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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혼 (137/270)
  • 투혼

    상대 중앙 미드필더가 빠지고 공격수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동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생각한 최악의 상상은 빗나간 것이다.

    ‘아예 공격적으로 짓눌러 버리겠단 거네. 생각한 것의 반은 맞아떨어졌다. 남은 건…….’

    그의 눈은 새로 들어온 올드햄 FC의 공격수를 향했다.

    [로이 리들]

    29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4.6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5 / 20

    선호하는 플레이: 우측면에서 안쪽으로 드리블 선호

    특성 :

    장점 - 스프린터

    단점 - 기름 발

    현재 컨디션: 5/10

    ‘로이 리들, 드리블을 장점으로 하는 측면 공격수라… 상대는 본래 풀백이 아닌 제임스 더커가 있는 우측을 계속 파고들겠다는 생각이야. 제임스 더커가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길 바라야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또 하나의 교체 카드를 써야 할 수밖에 없어. 일단 미리 이야기를 해둬야겠어.’

    동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제임스 더커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브라운 키드에게 몸을 돌렸다.

    ‘결국 또 좌측면인가. 끈질기네, 정말.’

    조나단 케인은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조금 전, 교체 투입된 로이 리들을 보면서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지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 또한 그를 불러서 제임스 더커 쪽에 대한 공격을 대비하라는 말을 강조하기도 했다.

    ‘제임스가 뚫리는 부분은 이안과 내가 막아내야 해. 또 한 번의 실수는 절대 나와서는 안 돼.’

    전반전에 나왔던 페널티킥은 그에게 강한 후회로 다가오고 있었다. 설령 그것이 오심이라고 해도, 그전까지 주심의 판정을 생각하면 위험한 곳에서의 파울은 확실하게 자제했어야 한다며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게다가 주장으로서 닉 베손을 더 잘 통제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벤에게 너무 맡겨놓았어.’

    페널티킥을 허용한 선수이자 주장이라는 점은 그로 하여금 후반전에서만큼은 자신의 최대 능력을 발휘하도록 스스로를 몰아넣고 있었다.

    ‘적어도 제임스 쪽에서 다시 한번 뚫리는 일은 없도록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다시 달라붙는 대인 수비를 시도하는 제임스 더커의 빈 공간을 예의주시했다.

    이윽고, 제임스 더커를 제친 로이 리들이 마주한 것은 이미 자리를 잡아둔 조나단 케인과 이안 페르토프라는 두 벽이었다. 두 사람은 전반전에 있던 페널티킥이라는 교훈을 충분히 기억하는 듯, 미리 자리를 잡은 것을 활용하여 무리한 태클을 시도하는 대신 상대를 몰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파울이 나오면 심판은 또다시 그런 판정을 할지도 몰라. 그러니 아예 그런 싹을 잘라내야만 해. 어차피 미리 자리만 잡고 있으면 막는 것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는 상대야. 무리하지 말고 집중만 잃지 않으면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아.’

    그의 생각처럼 로이 리들은 결국 두 사람이 막고 있는 공간을 뚫지 못하고 재차 측면으로 공을 돌렸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제임스 더커는 몸을 부딪쳐 공을 따냈다.

    벤 로이터와 해리 맥스웰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의 패스는 이번엔 골문 쪽으로 쇄도하던 벤 로이터에게 향했다.

    벤 로이터는 자신에게 패스가 도달하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눈을 돌리며 주위 상황을 살폈다.

    ‘상대 미드필더들은 패스가 올 거라 예상한 해리 근처에 있다가 아직 달라붙지 못했다. 온다고 해도 공을 받고 치고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남아. 수비진은 로날드와 에딘 때문에 나오지 못하고.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그의 오랜 경험은 그 짧은 순간에 이미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렸고, 그의 몸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르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 점차 나이가 들면서 반응속도나 순간적인 스피드, 근력을 약해졌지만 그 이상으로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낸,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공을 잡고 오른발로 가볍게 터치하면서, 자신이 주로 쓰는 오른발로 슈팅하기 편하게 공을 맞췄고, 먼 거리에서도 골문을 정확히 보고 강하게 공을 찼다. 빨랫줄처럼 뻗어나간 공은 정확히 골문 구석을 향했고.

    강하게 골대를 때렸다. 골대가 흔들릴 정도의 강한 슈팅은 경기장 안이 울릴 정도의 소리만 남기고 골라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

    공을 차는 순간, 이건 분명히 골이라는 직감을 받았던 벤 로이터는 허탈하게 무릎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천금 같은 동점골의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쉬워할 시간도,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도 계속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전에 들어선 베이포트 FC의 경기력은 막강했다.

    후반전 35분이 될 때까지, 그들은 한 명이 더 많은 올드햄 FC에게 5번의 슈팅만을 허용했다. 그중 골문으로 향한 유효 슈팅은 2회뿐이었고, 그 두 번의 유효 슈팅은 모두 토마스 스톤스가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반대로 그들은 상대보다 많은 10번의 슈팅을 시도했고, 그중 반이 넘는 6회의 슈팅이 골문 안으로 향했다.

    베테랑인 벤 로이터의 중거리 슛을 시작으로 그들의 공격은 탄력을 받은 듯 강하게 상대를 압박했다. 최전방의 에딘 페트로비치와 로날드 조던은 각각 1번과 3번의 유효 슈팅을 때렸고, 해리 맥스웰도 순간적인 오버래핑을 통해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칩슛을 시도했다. 심지어 중앙 수비수인 조나단 케인조차 코너킥 찬스에서 공중을 장악하며 헤딩슛을 시도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들에게 미소 짓지 않았다. 에딘 페트로비치와 로날드 조던의 결사적인 슈팅은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고, 해리 맥스웰의 슈팅은 골키퍼까지 넘겼지만 달려 들어오는 수비수의 발에 막혀 골문 바로 앞에서 튕겨져 나갔다. 조나단 케인의 찬스는 수비수의 발끝에 걸려 골대를 맞고 옆으로 빗나갔다.

    10번의 슈팅, 6번의 유효 슈팅 중 단 한 번도 상대 골 망을 흔들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흘러갈수록 조급해지는 것은 베이포트 FC였다.

    ‘그렇게나 많은 기회를 만들고 슈팅을 했는데 이렇게까지 운이 안 따라줄 줄은…….’

    동민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10명이라는 숫자인 것도 체력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지키는 경기도 아닌, 역습을 위해 계속해서 움직인 만큼 선수들의 체력은 점점 더 떨어져 가고 있었다.

    중앙 미드필더인 벤 로이터와 이안 페트로프, 해리 맥스웰의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크리스 러셀의 부상으로 인한 로테이션의 부재, 박싱데이라는 일정의 특수함, 예정에 없던 퇴장으로 인한 강제적인 활동량 증가, 역습을 위한 끊임없는 침투. 네 가지 요인이 그들의 체력을 깎아내고 있었고, 점점 더 그들의 활동량은 줄어만 갔다.

    ‘체력이 떨어질 것은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도 그 전에 골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한 일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운이 안 따라줄 줄이야.’

    동민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몰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벤 로이터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본래 나이로 인한 체력 문제 탓에 선발로 인한 풀타임보다는 로테이션 멤버나 교체 멤버로 쓰는 일이 많았는데 오늘은 선발로 나와 계속해서 뛰고 있으니… 거기에 오늘은 닉 베손이 퇴장당하고 이안 페트로프가 수비 쪽에 집중하느라 활동량이 평소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지금이라도 교체해서 체력을 관리해야 하나.’

    며칠 뒤에 또 있을 경기를 생각하면 오늘 교체 투입되었던 해리 맥스웰을 제외한 이안 페트로프나 벤 로이터의 교체는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그 둘 중에서는 수비 쪽으로 중심을 잡던 이안 페트로프보다는 공격을 이끌던 벤 로이터의 체력 관리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여기서 벤 로이터를 교체하는 것은 동점골을 향한 마지막 희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 명의 중원 조합을 이용한 역습이 주 무기인데 셋 중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지금과 같은 공격은 나올 수 없어.’

    동민은 동점골을 향한 마지막 희망을 계속 유지해 갈지, 다음 경기에 있을 위험 요소를 조금이나마 줄여놓을지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후반 38분, 그의 마음을 굳히는 일이 벌어졌다.

    지쳐 버린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조금씩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수비 뒤로 빠지는 패스를 차단하지 못하고 두 번째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 골은 점점 더 꺼져가던 베이포트 FC의 희망을 완전히 꺼버리는 찬물과도 같은 골이었다.

    “아…….”

    동민은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면서 결정했다. 더 이상 동점골의 희망에 매달려 다음 경기의 위험성을 높일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맞아떨어졌다, 아니다를 떠나 조금이라도 더 선수들의 체력을 아껴서 다음 경기를 바라보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벤 로이터의 교체를 건의하려 브라운 키드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아뇨, 당신의 말은 존중하겠지만 교체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부드럽게 동민의 말을 거절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동민은 빠른 말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음 경기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로이터의 체력을 보존해야…….”

    “강, 당신이라면 지금 저런 선수를 교체할 수 있겠어요?”

    그의 말에 동민은 그라운드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홈 팬들의 앞으로 달려가 골을 축하하는 올드햄 FC의 선수들, 고개를 숙이는 베이포트 FC의 몇몇 선수들, 그리고 골대로 들어간 공을 안고 중앙선으로 달려가는 벤 로이터의 모습이 보였다.

    ‘응?’

    그는 동점의 희망이 무너져 절망하는 기색의 다른 선수들을 주장인 조나단 케인과 함께 위로하며, 심판의 휘슬이 울리면 곧바로 경기를 재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장의 열정적인 모습에 동민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상태에서 벤을 교체했다간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는 노력도 전부 물거품이 되겠죠. 지금 선수들은 모두 그와 조나단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어요.”

    “…다음 경기를 대비한 체력 관리는…….”

    “앞으로 6분 정도, 추가시간까지 8, 9분. 그를 이 정도 시간만큼 일찍 교체해 준다고 다음 경기에서 큰 차이를 불러오진 못하겠죠. 그리고 그의 체력을 관리해 준다고 해도 마지막에 맥없이 무너져서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다른 선수들과 함께 이를 악물고 뛰면서 뭔가를 보여주는 게 나을 테고요.”

    그는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런 열정적인 선수를 당장 교체해버리는 건, 난 못 해요. 아마 감독님이라도 하지 않았을걸요.”

    그의 말에 동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36세,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장의 열정은 그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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