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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발악 or 반격의 시작 (136/270)
  • 최후의 발악 or 반격의 시작

    후반전이 시작되고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은 전반전보다 한 명이 적은 열 명의 인원으로 그라운드에 서 있었다. 전반전에 퇴장당한 닉 베손의 자리를 좌측 미드필더였던 제임스 더커로 채우고, 우측 윙어를 빼고 해리 맥스웰로 바꾼 4-3-2의 진형을 갖춘 상태로 최대한 수비 라인을 내린 모습이었다.

    ‘생각처럼 잘될까……. 자칫 잘못하다간 이미 기운 경기에서 오히려 힘만 빼는 경기가 될지도 몰라.’

    동민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수적으로도, 경기 내용으로도 불리한 상황에서 베이포트 FC가 선택한 것은 그들의 장기였던 역습 전술이었다. 이번 시즌에 들어서서 조금 더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전술은 역시 긴 패스를 이용한 빠른 역습이었다.

    ‘문제는 올드햄 FC가 일찍부터 선제골을 지키기만 하려 든다면 제대로 먹히지 않을 거란 건데…….’

    동민은 불안한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이미 밀리고 있는 경기지만, 그가 후반전을 더욱 불안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동민은 조금 전 브라운 키드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가 지금 상황예요?”

    “네. 강, 당신이 생각하는 게 있다면 곧바로 이야기해 줬으면 해요.”

    모두에게 충격적이라고까지 느껴졌던 브라운 키드의 라커 룸 대화 직후, 동민은 브라운 키드를 보며 놀란 얼굴로 되물었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휴즈 감독님이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준비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하려 했을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예정에 없었죠. 지금은 감독님이나 나와 같은 안정적인 운영보다는 생각 못 한 방식으로 경기를 뒤집을 방법이 필요해요.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그런 방식을 가장 잘 생각해 내는 사람은 강 당신이죠.”

    “그, 그래도 감독님은 퇴장당하시면서 수석 코치님에게 경기를 잘 부탁한다고…….”

    “감독님이라도 같은 판단을 했을걸요. 아니, 애초에 이렇게까지 상황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말했을지도 모르죠.”

    키드 수석 코치의 말에는 그를 향한 커다란 신뢰가 담겨있었다.

    “그러면……”

    동민은 그 신뢰에 답하듯 머릿속에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키드 수석 코치는 책임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말한 이상 생각처럼 잘되어야만 하는데.’

    동민은 이를 꽉 다물고는 움직이는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닉 베손이 퇴장당한 풀백의 빈자리는 본래 측면 미드필더였던 제임스 더커로 채워서, 측면 공격은 제임스 더커와 잭 하워드, 두 명의 풀백에게 맡기고 중원을 이안 페트로프, 벤 로이터, 해리 맥스웰의 세 명의 미드필더로 구성해서 상대 패스를 끊어낸다. 그 이후는 발 빠른 두 풀백에서 이어지는 속공으로 이어간다. 올드햄 FC가 한 명이 없는 우리를 상대로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뒤를 노릴 수 있지만 한 골에 만족하고 눌러앉아 버리면…….’

    동민이 생각한 작전은 상대가 공격적으로 밀고 나와서 수비 라인 뒤의 공간이 넓어졌을 때 로날드 조던이나 에딘 페트로비치의 한 방을 노리는 작전이었다. 그만큼 상대가 한 골의 리드를 지키려 뒤로 눌러앉아 버리면 실패할 확률이 높은 작전이기도 했다.

    ‘내가 휴즈 감독이었다면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확신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휴즈 감독이 아니니까. 가만히 앉아서 두들겨 맞기보다는 위험하더라도 노려보는 수밖에.’

    그는 불안감을 억지로 눌러 삼키고 냉정하게 경기를 보려 애썼다.

    ‘침착하자. 키드 수석 코치도 그랬잖아. 아예 반응하지 말고 충돌하지 말라고.’

    퇴장당한 닉 베손 대신 좌측 풀백을 맡고 있는 제임스 더커는 스스로를 세뇌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되뇌었다. 전반전에 골을 허용한 것은 심판의 판정과 상대의 플레이에 닉 베손을 비롯한 수비 라인이 흔들려서 자멸한 결과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수비 라인만 그랬던 게 아니지.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베이포트 FC에서 성격이 급한 사람으로 손꼽으면 빠지지 않는 그지만, 전반전에는 닉 베손과 달리 조용했었다. 그 이유는 닉 베손과 달리 경험이 더 많다는 것과 위치상 더 가까이서 벤 로이터의 통제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가 아니었다면 그도 닉 베손처럼 열을 내다가 퇴장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휴즈 감독이 퇴장당하고 전반전이 끝났을 때에는 경기를 제대로 치를 집중력이 거의 안 남기도 했다.

    그러나 그랬던 그를 붙잡은 것은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의 냉정한 말이었다.

    ‘여기서 더 말려들어 갔다간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끝난다. 정신줄 똑바로 잡아야 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다시 공을 끌고 들어오는 상대 공격수에게 달려들었다. 전반전에 측면 수비였던 닉 베손에게 주어졌던 임무는 다른 수비수들과 함께 오프사이드 라인을 형성하며 지역을 방어하는 것이었지만, 본래 풀백이 아닌 제임스 더커에게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지금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간단했다.

    ‘공격이 들어오면 수비 라인을 맞추려는 생각 말고 몸을 부딪쳐 공을 따내라.’

    몸싸움을 즐기고 피지컬이 좋은 그에게 딱 맞는 임무였다. 대인 방어에서 그런 식의 육탄전은 자칫하면 공간을 내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가 공을 가진 선수에게 달라붙으며 생긴 공간은 수비형 미드필더인 이안 페트로프와 두 명의 센터백이 함께 틀어막아 내고 있었다.

    ‘좋아, 이거다!’

    제임스 더커가 공을 뺏으면, 그다음은 즉시 해리 맥스웰이나 벤 로이터에게 연결해서 반대편으로 공을 연결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공을 받은 해리 맥스웰은 곧바로 우측 사이드라인을 타고 달리는 잭 하워드에게 공을 연결했지만, 그의 롱패스는 간발의 차이로 그의 발을 지나 사이드라인을 넘어가고 말았다.

    “괜찮아, 괜찮아! 좋았어!”

    빗나간 롱패스지만 잭 하워드는 해리 맥스웰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운 실수였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 장면은 사라져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단순했다.

    ‘실수든 반칙이든 이미 지난 건 상관없다. 어떻게든 저들에게 한 방을 먹일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한다.’

    본래 단순한 것을 좋아해 동료들에게 모자란 녀석이라는 농담을 듣는 그지만, 지금은 평소 이상으로 그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반전에 있던 오심도, 동료와 감독의 퇴장도 지금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브라운 키드가 말했던 ‘이미 머릿속에서 패배를 생각한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경기를 이겨서 그 말을 반박하고 싶었다. ‘우리는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경기 중에 이미 체념한 선수가 아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은 비단 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골키퍼인 토마스 스톤스부터 주장인 조나단 케인, 베테랑인 벤 로이터, 그리고 최전방에 있는 로날드 조던과 에딘 페트로비치까지. 그라운드에 있는 열 명의 선수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이번 경기만은 지고 싶지 않다. 우리가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에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 생각은 모두의 머릿속에 있었고, 그것은 그들이 더욱 이를 악물고 경기를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있었다.

    ‘고작 열 명인데…….’

    올드햄 FC의 감독인 오언 해리슨은 전반전과는 달라진 경기 내용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상대는 11명이 뛰던 전반전에는 심판의 판정과 거친 경기, 홈 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짓눌려 우왕좌왕하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지금은 차분하고 정돈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감독도 퇴장당했고 주장인 조나단 케인은 PK를 내주고 덤으로 옐로카드까지 안고 있다. 심적으로 부담감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아까보다 더 침착할 수 있는 거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상대가 분명히 무너질 거라 생각했던 그는 공격적으로 선수들을 위치시켰지만, 상대 수비는 공격을 끈질기게 막아내고 있었다. 아까까지 스루 패스 한 번에 허둥대던 수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광경이었다. 감독과 수비수 한 명의 이탈이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해봐야 열 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할 수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저쪽이고, 그렇지 않아도 박싱데이라서 더욱 힘들어질 거야. 특히 상대 중앙 미드필더 쪽은 지난 경기에서 나온 크리스 러셀의 부상 탓에 제대로 된 로테이션도 못 돌렸으니 후반 막판이 될수록 빌빌거리겠지. 게다가 노련한 감독인 앨런 휴즈조차 없다. 상대가 이번 시즌 보여주던 골치 아픈 교체나 전술의 걱정도 적어.’

    그는 상대의 열정과는 무관하게 냉철한 눈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밀리는 것은 베이포트 FC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이번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그들을 상대로 골 득실을 벌려 확실한 중위권을 지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의 선택은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이라며 선수들에게 주문하는 것이었다.

    ‘지금 상대 분위기가 좋은 것도 결국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타오르는 것과 같을 뿐이야. 지금 당장만 조심하면 베이포트 FC는 분명히 무너진다. 단 한 번의 공격, 한 골이면 상대는 더 이상의 추격 의지도 없이 무너지고 말 거야. 촛불이 마지막에 더 크게 타오른다고 해도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의 눈에 후반전에 들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베이포트 FC의 모습은 회광반조와도 같았다. 시간에 무너질 팀이 보여주는 마지막 발악과도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지레 겁먹고 수비적으로 나서면 상대의 분위기에 기름을 부어줄 뿐이야. 뒤로 물러나면 수비 뒤의 공간은 줄어든다 해도 해리 맥스웰이나 벤 로이터가 마음껏 움직일 공간이 생긴다. 그랬다가 벤 로이터의 중거리 골이라도 터지면 골치 아파져. 가만히 기다리면 무너질 팀이라 해도 지금 꺾어둘 필요가 있어.’

    오언 해리슨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상대라고 해도 단 한 골만 들어간다면 그때부터는 자멸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상대의 수비를 뚫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을 빼고 공격수를 투입하는 것이었다.

    ‘어디 계속 발버둥쳐 봐라. 이미 승기는 기울어져 있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해줄 테니.’

    그는 차가운 눈으로 상대 진영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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