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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든 능력을 펼쳐라(3) (143/270)
  • 네 모든 능력을 펼쳐라(3)

    스컨소프 AFC의 감독 호세 마르티네스는 신경질적으로 물통을 잡아 구겼다. 경기 시작 전만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던 그였다. 이번 경기의 상대는 지난 박싱데이에 있던 경기의 징계로 주전 풀백과 감독이 나올 수 없는 베이포트 FC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는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중앙 미드필더를 측면에, 후보 윙어를 풀백에 쓰면서 주전이던 윙어를 벤치로 내려 버릴 줄 누가 알았겠냐고.’

    상대는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전술을 들고 나와 그를 당황케 만들었다. 자신들과 같이 선수비 후 역습의 전술로 중앙에서의 롱패스나,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 공격을 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들은 달랐다. 마치 그를 놀리듯 예상 못 한 선수를 예상 못 한 자리에 넣어서 그들을 유린했다.

    안쪽으로 들어와 수비 전체의 눈엣가시가 되어 있는 측면 미드필더, 속도 싸움을 위해서 자리한 거라 예상했더니 공격에 비중을 둔 풀백. 상대의 측면 부분 전술은 그 하나만 가지고도 그들의 계획을 무너뜨려 버렸다.

    ‘이런, 젠장맞을.’

    급하게 선수들로 하여금 우측 수비의 방비를 더욱 확실히 하게 했지만, 결국 전반전이 반쯤 지난 시각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 이후는 거의 반코트 경기처럼 흘러갔다.

    상대는 자신들의 지역으로 공이 넘어가는 것을 끊어내며 계속 우측면을 파고들었고, 그들은 찬스를 만들기는커녕 정신없이 얻어맞기 바빴다. 결국 전반전이 마칠 무렵에는 더 이상 골이 들어가지 않은 것에 만족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후반전에는 다른 결과를 만들자고 선수들에게 말하고 변화를 줬는데…….’

    하프타임을 맞이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비진의 정비였다. 전반전 동안 상대 공격에 계속해서 시달린 우측 측면 수비수인 닉 코바시치를 빼고 중앙 수비수를 넣으면서 3백으로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상대가 직접 슈팅을 노리는 측면에서의 크로스보다는 중앙으로의 패스를 주로 선택하는 것을 보고 측면 공간을 내주더라도 중앙으로 가는 패스만은 막아내겠다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전반전 내내 제대로 된 활약이 없었던 측면 공격수를 빼고 중앙 미드필더를 투입하며 중원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려 했다.

    전반전 내내 완전히 막혀 버렸던 측면을 이용한 역습 전술을 버리고 중앙을 탄탄히 해서 맞부딪치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데 이렇게…….’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마치 그의 생각을 들여다본 듯 상대는 좌측 미드필더였던 벤 로이터를 빼고 야야 둠베흐를 투입한 것이다. 지금껏 중앙으로의 패스 연결을 맡고 있던 벤 로이터 대신 발 빠른 윙어의 투입에 그는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측면 대신 중앙에서의 힘 싸움을 노리던 그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불의의 일격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뱀 같은 감독도 없는데 누가 이런 전략을… 수석 코치라는 브라운 키드인가.’

    그의 원망스러운 시선은 상대 벤치에 있는 브라운 키드를 향했다.

    ‘뭐야, 이거?’

    제임스 더커는 놀라다 못해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후반전 시작 직전에 그와 다른 선수들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말하던 대로 좁게 뭉쳐 있잖아?’

    그는 조금 전 동민이 했던 말을 그대로 떠올렸다.

    “전반전 내내 측면 싸움에서 밀렸던 상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지금껏 밀렸던 만큼 측면에 집중해서 좌측면에서 중앙으로 보내는 패스 자체를 막으려 들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예 측면보다 중앙에 집중해서 측면을 비우는 대신, 슛 찬스를 억제하려 들 겁니다. 상대가 아마 노릴 건 후자겠죠. 측면 싸움에 집중하려 해도 이미 전반전에 완전히 당한 이상 쉽게 하진 못할 거예요. 그러느니 중앙에 집중하면서 중원에서 우위를 점하고 측면으로 향하는 패스부터 끊는 편이 낫겠죠.”

    그의 말은 무서울 정도로 들어맞고 있었다. 상대는 3백으로 전환하면서 중앙을 틀어막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할 일은 간단합니다. 좌측면의 둠베흐 선수, 더커 선수는 평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올라오면서 공격을 이끌고 지원해 주세요. 상대는 중앙에 무게가 쏠려 있어서 측면은 제대로 막지 못할 겁니다. 둠베흐 선수가 깊게 들어가서 크로스를 올리고, 더커 선수가 이를 지원해 준다면 저쪽은 측면을 막아낼 방도가 없어요.’

    거기서 동민은 잠시 말을 끊고 침을 삼켰다가 다시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측면은 전반전처럼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추듯 움직여 주세요. 좌측의 두 명이 다 올라가면 아래쪽으로 내려와서 수비에 집중하고, 좌측의 더커 선수가 아래쪽에 머물며 공격할 여유가 있다면 사이드라인 깊숙이 들어가는 쪽으로. 그러면 아마 상대는 양 측면이 휘청거리는 탓에 정신없이 수비하기 바쁠 거예요. 중원의 맥스웰 선수와 페트로프 선수는 세컨드 볼을 잡거나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정도로만 움직여 주시고요. 그러면… 그러면 분명 전반전 이상으로 상대를 몰아넣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던 동민의 시선은 자신감이 가득 차 보였다.

    ‘들을 때는 정말 도박 수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그 녀석 말이 완벽하게 맞았어. 마치 휴즈 감독처럼…… 아니, 그때랑은 느낌이 조금 다른가.’

    그는 처음 휴즈 감독의 지시를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휴즈 감독이 마치 상대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상대의 의표를 찔렀던 것과는 달리, 동민은 마치 수학 공식을 설명하면서 어째서 답이 이것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녀석도 휴즈 감독과는 다른 의미로 상대를 꿰고 있다는 건가. 어떤 차이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그가 동민을 껄끄러워하는 이유는 사실 커다란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웬 동양인이 갑자기 급속도로 팀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꼬웠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동민의 모습은 별거 없는 동양인이 구단주와 감독의 눈에 조금 들었다고 특혜를 받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유별나게 심각한 인종 차별주의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동민이 능력에 비해서 빠르게 영향력이 커져간다고, 그리고 오히려 역으로 그가 유색 인종이라서 휴즈 감독과 볼든 구단주의 관심을 더 받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있었다. 유색 인종이란 편견이 담긴 시선으로 동민을 바라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동민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은 진짜다. 지금까진 인정하지 못했지만… 저 녀석은 휴즈 감독만큼, 아니, 어쩌면 타입은 다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녀석이야.’

    그는 텅 비어버린 상대의 측면에서 공을 끌고 들어가다가 수비수가 달라붙자, 앞쪽에서 사이드라인을 따라 달리는 야야 둠베흐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측면 미드필더 혼자서 측면을 담당하기에 공간은 너무 넓었고, 센터백이 지원을 나와 그들을 막아내기에 그들은 너무 빨랐다.

    제임스 더커와 야야 둠베흐, 두 명의 선수는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상대의 측면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 반대편의 선수들까지 가세하자 스컨소프 AFC의 양 측면은 마치 고속도로라도 뚫린 듯 엉망진창이 되었다.

    ‘좋아,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먹혀 들어갔어.’

    경기를 바라보는 동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예측대로, 상대는 크로스가 올라오지 않는 측면을 내주고 중앙을 지배하려 들었다. 그러나 이를 예상하고 교체를 진행한 베이포트 FC의 변화에 그들은 당황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당연하겠지. 이미 세 명의 센터백으로 중앙으로의 침투를 막아내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들을 측면으로 벌리면 에딘 페트로비치와 로날드 조던을 막을 수 없어. 일부러 측면 수비를 중앙 수비수로 교체하면서 가져간 수적 우위를 포기하게 되는 거니까.’

    동민은 당황으로 얼굴이 구겨지는 상대 감독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그게 싫다면 미드필더들이 지원해 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중원이 붕괴되고. 측면을 막으려면 중앙 수비의 심각한 불안을 감안하거나, 아니면 중원의 수적 우위를 포기해야 해.’

    상대의 대응을 예측하고 짠 그의 변화는 스컨소프 AFC의 감독, 호세 마르티네스에게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측면에서 이어지는 크로스를 방관하면서 불안 요소를 유지시킬 것이냐, 중앙에서의 위험을 감수하고 측면의 급한 불을 끌 것이냐, 이도 아니면 수비 불안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 자신들이 바라던 중원에서의 수적 우위와 역습을 포기하고 지킬 것인가. 이 세 가지 중에서 택하라 이건가. 영리한 것을 넘어서 악독한 수준인데.’

    앨런 휴즈는 경기를 보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동민이 스컨소프 AFC를 상대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전부 알 수는 없지만, 관객석의 그가 보기에도 동민이 상대에게 어떤 플레이를 강요하고 있는 지는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스컨소프 AFC가 어떤 것을 선택하든 우리 입장에서는 나쁠 건 하나도 없다. 측면을 포기한다면 지금의 측면 공략을 계속할 수 있고, 중앙을 포기한다면 해리 맥스웰을 이용한 중앙 롱패스의 기회가 늘어난다. 거기다가 상대가 중원을 포기한다면 훨씬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 있고. 정말……악랄한데.’

    그는 진심으로 유쾌한 듯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동민이 두 경기 동안 자신의 빈자리를 잘 채워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정말로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데. 그게 아니면 나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재능이 있거나.”

    그는 진심으로 감탄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는 스스로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스컨소프 AFC의 변화를 예측한 것이다.

    ‘나라면 지금까지 호세 마르티네스 감독을 봐왔으니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예상은 해도, 이런 식으로 지독한 함정을 파진 못했을 텐데.’

    경험 많은 백전노장인 그조차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동민의 함정은 교묘했다.

    ‘아니면 처음에 나와 함께 짠 상대의 우측면 공략부터가 이걸 위한 포석이었나… 아니,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그는 그렇게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동민이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는 것은 너무 과대평가를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아끼는 팀원의 즐겁게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과대평가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동민이 놀라운 것만은 확실했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고치고는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자, 그럼 이제 이 상황에서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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