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윗과 골리앗 (167/270)
  • 다윗과 골리앗

    ‘후……지금껏 하던 경기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떨리는데.’

    동민은 원정 경기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가늘게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

    오늘 경기 상대는 앞선 세 경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중압감을 그에게 남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상대는 리그 최강 팀 중 하나니까.’

    스톡포트 시티.

    중동의 자본이 유입된 이후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하고, 리그 최상위권을 지키며 군림하는 팀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3위를 기록하며 조금 주춤하긴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공격적인 전략 전술로 유명한 다비드 페레즈 감독의 전술에 제대로 적응한 듯 폭발적인 공격력을 뽐내고 있었다.

    ‘최근 세 경기 기록이 3전 3승, 13득점 1실점. 아무리 시즌 초반이라지만 괴물이 따로 없어.’

    게다가 오늘 경기가 열리는 곳은 그들의 홈인 우드뱅크 스타디움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지난 세 경기 동안 2승 1무를 거두며 3경기 동안 무패를 달리던 베이포트 FC의 기록이 깨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팬들 또한 대패를 거두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이번만큼은 스톡포트 시티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승리를 노려봐야 한다, 이거지? 상대는 리그 최고의 팀 중 하나, 거기에 완벽한 어웨이. 긴장을 하지 말라고 해도 긴장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지.”

    그는 작게 속삭였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위로 올라가 있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지난 3경기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베이포트 FC로서 승산이 적은 경기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훌륭하게 승리를 거두거나 적어도 비기는 등 좋은 성적을 냈다는 사실이 동민의 마음속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긴장되냐?”

    “예?”

    긴장을 풀 겸 천천히 숨을 내쉬던 주현은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벤 로이터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그러네요. 상대는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3년 연속 EPL 도움왕에, 이적 후 5년 동안 한 번도 시즌 20골 이하로 기록한 적이 없는 공격수에… 그런 선수들하고 맞붙을 수 있다는 게 떨리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그래요.”

    주현은 아직은 어색한 영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그들의 홈에서 경기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긴장을 가져오고도 남았다. 그런 주현을 바라보면서 벤 로이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나 우리나 결국 같은 프리미어리그 선수야. 고작 그런 기록 정도에 쫄아 있을 필요가 뭐가 있겠어? 이미 맞붙었던 다른 팀의 선수들도 따지고 보면 대단한 선수들이었지만 누가 이겼는지 너도 잘 알잖아?”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주현의 어깨를 툭 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지난 포트베리 FC와의 경기 이후로 그는 주현에게 자주 신경을 쓰면서 퉁명스러운 말일지언정 그를 격려하며 더욱 빨리 적응하도록 돕고 있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동민이 따로 주현의 적응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탓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주현이라는 선수가 그라운드 내에서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골 감각이 있는 녀석, 패스가 날카로운 녀석, 빠른 스피드가 있는 녀석.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선수들을 보았고 같이 뛰어봤어. 하지만 이 녀석처럼 동료 선수들이 자신도 모르게 맞춰서 움직이게 만드는 녀석은 정말 드물어.’

    포트베리 FC와의 경기에서, 그리고 그 이후 주현과 함께 뛸 때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조종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현과 발을 맞추고 있었다. 함께 뛴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주현이 투입되는 순간, 팀 모두가 어느 타이밍에 침투할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공을 내줄지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 감각은 오랜 경험을 자랑하는 벤 로이터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이 녀석이 이대로 팀에 완벽하게 적응하기만 한다면, 그러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격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몰라.’

    그 생각이 그가 주현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그러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맞아요. 어차피 그런 선수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고, 그걸 바라서 여기 온 거니까요.”

    주현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미소 지었다. 벤 로이터의 말이 옳았다.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선수들과 한 무대에 서고, 그들과 경쟁하면서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기에 이곳에 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전까지의 긴장은 모두 그의 동기부여가 될 뿐이었다.

    그렇게 주현을 포함한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각각 저마다의 방법으로 다가올 스톡포트 시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곧 있을 스톡포트 시티전은 지금까지 일정 중에, 아니, 이번 시즌 전체를 놓고 봐도 손에 꼽을 만큼 힘든 경기가 될 겁니다.”

    동민은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모든 지표가 그들의 열세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 차이는 직접 상대의 스테이터스를 본 동민에게는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두 팀의 경기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말하죠. 베이포트 FC가 무승부만 거둬도 엄청난 성공이라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 경기를 그나마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은 10명의 필드 플레이어 모두 페널티 박스 안에 구겨 넣고 상대 공격을 막는 것뿐이라는 말도 하죠.”

    리그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장과 감독 경험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인 프리미어리그 최연소의 어린 감독.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 법한 세계 최고급의 스타플레이어들과 팬들이 아니면 이름도 알기 힘든 2부 리그 출신이 대다수인 선수들.

    그리고 원정 팀의 무덤이라는 별칭까지 있는 우드뱅크 스타디움에서의 경기.

    누가 승리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이야기 같았다.

    그런 일방적인 상황 속에서 동민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상대가 리그 최고의 팀이든, 현재 엄청난 폼은 보여주든, 그들의 홈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승리하기 위해서 뛰고, 우리의 경기를 이어나갈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도, 떨림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승리를 향한 확신이 있었다.

    자신들의 경기를 펼쳐서 상대를 꺾을 수 있다는 확신, 동민의 목소리에 가득 담긴 확신은 선수들이 긴장 속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지난 세 번의 경기에서도 경기 시작 전 그들은 열세였고, 비기기만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경기들에서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두었던 경험은 어느새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것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준비한 대로만 하면 저 거대한 상대를 뒤집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나가서 준비합시다. 그래서 저 홈팬들로 가득 찬 경기장을 도서관처럼 만들어주자고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라커 룸을 나섰다.

    “…왜 그래요?”

    라커 룸을 나선 동민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를 바라보았다. 동민이 말을 마치고 라커 룸을 나선 이후, 동민을 따라 나오면서 뜨뜻미지근한 미소를 그에게 보내고 있던 것이다.

    “아뇨, 뭔가 좋은 의미로 내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 같아서요. 내가 팀에서 당신을 돕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혹시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의 장악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싶었던 면이 컸는데, 적어도 지금까지 당신은 훌륭하게 선수들을 쥐고 있잖아요.”

    조금 전과 같은 말은 자신은 절대 하지 못할 것 같다며 그는 껄껄 웃었다. 브라운 키드의 그런 말에 동민은 부리나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전 당신처럼 순식간에 라커 룸을 휘어잡거나 하진 못하니까요. 조금 전에 한 말은 훈련 때마다 항상 선수들에게 하던 말을 조금 더 명확히 한 것뿐이니까요. 선수들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없었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났을 거예요. 그리고 잘 들어줬는지도 아직 모르는 거고요.”

    동민의 대답에 브라운 키드는 더욱 웃을 뿐이었다.

    “그런 걸 생각할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은 내가 걱정할 수준을 뛰어넘은 거예요. 어쨌든 나가보죠. 당신이 선수들한테 말한 대로, 홈팬들로 가득 찬 우드뱅크 스타디움을 도서관처럼 만들어보자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웃으며 밖을 향했다. 동민은 그의 뒷모습을 어색한 웃음으로 바라보다가 멈췄던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런 그의 발길을 붙잡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명연설이었는데요. 감동받을 뻔했어요, 진심으로.”

    샐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녀를 보고는 동민은 웃고 있던 표정을 바꾸고 그녀를 맞았다.

    “샐리, 또 놀리려고 하는 거라면 부탁이니 그만둬요.”

    언제나 그를 향해 농담 섞인 장난을 쳐오는 샐리는 동민에게는 고마운 동료였지만 조금 전의 말을 가지고 놀려올 것이 뻔했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 속에는 평소와는 달리 장난기가 없었다.

    “아뇨,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우연히 지나가던 저조차도 듣고서 와닿았을 정도라니까요.”

    “어… 고마워요. 그렇지만 그렇게 대단한 말은 아니었는데…….”

    평소의 그녀와는 다른 행동에 동민은 조금 당황스러운 듯 제대로 된 말을 찾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어땠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였으니까요. 당신이 했던 말에서는 분명히 이길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이 명확하게 느껴졌거든요. 분명 당신 말대로 오늘 이길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길 바라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샐리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평소에 동민에게 장난을 칠 때 보여주었던 장난스러운 미소도, 함께 산책을 하면서 보았던 부드러운 미소도 아니었다. 동민이 했던 말처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담긴 미소였다.

    “…고마워요.”

    동민은 눈을 돌리면서 대답했다.

    그런 동민의 반응을 보면서 웃고 있던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그럼, 먼저 나가 있을게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어째서 다윗이 이길 수 있었는지 직접 볼 수 있길 바라요.”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먼저 통로를 나섰다.

    브라운 키드와 샐리, 두 사람과 연속으로 대화하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승리를 향한 열망이 더욱 커졌다.

    ‘이길 수 있어.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평소처럼 강점을 막고 약점을 찌른다면 일방적인 게임은 없어.’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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