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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뀌기 시작하는 경기 (164/270)
  • 뒤바뀌기 시작하는 경기

    후반전이 시작되자, 동민은 초조함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롭 코튼의 특성 삭제는 이미 그의 손을 떠나 있었고, 조나단 케인이 잘해주지 못한다면 롭 코튼과 조나단 케인의 역할 변화는 끔찍한 수비 실책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조나단 케인이 롭 코튼을 제대로 커버해 줄 수 있길 바라서 최대한 긍정적이고 자신 있게 이야기 했는데, 그게 안 된다면… 전반전 이상으로 끔찍한 결과가 나올지도 몰라.’

    동민은 입술을 씹어대면서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 괜찮아요? 표정이 영 좋지 못한데요. 밀리고 있다고 너무 긴장한 것 아니죠?”

    동민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브라운 키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해왔다. 친선전과는 다른, 공식적인 첫 경기라는 점에 동민이 삼켜진 게 아닐지 걱정하는 것이다.

    “아뇨, 괜찮아요. 그냥 선수들이 너무 상대 분위기에 밀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뿐이에요.”

    “그럼 다행이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가끔은 선수들을 믿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잖아요?”

    동민은 브라운 키드의 말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브라운 키드의 말이 옳았다. 그의 말처럼 당장 동민이 초조해져 봐야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조나단 케인이 성공했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수 외에 다른 방법은, 만에 하나 그가 실패했을 때에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주장인 조나단 케인이 어린 롭 코튼을 잘 컨트롤해 주길 바라야겠지. 만약 이것마저 삐끗하면 정말로 이 경기를 뒤집기는 쉽지 않아지니까.’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만히 경기를 지켜보았다.

    마치 영원과도 같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롭 코튼을 지켜보던 동민은 눈앞에 떠오르는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포인트로 선호하는 플레이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후방에 머무름’ 삭제 성공]

    [현재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 0]

    ‘됐어!’

    동민은 그 문장을 보고 기쁨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결국 조나단 케인이 롭 코튼에게 적절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를 돌봐준 것이다.

    “좋아, 이거라면 게임은 충분히 뒤집힐 수 있어.”

    그는 아까와는 달리 자신감으로 주먹을 꽉 쥐며 웃었다.

    포트베리 FC의 수비형 미드필더 라스 뮐러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오늘 경기 상대인 베이포트 FC는 승격 팀이라는 위치에 걸맞지 않게 좋은 경기력을 펼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상대를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급하게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면서 날 끌어들이려 하는 것과 동시에 골문을 노려보긴 했다지만, 그마저도 선제골이 터지고 조르쥬가 내려오고 나서는 제대로 되질 않고 있어. 이대로만 가면 적어도 한 골을 지키면서 여유 있게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머리가 좋은 그는 상대가 뭘 노렸는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들이 계속해서 중거리 슛을 하면서 노리는 것이 단순히 하나쯤 얻어 걸려라, 와 같은 것이 아니라 반복된 슈팅으로 자신이 달라붙길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대의 계략을 알면서도 대처하기가 어려워 곤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전에 터진 선제골은 그런 상대의 노력을 전부 뒤집기 충분했다.

    ‘안전하게 점수만 지키면서 역습을 노려도 상대는 곤란할 수밖에 없어. 감독님도 그렇게 이야기했고, 후반전 계획도 마찬가지야.’

    그는 생각 외로 고전했지만 이 경기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패스 루트를 차단하고 조르쥬 레예스가 압박하면서 수비진이 자신의 자리만 지켜도, 정말 개인 능력이 뛰어난 공격진이 아닌 이상 슈팅을 시도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전반전 동안 본 상대의 공격은 그 정도로 날카롭지는 못했다.

    발 빠른 양측의 윙어나 강한 피지컬을 앞세운 상대 스트라이커도 주의할 만하긴 했지만, 노련한 포트베리 FC의 수비진을 앞지를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발은 빠르지만 섬세하지 못한 양측의 윙어는 미리 자리를 잡아두는 두 풀백을 제대로 넘지 못했다. 그런 상대를 다루는 것에 이골이 날 정도로도 경험이 많은 포트베리 FC의 양 풀백, 두 사람은 상대 윙이 중원에서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그들을 틀어막고 있었다.

    강한 피지컬을 장점으로 하는 베이포트 FC의 스트라이커 에딘 페트로비치는 상대 중앙 수비수들의 위치 선정과 영리한 수비로 제공권을 장악하며 공격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고립되었다.

    ‘어느 쪽이든 같아. 상대가 공은 자주 잡고 있다지만 공격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 미리 한 골을 넣어놓은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급해지는 건 상대일 테고, 그럴수록 빈틈을 찌르기는 쉬워진다.’

    경험이 부족한 팀들이 자주 그렇듯, 본인들의 생각과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릴 수 있었다. 그것을 잘 아는 포트베리 FC와 선수들은 수비를 공고히 하면서 그들을 끈질기게 압박하고 있었다.

    물론, 그 말이 수비에만 전념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상대의 거센 공격 중에서도 언제든 공을 잡은 포트베리 FC의 공격진들은 적은 수로도 빠른 역습을 주도했고, 그 역습은 상대의 간담을 다시 한번 서늘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리그 개막전에서 어렵지 않게 승리를 챙길 수 있겠어.’

    아직 후반전이 시작한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은 승리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라스 뮐러가 그런 생각을 한 지 10분이 지나고, 상황은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어. 전반전하고는 다르다.’

    포트베리 FC의 벤치에서 감독인 레오나르도 마르체티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전반전까지 상대인 베이포트 FC의 공격은 4-3-3을 바탕으로 하는 빠른, 그러나 경직된 공격이었다. 양 측면은 속도는 있지만 수직으로만 움직이면서 막아낼 여유를 충분히 주었고, 중앙의 스트라이커는 두 중앙 수비수 사이에서 고군분투했지만 고립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라스 뮐러의 수비력과 조르쥬 레예스의 활동량에 상대 중원이 위축되고, 특유의 측면으로 이어지는 패스 대신 중거리 슈팅에 집중한 탓이었다. 양 측면으로 넓게 벌리는 두 윙어의 장점은 조금도 살아나지 못했고, 중앙에서는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짧은 패스로 공을 운반하고 슈팅을 노렸지만 좋은 위치를 잡기 힘들었다.

    결국 측면 공격과 중앙은 서로 분리되어서 각개격파를 당하듯 짓눌렸다.

    ‘그 때문에 전반전에는 공격을 막고 역습하기가 쉬웠다. 우리 역습도 많이 차단당하긴 했지만 수비의 안정성을 더 추구하는 만큼 그 편이 나았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그는 지금 상대의 전술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상대의 좌측 윙어가 야야 둠베흐에서 박주현이라는 영입생으로 바뀌고 공격 전술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지금 베이포트 FC의 포메이션은 4-2-3-1에 가까운 모습으로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한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두면서 포트베리 FC의 수비진을 노리고 있었다.

    “저 13번이 문제인데…….”

    양 측면으로 벌리면서 올라가서 크로스만 노리던 좌우 측면의 공격은 우측은 그대로지만 좌측에서는 중앙으로 파고들며 중앙에 2명의 미드필더를 둔 것처럼 움직였다. 전반전에도 가장 많은 수의 슈팅을 시도했던 벤 로이터 한 명이야 라스 뮐러가 패스 길을 막으면서 조르쥬 레예스가 붙어주면 확실하게 막을 수 있지만, 오버래핑도 아니고 그 공간에서 머무는 사람이 두 명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반전부터 후반 초반까지 상대의 키 패스를 봉쇄하던 라스 뮐러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서 상대 스트라이커 한 명을 질식할 정도로 묶어내던 중앙 수비에도 조금씩 빈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기에 번갈아 가면서 올라오는 중앙 미드필더와 풀백들까지. 막으려면 조르쥬나 다른 선수들을 더 수비적으로 움직이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역습을 위한 인원 배치가 꼬이고 만다. 역습마저 포기하면서 아예 수비에 집중하기엔 아직 시간이 너무 남아 있어.’

    지금껏 라스 뮐러 혼자서 손쉽게 막아내던 공간이 뚫리기 시작하자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포트베리 FC의 수비진도 미세하게나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는 수비뿐만이 아니었다.

    포트베리 FC의 역습 또한 전반전과 후반 초반과는 달리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전반전에 베이포트 FC의 수비가 역습을 계속해서 막아냈다고는 해도 포트베리 FC의 공격진의 빠른 속도에 순간적인 빈틈을 보인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정확한 태클 타이밍으로 느린 발을 커버하던 스토퍼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면서 위험한 순간에 상대 공격을 끊었고, 돌아 들어가는 공격수를 보지 못할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졌던 중앙 수비수는 빠른 발을 이용해 먼저 패스가 이어지지 않도록 방해했다. 게다가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수비 시에 완벽하게 서로의 공간을 메꿔주면서 빠른 패스 플레이를 방해하고 있었다.

    ‘…느슨했던 전반전은 이런 변화를 위한 포석이었나.’

    이제 와서 당했다며 혀를 차봐야 돌아오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상대의 계략에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 것보다 점점 더 바뀌어가는 분위기를 다시 가져올 방법을 골몰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저번 경기에서도 느꼈지만 강동민 감독이 왜 저 녀석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했는지 알 것 같은데.’

    벤 로이터는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 2 대1 패스를 내주는 주현을 보면서 흡족하게 웃었다. 후반전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된 주현은 경기 템포 적응에 조금 애를 먹었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마자 곧바로 공격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경험상 영입된 지 얼마 안 된 선수와 함께하면 함께 뛰는 선수들이 배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선수들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팀 전체적인 움직임에 늦을 때가 잦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현은 달랐다. 자신이 어떤 발을 주로 사용하는지, 어떤 각도나 상황을 좋아하는지 꿰뚫어본 것처럼 그와 호흡을 맞췄다. 자신이 공격을 리드해야 한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그런 주현의 모습은 벤 로이터에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경기장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공을 받고 내준다. 아무리 친선전과 훈련들이 있었지만 고작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이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비단 벤 로이터만이 아니었다.

    베이포트 FC의 선수들 모두 주현의 투입 이후로 한결 매끄러워진 공격 작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놈이야말로 우리 공격의 핵이 될지도 몰라.’

    벤 로이터는 그를 보면서 오랜만의 환희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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