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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든 능력을 펼쳐라(1) (141/270)
  • 네 모든 능력을 펼쳐라(1)

    “힘겹겠지만 오늘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내가 직접 지시를 할 수는 없지만 당신들은 충분히 본인들의 실력을 낼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부디 좋은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경기장에 입장하기 전, 휴즈 감독은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받지 말아야 할 징계로 두 경기나 자신의 팀을 직접 지휘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탓이었다. 미리 대비를 해두었다고는 해도 자신이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것과는 다르기에 그의 안타까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선수들을 보던 휴즈 감독은 눈을 돌려 동민과 다른 스태프들을 향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미리 이야기한 선에서 움직이되, 예상외의 상황이 나오면 언제든 유연하게 대처해 주길 바랍니다. 특히 강동민 코치와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 두 사람은요.”

    다른 코치들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동민에게 가서 멈추었다. 그가 없는 이상, 오늘 경기에서 선수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대신 경기 중 지시를 내리는 동민이었다.

    “걱정 말아요. 내가 가능한 한 확실히 도울 테니까.”

    평소처럼 웃으며 대답하는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를 보면서 그는 부디 그들이 잘 해내기를 바랐다.

    ‘스컨소프 AFC와의 경기는 결국 수비 싸움이 될 테니 집중력이 떨어지지 말아야 할 텐데…….’

    동민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22명의 선수들이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은 새삼스레 그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기를 지휘하는 건 얼마만이더라… 벌써 5년 이상 지났나.’

    KFC를 이끌었던 이후로는 자신이 앞에 나선 적이 없었기에 지금의 감각은 그에겐 오랜만이었다. 동민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오랜만이든 뭐든 상관없지. 중요한 건 이렇게 기회를 잡았다는 거고, 이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거야. 다를 건 하나도 없어.’

    다시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긴장감도 걱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경기를 이기겠다는 일념만이 보일 뿐이었다.

    잠시 후, 심판의 휘슬이 울릴 때 그의 시선은 경기장을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팀도, 상대도 휴즈 감독이 생각했던 골자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야.’

    오늘의 경기 상대인 스컨소프 AFC는 리그 중위권에 있는 팀으로, 베이포트 FC와 마찬가지로 탄탄한 수비를 자랑으로 삼고 있는 팀이었다.

    ‘탄탄한 수비와 빠른 공격 전환, 키 큰 공격수의 제공권과 발 빠른 공격수의 투톱으로 상대의 골문을 노리는 점까지 우리랑 닮았어. 팀의 특징만 보면 정말 서로 비슷한 팀을 상대하는 느낌이야. 그렇다면 결국 얼마나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느냐 상대에게서 실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 가 관건이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상대의 심리적인 부분을 간파하고 미리 전술을 짜둔 앨런 휴즈 감독, 상대와 자신의 팀에 관해서는 세계 어떤 명장이 와도 밀리지 않을 자신, 게다가 자신이 모자란 부분은 언제든지 채워줄 수 있는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까지.

    선수들끼리의 개인 기량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긴장은 할 수 있어도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휴즈 감독도 말했지,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지.’

    동민의 입가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경기 전에 이야기 들었던 대로야. 중앙에서 곧바로 측면으로 공을 보내고, 거기서 이어진 크로스를 노리는 전략. 우리도 자주 쓰는 만큼 잘 알지. 잘 모르면 빠른 스피드에 당황하고, 알아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당할 수밖에 없는 효과적인 전략이야.’

    베이포트 FC의 주장인 조나단 케인은 날아드는 크로스를 머리로 걷어내며 생각했다. 경기를 준비하면서 휴즈 감독과 동민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것처럼 상대의 전술은 단순했다. 빠른 속도로 측면을 파고들어 중앙을 노리는 방식을 알고 있는 이상 그가 해야 할 일도 간단했다.

    ‘내가 중앙에서 공만 확실히 틀어막으면 될 일이지!’

    그가 걷어낸 공이 향한 곳은 좌측면의 제임스 더커의 발 앞쪽이었다. 본래 측면 미드필더였던 그의 포지션은 지난 경기에 이어서 또다시 좌측 풀백으로 변해 있었다. 휴즈 감독이 지난 경기에서 있었던 그의 포지션 변경을 보고 다시 한번 그를 좌측 풀백으로 점찍은 것이다.

    ‘생각보다 제임스 저 녀석도 생각보다 저 자리가 잘 맞는 것 같고. 처음 지시를 들었을 때는 아무리 닉이 나설 수 없어도 멀쩡한 풀백인 폴을 두고 무슨 생각인가 했지만.’

    본래 좌측 미드필더였던 만큼 빠른 발과 공격에 나설 타이밍을 잘 아는 지능을 가진 그는 풀백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본인의 가장 큰 장점인 단단한 피지컬을 잘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단점이었던 부정확한 크로스의 부담도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라면 본래 포지션이 공격적인 만큼 수비 라인을 맞추는 일이나 태클 타이밍이 아쉽다는 정도지만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분명 그는 괜찮은 옵션이었다.

    ‘오늘따라 어딘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기는 했지만 경기에 집중하면 그런 걸 그렇게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니까.’

    그의 생각처럼 제임스 더커는 경기 전의 어딘가 심기가 불편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발 빠르게 전방으로 볼을 운반하고 있었다. 이내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좌측면에서 기다리던 선수의 앞에서 멈췄다.

    평소라면 좌측 미드필더인 야야 둠베흐의 자리였겠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그 공을 받은 사람은 벤 로이터였다.

    ‘감독도 참 생각하는 게 요상하단 말이지. 아니, 임기응변에 강한 거라고 해야 하나.’

    오랜 선수 생활 동안 공격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 혹은 메짤라(4-3-3이나 3-5-2 등 3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사용하는 전술에서 좌우측의 중앙 미드필더를 따로 이르는 말. 수비보다는 주로 공격 전개에 더 비중을 둔다)로도 뛴 적 있는 그였지만 오늘처럼 아예 측면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본래 이 자리에 설 녀석은 벤치에, 그 후보인 제임스는 풀백에. 거참 상대 놀리는 걸 좋아한단 말이지.’

    중앙이 익숙한 그가 오늘 측면에 서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존재만으로 상대의 우측면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상대의 수비 뒤의 공간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발이 빠른 선수도 아니며, 수비력이 뛰어나 상대의 공격을 풀백과 함께 막아줄 선수 또한 아니다. 오히려 속도나 수비력은 그의 단점이라고 평가받는 점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커버하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상대 수비의 어정쩡한 공간을 파고드는 위치 선정이다.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축구 지능은 언제, 어디로 파고들면 상대의 수비가 뚫리는지 본능적인 레벨로 알고 있었다. 거기에 먼 거리에서도 슈팅을 날릴 수 있는 그의 무게감은 상대로서는 무시 못 할, 골치 아픈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늙은이한테 체력을 바라더니 이젠 멀티 플레이어가 되라고까지 하다니. 너무 기대가 크다니까.”

    그는 짐짓 귀찮은 듯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지만 그의 입꼬리는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베이포트 FC는 그의 오랜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으러 온 팀이었다. 그러나 휴즈 감독은, 그리고 전술 담당 코치인 동민은 아직도 그를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수로 보고 있었다. 그 점은 언제나 그에게 자부심과 즐거움을 주었고, 동시에 경기에 나설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귀찮다는 듯 말을 내뱉고는 단 두 번의 터치로 상대 풀백을 벗겨내고 오른발로 골대에 가까운 크로스를 올려붙였지만, 아쉽게도 공은 에딘 페트로비치의 머리를 스치고는 골라인 바깥으로 넘어갔다. 그것은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벤 로이터라는 인물이 어떻게 스컨소프 AFC의 수비를 공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다.

    ‘일단 초반만 보면 확실히 효과가 있네.’

    동민은 아쉽게 빗나가는 벤 로이터의 크로스를 보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중앙 미드필더인 벤 로이터를 좌측면에, 측면 미드필더인 제임스 더커를 좌측 풀백으로 위치시킨 것은 그들의 능력을 본 동민과, 상대의 허를 찌르려는 휴즈 감독의 합작이었다.

    ‘벤 로이터가 좌측면에 있는 이상, 상대 우측 풀백은 제대로 오버래핑을 하기 껄끄럽다. 수직적으로 움직이는 게 장기인 그에게 중앙 쪽으로 움직이고, 언제든 슈팅을 가져갈 수 있는 벤 로이터의 존재는 눈엣가시지. 안쪽으로 물러서서 센터백과 함께 막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 결과는 풀백이 안쪽으로 밀려들어 가 텅 비어버린 측면, 그리고… 그 넓어진 공간에서 달리는 본래 윙어 출신인 제임스 더커지.’

    동민은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다. 제임스 더커의 풀백이라는 카드는 상대의 측면 공격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기능이자, 동시에 반대로 상대의 우측면을 공략할 카드이기도 한 것이다. 제임스 더커가 가진 크로스의 약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텅텅 비어버린 측면을 공을 몰고 달리는 그의 모습은 크로스를 올리지 않아도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 수비는 순식간에 측면의 제임스 더커, 그 옆에서 언제든 중거리 기회를 노리는 벤 로이터, 그리고 중앙의 에딘 페트로비치와 로날드 조던, 때때로 오버래핑하는 미드필더들 중 누구를 먼저 막아야 할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베이포트 FC가 노리는 점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대의 전술, 누굴 막아야 할지 제대로 감이 안 잡히는 수비, 그리고 그로 인한 심리적인 압박감. 이 세 가지가 모두 모이면 그 결과는 하나밖에 없지.’

    전반전이 시작한 직후부터 베이포트 FC는 집요할 정도로 상대 우측을 노렸고, 이는 스컨소프 AFC의 우측 풀백인 닉 코바시치의 정신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닉 코바시치]

    25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5.4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4 / 20

    선호하는 플레이: 우측 측면 돌파 선호

    특성 :

    장점 - 스프린터, 두 개의 심장

    단점 - 부정확한 위치 선정

    현재 컨디션: 5/10

    본래 사이드라인을 타고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공수의 바탕이 되어야 할 그는 계속된 압박과 마크맨의 변동에 실수를 하기 시작했고, 이를 놓칠 동민과 베이포트 FC가 아니었다. 동민은 더욱 좌측면의 공격에 대한 고삐를 당겼다.

    ‘지금이 바로 상대의 팀 분위기를 망가뜨릴 타이밍이야. 지금을 놓치면 안 돼.’

    동민은 선수들에게 더욱 측면을 공략하라는 주문을 이어나갔다. 그것이 바로 그가 노리는 승리의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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