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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을 위한 준비 (161/270)
  • 개막을 위한 준비

    “그렇게 아예 몸을 돌려 버리면 대체 어떻게 공을 막을 생각입니까!”

    동민의 목소리가 연습장에 울렸다. 그의 목소리가 향하는 곳은 베이포트 FC의 젊은 수비수, 롭 코튼이었다. 동민은 어리둥절한 그에게 다가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봐요, 여기서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우측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누가 봐주나요? 조나단이 봐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조나단이라도 몸은 하나예요. 한 명은 막는다고 쳐도 아예 몸을 돌려 버리면 다른 누가 침투해 오는지 볼 수가 없잖아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몸을 좌우로 돌렸다.

    “내가 이렇게 돌렸을 때 우측이 보이나요? 그럴 리가 없죠! 똑같아요. 몸을 돌리면 아예 반대편을 포기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어요.”

    롭 코튼은 흥분한 자신의 감독을 보면서 질문했다.

    “그러면 공이 있는 쪽은…….”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뒤로 뛰면서 좌우로 계속 고개를 돌리면서 확인해야죠. 몸 자체가 돌아가면 안 됩니다. 충분히 뒤로 빠지면서 상대가 오는 걸 확인하고, 공이 갈 곳을 선택해 막아야죠. 그러니까…….”

    동민의 말은 한참 동안 끝나지 않았다.

    로체스터 메드웨이와의 경기 이후, 세 번의 친선 경기에서 1승 2패를 기록한 베이포트 FC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수비였다. 로체스터 메드웨이와의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에도 수비진의 막판 집중력 때문에 2골을 헌납했던 베이포트 FC는 이어진 경기들에서도 클린 시트에 실패했다.

    챔피언십 팀들을 상대로는 버틸 수 있던 베이포트 FC의 수비진이었지만 프리미어리그라는 한 단계 높은 리그에서는 한계가 보이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이 바로 센터백들의 성향이었다.

    베이포트 FC의 부동의 주전이자, 주장인 조나단 케인은 발은 느리지만 정확한 태클과 경험을 앞세워 스토퍼(먼저 달려들어 상대의 공격을 끊어내는 역할의 수비수)역할을 맡고 있었다. 반대로 발이 빠르지만 시야가 좁은 롭 코튼이 뒤로 물러나면서 최후방에서 먼저 달려드는 조나단 케인의 공간을 커버하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문제는 조나단 케인의 수비가 벗겨지고, 달려드는 공격수가 롭 코튼의 시야 사각에서 들어오면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거야.’

    동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경기들에서 나왔던 실점들의 대부분이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다.

    ‘어쨌거나 수비진의 불안함을 최대한 잡아야 해. 이제 코앞까지 다가온 리그의 개막을 앞두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쉽지 않을 거야.’

    동민은 훈련 내내 불안한 수비진에 대한 걱정을 접어둘 수 없었다.

    ‘영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지만… 영입 자금도 많이 남지 않았고, 수비수는 특히 영입한다고 해도 곧바로 적응하기 쉬운 포지션이 아니니까.’

    선수들은 팀이 바뀌게 되면 어느 정도의 적응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선수들과 팀의 전술에 녹아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지만 수비수는 더욱 적응이 중요했다. 10번의 기회를 놓쳐도 1번의 골을 성공시키면 되는 공격수와는 달리, 10번 동안 잘 막아도 한 번의 실수가 골로 연결되면 치명적인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수 자신의 센스나 개인 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공격진에 비해, 수비진은 오프사이드 트랩과 같은 긴밀한 콤비네이션이 필요한 탓에 적응에 더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분명 데려오면 좋은 선수들은 있지만, 아무리 지난 시즌에 영입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돈을 쓰기는 힘드니까. 그 외의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시즌의 개막을 앞두고 동민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그래서 나한테 온 건가요?”

    “그럴 리가요. 기껏 병문안 왔는데 심심하다고 뭐든 이야기해 보라고 말한 건 감, 아니, 당신이잖아요.”

    놀림을 담은 앨런 휴즈의 말에 동민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시즌의 시작을 앞두고, 그는 앨런 휴즈에게 근황 보고도 할 겸 병문안을 온 것이다.

    “농담이에요. 어쨌든 동민 당신도 고민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생각해 둔 것은 있지 않나요? 그러면 그냥 해봐요. 누가 당신보고 왜 그런 식으로 하냐고 말하지도 않을 테고, 정말 어딘가 이상하면 브라운이 먼저 이야기해 주겠죠. 그가 당신을 돕는다고 한 것에는 그런 일도 포함되어 있는걸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동민은 확신하듯 말하는 그를 보고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의 질문에 앨런 휴즈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강, 당신이 아무 대책도 없이 문제만 끌어안고 있진 않을 테니까요. 당신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 아니, 적어도 그걸 입 밖에 내는 것은 항상 사소하다고 할 정도로 작은 일들뿐이잖아요. 이미 마음속으로 답이 나와 있는데 정말로 그걸 해도 될지, 같은 것들이요.”

    “항상 느끼지만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닌가요?”

    동민은 약간의 야유를 담아 입을 삐죽거렸지만, 그에 대한 앨런 휴즈의 반응은 웃음뿐이었다.

    “정말로 스스로 답을 못 찾았을 정도의 고민이라면 당신이 여기 있을 리가 없죠. 당신의 숙소든, 사무실이든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답을 찾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게 내가 지금까지 본 당신이었고, 당신을 다음 감독으로 추천한 이유인걸요.”

    그의 답변에 동민은 두 손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 누워 있으면서 사람 속 훔쳐보는 그런 것만 더 늘어나는 거 아녜요? 아니면 진짜 무슨 초능력이라도 있든가.”

    “나도 몇 달 전까지는 감독이었는데, 감독이 자신의 팀원을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동민도 그만큼 팀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는, 농담에 뼈를 담은 앨런 휴즈의 말에 이번에는 동민이 쓴웃음을 지을 차례였다.

    “앨런, 그래도 스토킹은 범죄예요.”

    “아, 들켰나요?”

    웃으며 농담을 나누던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고, 앨런 휴즈가 팀을 떠난 뒤 다른 팀원들의 이야기로 한참을 잡담을 나누었다.

    “슬슬 가야겠네요. 생각보다 너무 많이 떠든 것 같아요.”

    “그렇군요. 늙은이 한 명이 프리미어리그 팀 감독님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은 것 같네요. 미안해라.”

    “샐리도 그렇고 다들 놀리는 데에 너무 재미가 들렸다니까. 아, 그러고 보니 샐리가 조만간 병문안 온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나한테 병원 위치는 안 물어봤던 것 같은데… 어떻게 찾아오려는지 모르겠네요.”

    동민은 나갈 채비를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샐리가 요? 뭐, 굳이 안 물어봐도 어련히 잘 찾아오겠죠. 이 병원도 레이미 볼든 구단주가 알아봐 준 병원이니까요.”

    “아, 일어나지 말고 그냥 누워 있어요. 저번에도 괜히 그랬다가 나만 간호사한테 주의 들었다고요.”

    동민의 말을 앨런 휴즈는 가볍게 받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동민은 굳이 일어나려는 앨런 휴즈를 말리느라, 방금 그가 했던 이야기가 어째서 앞서 말했던 이야기에 대한 대답이 되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마음속으로 답이 정해져 있다, 라…….’

    동민은 앨런 휴즈가 있는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가 말한 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며 동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동민에게는 미리 수비진에 대한 방책을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방법을 쓴다면 본래 계획에서 멀어진다는 거지.’

    그가 생각한 방법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그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능력 중 하나인 포인트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예전에 박주현의 특성인 [소심함]을 지웠을 때를 생각하면, 특성의 삭제에 필요한 포인트는 10포인트.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영국으로 넘어오기 전에 남아 있던 2포인트와 지난 시즌 앨런 휴즈 감독 대신 지시를 했던 두 경기에서 얻은 3포인트, 그리고 이번 프리시즌 친선 경기에서의 승리로 얻은 5포인트. 정확히 10포인트야.’

    그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마쳤다.

    이미 특성을 삭제할 수 있는 포인트는 딱 맞게 가지고 있었다. 남은 것은 누구의 어떤 특성을 삭제해야 하는가, 지만 그 또한 동민은 정했다.

    ‘롭 코튼의 스테이터스에 손을 대는 수밖에. 그래야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둘에게 더 알맞은 역할을 부여할 수 있을 테니까.’

    동민은 롭 코튼과 조나단 케인의 스테이터스를 떠올렸다.

    [롭 코튼]

    23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5.0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3.9 / 20

    선호하는 플레이: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후방에 머무름

    장점 - 정확한 태클, 빠른 발

    단점 - 좁은 시야

    현재 컨디션: 6/10

    [조나단 케인]

    29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5.5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5.2 / 20

    선호하는 플레이: 슬라이딩 태클 선호, 몸싸움 선호

    특성 :

    장점 - 강철 몸, 정확한 태클

    단점 - 느린 발

    현재 컨디션: 6/10

    ‘롭 코튼의 선호 플레이인 후방에 머무르는 것을 없애고 그를 먼저 공격수에게 달려드는 스토퍼로, 조나단 케인은 경험을 살려서 그 뒤에서 공간을 커버하는 역할을 맡기는 거야.’

    그렇게 하면 발이 느린 조나단 케인이 쉽게 벗겨질 일도 없고, 동시에 롭 코튼이 시야가 좁아서 파고드는 선수를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일도 없을 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문제는 두 선수가 그 움직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건데… 얼마나 걸리려나.’

    자칫하다가는 그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불안하긴 해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있는 지금의 수비조차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수비진을 위한 위험성 높은 수술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원래 계획도 틀어지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동민에게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시즌이 시작되면 한 경기, 한 경기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컨디션이 급락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곧바로 승패에 직결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곧바로 포인트를 사용해서 컨디션을 올리거나, 그게 아니어도 중요한 경기 때마다 포인트를 이용해 선수들의 컨디션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모아둔 포인트를 모두 사용하면 다음번 승리를 할 때까지는 포인트를 얻을 수 없으니까. 이제 더 이상 친선 경기도 없고.’

    포인트는 지금까지 모아둔 동민에게 최후의 보루처럼 생각하던 보험이었다. 자신의 능력이 있다고 해도 프리미어리그의 강팀들을 상대로 얼마나 되는 승리를 챙기고 포인트를 얻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가진 포인트를 모두 쓰는 것은 그가 생각하던 최후의 보루를 모두 없앤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할까…….’

    그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시즌의 개막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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