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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의 선택 (157/270)
  • 박주현의 선택

    부천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장인 춘의 아레나는 관중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K리그로의 승격 이후 불어온 부천 유나이티드의 승격 팀 돌풍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다.

    K리그 중상위권의 터줏대감인 부산 히어로즈를 상대로 3 대 2의 펠레 스코어를 기록하며 승리를 거둔 선수들에게 홈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박수의 중심에는 한 선수가 있었다.

    ‘힘든 경기였어도 이겨서 다행이야.’

    부천 유나이티드의 박주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벤치 자원에 불과했던 그는 어느새 부천 유나이티드의 돌풍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는 오늘도 부산 히어로즈가 자랑하는 노장인 김경원의 뒤 공간으로 침투해 크로스를 올리는 등, 1골 1도움의 만점 활약을 펼쳤다. 그만큼 부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오늘 승리의 주역인 그가 이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야, 오늘도 고생했다. 아까 올렸던 크로스는 진짜 최고였어.”

    부천 유나이티드의 주장인 김현진은 주현의 등을 두드리며 오늘 활약에 대해 칭찬했다. 처음에 2군에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피지컬도, 스피드도 없는 어중간한 서브 자원이었던 그가 지난 시즌부터 명실상부한 부천 유나이티드의 에이스가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뭘요, 형들이 공간을 만들어줬으니까 된 거죠. 저 혼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주현은 웃으며 대꾸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얌마, 겸손도 그쯤 되면 실례야. 칭찬할 때는 그냥 인정하면 되는 거야.”

    “알았어요. 고마워요.”

    동민의 웃음과 함께 그들은 그라운드를 떠났다.

    “예?”

    경기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그의 에이전트인 최철민의 전화였다.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한 팀이 있다고요. 그것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예요.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철민의 이야기는 충격적일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팀 중에서 그를 영입하고 싶다고 접촉해 온 팀이 있다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식이었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거기서 제대로 뛰지 못하고 아시아 마케팅 용 정도로만 쓰이는 거라면 가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이번 시즌은 소속 팀인 부천 유나이티드가 승격과 동시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낼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좋은데 지금 떠나는 건 역시…….”

    주현은 망설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1년 전, C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중국의 리 웨이펑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서 단 두 번의 출전 기회만을 받은 채로 1 시즌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을 본 탓이었다.

    나름대로 몇 년 동안 팀에 남아서 주전 경쟁을 펼치고 활약하는 심형만이라는 케이스도 있지만, 반대로 리 웨이펑처럼 아시아 마케팅 용도로만 쓰이고 경기에는 나서지도 못한 채 버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주현으로 하여금 빅 리그 진출이라는 것이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과 더불어 이번 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재 소속 팀인 부천 유나이티드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두 시즌 전부터 나이가 들면서 기량이 떨어진 송원진을 대신해 공격 전개를 맡고 있던 그는, 저번 시즌부터 부천 유나이티드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훌쩍 이적하는 일은 팀에 전혀 좋을 리가 없었다.

    -글쎄요, 일단 마케팅 용도라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저쪽에서 아예 감독이 직접 연락해 왔거든요. 가능하면 반드시 이적해 줬으면 좋겠다면서요. 구단의 장기적인 플랜에 꼭 들어맞는다나?

    그런 주현의 조심스러운 말에 어딘가 철민은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주현은 그마저도 탐탁지 않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소속팀이 더 우선이라…….”

    -뭐, 그러지 말고 그쪽 감독이랑 한번 이야기라도 나눠보는 게 어때요? 그쪽에서 한번 통화해 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직접 이야기 들어보고 거절해도 되잖아요.

    주현은 자신의 말을 존중해 주던 평소와는 다르게 끈질기게 말하는 철민의 태도를 보고 결국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잠깐이면 되죠? 제가 직접 감사한 제안이지만 현재 상황 때문에 힘들 것 같다고 답변할게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나는 직접 통화하고 싶다는 것만 전해주면 되니까요. 아는 사이라고 하지만 그 이상 해줄 수도 없는 거고요. 그런데…….

    주현은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전화를 끊었다.

    “어휴, 이 사람은 뭐라는 거야?”

    주현은 방금 철민이 한 말을 똑똑히 들었다.

    -아마,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제안일걸요?

    철민은 전화를 끊기 직전, 그렇게 말하면서 통화를 종료했던 것이다.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제안이라니,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렇게 오버를 떨고 있담. 이 사람은 참 고마운 사람이긴 하지만 외국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이런 과장이 많다니까.’

    그는 철민의 말이 대수롭게 않은 이야기일 거라며 고개를 저었고, 이내 걸려오는 전화를 다시 받았다.

    “네, 박주현입니다.”

    빠르게 전화를 받고서 거절하려 생각하는 그에게 수화기 너머에서 예상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주현아. 잘 지내지?

    그 잊지 못할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금의 주현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동민의 목소리였다.

    “형? 형이 어떻게…….”

    놀란 그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동민은 가볍게 말했다.

    -너, 잉글랜드에 와서 내 밑에서 뛰지 않을래?

    “어떻게 하지…….”

    동민과의 전화가 끝나고 주현은 가만히 앉아 생각에 빠졌다.

    현재 자신의 소속 팀인 부천 유나이티드나 감독인 이한성도 물론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지만, 동민은 이야기가 달랐다.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얼어버리고 실수를 반복하던 자신이 이렇게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던 것도 동민과 함께했던 대회가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을 완벽하게 잘 알고 전술을 짜는 동민 특유의 그 느낌은 한성이 감독으로 있는 부천 유나이티드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이 부천 유나이티드에게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고, 내가 팀에서 맡아야 할 역할도 중요해. 당장 지금 내가 이적을 시켜달라고 한다면 분명히 부천 유나이티드는 곤란해질 거야.’

    그는 자신을 달래듯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K리그에 불고 있는 부천 유나이티드의 돌풍은 특별히 새로운 전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이한성 감독이 추구하는 좌우가 불균형한 4-4-2 전술을 바탕으로, 좌측과 중앙을 넘나들며 주현이 경기를 풀어나가고 우측에서는 팀의 핵심이자 주장인 현진이 수직으로 움직이며 상대에게 혼란을 주는 전략이었다.

    이는 그들이 하부 리그에 있을 때부터 사용한 전략이지만 이번 시즌에 들어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에는 박주현이라는 존재가 컸다. 그는 한성이 바라는 좌측과 중앙을 넘나들며 상대 수비의 빈틈으로 패스를 찔러주거나 경기를 푸는 모습을 넘어, 직접 골문으로 파고들면서 골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있었다. 우측면의 속공이 잘 되지 않거나, 공격진이 묶여 버리더라도 혼자서 상대 수비를 뒤흔들고 어시스트를 하거나 골을 넣는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부천 유나이티드를 넘어, K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활약이었다. 그 정도로 팀의 핵심인 자신이 빠지게 되면 부천 유나이티드가 큰 곤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노릴 수 있다는 언론의 평가도 주현이 떠난다면 신기루 같은 목표일 뿐이었다.

    ‘그건 맞아. 지금 팀에는 내가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러나 그는 자꾸 조금 전 동민의 말이 떠올랐다.

    -네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줄게. 날 믿고 여기 올 수 있겠어? 너라면 이곳에서도 손꼽히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난 확신하고 있어.

    그 말은 주현에게 너무나도 매혹적인 말이었다.

    올해로 스물여섯이라는 그의 나이는 아직 선수로서의 미래가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선수로서 앞으로 활약해 나갈 날이 훨씬 더 많은 나이였다.

    그러나 그런 만큼 이 K리그라는 좁은 곳이 아닌, 프리미어리그라는 더 큰 무대로의 유혹은 참기 힘든 것이었다.

    저번 시즌에 결국 중국 C리그에서 은퇴했던 웨인 베인스를 떠올리며 그는 침을 삼켰다. 그가 한때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자 오싹할 정도의 기대감과 쾌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동민이 형을 따라 그곳에 간다면… 그러면 나는 한 단계, 아니, 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더 큰 무대와 동료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에 동민이 형이 있다면…….’

    그 생각에는 단순히 잉글랜드와 큰 무대에 대한 동경뿐만 아니라 동민에 대한 강한 믿음이 함께하고 있었다. 자신이 프로 선수로의 길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함께한 사람이자,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동민의 모습은 그로 하여금 굳은 신뢰를 가지게 했다.

    게다가 그 믿음은 동민이 전술 분석관으로 성남 페가수스에 있던 시절의 맞대결에서 더욱 커졌다.

    당시 부동의 주전 좌측 미드필더인 송원진의 부상으로 경기에 나섰던 그는 후반 막바지까지 성남 페가수스의 수비에 꽁꽁 묶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유로웠지만, 성남 페가수스는 당시의 그가 맡았던 공격을 풀어나가고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단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다른 공격진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결국 주현이 후반 막바지에 한 골을 기록하면서 한 점 따라붙어 영패를 면하기는 했지만, 그때 느꼈던 무력감은 주현에게는 잊기 힘들 정도였다. 자신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조금도 해내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묶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동시에 지금까지도 손에 꼽을 만큼 적었던 상황 중 하나였다.

    ‘한성 감독님도 좋은 분이지만 동민이 형만큼 선수들을 꿰뚫어보고서 맞춤 전술을 짠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은 그 이후로 한 번도 없어. 그 감독님마저도 그 후에 마지막 골이 경기 중간에 내가 멋대로 다르게 움직이면서 나온 골이었지, 자신의 예정대로였다면 있을 수 없었을 거라고 했으니까.’

    그만큼 동민에 대한 주현의 신뢰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넓은 무대는 그의 지시를 받으며 뛰고 싶다는 주현의 열망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그는 이제야 철민이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과장이 아니었네. 정말로 거절하기 힘들 정도의 제안이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밤이 늦도록 잠에 들지 못하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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