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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민의 감독 데뷔전(2) (160/270)
  • 강동민의 감독 데뷔전(2)

    관중들의 함성에 주현의 심장은 북을 치듯 가슴속을 울렸다.

    아직 프리시즌이지만 팀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을 했다는 것 때문인지 베이포트 FC의 팬들은 구름처럼 경기장에 모였고, 그들의 새로운 영입생의 첫 투입을 환영하고 있었다.

    “넌 분명 잘할 수 있어.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네 실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서 여유 있게 움직여.”

    동민이 어깨를 두드리며 하는 말에 주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절 데려오기 위해서 했던 일들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주현은 자신이 넘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베이포트 FC로의 이적 과정에서 동민이 짧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어서 팀에서 활약하는 것만이 동민의 믿음에 부응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그라운드를 밟았다.

    ‘생각보다 꽤나 이른 시기에 투입됐는데, 잘해주려나.’

    베이포트 FC의 수석 코치인 브라운 키드는 교체 투입으로 들어가는 박주현을 약간의 근심을 담아 바라보았다.

    박주현의 재능은 분명히 그의 눈에도 띄었지만, 단순히 재능만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전혀 다른 리그의 경기 분위기에 적응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처음 보는 선수들과 발을 맞추는 것까지, 팀에 녹아드는 일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박주현의 영입은 강동민이 구단에 강력하게 요청한 것인 만큼 혹시라도 기대에 못 미치게 되면 그가 모든 책임을 끌어안을 텐데…….’

    그는 박주현의 영입 과정을 떠올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EU에 속하지 않는 국가의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려면 워크 퍼밋을 발급받아야만 한다. 그 워크 퍼밋의 발급 조건은 첫 번째, 적어도 FIFA랭킹 50위권 국가의 선수여야 하며, 두 번째, 그 국가의 A매치 중 75% 이상의 경기에 나와야만 한다.

    박주현은 그중 두 번째 조건을 만족할 수가 없었다. 부천 유나이티드에서 지난 시즌부터 날개를 펴기 시작한 그는 이제야 국가 대표 팀에서 눈여겨볼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동민이 주현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워크 퍼밋의 특례심사에 걸 수밖에 없었다. 이적료가 1,000만 파운드 이상이라면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도 특례심사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민은 그것을 노리고 구단에게 요청에 그 이상의 이적료를 베팅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아시아의 선수에게 그 돈을 지출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던 레이미 볼든 구단주였지만, 동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몇 배의 가치를 할 선수라며 강하게 그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 결과, 레이미 볼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0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영입이 결정된 것이다. 그 전까지 주현의 이탈에 난색을 표하던 부천 유나이티드도 그 거액에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구단의 여름 이적 시장 영입 자금의 3분의 1에 가까운 그 큰돈으로 해결되긴 했지만, 결국 그렇게 큰 이적료는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도 있어. 가능하면 천천히 출전시키면서 적응을 기다리는 것을 바랐는데…….’

    브라운 키드는 씁쓸하다는 듯 읊조렸다.

    그가 알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도 너무 큰 이적료 때문에 스스로 부담감에 짓눌려, 본인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던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가능한 한 주현을 최상의 상태에서 내보내길 바랐다.

    하지만 감독인 동민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주현에게 이적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지금도 충분히 경기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오늘 경기 전에 그 건을 가지고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결국 그는 동민의 고집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강이 그를 그렇게까지 원하는 이유가 따로 있겠지. 일단은 믿는 수밖에 없어. 어쨌든 그가 출전하는 이상, 첫 경기부터 잘해주면서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브라운 키드의 바람이었다.

    “저건 또 뭐야?”

    로체스터 메드웨이의 감독, 존 워커는 후반전이 시작되고 또다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전반전의 빠르고 수직적인 공격을 막기 위해서 수비 라인을 평소처럼 내리고 양 측면 수비수로 하여금 크로스를 경계하도록 했지만, 상대의 공격 패턴은 또 다시 달라진 것이다.

    ‘13번, 저 전반전에는 없던 박이라는 녀석이 전혀 다른 공격을 이끌고 있어.’

    현재 베이포트 FC의 공격은 전반전의 수직적이고 속도를 살리는 공격과는 매우 달랐다. 좌측면에서 공을 받은 주현이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중앙 미드필더들과의 짧은 패스로 순식간에 중원의 압박을 벗겨내며 파고드는 것이다. 게다가 뒤로 물러서 있던 수비 라인도 그들을 지원하려는 듯 전체적으로 앞으로 나서 강한 압박을 펼치고 있었다.

    로체스터 메드웨이는 전반전의 측면 역습을 막기 위해서 수비 라인을 내리고 중앙 미드필더들로 하여금 양옆으로 벌려 서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방법은 베이포트 FC의 빠른 측면 미드필더들에게서 이어지는 크로스를 견제하고, 뒤 공간을 파고드는 역습을 막는 것에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베이포트 FC의 공격과 같은 미드필드 지역부터 이어지는 짧은 패스와 중앙 돌파에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전반전에는 분명 측면 공격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내가 측면 방비에 신경 쓸 거라는 걸 미리 알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의 입장에서는 귀신이 장난을 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자신이 대비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상대는 측면과 중앙을 번갈아 찔러대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가 충격에 휩싸여 욕을 내뱉는 동안, 주현은 다시 한번 공을 잡았다. 그는 아래쪽에서부터 달려오는 해리 맥스웰과의 2 대 1 패스를 통해서 달려드는 미드필더 두 명의 압박을 벗어나면서, 빠른 속도로 골문을 향해 쇄도했다.

    그런 그를 중앙 수비진이 막기에는 계속해서 패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가려는 로날드 조던이 거슬렸고, 그렇다고 막지 않기엔 그에게 주어진 공간이 너무나도 컸다. 중앙 미드필더들이 좌우로 벌려지고, 수비진을 내렸던 탓에 수비진 앞부분에 너무나도 큰 구멍이 생기고 만 것이다.

    결국 그들은 빠르게 판단하고 한 명이 주현에게 달라붙어 공간을 없애는 것을 택했지만, 이미 주현의 왼발은 강하게 공을 강타한 뒤였다.

    공은 달려드는 수비수의 다리 사이를 지나 골문을 향했고 골키퍼의 손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우측 골대를 강하게 때리고 사이드라인을 넘어갔다.

    베이포트 FC는 추가골의 기회를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만 것이다.

    ‘이게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겨우 승격한 팀의 경기력이라고?…….’

    존 워커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그리고 같은 시각, 존 워커와 비슷한 충격을 받고 있는 사람이 그라운드에 서 있었다.

    로체스터 메드웨이의 중앙 미드필더, 필립 로드웰은 조금 전 눈앞의 상대가 자신을 간단하게 제친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분명히 발에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베이포트 FC의 중앙 미드필더인 해리 맥스웰과 2 대 1패스를 시도하면서 침투해 들어올 때, 필립 로드웰은 자신이 공을 막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상대는 해리 맥스웰과 호흡이 정확히 맞지 않은 탓인지 패스 타이밍이 살짝 어긋난 것이다.

    공을 내주는 상대는 곧바로 달라는 뜻으로 해리 맥스웰에게 공을 패스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달려갔지만, 해리 맥스웰의 반응이 늦어 공은 달리고 있는 상대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것을 본 그는 당연히 공을 뺏을 거라 생각했다.

    달리는 와중에 패스 타이밍이 어긋났고, 공을 받으려는 선수의 스텝도 그 탓에 반박자씩 빨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공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을 리 없었고, 만에 하나 받는다고 해도 겨우 잡을 뿐 달려 나가던 속도를 살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때에 가볍게 공을 뺏으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을 훌쩍 뛰어넘었다. 달리던 스피드 그대로 왼발로 원을 그리듯 움직이며 공을 잡았고, 이내 그 공을 앞쪽으로 끌고 들어가며 컨트롤한 것이다.

    ‘분명히 뒷발에 공이 걸리는 각도였는데 그걸 붙잡고 그대로 달려 나간 거야. 이놈은 대체 뭐지?’

    필립 로드웰은 해리 맥스웰을 보면서 좋은 패스라며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드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노린 건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의도된 것이었다면 저 녀석은 진짜로 경계해야 할 놈이야.’

    주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커다란 경계심과 약간의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가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경기 결과는 4 대 2, 베이포트 FC의 승리였다.

    전반전에만 세 골을 집어넣은 베이포트 FC는 후반전에도 박주현의 한 골로 4 대 0까지 앞서나갔지만, 경기 후반의 집중력 부족으로 두 골을 내준 것이다.

    반대로 로체스터 메드웨이는 경기 내내 전체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후반 막판, 상대의 집중력 부족으로 2골을 따라가며 영패를 면한 것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패배였네. 전술부터 선수들의 선발, 마음가짐까지 전부 밀린 완패였어.”

    존 워커는 허무하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경기 초반부터 상대에게 계속 끌려다니고, 분위기 전환을 위한 교체와 전술 변화마저 베이포트 FC에게 완벽하게 틀어 막힌 경기였다. 경기 초반에 베이포트 FC의 감독이 너무 어리다며 얕본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고작 단 한 번의 친선 경기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 과민 반응일 수도 있지만… 만약 오늘 베이포트 FC의 전술 변화나 선수들의 움직임이라면, 내가 처음부터 확실히 준비했었다고 해도 이길 수 있었을지…….’

    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그가 내렸던 시선을 다시 들자, 동민이 악수를 하러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동민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들과 몇 살 차이나지 않아 보이는 얼굴은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보았던 것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에게 주는 느낌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경기였어요.”

    “수고했습니다. 승격 팀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경기력과 전술이더군요. 시즌이 시작되는 것이 기다려질 정도였어요.”

    먼저 웃으며 악수를 청해오는 동민을 보면서 그는 대답했다. 그런 그의 칭찬에 동민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었다.

    “아뇨, 아직 프리 시즌이고 친선경기니까요.”

    웃으며 대답하는 그에게 똑같이 웃으며 응대하고 있었지만, 존 워커는 한 가지 다짐을 마음속에 새겼다.

    시즌이 시작되고 리그에서 다시 한 번 맞붙게 된다면 그때는 꼭 이번의 패배를 설욕하고 말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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