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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든 능력을 펼쳐라(2) (142/270)

네 모든 능력을 펼쳐라(2)

베이포트 FC의 끈질긴 좌측면 공략은 결국 전반 24분, 결실을 맺었다. 스컨소프 AFC의 우측 풀백인 닉 코바시치가 결국 계속된 부담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일단 공을 뺏은 건 좋아. 그런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담. 줄 만한 자리가…….’

닉 코바시치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의 태클로 겨우 제임스 더커의 공을 뺏어낸 직후 생각했다. 상대 팀은 정말 집요하게 자신이 맡은 우측을 노려왔고, 이를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전해지는 부담감은 평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곧바로 중앙으로 내줘야 하나? 중원에서 측면으로 움직일 수 있게?’

그의 눈은 중원의 동료들을 향했지만 그 길목은 좌측 미드필더로 출전한 벤 로이터에 의해 막혀 있었다. 위험을 무릅쓴다면 내줄 수야 있겠지만 골문과 가까운 이곳에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그러면 센터백으로?’

중원으로의 패스를 빠르게 포기하고 센터백 쪽을 향했지만 그들의 근처에는 계속해서 상대 공격수 두 명이 접근해 있는 중이었다. 만약 중간에 커트당하거나 빗나갈 경우에는 끔찍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골키퍼는 아예 논외고… 급하더라도 측면으로 길게 찔러줘야 하나, 아니면 차라리 직접 몰고 올라갈까. 그래, 지금은 그것밖에 없겠어. 내가 끌고 올라가면서 측면의 게롤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평소의 그라면 하지 않을 실수였다. 빠른 판단과 그에 따른 공격 전환은 스컨소프 AFC 전체의 자랑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된 상대의 공격은 그의 머리를 굳게 만들었고, 이는 그의 판단을 평소보다 아주 약간 늦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 바로 공을 몰고 올라가면 분명… 어?’

평소보다 늦은 판단, 전반 초반부터 이어진 정신적인 피로는 그에게 공을 뺏겼던 제임스 더커가 등 뒤에서 달려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가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제임스 더커와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웠다.

눈치채는 것이 너무 늦은 상대의 태클에 그는 그라운드를 뒹굴며 너무나도 쉽게 다시 공을 내주었고, 자신의 공을 뺏은 제임스 더커가 달려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닉 코바시치에게서 다시 공을 빼앗은 제임스 더커가 다시 좌측면을 돌파하자 스컨소프 AFC의 수비진은 결코 바라지 않던 선택을 또 다시 맞이해야만 했다. 측면 수비수인 닉 코바시치가 빠지고, 볼 탈취 이후 역습을 노리려 앞으로 나가던 미드필더들의 지원조차 없는 지금, 그들은 선택해야만 했다.

중앙으로 달려드는 에딘 페트로비치와 반대편 측면으로 빠져 들어가는 로날드 조던, 조금 늦은 타이밍에 골문 쪽으로 달리는 벤 로이터, 그들 중 누구를 막아야 하는지에 관한 선택.

0.1초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 명씩 대인 수비를 하는 것이 최선의 수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측면에서 올라올 크로스 저지를 위해 세 명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 직후, 공은 제임스 더커의 발을 떠나-

‘어? 왜 세 명 중 아무도 없는 저기로…….’

그들의 이해 밖의 인물을 향했다. 분명 이안 페트로프와 함께 상대 중원을 구성하고 있을 해리 맥스웰, 그가 어느새 수비 라인의 앞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스컨소프 AFC의 미드필더들이 뒤늦게 커버를 위해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와는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는 제임스 더커가 공을 되찾으려 달려오는 것을 보자마자 이미 공을 받기 위해 골문 쪽으로 빠르게 달리고 있던 것이다. 제임스 더커가 공을 뺏는다면 공격수가 한 명 늘어나 완벽한 재 역습 찬스를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만약 뚫리기라도 하면 공간을 더 내줄지도 모르는 도박을 건 그는 도박의 승자로서 굴러들어온 찬스를 잡았다.

그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로 골문 구석으로 낮은 슈팅을 시도했고-

‘그렇지!’

공은 쭉 뻗은 골키퍼의 손끝은 스치고 골대를 맞은 뒤 골문 안쪽으로 빨려들어 갔다. 측면에서 이어진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이었다.

“이거야!”

동민은 그 광경을 보면서 브라우 키드 수석 코치와 다른 코치들과 함께 손을 맞부딪치며 환호했다.

그들이 노렸던 상대 우측에 대한 집요한 공략이 결국 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특성과 상대 팀의 플레이 스타일을 생각하고 허를 찌르려던 휴즈 감독과 동민의 노림수가 제대로 맞아떨어져 결과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와하하! 이거 봐요! 된다고 했잖아요!”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는 호탕하게 웃으며 동민의 손이 아프도록 하이파이브를 했다. 오랜 경험을 가진 그라고 해도 감독이 없는 상황에서는 꽤나 긴장할 수밖에 없었기에, 더욱 기쁜 선제골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관객석에서 바라보고 있던 휴즈 감독은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아직 전반전이 다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과 동민의 전략이 분명 효과가 있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좋아, 이걸로 상대는 더 흔들릴 거야. 앞으로는 상황에 따라 강동민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브라운이 잘만 도와준다면… 이 경기,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아니, 확실히.’

그의 눈에는 희망과 기대가 비치고 있었다.

베이포트 FC의 선제골 이후로 그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스컨소프 AFC의 우측 수비를 노리는 그들의 측면 공격은 기세를 올렸고, 이는 좌측에서 몇 번이나 이어진 크로스의 숫자가 보여주고 있었다.

전반전 내내 스컨소프 AFC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밀리면서 제대로 된 찬스는 만들지 못했다. 결국 전반전의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렸을 때, 스컨소프 AFC의 원정 팬들은 1 대 0이라는 점수 차에 감사할 정도였다.

‘좋아, 비록 골은 더 나오지 않았지만 전반전은 확실한 우리의 우세였어.’

동민은 전반전의 결과가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상대의 공격은 시작점부터 차단되어 완전히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계속된 베이포트 FC의 파상 공세에 막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골 찬스가 여러 번 나온 것에 비해서 골이 터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상대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을 칭찬할 일이었지 공격진의 미숙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남은 것은 이제 스컨소프 AFC 측에서 어떻게 나오느냐, 지. 어떻게 해서 측면을 지키려 들지, 아니면 반대로 공격적으로 나와서 골을 노릴지… 휴즈 감독이라면 정말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이 상대의 뒤통수를 때리는 준비를 하고 나오겠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기다려야하나.’

휴즈 감독처럼 상대의 심리를 예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후반전이 시작하고 난 뒤 상대의 전술을 보고 대응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어설프게 생각하다가는 제대로 대응하기도 전에 당할지도 몰라.’

그가 영국에 와서 지금까지 깨달은 가장 큰 것은 이곳의 경기 템포가 너무나도 빠르다는 것이다. 공격을 하다가도 실수가 나오는 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공은 반대편 골문 앞으로 이동해 있거나, 상대가 제대로 준비한 역습에 대응하기도 전에 골을 헌납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대의 전술에 맞춰서 다른 선수를 준비시키거나, 대응 방법을 생각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상대의 패를 보고 난 뒤에 그 것에 맞춰 반격을 하려는 것은 자칫하면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도 전에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2골에서 3골 이상의 차이가 난다면 그냥 안정적으로 지금의 플레이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상대를 압박하고 상황을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한 골 리드인 상황인 만큼 더 확실한 결단이 필요해. 상대가 한번 몰아치기 시작하면 분위기 자체가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건 많은 경기에서 봐왔으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상대보다 먼저 그들의 생각을 읽고 움직이는 거야.’

그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고,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그것이 그가 이 챔피언십에서 본 승리의 방식이었다.

‘스컨소프 AFC는 어떻게 나올까… 아니, 내가 만약 스컨소프 AFC의 감독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저 상황을 돌파하려고 할까……. 그걸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동민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게 맞길 바라야겠군.”

후반전이 시작하기 직전, 동민은 그라운드로 향하는 선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결국 그는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상대 전술의 변화를 염두해 두고 빠르게 선수를 치기로 했다.

‘내가 예상한 것이 맞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만 틀리게 된다면 되려 위기를 맞을지도 몰라.’

그 생각에 동민은 입술을 씹으며 주먹을 꼭 그러쥐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가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강, 저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고 있어요?”

“네? 뭐가요? 어… 잠시만요.”

동민은 갑자기 툭 내뱉듯 말을 거는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를 보면서 되물었다. 전술이나 선수에 대해서 그가 따로 이야기를 했던 것이 있었는데 자신이 잊고 있던 것은 아닌지 급하게 기억 속을 뒤졌다. 그러나 짐작이 가는 것은 없었다.

“죄송해요. 무슨 말씀이셨죠?”

그런 그의 반응에 브라운 키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강, 당신은 너무 걱정이 많다고요. 아무 걱정 없이 태평한 머저리가 되는 것보다는 신경질적인 사람이 낫다지만 미리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이제 와서 뒤집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나하나 전부 다 신경 쓰고 살다가는 감독님보다 더 먼저 대머리가 될지도 몰라요. 그 사람 요즘 이마가 넓어지는 느낌이거든.”

그런 브라운 키드의 말에 다른 코치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동민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네요. 이제 와서 되돌릴 것도 아니고. 휴즈 감독님처럼 상대 속을 훤하게 들여다보듯 하진 못하지만 이미 생각하고 결정한 이상 제가 맞길 바라야겠죠. 물론 감독님보다 대머리가 되는 것도 사양이고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머릿속에 떠돌던 불안은 지워 버렸다. 자신이 휴즈 감독처럼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최대 장점은 따로 있지 않은가. 만약 예상이 틀렸다고 해도 거기서 또다시 수정하면 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면 충분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사납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미소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후반전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경기장을 스쳐 지나갔다.

동민의 기운을 북돋아주기라도 하려는 듯한 열광적인 홈 팬들의 응원가를 들으며, 그는 다시 빛나는 눈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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