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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격 팀의 반란 (165/270)
  • 승격 팀의 반란

    주현이 경기 템포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그는 동민의 전술 변화가 틀리지 않았다는 듯 활약을 하기 시작했다. 측면에서 머물던 야야 둠베흐와는 달리 안쪽으로 파고드는 그의 움직임은 먼저 자리 잡던 방식으로 막아내던 측면 포트베리 FC의 측면 수비도 당황시키고 있었다.

    그런 좌측면과 중앙에서 함께 일어나는 수비 라인의 붕괴는 결국 포트베리 FC로서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후반 21분, 해리 맥스웰로부터 이어진 패스를 받은 벤 로이터가 좌측면으로 빠져 들어가는 박주현을 보고 스루 패스를 찔러 넣어준 것이 베이포트 FC의 공격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금껏 안쪽으로 파고들거나 침투하던 주현의 움직임에 익숙해져 있던 상대 풀백은 갑자기 사이드라인을 따라 질주하는 주현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 박자 늦게 주현에게 따라붙었지만 그로 인해 순간적으로 나타난 측면 공간의 공백은 메울 수 없었고, 그 공간은 오버래핑을 올라오던 닉 베손이 충분히 파고들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아차!’

    그는 곁눈질로 닉 베손이 침투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말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아니야, 이 녀석 쪽에서 공이 가는 것만 막는다면……!’

    그는 달리면서 크로스를 올리려 하는 주현을 보고 그것을 막기 위해 발을 뻗었다.

    본래 급하게 발을 뻗지 않고 상대의 돌파를 막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침투하는 선수가 있다는 부담감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고, 크로스를 올리기 위해 비틀린 주현의 몸과 무너져 버린 밸런스는 손쉽게 공을 뺏을 수 있어 보였다.

    내민 그의 발은 공에 닿는가, 했지만.

    ‘어?’

    그의 태클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주현이 크로스를 올릴 것처럼 몸을 비틀었지만 이내 들었던 발을 뒤로 빼면서 안쪽으로 치고 들어간 것이다. 베테랑인 상대마저 완벽하게 속이는 페이크였다.

    페이크로 상대를 속이고 골문 쪽으로 진입하던 주현은 낮게 깐 땅볼 크로스를 올렸고, 이를 본 포트베리 FC의 수비진은 그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패스가 향하는 곳에는 포트베리의 수비수도 없었지만, 동시에 베이포트 FC의 공격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베이포트 FC의 스트라이커인 에딘 페트로비치는 박스 안에서 수비수 두 명의 집중적인 마크를 당하고 있었고, 벤 로이터는 박스 뒤쪽에 머물고 있었지만 라스 뮐러가 확실하게 붙어 있었다. 그 외에도 공격에 가담 중인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모두 수비에 막혀 있었다.

    그렇게 그의 패스는 아무도 없는 공간을 횡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거다!’

    그 패스가 향하는 곳에는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베이포트 FC의 중앙 미드필더인 해리 맥스웰, 그가 벤 로이터에게 패스를 내준 직후 빠른 속도로 달려 들어오고 있던 것이다. 커버를 위해 포트베리 FC의 좌측 미드필더가 복귀하고 있었지만, 그 속도도 시작도 해리 맥스웰에 비해서는 너무 늦었다.

    공이 연결되자마자 해리 맥스웰을 지체 없이 논스톱으로 슈팅했고, 그 슈팅은 깔끔하게 골 망을 갈랐다.

    “그렇지!”

    동민은 해리 맥스웰의 슈팅에 골 망이 출렁거리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펄쩍 뛰었다.

    스코어는 1 대 1, 동민이 주목했던 2선 중앙에 집중하는 전략이 상대 수비를 중앙으로 몰아서 결국 동점 골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세일러들을 열광에 빠뜨리는 동점 골의 주인공은 해리 맥스웰입니다!

    해리 맥스웰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그 동점골 이후, 경기는 급격하게 베이포트 FC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프리미어리그로 바뀐 이후 처음으로 승격한 베이포트 FC의 홈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응원을 했고 이는 포트베리 FC 선수들의 심리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쳤다.

    베이포트 FC 선수가 조금이라도 밀리거나 태클을 당하면 태클을 한 선수에게 땅이 울리도록 야유가 쏟아졌고, 반대로 베이포트 FC 선수들이 공을 잡기만 해도 환호성과 응원이 관중석을 가득 채웠다.

    전반전부터 그런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베이포트 FC의 동점 골 이후로는 아예 일방적으로 변했다. 그런 일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베이포트 FC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후반 33분과 42분 연속골을 성공시키며 결국 경기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심판이 휘슬을 불면서 경기의 종료를 알렸을 때, 경기장의 전광판은 3 대 1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겼다!’

    동민은 양 주먹을 불끈 쥐면서 행복에 잠겼다.

    감독으로서 가진 첫 공식 경기를 승리, 그것도 훨씬 더 강한 팀을 상대로 선제골을 허용한 상태에서 경기를 뒤집어 버린 역전승을 만들어낸 것이다.

    [포인트를 3 획득하였습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문장을 보면서도 쉽게 믿기지 않았다.

    전반전은 그런대로 만족스럽게 흘러갔지만, 선제골을 허용할 때부터 경기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결국 끈질기게 공격을 하면서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리고 승리를 만들어낸 것은 동민을 포함한 베이포트 FC 모두의 공이었다.

    “이겼어요! 이겼다고요! 와하하하!”

    동민의 옆에서는 브라운 키드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껴안았다. 기쁨에 잠긴 것은 브라운 키드와 동민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코치들도, 선수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한데 어울려 기뻐하고 있었다.

    홈에서의 경기이긴 했지만 개막전부터 포트베리 FC라는 거함을 잡아낸 것은 대단한 일이었고 이변이라고 칭할 만했다.

    ‘내 능력이 여기서도 통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이걸로 확실히 알았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축구가 충분히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먹힐 수 있다고!’

    동민은 흥분해서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레오나르도 마르체티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승리의 여운에 잠겨 있다가 뒤늦게 눈치를 채고는 황급히 레오나르도 마르체티 쪽으로 다가가 악수를 했다.

    “좋은 경기였습니다. 후반전에 이렇게 역전을 당할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하더군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레오나르도 마르체티는 짧게 그 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한 수 아래의 상대를 만나 경기를 졌다는 짜증이나 분노가 담긴 것이 아니었다. 승격 팀에게 패배하면서 시즌의 개막 자체가 꼬여 버린 상황에 당장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졌다면 나도 저렇게 했으려나.’

    패배를 패배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떤 면을 보았고 어떤 점을 개선하느냐, 하는 것이 먼저가 되는 감독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면서 동민은 생각에 잠겼다.

    선수들에게 짧은 격려의 말을 하고 그가 향한 곳은 기자 회견장이었다. 감독으로서 첫 공식 경기인 만큼 그와 베이포트 FC에 대한 기자들의 관심은 생각 외로 높았다.

    “오늘 감독으로서 첫 공식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셨는데 이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시죠.”

    동민은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기자의 질문에 예상했다는 듯 준비했던 답변을 꺼내 들었다.

    “일단, 프리미어리그라는 거칠고 힘든 곳에서 승리로 시즌을 시작하게 된 것이 기쁩니다. 전반전에 있었던 상대의 선제골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이긴 했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한 박주현 선수가 1도움을 비롯한 생각보다 좋은 활약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가까운 시일 내에 선발로 쓸 계획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몇 경기 더 벤치에서 시작하게 될까요?”

    동민이 답변을 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질문이 들어왔다.

    그 질문을 들은 동민은 잠시 숨을 골랐다. 오늘 경기에서 주현이 상대의 우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며 활약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올 거라 예상했던 질문이고 동민이 가장 준비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제가 감독을 맡고 있는 한, 베이포트 FC에서 언제나 자리를 꿰어 차는 확고한 주전은 없습니다. 언제나 상대를, 그리고 컨디션을 생각해서 선발 명단을 짜니까요. 단순히 선수들 간의 경쟁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 어떤 상황에 더 어울리는가 하는 이야기죠. 그것은 우리 팀과 저의 변하지 않는 특징이 될 겁니다.”

    동민은 그 말로 기자회견을 끝냈다.

    동민의 말은 베이포트 FC와 동민의 축구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더 강한 선수를 경기에 내보내는 것이 아닌 상대에 맞는 전술을 짜고 그것에 더 적합한 선수를 경기에 내보낸다는 말은 너무나 뻔한 말이었지만,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시즌은 길었고, 그 긴 시즌 내내 상대 팀에 대한 완벽한 맞춤 전술을 계속 들고 나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의 전술을 뚫어낼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선수들의 능력에 의존하는 경기가 종종 나오곤 했다.

    그 때문에 동민의 기자 회견을 들은 사람들은 그 말이 그저 현실 감각이 부족한 어린 감독의 열정이 앞선 말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몇몇 이들은 그저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동민이 그 말로 기자회견을 끝내자 그게 다냐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는 기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동민은 달랐다.

    ‘우리 팀 선수들은 다른 팀 선수들에 비해 특별히 대단한 선수들이 아니야. 오히려 개인 능력으로 치면 하위권이겠지. 게다가 내가 축구계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만큼 대단한 전술가도 아니지.’

    그는 냉정하게 스스로와 베이포트 FC에 대해서 평가했다.

    챔피언십에서 갓 승격한 팀답게 여름 이적시장에서 보강을 했다고 해도, 베이포트 FC의 선수층은 다른 팀들에 비해 두껍지 않았다. 그렇다고 질적으로 우수한 것 또한 아니었다.

    동민 스스로 생각했을 때에도 자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전술이 다른 이들에게는 신세계로 느껴질 만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것 같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팀이 될 수도, 될 필요도 없어. 언제든 상대에게 맞는 변화무쌍한 팀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팀이니까.’

    자신의 능력으로 상대할 팀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그것에 맞춰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팀, 그것이 바로 동민이 바라는 팀이었다.

    “지금 당장은 인정받지 못할 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 능리로 확실해졌어. 이대로 내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결국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동민은 기자 회견장을 나서며 혼잣말로 속삭였다.

    언젠가 자신이 같은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이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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