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압도하는 전반전 (146/270)
  • 압도하는 전반전

    이번 로더럼 타운과의 경기는 저번 스컨소프 AFC 와의 경기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스컨소프 AFC와의 경기가 실력이 비슷한 팀을 상대로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내야 하는 경기였다면, 이번 로더럼 타운과의 경기는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경기를 진행시키는지가 중요한 경기였다.

    ‘팬들에게 오늘 경기에서의 승리는 당연할 거야. 상대가 저번 시즌의 우리 팀과 비슷한 순위라고 해도 지금 우리는 5위니까. 그만큼의 강팀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겠지.’

    경기가 시작되고 그라운드를 보는 동민의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휴즈 감독이 그를 평가했듯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다른 이들이 조심스러워하는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이를 통해 상대를 당황시키는 점이었다. 이는 스컨소프 AFC와의 경기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90분 내내 상대에게 당황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번은 이야기가 달랐다.

    ‘오늘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가 생각 못 한 방법으로 충격을 주는 게 아니라, 강팀답게 안정적으로 압도해야 하는 거니까. 게다가 계속된 경기들로 주요 선수들의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문제도 있고.’

    동민은 오히려 저번보다 더 신중했다. 자칫 방심했다가 실수라도 저지르게 되면 그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단, 그 안정감을 내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지.’

    안정감을 최우선적으로 하되, 가장 효율적인 전술을 추구한다.

    그런 그의 태도는 경기가 시작 된 후 베이포트 FC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일단 체력적으로 슬슬 힘들어졌으니까. 솔직히 이번 경기에서는 저번처럼 넓은 거리를 뛰지 않아 다행이야.’

    해리 맥스웰은 잡았던 공을 뒤쪽으로 돌리며 생각했다. 평소라면 공을 잡는 즉시 전방의 투톱이나 측면에서 달리는 동료를 보고 공을 내줄 준비를 하거나, 직접 공을 끌고 올라갔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낮은 위치로 내려와 있었다.

    ‘그만큼 이 위치에 적응하는 게 고생스럽긴 했지.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보통 4-4-2의 포메이션을 고집하던 베이포트 FC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이용한 4-3-3 포메이션을 채택한 것이다. 그것이 안정적인 승리를 바라는 동민의 해답이었고, 그 해답의 정수는 역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한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의 조합이었다. 역삼각형의 정 가운데에는 해리 맥스웰이 자리했고, 좌측에는 벤 로이터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잭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으니.’

    잭 하워드가 있었다. 우측 미드필더 자리에 나오던 그는 오늘은 중앙 미드필더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이다. 해리 맥스웰, 벤 로이터, 잭 하워드,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상대에게 공을 내주지 않고 수비진, 측면과 공을 돌려가며 상대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지시대로 잘 움직여 주고 있어.’

    그 것을 보면서 동민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가 휴즈 감독에게 건의를 하면서 까지 측면 자원이던 잭 하워드를 중앙 미드필더의 한 축으로 삼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적인 경기를 위해서였다.

    ‘박싱데이쯤부터 이어진, 최근 몇 경기 동안 가장 체력 누수가 심한 포지션은 크리스 러셀의 부상으로 연이어 경기를 뛰게 된 중앙 미드필더. 그중에서도 이안 페트로프는 특히 체력 소모가 많았으니까.’

    그의 눈길은 벤치에서 경기를 바라보고 있는 이안 페트로프를 향했다. 지난 경기에서 일찍 교체되었던 벤 로이터와 그 전에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했던 해리 맥스웰과는 다르게, 그는 계속된 경기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안 페르로프에게 휴식을 주려면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2명의 중앙 미드필더 중 주로 수비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그의 역할을 그대로 대신할 다른 선수는 없었고, 결국 지금의 변화는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전술 변화였다.

    ‘해리 맥스웰은 중앙 미드필더가 본 포지션이긴 하지만 보통 아래쪽에서 움직이는 선수는 아니다. 거기서 수비력이 좋은 선수도 아니지. 나이 탓에 체력과 속도가 떨어지는 벤 로이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둘로 4-4-2의 중원을 맡기는 건 미친 짓이야.’

    그래서 그는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로 중원을 구상한 것이다.

    그는 패스와 플레이 메이킹을 장점으로 하는 해리 맥스웰을 아래쪽으로 내려 수비형 미드필더로, 해리 맥스웰의 경기 조율을 도울 벤 로이터를 왼쪽으로, 빠른 발과 수비 가담을 위해 잭 하워드를 우측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동민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바로 중원에서 안정적으로 공을 돌리는 일이었다.

    ‘해리 맥스웰도, 벤 로이터도 패스에는 익숙해. 그들이 중앙에서 수비진이나 다른 선수들과 함께 공을 돌리고 잭 하워드가 빠른 스피드와 수비 가담으로 도와줄 수 있다면 이안 페트로프가 없이도 중원을 구성 가능해.’

    가능한 한 공을 잡고 뺏기지 않으면, 그만큼 수비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줄어든다. 그것이 동민이 짜낸 중원 구성의 이유였다.

    물론 아무리 상대에게 공격권을 내주지 않으려 해도, 상대가 아예 공격을 하지 못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가 내세운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그런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상대가 모리스톤 타운 AFC, 혹은 손우드 FC나 스컨소프 AFC였다면 이런 엉성한 중원 조합은 단번에 무너졌을 것이다.

    세 선수의 조합은 그런 강팀을 상대하기엔 부족했고, 아직 합이 잘 맞는다고 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경기 상대는 로더럼 타운이니까. 가장 주의해야 할 쪽도 중원은 아니고.’

    그들은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난 팀도, 특히 중원에서의 강세를 보이는 팀도 아니었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측면 공격수인 파트리스 쿠야테였다.

    [파트리스 쿠야테]

    24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4.8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2 / 20

    선호하는 플레이: 좌측면에서 안쪽으로 드리블 선호, 캐논 슈터

    특성 :

    장점 - 트릭스터, 빠른 발

    단점 - 기름 발

    현재 컨디션: 6/10

    로더럼 타운의 에이스인 파트리스 쿠야테의 스테이터스를 알게 되자마자 그는 지금의 전술을 떠올렸다.

    쿠야테를 이용한, 좌측면에서 대각선으로 들어오는 빠른 공격이 장기인 그들이기에 동민은 이 세 명의 중원이야말로 안정적인 카드라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초반에는 확실히 지시한 것처럼 잘 움직여 주고 있으니까.”

    뒤쪽에 머무르면서 공을 돌리되, 언제든 긴 패스를 찌를 수 있는 해리 맥스웰.

    그와 짧은 패스를 주고받다가도 측면으로 공이 향하면 골문 근처로 파고드는 벤 로이터.

    그리고 어색한 듯 자꾸 측면으로 빠지는 움직임이 보이긴 하지만 왕성한 활동량으로 그들을 보조하는 잭 하워드까지.

    그들은 동민이 지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중원에서 상대가 언제쯤 밸런스를 무너뜨리며 달려들지가 관건이겠어.’

    그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예리한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젠장, 닿을 듯 닿을 듯 안 닿는단 말이야.’

    로더럼 타운의 공격수인 제이크 위덤은 이를 갈면서 더욱 빠르게 발을 움직였지만 그의 발은 결국 공에 닿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한 직후부터 상대는 중앙에서 공을 돌리면서 일부러 경기 템포를 늦추고 있었다.

    로더럼 타운의 선수들은 처음엔 예측과는 다른 상대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눈빛을 달리했다. 상대는 마치 공격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자신의 진영에서 공을 돌리고 있던 것이다.

    한 번, 단 한 번만 상대의 패스를 끊어낸다면 허술해 보이는 상대의 수비를 뚫고 득점할 수 있어 보였다. 그들은 실제로 비록 마무리는 잘 되지 않았지만, 상대 패스를 끊고 몇 번의 역습도 시도했었다.

    ‘그게 멍청한 생각이었지,'

    그러나 그 모습이 함정과 같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전반전 14분, 여전히 중앙에서 공을 돌리는 상대의 모습에 그들은 상대의 중원에 대한 전 방위적인 압박을 시도했고, 그에 대한 상대의 대응은 그 공간을 노린 롱패스였다.

    계속해서 센터백들과 같은 정도의 라인까지 내려가 공을 돌리던 해리 맥스웰이 좌측면의 야야 둠베흐에게 한 번에 이어지는 긴 패스를 연결한 것이다. 야야 둠베흐는 그의 발밑으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패스를 지체하지 않고 크로스로 이었다.

    그가 바라본 공간은 수비진과 압박을 위해 앞쪽으로 무게가 쏠린 미드필더들 사이의 비어 있는 공간이었고, 그곳에는 이미 벤 로이터가 침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슈팅까지 이어가 로더럼 타운의 골 망을 흔들었다. 지난 스컨소프 AFC와의 경기에서 해리 맥스웰이 넣었던 선제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아름다운 골이었다.

    ‘그 이후로는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상대가 공을 돌리는 것을 봐야 한다니.’

    그는 분함에 이를 갈았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선제골이 나온 이후, 로더럼 타운은 섣불리 상대의 패스를 끊으러 나설 수 없었다. 상대가 순식간에 뒤쪽으로 공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을 깨달은 이상, 자칫하다간 더 많은 실점을 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발을 붙잡고 있었다.

    결국 베이포트 FC 중원의 패스를 방해할 수 있는 인원은 공격수 두세 명 정도가 끝으로, 그들로는 후방까지 공을 돌리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쿠야테 녀석은 더 답답하겠지.’

    제이크 위덤의 눈길은 측면에서 부지런히 달리고 있는 그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의 생각처럼 파트리스 쿠야테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측면에서부터 드리블을 하면서 로더럼 타운의 공격을 이끄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지만, 정작 제대로 공을 잡지 못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얼마 되지 않는 기회도 상대 미드필더인 잭 하워드의 수비 가담으로 더욱 힘겨운 탓에, 지금까지 확실한 골 찬스는 몇 번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체력만 소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상대 페이스로 밀리기만 하고 있다. 분명 강팀들을 만나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고, 전반전 동안 세 골 이상 허용하면서 무너진 적도 있어. 그런데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못해보고 시간만 지나는 건……’

    몇 번이나 공을 빼앗고 공격을 하려 했지만 베이포트 FC는 마치 그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공을 돌리며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공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전반전은 모두 지나 심판의 휘슬이 그들의 귀를 따갑게 때렸다. 로더럼 타운 선수들에게는 절망을 알리는 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