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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불안 요소 (140/270)
  • 숨어 있는 불안 요소

    “결국 만에 하나는 없었네요.”

    동민은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베이포트 FC의 항소에 대한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결국 예상한 범위 내니까 너무 풀 죽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런 동민에 비해 휴즈 감독은 차분한 표정이었다. FA가 결정한 징계는 퇴장당했던 휴즈 감독이 두 경기 동안 벤치에 앉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상 이상으로 강한 징계도 약한 징계도 아닌, 그가 스스로 예상했던 정도의 징계 수위였다.

    “예상했다고 손실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결국 모레 경기에서 어깨가 무거워지겠어요. 이야기 들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동민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절망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팀에 찾아온 위기였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였다. 그는 이것을 놓칠 생각은 없었고, 휴즈 감독도 그를 믿기 때문에 일을 맡긴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감이 되어 동민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그 무게감에 익숙해지는 것이 감독이라는 이야긴 식상할 정도로 들었을 테니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는 없겠죠. 그저 경기장 안에서 브라운 수석 코치와 함께 나 대신 선수들을 잘 부탁합니다. 내가 당신을 선택한 것이 옳았다는 걸 보여주세요.”

    긴장을 풀 겸 엄살 섞인 말을 하는 동민에게 휴즈 감독은 그저 그에 대한 믿음을 보여줄 뿐이었다.

    “해리, 넌 그 이야기 미리 알고 있었지?”

    “뭐가?”

    해리 맥스웰은 언제나처럼 말의 앞부분을 잘라먹고 물어보는 제임스 더커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건지.’

    이 성격 급한 팀 메이트는 항상 말을 할 때마다 뜬금없이 시작한다며 그는 속으로 푸념을 내뱉었다.

    “시치미 떼지 말고, 너도 아까 들었잖아. 내일 있을 경기에서 휴즈 감독이 벤치에 앉을 수 없으니 경기 지시를 강동민 코치가 한다고 하는 이야기. 부주장인 너까지 몰랐을 리가 없잖아.”

    제임스 더커의 말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 내가 모든 걸 다 알 거란 생각을 버려. 내가 부주장이라도 모르는 건 있어. 조나단도 마찬가지 같던걸. 다른 코치들은 아는 눈치였던 걸 보면 아마 스태프들 사이에서만 알고 있던 내용이겠지.”

    그가 저렇게 흥분한 이유는 조금 전 휴즈 감독이 내일 경기에서 자신이 나설 수 없을 때의 지시는 동민이 대신 할 것이라는 말을 한 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리 멕스웰은 왜 그렇게 제임스 더커가 흥분해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휴즈 감독이 저번 경기의 퇴장 탓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은 팀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 경기의 지시를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부분 그 사람이 수석 코치인 브라운 키드가 될 거라고 예상했었고, 예상은 빗나갔지만 사실 누구인지는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휴즈 감독이 아무 생각 없이 내린 결정은 아닐 테니까. 강동민 코치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하니까 시키는 거겠지.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나 다른 사람들도 놀라는 눈치도 없었고… 이미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전부 협의가 끝났던 거고, 선수들에겐 경기를 앞두고 말해준 걸 테고.’

    그는 냉정하게 그렇게 판단했다. 부주장인 자신까지도 그전까지 이야기 들은 것이 없었다는 것은 조금 걸리긴 했지만, 결국 그것이 팀에 도움이 될 거라 휴즈 감독이 판단한 것이라면 그는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의 이런 생각에는 휴즈 감독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강동민 개인에 대한 높은 평가도 한몫하고 있었다.

    ‘강동민 코치가 전술 브리핑을 하고부터 상대 선수들 개개인에 대한 대응이 눈에 띄게 확실해졌어. 그런 걸 생각하면 확실히 좋은 지시를 해줄지도 몰라.’

    그가 동민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에는 복잡하고 과도하게 세세해 보였던 그의 전술 브리핑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장점이 드러났다. 상대 팀의 전체적인 경향에 초점을 맞추었던 예전과는 달리 각 선수들에 대한 대응이 확실해진 것이다.

    어떤 선수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어떤 단점을 가지는지, 최근 어떤 플레이를 주로 하는지, 측면에 섰을 때 바깥쪽으로 달리길 선호하는지, 안쪽으로 파고드는지. 동민은 상대 팀의 중심이 되는 선수들을 세세하게 파악해서 베이포트 FC 선수들에게 대응 방법을 주문했고, 이는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리 맥스웰은 그런 동민의 능력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게 이번 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기대를 하게 된 이유였다.

    “아니, 그래도 수석 코치인 브라운 키드 코치가 있는데 강동민 그 사람이 맡을 이유는 없지 않나? 원래 감독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수석 코치잖아.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 전술 브리핑을 담당하던 멘데스 코치도 있고.”

    그런 해리 맥스웰과 달리, 제임스 더커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지난 시즌부터 점점 팀에서 주전 자리를 잃어가던 그는, 이번 시즌이 되자 대부분의 경기를 벤치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술 브리핑을 동민이 하게 된 것을 가장 힘겨워하는 선수 또한 그였다.

    그렇지 않아도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점차 팀에서 자리를 잃어가던 그에게 조그마한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전부 정하는 동민의 방식은 따라가기 힘들었다. 상대에 가장 적합한 전술을 구성하는 세세함은 그를 가두는 철창이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자신의 플레이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고 로테이션 멤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그가 주전 경쟁에서 본격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 동민이 퍼스트 팀에 온 이후였으며, 그러 현상은 동민이 전술 담당 코치가 된 후로 더 심해져 저번 경기에서야 겨우 선발로 나설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는 팀에서 동민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것은 자신의 위치가 점점 더 줄어들어 간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동민이 다음 경기에서 지시를 한다는 말에 예민한 것이다. 게다가 그 외에도 동민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그의 신경을 긁는 점이 있었다.

    “그 수석 코치인 브라운 키드 코치도 동의한 일이라고 하잖아. 감독이 팀을 위해서 결정했고,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그러면 우리는 믿고 뛰면 되는 거 아냐?”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듯 해리 맥스웰은 간단하게 말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은 퍼스트 팀에 온지 겨우 반 시즌 지났고, 코치가 된 것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이건 정말 비상식적인 거 아니야? 휴즈 감독이나 다른 코치들이 그에게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난 이해가 안 가!”

    제임스 더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져갔다. 해리 맥스웰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동료를 보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동민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든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던 것은 예전의 대화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왜 그가 아직까지 동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지 그 이유는 모두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부주장이자 제임스 더커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입을 열었다.

    “…제임스, 난 네가 도대체 왜 그렇게 그 코치에 대해서 반감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 시간이 어떻고 하는 것이 왜 중요하지? 그가 U18에서 퍼스트 팀에 온 이후 결과가 어떤지 너도 잘 알 텐데. 우린 지금 지난 시즌 생각하기조차 힘든 곳에 와 있어. 어쩌면 프리미어리그로의 승격도 바라볼 수 있는 위치라고. 이런 상황에 그 사람 영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어? 게다가 전술 브리핑도 그가 담당한 이후 더 좋아졌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제임스 더커는 그런 해리 맥스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제임스, 너랑 친한 친구로서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만약 네 출전 시간이 줄어든 것을 그와 연결시켰거나, 혹은 만에 하나라도 그가 아시아인이라고 무시하는 거라면… 너한테 굉장한 실망을 하게 될 거야.”

    해리 맥스웰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지만 제임스 더커는 끝내 입을 열지 않고 먼저 몸을 돌렸다. 해리 맥스웰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그가 흥분한 탓일 거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가 그런 식의 생각을 했다면 그를 지금까지처럼 똑바로 마주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친구로서, 그리고 팀 동료로서 봐왔던 제임스 더커는 투덜거리기 좋아하며, 가끔 거친 부분이 있는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강동민 코치에 대해서만 유난히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을 볼 때 생각나는 이유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첫 번째, 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

    그러나 동민이 선수들과 많이 어울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고, 그가 제임스 더커와 문제를 일으킬 만한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두 번째, 제임스 더커의 강동민에 대한 이유 없는, 일방적인 화풀이.

    지난 시즌 말부터 양 측면에서의 스피드와 크로스를 중시하게 된 휴즈 감독의 전술에서 제임스 더커의 존재는 점점 더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이번 시즌에 들어서서는 선발로 나선 경기보다 벤치에서 시작하거나 아예 나서지 못한 경기들이 더 많았다.

    그 때문에 본인도 조금씩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스트레스를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팀에 들어온 동민에게 푸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도 아니면……만약, 정말 만약에…….’

    그리고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세 번째, 단순히 아시아인이라는 점 때문에 그를 아니꼽게 보고 있는 경우.

    제임스 더커가 따르는 사람이나 친한 사람은 자신을 포함에 꽤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중 이상하게도 유색 인종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따르는 앨런 휴즈 감독이나 브라운 키드 코치는 모두 백인이었다. 그가 친하게 지내는 자신이나 조나단 케인 또한 백인이었다.

    반대로 흑인인 로날드 조던이나 피터 아일랜드와는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진 깨닫지 못했지만 만약 이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면…….

    ‘설마…….’

    그는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털어내려 했지만, 조금 전 제임스 더커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서 사진으로 찍어 고정시킨 것처럼 머릿속을 떠돌았다.

    “만약 그가 정말 그런 이유로 강동민 코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부주장으로서, 친구로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냐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은 끝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의 목구멍 아래에서 떠돌다가 사라져 갔다. 그렇게 해리 맥스웰은 개인적인 고민을 품에 안은 채로 중요한 올해의 마지막 경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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