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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처하는 법 (163/270)
  • 변화에 대처하는 법

    순식간에 허용한 선제골 이후, 상대는 더욱 수비의 안정화를 꾀했다. 득점 직후 낮아진 집중력 탓에 베이포트 FC의 중거리 슛에 실점을 허용하기라도 하면 선제골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1 대 0이라는 리드를 가지고 전반전을 마치길 바란다는 듯 더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벤 로이터에게 달라붙어 그의 슈팅을 방해하던 라스 뮐러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향했고, 공수의 밸런스를 잡던 조르쥬 레예스가 더욱 아래쪽으로 움직이며 그를 방해했다.

    결국 전반전의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릴 때까지 베이포트 FC는 제대로 된 공격 찬스를 만들지 못하고 전반전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데.’

    동민은 입술을 깨물며 라커 룸을 향했다. 전반 막판에 생긴 베이포트 FC 수비진의 균열은 상대에게 선제골을 선물해 줌과 동시에 후반전을 위한 동민의 포석까지 모두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러면 후반전 계획도 다 뒤틀려 버리니까 문제지.’

    본래 조르쥬 레예스에서 시작되는 역습을 막으면서 라스 뮐러를 벤 로이터에게 붙도록 유도하고 난 뒤, 후반전에 박주현을 내보내면서 그 빈틈을 노리려던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반전 막바지에 터진 상대의 선제골은 동민의 그런 계획을 전부 망가뜨려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해. 지금 문제는 두 가지, 하나는 라스 뮐러가 그대로 수비진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다른 공격 계획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불안한 우리 중앙수비지.’

    공격적으로 다른 방법을 찾는 것보다도 시즌 시작 전부터 불안하던 조나단 케인과 롭 코튼의 중앙 수비가 결국 전반전에 그 허점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동민에게는 매우 씁쓸했다.

    ‘결국 롭 코튼의 특성을 지우는 수밖에 없겠어. 훈련 때에도 그렇고 경기 전에도 분명히 파고드는 공격수를 유의하라고 말했지만 결국 맞지 않는 옷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는 입술을 깨물면서도 확실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베이포트 FC의 수비수, 롭 코튼은 침울해진 채로 라커 룸을 향했다.

    동민이 경기 전까지 강조했던, 돌아 들어가는 공격수에 대한 수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선제골을 허용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팀의 주장인 조나단 케인을 비롯해서 벤 로이터, 해리 맥스웰 등 경험 많은 동료들이 그를 위로해서 담담하게 대꾸하고 있었지만 그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처음 볼을 내준 사람은 조나단이지만, 골을 허용한 것은 허술한 수비를 했던 자신 때문이라며 이를 악물었다.

    같은 시각, 베이포트 FC의 주장인 조나단 케인은 표정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롭 코튼보다도 더 기운이 빠져 있었다. 그가 가장 낙담한 이유는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보다도 그 실수 전까지 베이포트 FC의 경기력이 상대보다 좋았다는 것이다.

    ‘그런 간단한 실수가 아니었다면 강동민 감독이 말하던 대로 후반전에 더 유리한 상태로 승부를 걸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망치다니.’

    롭 코튼과는 다르게 그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에도 스스로를 통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라고 해도 침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 중앙 수비수는 라커 룸에 들어갔을 때 동민이 어떻게 반응할지 확실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전임 감독인 앨런 휴즈와는 달리 상황에 따라 선수들을 날카롭게 몰아세우며 그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프리시즌에 있었던 친선 경기에서는 물론, 감독이 되기 전 코치일 때부터 그는 부드러운 말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전술적인 면에서만은 그런 동민이라고 해도 날카롭기 그지없게 그들을 다그쳤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단순히 팀 전력을 보았을 때, 상대적 약팀인 베이포트 FC가 경기들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술적인 우위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 때문에 평소 부드럽던 동민도 전술적으로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날카롭게 그들을 몰아세웠다.

    ‘그런 사람이 이런 일을 그냥 넘어가진 않을 텐데…….’

    조나단 케인은 동민의 정식 첫 경기이자, 자신의 첫 프리미어리그 경기부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두 선수가 예상한 것과는 달리, 동민은 라커 룸에서 두 수비수에게 아무런 경고도 꺼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상대의 수비가 생각처럼 와해되지 못해서 공격 전술을 바꿀 것이며, 그에 따라 선수 교체로 야야 둠베흐 대신 박주현이 투입될 거라고 설명했다.

    동민은 마치 두 사람의 실수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단 한 번의 지적도 없이 하프타임의 팀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말했듯이 박주현이 좌측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벤 로이터를 지원해 주고, 해리 맥스웰과 이안 페트로프는 아래 지역에서 주로 머물면서 번갈아 올라가서 공격을 지원해 줘요. 전반전에도 그랬지만 상대가 작정하고 패스 길을 막아놓으면 두 사람만으로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상. 후반전에 게임을 뒤집을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중앙 수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낸 동민은 그대로 먼저 라커 룸을 나서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아, 조나단. 잠시 이 쪽으로 와주세요.”

    조나단 케인은 동민의 그 말을 듣고 결국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동민이 빠르게 후반전 계획 설명을 마친 것은 그에게 한참 동안 잔소리를 늘어놓기 위한 것이었다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자신이 실수를 하고도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확실하게 지적받고 후반전을 맞이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후반전에는 당신이 뒤에서 커버해 주고, 롭 코튼이 먼저 달려들어서 스토퍼 역할을 하도록 해주세요. 서로 익숙한 역할은 아니겠지만 그 편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민의 이야기는 그의 실수를 꼬집는 것이 아닌, 그와 롭 코튼의 역할을 서로 바꾸라는 이야기였다. 그의 말에 조나단 케인은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감독님, 그건 훈련 때에도 시도해 봤지만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움직임이 되면서 더 휘둘리는 게…….”

    그가 동민의 지시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동민이 두 사람의 역할을 바꾸는 것을 생각하고 훈련에서 실험해 보았을 때,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다가도 결국 평소보다 더 흔들리는 수비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조나단 케인이 뒤로 빠지고, 롭 코튼이 달려들어 상대 공격을 쓸어 담는 역할 변경은 잘되다가도 롭 코튼의 달려드는 타이밍 때문에 엉키기 일쑤였다. 지금껏 계속 후방에 머물면서 커버를 하던 선수가 하루아침에 스토퍼 역할에 바로 눈을 뜨기는 쉽지 않았고,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그 빈틈이 결국 수비력의 불안을 더 키웠던 것이다.

    “괜찮아요. 날 믿어요. 연습 때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조나단 케인의 불안한 반응에도 동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조나단 케인과 롭 코튼, 두 사람을 믿는다는 듯 자신 있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롭 코튼에게도 내가 직접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파트너인 당신이 말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부디 그가 아까의 실수를 신경 쓰느라 더욱 무너지지 않게 옆에서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동민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조나단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앨런 휴즈의 밑에서 전술 코치로, 그리고 프리시즌에 감독으로서도 자신이 앨런 휴즈의 뒤를 이을 만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던 동민이다. 그런 그가 이토록 자신 있어 한다면 이번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 실수가 나온다고 해도 그건 지시한 내가 책임집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이 그대로 움직여 주세요. 당신도, 롭 코튼도.”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말투는 평소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목소리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반드시 그 말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제력이 있었다.

    ‘후, 이걸로 좀 나아지려나.’

    동민은 그라운드를 향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반전이 시작하기 전에 전반전에 있던 두 가지의 과제에 대한 답변을 모두 제출한 셈이었다.

    ‘라스 뮐러가 그대로 수비진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다른 공격 계획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벤 로이터와 박주현이라는 공격적인 미드필더 두 명을 함께 투입하면서 어느 정도 해답이 될 수 있을 거야. 상대 수비와 중원 사이의 공간에서 수적 우위를 챙기는 걸로 적어도 라스 뮐러가 붙박이처럼 중앙 수비 근처에 머무는 건 막을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야야 둠베흐 대신 투입되는 주현은 좌측 윙이라기보다는 또 한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웠다. 상대의 노련한 포백을 직접 공략하기보다는 그 앞부터 무너뜨려 가겠다는 동민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교체였다.

    ‘그리고 중앙 수비의 문제는… 롭 코튼의 특성만 지우면 되니까. 특성을 지우는 조건이 귀찮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먼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었을 텐데.’

    전반전이 끝나기 전, 롭 코튼의 특성 삭제 조건을 본 동민은 머리를 감싸 쥐고 싶었다.

    [삭제 조건: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는 내에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압박을 줄 것]

    몇 년 만에 본 삭제 조건이 적힌 문장은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말이었다.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는 내에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압박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지.’

    그 문장을 처음 본 동민은 그야말로 모순의 결정체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아직 어린 선수인 롭 코튼에게 감독인 동민이 경기력 향상을 위한 압박을 주려 하면 심리적인 부담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베테랑인 벤 로이터나 조나단 케인 같은 선수들이라면 모를까, 아직 23세인 롭 코튼이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서 그 정도로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계란을 던지되 깨뜨리지 말란 소리도 아니고 대체 뭐람.’

    그렇지 않아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만 같아 동민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려왔다.

    그러나 이내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이런 경기에서 내가 직접 말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거라면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것이 그가 후반전에 수비 라인에서 가져갈 변화를 롭 코튼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조나단 케인에게 말한 이유였다.

    ‘잘되어야 할 텐데…….’

    동민은 땀이 찬 손을 쥐며 입술을 핥았다.

    후반전이 곧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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