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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뀌어 버린 후반전 (147/270)
  • 뒤바뀌어 버린 후반전

    ‘일단 전반전의 경기 내용 자체는 흠 잡을 게 없었네. 빠른 선제골, 상대에게 기회를 내주지 않는 경기 운영, 전부 내가 주문했던 것들이니까.’

    하프타임을 맞이한 동민의 생각은 간단했다. 그가 이번 경기에서 바라던 것은 많은 골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경기력도 아니었다. 안정적으로 승리하는 것, 그것이 이번 경기에서 동민의 최우선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선수들은 그의 생각을 부응하며 볼 점유율에서부터 상대를 압도했다. 동시에 그 점유율을 미끼로 단번에 이어지는 공격은 전반전 내내 상대가 제대로 된 기회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로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한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다만 문제는…….’

    그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지 조금 전부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리 맥스웰과 벤 로이터의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해리 맥스웰]

    25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5.8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9 / 20

    선호하는 플레이: 공을 잡고 템포를 조절, 롱 패스 선호

    특성:

    장점 - 절묘한 위치 선정, 빠른 발

    단점 - 제공권 장악 불가

    현재 컨디션: 5/10

    [벤 로이터]

    36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4.2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2 / 20

    선호하는 플레이: 중거리 슛 선호, 부드러운 터치

    특성:

    장점 - 캐논 슈터, 절묘한 위치 선정

    단점 - 부정확한 태클, 느린 발, 노령화

    현재 컨디션: 4/10

    ‘저번 경기에서의 움직임을 봤을 땐 두 사람 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경기 초반엔 괜찮았지만 일정에 따른 혹사 탓인지 컨디션이 경기 중에 눈에 띌 정도로 떨어지고 있어. 만약 후반전에도 계속 출전한다면…….’

    이안 페트로프보단 적긴 하지만 연이은 출전으로 체력이 떨어진 해리 맥스웰, 그리고 노화로 인해 기본 체력이 떨어진 벤 로이터 두 사람의 컨디션은 경기 초반에 비해서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과거 KFC를 이끌던 때에 체력 고갈로 선수들의 컨디션이 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 컨디션 0의 이차주가 그랬듯 실력에 비해서 터무니없는 실수를 연발할 수도 있고, 혹은 최악의 경우에는 부상자가 한 명 더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번 경기에서는 가장 급한 이안 페트로프에게 휴식을 줬는데… 결국 세 사람 모두 체력적으로 힘겹다는 뜻이야. 생각해 보면 오히려 경기 시작 때에 티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지. 그때까지는 컨디션이 그렇게 낮지 않았으니.’

    일주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세 경기를 뛰는 극한의 일정, 게다가 크리스 러셀의 부상으로 백업 선수조차 여의치 않은 지금의 상황은 그들에게 거대한 짐이 되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벤치에서 쉬고 있던 이안 페트로프와의 교체라도 할 수 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정말로 대책이 없어. 적어도 둘 중 한 명은 이번 경기까지는 당연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잭 도일은 명단에 넣지 않았는데… 체력 관리에 대해서 너무 안일했어.’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둘 중 누굴 교체해 줘야 하지? 해리 맥스웰? 아니면 벤 로이터?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남아줘야 하는데. 만약 둘 다 빠지게 된다면 전반전에 하던 것처럼 볼을 돌리는 전술을 하긴 힘들어질 거야.’

    게임에 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벤 로이터를 바꿔주고 해리 맥스웰을 남겨야 하지만 해리 맥스웰의 체력 또한 걱정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만에 하나, 계속 그를 뛰게 했다가 해리 맥스웰이 부상당하기라도 한다면…….’

    그의 머릿속에서 크리스 러셀의 부상 장면이 떠오르고, 비명을 지르던 크리스 러셀의 모습이 해리 맥스웰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안 돼…….”

    해리 맥스웰은 베이포트 FC의 주요 전력 중 한 명이다. 그 말인즉슨, 그가 없는 것은 전력의 누수가 상당히 크다는 뜻이다. 게다가 크리스 러셀의 이탈만 해도 이렇게까지 팀의 밸런스와 체력을 엉망으로 만드는데 거기에 같은 포지션인 이안 페트로프나 벤 로이터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가해질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입술을 깨물며 고민을 반복했고 결정을 내렸다.

    “…별수 없네. 예정과는 거리가 먼 시합이 되겠어.”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라커 룸으로 들어가는 선수들의 뒤를 따랐다.

    /***/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엉망진창으로 당해 버렸네.’

    같은 시각, 로더럼 타운의 감독 데릭 존킨스는 전반전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공은 둥글다며 기죽지 않고 경기에 나선 것은 좋았지만 베이포트 FC는 선수들의 기량도, 팀 전술도 전부 그들을 압도하며 그들을 짓눌렀다.

    ‘스코어 자체는 1 대 0이지만, 경기 내용만 봐서는 3 대 0, 4 대 0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너무 이른 시간에 실점을 허용하는 바람에 전부 무너져 버렸어. 그 실점 덕에 상대는 여유롭게 자신들의 플레이를 가져가고 있었고.’

    그는 그 한 번의 실수의 대가가 너무 크다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들었다. 전반전의 반성과 후회는 경기가 끝난 뒤에 실컷 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일에 시간을 쏟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야 하는 건 후반전에는 어떤 식으로 움직일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선수들을 위로하느냐지. 아까 보니까 다들 분위기가 말이 아닌 것 같던데… 특히나 쿠야테 녀석은 더 했고.”

    로더럼 타운의 40대 후반의 젊은 감독은 파트리스 쿠야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팀의 에이스로 취급받는 그가 정말 무력하게 팀이 끌려가는 것을 바라만 보는 것은 정말 끔찍한 경험일 거라는 것을 데릭 존킨스는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쿠야테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의 사기를 되돌리고, 후반전에는 반전의 키를 찾아야 해. 그렇게 하고 말겠어.’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앨런 휴즈가 일방적으로 흘러갔던 전반전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베이포트 FC는 전반전에 썼던 4-3-3 전술을 버리고 해리 맥스웰과 벤 로이터를 뺀 후 각각 이안 페트로프와 에딘 페트로비치 두 선수를 넣은 4-4-2로 전술을 바꾸었다.

    반대로 로더럼 타운은 최전방 공격수를 한 명 빼고 중앙 미드필더를 넣으면서 4-3-3에 가까운 진형으로 변해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팀은 서로가 쓰던 전술을 바꾸어 쓰게 된 것이다.

    ‘해리 맥스웰과 벤 로이터를 갑자기 빼준 건… 후반전 마지막에는 뭔가 몸이 무거워 보였는데, 체력 문제나 부상 예방 차원인가. 빠른 교체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장점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큰 변화를 준 게 아닌지 걱정되는데.’

    그는 팀의 척추와도 같은 중원을 너무 크게 교체한 것이 아닐지 조금 의구심을 품었다. 특히 해리 맥스웰의 경우에는 본래 베이포트 FC가 즐겨 사용하는 빠른 역습 전술, 전방부터 압박하고 짧은 패스로 재역습을 노리는 공격적인 전술, 심지어 전반전과 같은 점유율 축구에서도 빠질 수 없는 팀의 핵심이다.

    그런 그를 대신할 사람도 없이 빼버린 것은 그의 걱정을 사기에 충분해 보였다.

    ‘나는 보통 해리 맥스웰의 백업으로 벤 로이터를 생각했지만, 지금은 둘 다 빠진 상태라… 강이 이번에 뭘 노리려는 건지 이렇게만 보면 아직 잘 모르겠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걱정이 담긴 눈길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걱정은 정당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듯 후반전은 전반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완전히 가라앉아 있던 녀석들이……!’

    이안 페트로프는 또 한 번의 필사적인 태클로 상대 공격을 저지했다. 자칫하면 위험한 장소에서 파울을 줄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듯 깔끔하게 공만을 건드려 공을 따낸 것이다.

    힘들게 공을 끊어낸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전반전에는 로더럼 타운이 베이포트 FC에세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던 경기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로더럼 타운은 세 명으로 늘어난 중앙 미드필더들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전반전엔 공 잡을 기회조차 없었던 파트리스 쿠야테에게 주어지는 패스들의 숫자로 나타났다.

    ‘일단 미드필드 지역에서 수적으로 부족하다 보니까 저 녀석한테 들어가는 패스를 전부 막아낼 수가 없어.’

    그는 분한 감정을 담아 상대의 좌측 윙어인 쿠야테를 쏘아보았다. 그가 벤치에서 바라보던 전반전만 해도, 패스를 받아 기회를 만들기는커녕 최전방 공격수들과 함께 어떻게든 패스를 방해해 보려 뛰어다니던 모습밖에 볼 수 없던 쿠야테였다.

    그러나 후반전에 들어와 늘어난 미드필더들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지원을 받은 쿠야테는 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잭이 그나마 수비수들을 도와 잘 막아주고 있긴 하지만 조금 전에도 위험했어.’

    그가 공을 따내기 직전에도 파트리스 쿠야테는 중앙에서 이어진 한 번의 스루패스를 받아 풀백과 센터백 사이의 공간으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뻔했다.

    ‘움직이는 게 전반전하고는 아예 다른 사람 같은데.’

    전반전을 마치는 휘슬 소리에 침울하게 땅을 내려다보았던 사람과는 마치 다른 인물처럼, 그는 베이포트 FC의 우측면에 계속해서 트러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니, 저 녀석만 그런 게 아니지. 로더럼 타운이라는 팀 자체가 아까랑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야. 해리나 벤이 없어서 그런지 제대로 공이 이어지지도 않고.’

    반대로 베이포트 FC는 전반전 내내 상대를 가둬놓고 두들기던 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안 페트로프와 잭 하워드가 수비에서는 꽤 괜찮은 활약을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공격 쪽에서는 미미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안 페트로프는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웠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장신을 이용한 몸싸움, 그리고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른 섬세한 태클이었다. 그 탓에 이안 페트로프가 태클로 불필요한 카드를 받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수비력에 비해서 패스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운반해서 가까운 동료에게 전달하는 것은 잘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멀리서부터 달려드는 동료들을 확인할 날카롭고 넓은 시야도, 그곳으로 공을 보낼 정확하고 힘 있는 킥력도 모자랐다.

    신이 그에게 좋은 수비력은 주었지만 패스에 관해서는 큰 재능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 베이포트 FC에서는 직접 패스를 찔러주거나 경기를 만들어갈 플레이메이커가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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