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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 (135/270)
  • 최악의 상황

    “이게 반칙이라고!?”

    베이포트 FC의 좌측 풀백인 닉 베손은 자신이 상대의 공을 빼앗자 또다시 반칙을 선언한 주심의 판정에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이게 무슨 반칙입니까! 정당한 몸싸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주심에게 다가가 강하게 항의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심판의 냉정한 옐로카드뿐이었다. 결국 그는 주장 완장을 찬 조나단 케인과 벤 로이터의 만류에 겨우 물러갔다. 닉 베손은 억지로 그를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는 그들에게 소리를 낮춰 말했다.

    “벤, 조나단, 당신들도 아까부터 주심 판정이 이상한 거 알잖아요. 왜 가만히 있어요. 그리고 몸에 손 하나 대지도 않았고 크게 소리 지른 것도 아닌데 구두 경고도 없이 곧바로 경고라니! 이건 그냥 저쪽 팬들 야유 소리에 눌려서 대충 판정 내리고서는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는 것뿐이잖아요.”

    “이 멍청한 녀석아, 입조심해. 주심의 결정이 바른 판정이든 오심이든, 네가 이렇게 항의해 봐야 방금 전과 같은 의미 없는 경고만 늘어날 뿐이야.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고 싶어? 네가 나가면 게임 더 잘도 돌아가겠다.”

    벤 로이터는 그를 바라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방금 닉 베손이 조금이라도 더 주심에게 가까이 다가가 크게 항의했다면 주심의 재량에 따라 경고가 나왔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일단 진정해. 흥분하면 더 불리해질 뿐이야. 네가 여기서 더 이야기하다가 퇴장이라도 당하게 되면 경기는 걷잡을 수 없어지니까. 일단 냉정하자고.”

    베이포트 FC의 캡틴인 조나단 케인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주심의 결정에 항의하는 것은 곧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반응을 생각하면 조금 전의 상황에서 경고가 나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참고만 있으라고요? 저 머저리 같은 녀석이 올드햄 쪽에서 태클로 끊는 것에는 카드는커녕 반칙도 안 불던데? 아무리 원정 경기고 홈 팬들 반응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누가 보면 저 심판이 올드햄이 이길 거라는 것에 100파운드라도 건 줄 알 정도인데.”

    닉 베손은 두 명의 만류에도 바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된 주심의 결정이 그에게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탓이었다.

    “일단 다물고 있으라고, 이 빌어먹을 꼬맹아. 내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게 만드는 거야. 네가 짜증 내는 부분도 알겠고 어느 부분은 동의도 하지만 네가 이래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단 이야기다. 머저리같이 퇴장당해서 라커 룸에 처박혀 있고 싶다면 더 떠들던가.”

    그런 그를 벤 로이터는 거칠다 싶을 정도의 말로 멈추고 억지로 자리로 되돌렸다. 그의 오랜 경험이 이렇게 해서라도 그를 멈추지 않으면 다른 선수들까지 그 불길이 퍼질지도 모른다며 말하고 있었다.

    “…후, 알았어요, 알았어. 일단 가만히 있을게요. 됐죠? 괜한 경고 받아 미안합니다. 하, 참.”

    결국 닉 베손도 그의 말에 일단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은 그 스스로도, 말을 한 벤 로이터도 알고 있었다.

    ‘젠장할, 대체 경기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억지로 강하게 말해서 닉 베손을 진정시키긴 했지만, 그 스스로도 생각하기에도 지금 경기는 점점 더 인내심을 잃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인 44분, 베이포트 FC로서는 가장 끔찍한 결과가 결국 나오고 말았다. 벤 로이터나 조나단 케인 같은 베테랑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냉정함을 잃어가던 수비진들은 간격을 정확히 조절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상대의 스루패스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수비 라인이었다. 좌측 수비수, 닉 베손이 집중력을 잃은 틈을 타 뒤로 돌아들어가는 상대 공격수를 막기 위해서 조나단 케인은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무릅쓰고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떻게든 막아내야 해. 마침 페널티박스보다는 살짝 바깥이니까 여기서는 차라리 반칙으로 끊어내면 경고 한 번과 위기를 맞바꿀 수 있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억지로 상대 공격수를 잡아챘다. 이걸로 카드는 받을지언정 실점 위기는 면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려온 주심에 의해 완전히 부서졌다.

    “페널티킥이라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

    휴즈 감독이 대기 심을 보고 소리쳤다. 주심은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넘어진 올드햄 FC의 공격수를 보고는 그들의 페널티킥을 선언한 것이다. 명백한 오심이었다. 그가 넘어진 곳은 페널티박스 안쪽이었지만, 반칙이 저질러진 곳은 박스 바깥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페널티박스 바깥이잖습니까! 반칙이 저질러진 장소는 박스 바깥이라고요!”

    평소에는 조용한 휴즈 감독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조차도 평소의 냉정을 잃고 분노를 표출할 정도였다. 정확히는 주심의 계속된 오심이 크리스 러셀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과 그에 따른 예민함에 불을 지른 것이다.

    “아니, 아까부터 계속 이상하잖아요! 분명히 바깥인데 무슨 페널티야!”

    동시에 그라운드 위에서는 닉 베손이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 조나단 케인이 경고를 무릅쓴 것도 모자라, 페널티박스 밖의 반칙에 페널티킥이라는 상황에 그는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거기 당신, 말조심해요. 이미 경고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어요?”

    “아니, 내가 지금 욕설을 했습니까, 뭘 했습니까? 내가 말하는 건 분명히 반칙이 일어난 건 페널티박스 바깥인데 페널티킥이라는 게 말이 안 되잖…….”

    심판의 말에 억지로 성질을 눌러 참으며 말하려던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심판이 높이 치켜든 붉은색의 카드였기 때문이다.

    “퇴장?! 지금 퇴장이라고? 본인이 지금 오심을 저지른 건 생각도 안 하고? 지금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하, 진짜!”

    닉 베손을 말리던 다른 선수들도 심판에게 가서 말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닉 베손에게 퇴장을 선언할 뿐이었다.

    결국 닉 베손은 굳은 얼굴로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벤치 앞에서 대기 심에게 항의하던 휴즈 감독에게까지 이어졌다. 닉 베손의 퇴장 판정에 비꼬듯 박수를 치는 그에게도 주심은 곧바로 퇴장을 선언한 것이다.

    주장인 조나단 케인의 경고와 페널티킥, 좌측 수비수인 닉 베손의 퇴장, 그리고 휴즈 감독의 퇴장까지. 베이포트 FC로서는 끔찍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휴즈 감독은 더 이상 분통을 터뜨려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 듯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를 보면서 말했다.

    “…미안합니다. 나 대신 경기를 마무리 지어주세요.”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벤치를 떠났다. 그리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올드햄 FC의 페널티킥은 베이포트 FC의 골 망을 흔들었고, 그렇게 그들은 분위기를 바꿀 시간도 없이 전반전의 끝을 맞이했다.

    하프타임을 맞은 베이포트 FC의 라커 룸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전반전이 시작하기 전에는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열정이 느껴지던 라커 룸 안이었지만, 지금은 조용한 절망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수석 코치인 브라운 키드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야만 한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상대에 대한 분노나 현재 상황에 대한 절망 단 한 가지뿐이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심판에 대한 분노와 어처구니없는 일로 이미 벌어져 버린 점수 차에 대한 체념, 두 가지가 섞여 라커룸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잘못 이야기했다가는 그대로 무너져 버릴 듯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입을 열었다.

    “어… 다들, 잠시 주목해 주겠어요?”

    크지 않은 그 한마디로 선수들의 눈이 자신에게 몰린 것을 느끼며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들이 어떤 기분일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예상 가능해요. 심판을 원망하고, 이렇게 말려 버린 지금의 상태에 절망하고 있겠죠. 감독까지 퇴장당한 10명의 팀으로 이 경기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면서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브라운 키드는 부드러운 말로 그들을 달래듯 말했다. 그러나 금세 그의 말은 형태를 바꾸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퇴장당한 것이 우리가 아니라 반대로 상대편이라도 이길 수 없을 거예요. 이미 이길 생각은 없이 변명거리만 찾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휴즈 감독님은 나에게 자신 대신 후반전에 팀을 이끌어달라고 말했지만, 여러분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 와도 불가능할겁니다. 이미 머릿속에서 지고 난 뒤에 무슨 변명을 내뱉을지 다 생각한 사람들과 함께 내가 뭘 어쩌겠습니까?”

    평소 부드러운 말투와 넓은 발을 자랑하는 그의 모습과 달리, 휴즈 감독 대신 라커 룸 대화를 맡게 된 그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속을 긁어내는 듯한 불쾌한 그의 말에 몇몇 선수들의 눈초리는 날카로워졌지만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왜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런 것치고는 아까 페널티킥으로 골을 허용했을 때 죄다 눈에 힘 하나 없이 이만 갈고 있던걸요. 그런 선수들을 보고 이미 머릿속에서 패배를 생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과연 틀린 말일까요? 혹시 내 말이 과도하다거나 심한 모욕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해보세요. 그렇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브라운 키드의 말을 선수들의 속을 긁었지만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오심이 판치던 경기에서 또다시 오심으로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공을 허용했다고 해서, 그가 말했듯 머릿속에서 패배를 먼저 생각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의 말에 침묵만이 계속 이어지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다행히 다들 양심은 있나 보네요. 그렇다면 양심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남아 있길 바랄게요. 난 적어도 심판의 판정이 이렇든 저렇든, 한 명이 부족하든 어떻든 간에 이렇게 무력하게 지는 경기는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휴즈 감독님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런 핑계거리에 시선을 향하느니 피치 위에서 공과 동료, 상대를 보는 게 나을걸요.”

    그의 말은 마치 독처럼 선수들의 마음속에 파고들어서, 그들의 머릿속에 불을 피우는 듯했다. 조금 전까지 절망과 분노에 빠져 있던 그들은 그 방향을 돌렸다.

    “…다들 꽤 잘 이해한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럼 후반전에는 전반전처럼 멍청한 모습을 보이지 마세요. 일단 단 1, 2분이라도 좋으니 머리 좀 식히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먼저 라커 룸 밖으로 향하려다 고개를 돌렸다.

    “강, 잠깐 나와주시겠어요?”

    조금 전 선수들에게 날을 세웠던 차가운 말들과는 다른, 평소에 자주 듣던 브라운 키드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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