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포트 FC
일개 승격 팀에 불과한 베이포트 FC가 시즌 개막전에서 포트베리 FC를 잡았다는 소식은 여러 축구팬들에게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대부분의 프리미어리그 최상위권의 강팀은 아니어도 안정적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포트베리 FC의 무난한 승리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베이포트 FC의 팬들조차도 쉽게 지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동민과 베이포트 FC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게다가 그들의 승리가 더욱 놀라운 것은 역습과 강한 수비로 만든 승리가 아니라, 경기력에서 포트베리 FC를 누르고 만들어낸 승리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프리미어리그에서 약팀으로 평가되는 팀들이 한 수 위의 팀들을 잡아낼 때에는 선수비 후 역습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많지 않은 기회를 잡아내면서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베이포트 FC는 전반전에서는 상대와 치열하게 주도권을 다투고, 후반전에는 오히려 압도하면서 3 대 1의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리고 그 압도의 중심에는 베이포트 FC 선수 중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고 입단한 박주현이 있었다.
“저번 경기는 정말 잘해줬어. 내가 기대한 이상을 보여줬다니까. 네 적응이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
동민은 웃으면서 주현에게 말했다.
“나야 경기를 뛰다가 왔으니까 프리시즌부터 몸 만들던 다른 선수들보다 빠를 수밖에. 거기다가 형이 기대를 한다는 걸 보여줬는데 거기에 부응해야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은 베이포트 FC의 연습장도, 동민의 사무실도 아닌 동민의 숙소였다. 주현이 이적한 후, 구단에서 그에게 내어준 숙소가 동민이 쓰고 있는 숙소와 가깝다는 이유로 주현은 종종 그에게 찾아와서 수다를 떨곤 했다.
“그걸 포함해서도 내 생각보다 좋다는 이야기였어. 그래,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뛰어보니 어때? 친선 때랑은 아예 또 다르지?”
“그러게. 압도당한다는 게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었어. 팬들의 응원이나 분위기, 상대 선수들이나 우리 팀 동료들 전부. 친선 경기 때 느꼈던 것도 대단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 이런 걸 형은 계속 보고 있었나 하면서 부럽기도 하더라.”
주현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후반전에 교체 투입으로 그 경기를 완전히 바꾸어놓은 선수가 하는 말로는 너무 겸손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말이었다.
그러나 지난 친선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면서 처음으로 동료들과 발을 맞췄던 그에게 오늘 경기는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준 것만 같았다. 자신이 온 이곳이 얼마나 큰 무대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이런 무대들을 앞으로 계속해서 설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그런 경기를 앞으로 계속 뛰게 될 거야. 너도, 다른 선수들도 모두. 그 무대를 만들어주는 게 내 역할이고.”
동민 또한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감독으로서 첫 공식 경기의 승리, 베이포트 FC의 프리미어리그 첫 승을 떠나 자신의 생각과 능력이 통했다는 것이 기뻤다.
“감독 자리에 올라서 그런가, 말이 더 늘어난 거 같은데. 경태 형도 지금 형 이야기하는 걸 보면 닭살 돋는다고 몸서리칠걸?”
“그래서, 불만이야?”
“그럴 리가.”
뻔뻔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를 보며 주현을 고개를 젓고는 마시던 주스 컵을 기울였다. 주현의 반응에 미소 짓던 동민은 이내 이야기를 진지한 방향으로 돌렸다.
“어쨌든 앞으로의 경기들에서도 그런 활약을 펼치려면 제대로 준비해 두는 걸 잊지 마. 특히 여러 번 말하지만 너랑 같이 뛰었던 벤 로이터는 네가 모자란 부분들을 다 가지고 있는 선수니까 옆에서 잘 배워둬. 단순히 기술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까.”
확실한 재능인 주현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프리미어리그라는 큰 무대에서의 경험이었다. 포트베리 FC전에서 자신이 충분히 좋은 공격 옵션이라는 사실을 널리 보여준 주현이었지만, 아직 한 경기일 뿐이었고 그마저도 상대가 그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해놓지 못한 상태에서의 활약이었다.
앞으로 주현이 활약을 이어나갈수록 상대 팀들은 그에 대한 대비와 준비를 해나갈 것이고, 이는 결국 그가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가 홈이었지만, 다음 경기는 달라. 관중들의 야유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두라고.”
그리고 그 경험의 부족은 큰 경기에서의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주현이 있었던 K2리그나 K리그보다 훨씬 더 많은 관중 수를 자랑하는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응원 문화는 그가 지금까지 겪은 것 이상으로 격렬하다. 게다가 경기 자체도 다른 리그들에 비해서 거친 면이 있었다.
수많은 관중들의 야유와 함성은 선수들의 심리를 조금씩 뒤흔들기 충분했고, 그라운드 내에서는 거친 태클과 몸싸움들이 선수들을 직접 노려왔다. 그 때문에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안정된 선수들이라고 해도 영향을 받지 않기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동민은 더욱 주현에게 벤 로이터와 가깝게 지내며 그에게 배우라고 말한 것이다.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는 벤 로이터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리는지, 도발하는 상대에게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 앞으로 더욱 노력하도록 하죠.”
주현은 그런 동민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괜히 똥 폼 잡을 필요 없고, 알아들었으면 됐어. 안 어울리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그거 다 마셨으면 이제 숙소 돌아가 봐. 나는 다음 경기 상대 영상 좀 더 확인하고 잘 테니까.”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지난 경기에 대한 축하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다음 경기에 대한 준비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슬슬 가볼게.”
주현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동민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자신의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휴식과 이야기는 이걸로 끝, 다시 다음 경기와 시즌 전체라는 긴 여정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아, 맞다.”
방을 나서려던 주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동민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뭐가?”
동민은 주현이 뭔가 두고 가려던 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주현은 그런 동민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날 여기로 불러줘서 고마워. 형 덕분에 나는 더 큰 무대에서 더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뛰고, 더 강한 팀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런 기회를 얻은 거야말로 행운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해.”
주현에게 베이포트 FC로의 이적은 지금껏 자신이 뛰어왔던 것 이상의 큰 도전이다. 그리고 그 도전의 첫 단추를 의미 있게 끼운 지금, 그는 동민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동민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자신은 이런 기분을 절대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마음에 그는 동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동민은 잠시 대답할 말을 잃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가 겸연쩍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은 연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였다.
“…고맙기는. 네가 팀에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널 데려온 거야. 너라면 지금 우리 팀에서 좋은 자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기회는 아직 제대로 얻지도 않았어, 겨우 시즌 첫 경기가 시작했을 뿐이니까 앞으로 더 힘내라고.”
그런 말을 하는 동민의 눈은 부끄러운 듯 주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알았어. 그럼 내일 봐. 다음 경기도 이겨야 하니까 착실하게 준비해야지.”
주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동민의 숙소를 떠났다.
주현이 떠난 후, 동민은 보던 경기 영상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기회를 얻었다, 라…….’
그가 주현을 데려온 이유는 주현이 그가 아는 선수들 중 가장 재능 있는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주현이 지난 시즌 챔피언십을 주름잡았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와 엇비슷한, 그리고 어쩌면 더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기회를 얻은 건 주현이가 아니라 나겠지.’
그는 가볍지 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망가진 인생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죽음으로 내밀렸던 자신의 삶, 그리고 과거로 돌아오면서 생긴 지금의 이 능력. 지금 이 상황은 동민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후회 없이, 자신이 가고 싶었던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기회.
그 기회가 있기에 그는 지금 베이포트 FC의 감독이 되어 이 자리에 있고, 주현을 포함해 자신이 원하는 재능 있는 선수들을 데려와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할 수 있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 건 사실 나인데. 나는 어디에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나…….’
망가졌던 자신의 삶인지, 자신을 옥상까지 몰고 갔던 그날의 술인지, 아니면 발이 엉켜서 떨어진 그 아파트 옥상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과거로 돌아오고 지금 자신을 있을 수 있게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만은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그를 믿어주고 도와준 부모님이나 감독으로서의 그를 응원해 준 병렬, 마음을 지탱해 준 여러 친구들, 심지어 그토록 이를 가는 성남 페가수스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그리고 그 일들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 팀을 이끌고 확실한 성적을 내는 거지.”
그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제 길고 긴 시즌을 향한 첫 발걸음을 뗀 상태다. 앞으로 남은 경기들이 많고, 단순히 시즌을 넘어 앞으로 그의 감독 경력으로 생각하면 그 비중은 더욱 작아진다.
하지만 그는 이 승리를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야만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잊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동민의 숙소는 밤이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포트베리 FC와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베이포트 FC는 승격 팀의 돌풍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3백을 이용한 강한 수비로 유명한 노리치 타운 AFC을 상대로 1 대 0의 신승을 거두는가 하면, 개막 이후 2연승을 달리던 하트풀 FC와 무승부를 거두며 2승 1무로 순위표의 상위권에 위치했다.
포트베리 FC와의 경기 때까지는 그저 운이 좋았던 거라며 고개를 젓던 전문가들도 개막 이후 3경기 동안 무패를 거두자 눈빛을 달리하며 베이포트 FC와 동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상대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전술과 상대의 강점을 막고 약점을 파고드는 판단, 모두 일개 승격 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난 것들이었다. 이제 베이포트 FC를 승점 3점을 내주는 단순한 승격 팀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적어졌다.
그리고 오늘, 베이포트 FC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팀을 상대로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