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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포트 FC의 감독, 강동민 (156/270)
  • 베이포트 FC의 감독, 강동민

    동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 팀, 베이포트 FC의 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은 여러 곳에서 화제가 되었다. 아시아인으로서 프리미어리그 감독에 오르는 첫 사례이자, 스물여덟의 최연소 감독. 그 두 가지 타이틀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누군가는 곧바로 강등될 위험이 있는 승격 팀에서 광고 효과를 누리기 위한 보여주기 식 임명일 뿐이라며 비아냥댔고, 누군가는 한국 축구를 넘어 아시아 축구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일이라며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월간 잡지 ‘더 풋볼’의 기자 정혜지는 멍하니 놀라움에 빠져 있었다.

    ‘분명 흥미로운 팀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그녀에게 동민과의 인터뷰는 분명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가 속해 있는 베이포트 FC가 흥미로운 축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가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을 이루어내고 동민이 감독이 되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정말로 예상이라는 걸 훌쩍 뛰어넘는 사람이구나…….’

    그녀는 웃는 얼굴로 인터뷰에 응하던 동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자신이 한국의 언론사들 중에선 그의 능력을 가장 먼저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살풋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그녀를 현실로 끌어당긴 것은 그녀의 동료의 목소리였다.

    “혜지 씨, 부장님이 찾으세요.”

    “네?”

    그녀는 부장이 자신을 찾을 일이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동료는 이유는 자신도 모르지만 지금 급하게 그녀를 찾고 있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저번 유소년 특집 기사 때문인가? 그거라면 분명히 부장님도 괜찮다고 OK 날렸는데 이제 와서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거람. 저번 강동민과 심형만 기사 이후로는 외국 취재는커녕 현장 기사도 잘 못 나가게 하면서.’

    또 무슨 트집을 잡아 그녀를 못살게 굴지 떠올린 그녀는 조금 전까지 좋았던 기분이 잔뜩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부장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예?”

    그러나 그녀를 맞이한 것은 오늘도 잔뜩 심통이 난 부장의 잔소리가 아니라 칭찬 세례였다. 평소에 그렇지 않던 인간이 갑자기 잘해주는 것에 본능적으로 뭔가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아니, 혜지 씨 요즘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걸 잘 안다는 거지, 요즘 내가 바쁘다 보니까 신경을 제대로 못 써준 것 같아서 이렇게 따로 이야기라도 해주려고 했지.”

    그렇게 느물거리면서 징그러운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맹렬한 짜증을 느꼈지만, 억지로 그것을 눌러 참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뇨, 항상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까요. 칭찬은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그냥 제가 할 일을 하는 것뿐인걸요.”

    쓸데없는 헛소리는 그만두라는 염원을 진하게 담은 그녀의 말이었지만 부장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을 열었다.

    “아냐, 아냐. 혜지 씨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서 내가 선물을 하나 준비했거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녀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불길한 느낌을 애써 모른 체하며 물었다.

    “혜지 씨 외국 취재 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혜지 씨 좋아할 일거리 하나 잡아왔지. 강동민 그 친구 이번에 프리미어리그 최초의 아시아인 감독이자, 최연소 감독이 됐다며? 그 친구 메인으로 잡고 특집 한번 가보자, 혜지 씨가 주관해서. 위쪽에 이미 이야기는 다 끝내 놨으니까. 혜지 씨 그 친구 개인 메일도 안다며?”

    그녀는 지금이야말로 눈앞의 인간에 돼지가 섞인 듯한 동물을 있는 힘껏 후려갈기고 싶었다.

    ‘하아…….’

    잠시 후, 부장실에서 나온 그녀는 마음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특집 좋지, 외국 취재도 좋아. 강동민에 대한 취재도… 내 개인적으로는 환영이고. 하지만…….’

    그녀는 조금 전 부장과 있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그, 그렇긴 한데… 당장 이번예요?”

    “그래. 혜지 씨, 내가 몇 번을 이야기했어. 우리는 월간이니까 일간, 주간 같은 곳보다 늦는 대신 깊이 있게! 독자들 시선 쫙 빨아들일 만한 걸로! 준비해야 한다고 했잖아. 지금 그 소식에 인터넷 기사에서부터 주간지까지 다 이리저리 쓰고 있다고. 이때 우리도 잡아야지!”

    부장은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당장 이번에 하기엔 시간이…….”

    “어허, 혜지 씨 언제부터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졌어? 시간이 어찌 되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지. 그리고 봐, 지금 우리 독자들 시선 쫙 빨아들일 만한 소스로 그 친구만 한 게 더 있나? 아시아인 최초! 최연소! 이만큼 기삿거리 되는 친구가 많지 않아. 지금 당장 잡아야 해!”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부장을 보면서 혜지는 머리를 부여안고 싶었다.

    ‘그런 기삿거리가 되는 사람의 기사를 축소시킨 게 본인이면서! 안 그래도 저번 호 보내준다고 말해둬서 보내긴 했지만, 인터뷰한 것에 비해 그렇게 기사가 축소된 걸 봤을 테니 분명 기분이 좋지 않을 텐데. 그런 사람을 붙잡고 특집이라니…….’

    그와 인터뷰 할 때에는 메인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비중 있게 다루겠다며 말했었고, 그녀가 처음 썼던 동민에 대한 기사까지는 그녀가 말한 대로였다.

    그러나 부장을 거치면서 축소된 기사는 결국 잡지에 실릴 땐 본래 분량의 반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기사를 본 이상 이번에 특집을 내겠다고 그에게 연락한다고 해도 그가 승낙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

    ‘이쪽에서 한 걸 생각하면 강동민 측에서 승낙할 리가 만무한데!’

    그녀는 눈을 딱 감고 무리라며 부장을 만류하는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그의 다음 말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아, 아무튼! 이미 사장님까지 쫙 이야기 끝내놓은 거니까 혜지 씨가 알아서 해. 참, 영국으로 건너가서 하는 인터뷰도 빠를수록 좋아. 일간지, 주간지 그 하이에나들이 죄다 뜯어먹고 뼈다귀만 남기기 전에 하라고. 알았지?”

    그가 아까 했던 ‘느린 대신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말과 상충되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 점을 지적할 수도 없었다. 그 말을 하고는 이야기를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어쨌든 난 이야기했으니까, 혜지 씨가 책임지고 빠르게 추진해 봐. 윗선에서도 이번에 크게 기대하고 있으니까.”

    ‘하아, 별수 있나. 되든 안 되든 일단 연락이라도 하고 이쪽에서 최대한 허리 굽혀서라도 나가는 수밖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 앉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강동민과 베이포트 FC측에 대한 연락, 그리고 기사의 선행 준비. 무엇 하나도 뒤로 미룰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두통이 느껴지는 머리를 한 손으로 누르면서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이제 다들 그놈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건가. 별 이상한 놈들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병렬은 복잡한 심경이 담긴 시선으로 손에 들린 스포츠 신문을 읽어나갔다. 그곳에는 동민이 감독으로 부임한 베이포트 FC가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이 정해지면서, 동민이 아시아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감독과 최연소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는 소식이 쓰여 있었다.

    “그나저나 새삼 정말 빠르구먼. 전화로도 들었지만, 편지에서 말한 것보다 더욱 저쪽에서 인정받았던 모양이야.”

    기사가 뜨기 전에 동민으로부터 이미 이야기를 들었던 그였지만 이렇게 기사를 보니 동민의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체감할 수 있었다.

    U18 팀의 비디오 분석관으로 있다가 퍼스트 팀으로 불려 올라간 것이 작년 여름. 그리고 한 시즌이 채 지나기도 전에 비디오 분석관에서 전술 코치로, 그리고 시즌이 끝날 때엔 건강 문제로 사퇴하는 앨런 휴즈 감독의 뒤를 잇는 감독으로.

    동민의 지난 시즌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해간 것이다.

    ‘그놈은 역시 외국이 체질에 맞았나 보다. 여기선 잘해봐야 견제나 당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구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 같으니 말이야. 만일 그 녀석이 영국에서 제의를 받았다고 했을 때 내가 말렸더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못했겠지.’

    그는 다시 한번 그때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네놈도 이제 모든 책임을 떠안는 자리에 서는구나. 어떤 일들이 생길지, 어떤 말들이 오갈지는 알 수 없지만 바라던 것이니 잘 해내겠지. 네 전 감독이나 구단 사람들도 네가 그러길 바랄 테고 말이야.”

    그의 말은 조용히, 그러나 동민이 있을 영국까지 닿으려는 듯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네, 아, 그런가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날짜는…….”

    동민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에 성실히 답하면서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무슨 일이에요?”

    복도에서 마주친 샐리는 그런 동민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뇨, 저번에 인터뷰했던 한국 잡지에서 다시 취재 가능하겠냐고 연락이 와서요. 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승낙했어요.”

    동민은 별거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정혜지라는 기자가 지난번에 썼던 기사가 썩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었지만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분량을 좀 심하게 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용을 왜곡하거나 한 건 아니었으니까. 뭣보다 이런 타이밍에 괜히 거절하면서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조금 전 수화기 너머로도 간절함이 느껴지던 정혜지의 목소리를 떠올리니 차마 거절하기 어렵기도 했다.

    “오, 우리 감독님께서는 인기가 넘치나 보네요. 하긴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연소 감독이니 그럴 만도 하죠.”

    “샐리, 그렇게 놀리는 것에 재미라도 들린 거 아닌가요?”

    동민은 짐짓 쀼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보고 말을 내뱉었다.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걱정한 것은 혹시나 다른 선수들이나 코치, 스태프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문제였다. 혹시나 코치로서의 기간도 짧고, 나이도 어린 그가 감독을 맡는다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구단과 앨런 휴즈 전 감독,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누군가 불만을 가진 인원이 나오면 팀을 꾸려 나가는 것이 몇 배는 힘들어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 화났어요? 미안해요. 전부터 장난치는 게 재밌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은 어색해지거나 하는 일도 없이 평소처럼 동민을 대하며 그의 감독 선임을 축하해 줄 뿐이었다. 지난 시즌 동민이 보여줬던 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아뇨, 사과할 정도는 아닌데…….”

    “아, 고마워요, 감독님. 그럼 계속 해도 되는 거죠? 감독답게 통도 크셔라.”

    “샐리…….”

    친근한 장난을 담은 두 사람의 입씨름은 한참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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