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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의 개막 (162/270)

시즌의 개막

8월 중순에 내리쬐는 오후의 햇볕은 아무리 여름이 덥지 않은 런던이라 해도 충분히 따가웠다. 그리고 그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베이포트 FC의 서포터들은 브리큰돈 스타디움의 관객석에 앉아 그토록 기다리던 베이포트 FC의 1부 리그 복귀전을 기다렸다.

“모두들 개막까지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곧, 그 기다리던 리그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팬들이 있는 그 아래, 동민은 굳은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들 중에 프리미어리그를 경험해 본 사람보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죠. 또한 나도 마찬가지고요. 반대로 우리가 상대할 팀들은 경험이 많고, 강하죠.”

그는 잠시 이야기를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 우리가 상대할 포트베리 FC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몇 시즌 간 계속 중위권을 유지했고, 지난 시즌에는 유로파 리그도 나간 적이 있죠. 대다수의 축구 팬들은 오늘 우리의 패배를 예상할 겁니다.”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선수들을 한 명씩 천천히 바라보았다. 많은 선수들의 눈에서 긴장이 흘러넘칠 듯 넘실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을 보면서 동민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바꾸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이 경기를 이기지 못한다는, 그리고 이곳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린 충분히 경쟁력 있는 팀이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아니, 우리는 그런 결과를 얻을 만한 팀이에요.”

동민의 목소리는 점점 더 열기를 띠어갔다.

“우리가 상대할 팀들이 얼마나 경험이 많고 강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열정과 갈망이 있다면, 한계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눈은 타오르듯 자신감과 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열기는 전염되듯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돌아, 결국 팀원 모두에게 퍼져 나갔다.

“나가서 우리가 어떤 팀인지 확실하게 보여줘요. 고작 승격 팀일 뿐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알려주면 됩니다.”

그렇게 베이포트 FC의 시즌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심판의 휘슬 소리로 경기가 시작되고, 동민은 차분하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첫 경기 상대인 포트베리 FC는 경험 많고 노련한 포백을 중심으로, 젊고 빠른 공격진이 조화를 이루는 팀이다. 이는 공수의 밸런스가 확실하게 잡혀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우리 중앙 수비의 가장 큰 약점인 속도에 강한 공격진, 그리고 안정감이 강점인 수비진. 어찌 보면 지금 베이포트 FC에게는 가장 상성이 안 맞는 상대로 볼 수도 있어.’

그러나 그들의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했다.

‘반대로 말하면 느리고 노쇠한 수비진과 경기가 마음대로 안 풀리면 경험 부족으로 의욕만 앞서는 공격진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우리 중앙 수비가 집중력을 잃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고, 박주현이라는 조커의 후반 투입을 통해서 상대의 의표를 찌를 수도 있어. 게다가 가장 문제는 그 사이의 연결 고리니까.’

그의 눈은 상대 중원에서 공격진과 수비진 사이의 연결 고리를 하는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바라보았다.

[라스 뮐러]

28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5.3/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5.1/20

선호하는 플레이: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후방에 머무름

특성:

장점 - 강철 몸, 정확한 태클

단점 - 느린 발, 부정확한 패스

현재 컨디션: 7/10

[조르쥬 레예스]

24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5.1/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4/20

선호하는 플레이: 상대를 압박함

특성:

장점 - 두 개의 심장, 빠른 발

단점 - 좁은 시야

현재 컨디션: 6/10

포트베리 FC의 주전인 두 중앙 미드필더는 수비진과 공격진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수비적인 역할을 맡은 라스 뮐러가 뒤에 머물면서 포백을 지키고 상대의 공격을 자르려는 것과는 반대로, 더 발이 빠르고 많이 뛰는 조르쥬 레예스가 그 활동량을 기반으로 공격진을 지원한다. 그것이 포트베리 FC의 4-2-3-1 포메이션에서 맡은 두 사람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 동민이 이기기 위해서 반드시 망가뜨려야 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저 두 사람이 안정적으로 공수의 연결 고리가 되게 해선 안 돼.’

그것이 동민이 생각하는 이 경기, 정확히는 전반전의 핵심이었다. 라스 뮐러가 발이 느린 수비진 대신 공간을 커버하지 못하고 조르쥬 레예스의 활동량이 무의미하게 만드는 방법, 그것이 바로 승리를 위한 해법이었다.

‘EPL 복귀 첫 경기부터 어깨가 무겁네. 휴즈 감독이나 강동민 감독이나 늙은이한테 바라는 게 너무 크다니까. 은퇴하려고 했던 계획도 틀어지고 말이야.’

벤 로이터는 한숨을 섞어 푸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앨런 휴즈가 건강 문제로 팀을 떠나면서 벤 로이터 또한 생각하던 대로 은퇴를 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를 강하게 말린 것은 새로 감독에 취임한 동민이었다.

베이포트 FC에서 프리미어리그의 경험이 있는 것은 그뿐이므로 팀에 선수로 남아 다른 동료들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하고 은퇴하려던 그였지만, 며칠간 끈질기게 계속된 동민의 만류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그는 이번 시즌도 선수로서 베이포트 FC에 남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신뢰를 받으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이 늙은이를 어디까지 써먹을 생각인지.’

그는 속으로 투덜거리던 것을 멈추고 패스를 받으려 몸을 움직였다. 몸을 돌리며 해리 맥스웰의 공을 받아낸 그는 두 번의 볼 터치로 공을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로 잡아내고 상대 진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상대 진영으로 성큼성큼 드리블을 하던 그는 수비진과 함께 뒤로 물러나던 라스 뮐러가 자신에게 제대로 달라붙기 전에, 곧바로 먼 거리에서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전반 3분 만에 나온 베이포트 FC의 첫 슈팅이었다.

‘하이고……. 이런 부분은 확실히 예전 같지 않다니까. 맘처럼 되질 않네.’

각도도 제대로 나지 않고, 거리도 너무 먼 그의 슈팅은 골문 옆으로 빗나갔지만 벤 로이터의 얼굴에 아쉬움은 없었다. 처음부터 골을 기대한 슈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벤 로이터의 중거리 슈팅 시도는 그 한 번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지만, 모두 골문을 빗나가거나 골키퍼에게 막히는 등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오늘 베이포트 FC가 들고 나온 4-5-1 포메이션에서 이안 페트로프, 해리 맥스웰과 함께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구성한, 그리고 그중 좌측을 맡은 그가 동민에게 받은 임무는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해리 맥스웰과의 짧고 빠른 패스로 상대의 계속된 압박을 풀어내는 것, 그리고 남은 하나는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곧바로 자신의 장기인 중거리 슛을 시도하는 것.

그 두 가지만을 동민은 그에게 강조한 것이다.

‘뭘 노리는지 알겠지만…… 위협용 빈 총 역할은 또 처음인데.’

또 한 번의 슈팅은 빗나가고 자신의 진영으로 복귀하면서도 그의 눈은 상대 수비진을, 정확히는 라스 뮐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정확하게 중거리 슛을 할 만한 찬스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억지로 슛을 한 이유는 라스 뮐러를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라스 뮐러가 계속해서 수비진 앞쪽에 머물면서 패스 루트와 공간을 막아내면 베이포트 FC로선 공격을 마무리 짓는 것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동민은 벤 로이터로 하여금 계속해서 중거리 슛을 시키면서 벤이 공을 잡았을 때 라스 뮐러가 그에게 붙도록 유도한 것이다.

‘덤으로 기대는 안 하지만 제대로 걸리면 그건 그거대로 좋다니, 치밀한 건지 허술한 건지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네.’

벤 로이터는 그런 말을 하던 동민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동민이 택한 방법에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지 못한 중거리 슈팅은 그저 공격권을 내주는 결과가 되거나, 혹은 상대의 역습이 나올 빌미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벤 로이터의 또 한 번의 슈팅이 수비수에게 막히고 공이 흐르자, 조르쥬 레예스는 그 공을 잡고 베이포트 FC의 진영으로 드리블해 갔다.

공을 끌고 들어간 그가 측면으로 공을 내어주려 할 때 그 공을 겨우 끊어낸 것은 베이포트 FC의 미드필더, 이안 페트로프였다.

동민은 이안 페트로프를 벤 로이터와 해리 맥스웰 아래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면서 벤 로이터의 슈팅에서 나올 역습의 위험성을 줄이려 했다. 또한 조르쥬 레예스의 단점인 좁은 시야 때문에 그가 공을 내줄 곳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공격을 차단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아직까진 잘 되어가고 있어.’

전반전도 반이 슬슬 지날 무렵, 동민은 자신이 생각 한대로 선수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계속된 벤 로이터의 중거리 슛은 그가 공을 잡을 때마다 라스 뮐러가 그에게 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조르쥬 레예스는 본인의 장점인 활동량은 그대로였지만 실속은 없는 플레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동민과 베이포트 FC의 분위기를 한 번에 망치는 일이 벌어졌다.

전반 40분, 포트베리 FC의 수비진이 공을 걷어내기 위해 길게 걷어낸 공이 베이포트 FC의 수비 진영까지 이어졌다.

그 공을 잡으려 조나단 케인이 움직였지만 발 빠른 포트베리의 공격수는 한발 먼저 그 공을 따냈고, 조나단 케인은 순식간에 상대에게 텅 빈 뒤 공간을 허용했다. 롭 코튼이 뒤에서 그 빈 공간을 막기 위해서 달라붙었지만 상대는 손쉽게 침투하는 동료에게 공을 넘겼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며 토마스 스톤스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을 맞았다.

뒤늦게 닉 베손이 달려왔지만 상대는 이미 구석을 향한 깔끔한 슈팅으로 골을 터뜨린 직후였다. 베이포트 FC는 결국 불안하던 수비 라인의 문제로 인해 선제골을 내주고 만 것이다.

벤치에서 이를 지켜보던 선수들과 코치들도 모두 실망의 한숨을 내뱉었지만 그중에서도 동민은 눈가를 감싸 쥐며 탄식했다.

“아…….”

계속해서 베이포트 FC의 약점으로 손꼽히던 중앙 수비에서의 문제가 결국 발목을 잡자 그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이면 생각대로 잘 되어가는 도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전반전 동안 실점 없이 상대를 압박하며 후반전에 승부를 걸려던 동민의 계획은 커다란 장애물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는 곧 동민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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