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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포트 FC의 이적생 (158/270)
  • 베이포트 FC의 이적생

    “후…….”

    동민은 긴장된 표정으로 심호흡을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열심히 노력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쉽지 않았다.

    ‘확실히 떨리긴 떨리는데.’

    그는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는 주먹을 꾹 움켜진 뒤, 빠르게 발걸음을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베이포트 FC의 훈련장이었다. 오늘은 그가 감독을 맡은 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프리시즌 팀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을 포함한 좋은 결과를 냈던 선수들을 위해 휴가가 주어졌었고, 이제야 그 휴가가 끝나고 선수들이 복귀했다.

    동민은 모두 모여 자신을 바라보는 선수들을 가만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휴가는 잘 보냈습니까? 부디 그랬길 바랍니다. 지난 시즌 우리가 이룬 것은 대단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과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어려울 테니까요.”

    그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지난 시즌을 함께했던 선수들이나 다른 코치들의 반응은 뭔가 미묘했다. 마치 억지로 웃음을 참기라도 하듯 어색하게 표정이 굳어 있던 것이다.

    “어… 다들 왜 그러죠?”

    동민이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묻자 결국 꾹 닫고 있던 입을 연 사람은 수석 코치인 브라운 키드였다.

    “강,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게 억지로 앨런을 따라할 필요는 없을걸요. 그냥 평소처럼 이야기해도 될 거예요. 너무 긴장한 거 아닌가요?”

    그가 웃음을 참으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동민은 조금 전 자신의 말에 어째서 다른 이들이 웃음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은 앨런 휴즈가 하던 말과 꼭 닮아 있던 것이다.

    단어나 문장의 선택이 똑같지는 않았지만 말하는 분위기나 말투는 앨런 휴즈가 봤다면 드물게 배를 잡고 웃을 정도로 그와 닮아 있었다.

    “아…….”

    동민은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려는 건 아니었는데… 뭐, 알았어요. 내 식대로 이야기할게요.”

    그는 멋쩍게 머리를 긁으면서도 조금 전까지 긴장으로 가늘게 떨리던 손이 멈춘 것을 느꼈다.

    “미안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할게요. 지난 시즌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해도, 챔피언십에 있던 지난 시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번 시즌은 어려울 겁니다. 세계 최고의 팀들과 맞서야 하거든요. 우리보다 강한 팀을 세는 것보다 약한 팀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고요.”

    동민은 담담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의 말은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선수들의 가슴에 무겁게 다가왔다.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어서 승격을 위해 노력했고 더 강한 상대들과 맞설 것을 각오했지만, 막상 감독인 동민의 입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그들의 어깨가 긴장으로 굳어지는 것을 보면서 동민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승리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상대의 강점을 막고 약점을 찌른다면, 상대가 아무리 강팀이어도 우린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지난 시즌 전까지, 우리는 챔피언십에서 중하위권을 넘나들던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우리는 우리보다 강한 팀들을 상대로 멋진 경기들을 펼쳤고 승격에 성공했죠. 이번 시즌도 같아요.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가 최약체 팀일 거라고 말해도, 우리는 똑같이 우리 능력을 보여주면 됩니다. 지난번에 그랬듯이 똑같이 말이죠.”

    동민은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조금 전까지 처져 있던 분위기는 그의 말이 끝나자 자신감이 붙었고, 동민은 그것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잘해봅시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부터 확실히 준비해야 하니까요. 특히 영입된 선수들은 말이죠.”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첫 팀 훈련은 어땠어?”

    동민은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수준이 높더라. 나는 아직 적응 중이기도 하고, 영어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최대한 다른 선수들이랑 같이하려고 하는데 다들 많이 도와주기도 하고.”

    그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박주현이었다.

    한 달 전, 동민이 프리미어리그 승격과 동시에 감독으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구단에 영입을 요청한 선수가 그였다. 그리고 주현은 동민의 러브콜과 소속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부천 유나이티드에 이적을 요청했다. 부천 유나이티드는 보내고 싶지 않은 눈치가 역력했지만 결국 그를 보내고 얻는 큰돈으로 자리를 채우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박주현은 K리그를 떠나 동민이 있는 베이포트 FC의 첫 번째 이적생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 다행이네. 네가 최대한 빨리 적응할수록 우리 팀에는 희소식이니까. 수고했고,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어.”

    동민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주현은 그런 동민을 보면서 가볍게 대답하고는 방을 나섰다.

    지난 시즌 앨런 휴즈의 옆에서 팀을 지켜보던 동민이 베이포트 FC에 아쉬운 것은 단 한가지였다.

    ‘측면에서의 빠른 역습은 가능하지만, 반대로 상대가 수비적으로 물러나는 상황에서의 지공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적어.’

    강한 킥력과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좋은 공격 옵션이 되는 벤 로이터나, 가끔은 직접 공을 몰고 올라오는 해리 맥스웰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벤 로이터는 올해로 한국 나이로 37세, 이번 시즌이 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었고 언제든 기량이 급격하게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해리 맥스웰은 뒤에 머무르면서 양질의 패스를 뿌려주는 것이 주 임무지, 그에게 공격 작업의 마무리까지 맡길 수는 없었다.

    ‘결국 공격에서 적어도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거지. 물론 다른 포지션도 마찬가지고.’

    그 탓에 지난 시즌 단 한 명의 영입도 없이 시즌을 맞이했던 베이포트 FC는 올해에는 승격하자마자 발 빠르게 이적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영입은 부천 유나이티드에 있었던 박주현이었다.

    유명하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선수의 영입 요청에 다른 코치진들이나 레이미 볼든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의 강한 요청에 등을 떠밀렸고, 직접 주현의 플레이를 보고 나서는 어떻게든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 수비진을 앞두거나 골문 앞에서의 순간적인 센스는 누가 가르칠 수도 없고 타고나는 거지. 근데 그런 점에서 주현이만큼 빛나는 선수는 챔피언십에서는 물론 프리미어리그의 웬만한 중하위권 팀에서도 찾기 힘들어.’

    동민이 주현에게 가장 높게 평가하는 점은 지공이든 속공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적인 면에서 팀의 열쇠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속공에서는 빠른 침투와 크로스로, 지공에서는 상대 수비를 속이고 바보로 만드는 패스나 슛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해. 게다가 여차하면 부천 유나이티드에서 쓰던 것처럼 중원에서 풀어주는 역할까지도 가능하니까.’

    그런 점에서 동민은 주현의 합류가 반갑기만 했다. 챔피언십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고 수준 높은 팀들이 많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여러 가지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첫 팀 훈련이라 스테이터스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확인할 수 있을 테고. 그때가 되면 앞으로 어떻게 주현이를 더 성장시킬지 고민도 해봐야겠어. 얼른 팀에 적응해 줬으면 좋겠는데.’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영입 선수의 적응은 비단 박주현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베이포트 FC의 이번 시즌 영입은 현재까지 3명으로, 동민은 그들 각각에게 모두 바라는 점이 있었다.

    ‘박주현은 공격에서의 다채로움을 더해줄 테고, 아르센 디아라는 부족한 중원의 스쿼드를 보강해주겠지. 폴 맥마흔은 천천히 미래를 볼 수 있는 영입이기도 하고.’

    그가 지금까지 데려온 3명은 공격수인 박주현, 중앙 미드필더인 아르센 디아라, 그리고 골키퍼인 폴 맥마흔이었다.

    공격의 속도 변환을 위한 박주현의 영입이 베이포트 FC의 창끝을 날카롭게 간 것이라면, 아르센 디아라의 영입은 창대를 더 튼튼하게 만든 것이었다.

    “지난 시즌 우리 중원이 얼마나 얇은지 깨달았으니까.”

    크리스 러셀의 부상 하나로 크게 흔들렸던 지난 시즌 박싱데이를 떠올리며 동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제임스 더커를 중앙 미드필더로 쓰거나, 벤 로이터가 많은 나이와 떨어지는 체력에도 불구하고 많이 뛰어주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시즌 말미에 크리스 러셀이 오랜 부상에서 복귀하긴 했지만, 그래도 중앙 미드필더 자리의 뎁스가 얇은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 때문에 동민은 주현의 영입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지난 시즌 만났던 팀들의 중앙 미드필더 선수들을 다시 분석했고, 그 결과 선택한 것이 아르센 디아라였다. 지난 시즌 스컨소프 AFC의 선수였던 그는 베이포트 FC와의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선발로 나왔던 몇 번의 경기에서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동민의 눈을 잡아끈 것이다.

    ‘이 세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팀에 적응을 해주느냐, 그리고 반대로 다른 선수들도 얼마나 빨리 그들에게 익숙해지느냐. 그게 시즌 시작까지 가장 중요한 점이겠어.’

    동민은 입을 다물고는 달력을 쳐다보았다. 시즌의 개막은 8월 중순, 앞으로 남은 시간인 한 달가량 동안 동민에게 중요한 것은 이적생들까지 모두 포함해 하나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잘되어야 할 텐데…….’

    동민은 주먹을 거머쥐면서 생각에 잠겼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죠! 조던 쪽으로 더 빨리 넘겨주지 않으면 막힐 수밖에 없어요!”

    “끝까지 공을 봐요!”

    런던에서는 드문, 따가운 여름 햇볕 아래 베이포트 FC 선수들의 훈련장에서는 동민의 고함이 경기장 이곳저곳을 찔러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적하던 그는 시계를 보고서 휘슬을 불며 선수들을 한데 모았다.

    “오늘도 고생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내일이면 드디어 우리의 프리시즌 첫 친선 경기가 시작됩니다. 상대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16위를 기록한 로체스터 메드웨이고요.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지 않고 벌써 6시즌째 살아남아 있는 팀이에요.”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팀들을 상대로 어떻게든 버텨 나가야만 이 프리미어리그에 계속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단 한 시즌만 잔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것이 몇 년째 이어진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벌써 6번이나 그 치열한 강등과 잔류 사이를 넘나들며 살아남아 온 로체스터 메드웨이는 그들에게 결코 얕볼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친선 경기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우리가 만날 팀이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승리를 거두고, 시즌이 시작되면 그 분위기를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눈은 불타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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