다비드 페레즈로 하여금 상대에 대한 큰 흥미를 가지게 하면서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연달아 있는 세 경기에서의 전술이 전부 다르다고? 선수 선발도 꽤 많이 바뀌었고?’
단 한 가지 전술로 시즌 내내 유지하는 팀은 없다. 그 한 가지 전술만을 고집하다가는 상대에게 읽히기도 쉽고, 부상이나 컨디션 등의 이유로 선수가 바뀌었을 때에도 똑같은 경기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팀을 이끌어가는 감독들은 모두 여러 가지 플랜을 가지고 있고, 상황에 따라 바꾸어가며 활용하곤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팀들은 그 팀만의 철학이 있기 마련이다. 전술은 바뀌더라도 그 팀 특유의 색채나 향은 짙게 남아 그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다비드 페레즈가 이끄는 스톡포트 시티도 마찬가지였다. 4백과 3백, 원톱과 투톱을 상황에 따라 번갈아 가며 사용하면서 상대의 약점을 노린다. 그러나 다른 전술을 쓴다고 해도 그들 특유의 색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볼을 점유하고, 패스를 이어나가며, 상대를 압박하는 스톡포트 시티 특유의 움직임은 어떤 전술을 이용한다고 해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베이포트 FC는 그렇지 않아. 선수들의 움직임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더라도 가지는 색채 자체가 희박해.’
1경기와 2경기, 그리고 3경기까지의 베이포트 FC의 모습은 모두 다른 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한 모습이었다. 선수들의 움직임은 경기마다 많이 달라져 있었고, 팀 특유의 색채를 가진다고 하기보다는 그 경기에 맞는 옷을 걸치고 나온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팀 전술 특유의 철학이 잘 안 보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특정 상대에 맞춰서 훈련을 거듭하면 그것이 몸에 밸 수도 있고, 아니면 감독이 색깔을 입히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그러나 그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전자는 고작해야 한 경기를 준비할 때 정도고 전체적으로 크게 바뀌기는 쉽지 않다, 후자는 아무런 특징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상대에게 질질 끌려가기 바쁜 팀들이었다. 그리고 그 팀과 감독들의 종착역은 결국 결별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베이포트 FC는 1주일마다 연달아 있는 세 경기에서 세 번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고, 확실하게 경기에 맞는 전술을 입고 나와 상대를 노렸다. 이런 상대를 보는 것은 그리 짧지 않은 그의 감독 경력과 선수 경력을 합쳐보아도 드문 일이었다.
‘불안해. 이번 경기에서 어떤 식으로 준비해서 나올지 예상이 되지 않아.’
결국 그가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주문한 것은 평소 자신들의 플레이를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 선수 개개인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뿐이었다. 그 이상의 준비를 하기에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태라는 점이 너무나 큰 위험 요소였다.
“남은 건 경기 중에 맞춰 나가야 할 일이야.”
그는 드물게도 눈을 찌푸리면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상대 팀을 존중하고 집중하는 그였지만, 오늘 경기는 그 이상으로 불안한 무언가가 있었다.
‘예상한 거랑은 살짝 다른가? 그래도 크게 변하진 않았어.’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자, 동민의 눈은 곧바로 스톡포트 시티 진영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그가 경기 전에 생각한 대로 상대는 주전 선수들을 대거 투입하며 시즌 초반의 좋은 기세를 굳히려는 듯했다.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선수들 평균 스테이터스가 진짜 무시무시하네. 대부분 17에서 18이라…….’
베이포트 FC 선수들의 평균적인 스테이터스가 14와 15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신들이 어째서 스타플레이어라는 찬사를 듣는지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빛나는 별들 사이에서도 더욱 빛나는 두 사람을 보고 동민은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 실바]
30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8.6/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8.2/20
선호하는 플레이: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특성:
장점 - 플레이 메이커, 왼발의 마법사
단점 - 깃털 몸
현재 컨디션: 6/10
[마이크 반 데부르]
25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8.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7.9/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두 개의 심장
특성:
장점 - 캐논 슈터, 넓은 시야
단점 - 불규칙한 경기력
현재 컨디션: 5/10
‘진짜 눈이 부실 정도네……. 저 괴물들 중의 괴물들.’
동민은 그들을 보면서 작게 숨을 들이켰다.
저 두 명이 바로 다비드 페레즈 감독이 이끄는 스톡포트 시티의 핵심 자원이었다.
스톡포트 시티의 공격진이나 수비진은 경기마다 조금씩 형태가 바뀌지만, 그들의 중원만큼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한 명의 피보테(미드필더 라인과 수비 라인 사이에 위치하며 둘 사이를 연결해 주는 존재)와 두 명의 메짤라로 이루어진 중원이었다.
그중 두 명의 메짤라는 상대를 압박하고, 동시에 볼을 자유롭게 돌리며 공격을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한다. 레오나르도 다 실바와 마이크 반 데부르, 두 사람은 다비드 페레즈 감독이 경기마다 가장 처음으로 이름을 적는, 팀의 핵심인 선수들이었다.
‘상대에게서 공을 빼앗기 위한 전방 압박,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면서 상대의 압박을 벗어나고 공격의 방향을 만드는 패스, 그리고 한번 공을 잡기 시작하면 상대에게 내주지 않는 점유. 다비드 페레즈 감독 전술의 정수나 다름없지.’
그 두 사람의 존재는 상대 팀에게는 악몽과도 같았고, 스톡포트 시티에겐 굳건한 기둥과도 같았다. 저 두 사람이 함께 공을 돌리고, 틈이 나면 곧바로 골로 연결될 수 있는 키 패스를 뿌려대는 동안 공격진은 좌우로 넓게 벌리거나 수비 뒤의 공간으로 돌아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 사람에서 시작되는 공격은 무시무시했고, 그 패스는 앞선 세 경기 동안 13골이나 득점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저런 선수들을 상대로 어떤 경기를 보여주느냐…….”
동민은 작게 읊조렸지만 그 목소리에는 기대로 인한 떨림뿐이었다.
“그만큼 대단한 두 기둥이 확실하게 무너지는 걸, 홈팬들 눈앞에서 보여줘야겠지. 일단 가장 필요한 일들부터 해야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고는 손을 들어 누군가를 불렀다.
베이포트 FC의 미드필더이자 부주장인 해리 맥스웰은 기분이 좋았다. 먼저 스톡포트 시티의 레오나르도 다 실바와 마이크 반 데부르, 이토록 대단한 선수들을 같은 경기장 안에서 뛰면서 상대할 수 있다는 점이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오늘따라 몸이 매우 가볍다는 사실이다. 정확히는 전반전이 시작한 이후, 어느 샌가 몸을 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처럼 가벼웠다.
‘조금 전 감독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나니 뭔가 이상하게 몸이 가벼운 느낌인데. 기분 탓인가.’
평소보다 컨디션을 더 신경 써서 준비한 경기이긴 했지만, 오늘의 몸 상태는 지금까지 느꼈던 적이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었다. 그리고 공을 한번 잡자마자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보다 공도 발에 잘 달라붙고.’
그는 두어 번의 터치로 달려드는 상대 공격수를 제쳐낸 뒤 좌측면의 야야 둠베흐 측으로 날카로운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패스도 생각한 방향과 속도, 세기로 완벽하게 들어가. 이거라면 오늘 경기를 이길 수 있는 찬스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자신의 패스를 받은 야야 둠베흐가 곧바로 크로스를 올리는 것을 보면서 승리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