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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관과 코치의 차이 (132/270)

분석관과 코치의 차이

“지금 보듯 노스햄튼 알비온의 가장 큰 장점은 좌우측면에서 빠르게 올라오는 크로스입니다. 13번인 제롬 홀란트도, 7번인 알렉스 페르난데스도 발목 힘이 좋아서 언제든 질 높은 크로스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위험한 점입니다.”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동영상을 멈췄다. 영상에서는 13번인 제롬 홀란트의 날카로운 얼리 크로스가 헤딩슛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노스햄튼 알비온의 골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오히려 그 때문에 노스햄튼 알비온의 공격은 측면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만 막는다면 오히려 쉽게 막아낼 수 있어요.”

동민의 말에 선수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동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13번인 좌측 윙, 제롬 홀란트는 크로스는 굉장히 좋지만 그것 이상으로 수비력과 속도에서 문제점이 있습니다. 상대가 공격할 때 공을 뺏을 수만 있다면 좌측 수비는 풀백인 리암 배넌 혼자서 막을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이 점을 이용해서 상대 측면에 깊숙이 위치한다면 제롬 홀란트가 공격하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할 수도 있죠. 이걸 봐주세요.”

동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영상을 돌렸다. 영상에서는 공격을 진행하던 제롬 홀란트가 공이 잃고 복귀하는 속도가 늦자, 순식간에 측면 수비가 무너지는 모습이 나왔다.

상대의 마무리가 확실하지 않아 골로는 연결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들의 단점과 위험한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또한, 다음 장면에서는 상대가 측면 수비라인의 뒤 공간을 계속해서 공략하자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뒤쪽에 머물 수밖에 없는 제롬 홀란트의 모습이 비춰졌다.

“또 7번인 우측 윙, 알렉스 페르난데스는 충분히 빠르고 위협적인 선수지만 피지컬이 좋아서 잘 버티는 선수는 아닙니다. 그리고 속도는 빠르지만 움직임이 직선적이고 순간적으로 빠르게 속도를 내는 것보다는 가속도가 좋은 타임이라 속도가 올라갈 때까지 시간이 걸려요. 다시 말해, 모리스톤 타운 AFC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상대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개인기나 번뜩이는 감각에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위였죠. 비슷한 방식으로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다음 영상을 봐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목소리는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까지 손을 떨 정도로 긴장해 있었나요?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 없다고 말했는데.”

동민은 그 말에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코치로서 처음 하는 일인 만큼 확실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제대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직도 얼떨떨해서.”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코치로서 처음 맡은 일이었던 전술 브리핑을 위해 며칠 동안 잠도 줄이면서 샐리에게 받은 자료를 편집하고, 설명을 준비했지만 자신이 제대로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농담이죠? 당신은 내가 기대한 이상을 보여줬어요. 정확히 상대를 분석해서 맞는 영상을 편집해 온 것도, 그에 따른 설명도 훌륭했어요.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맡겨둔다고 했지만, 내가 보충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휴즈 감독은 동민의 첫 브리핑에 아주 만족한 듯 말했다. 상상하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동민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강동민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의 분석이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그가 생각하는 동민의 장점은 날카로운 분석력,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판단이었다.

‘상대의 장단점을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한 만큼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빠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생각이 그리 넓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그 점도 빠르게 좋아지고 있어. 선수들과의 교류가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코치로 일하면서 그 점도 더 나아질 테고.’

그가 동민을 비디오 분석관에서 코치로 만든 것은 그런 동민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단점을 극복시키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단순히 상대의 분석과 그 대응 방법을 떠올리는 것을 넘어, 그것을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지만 그것을 해야 하는 게 코치의 일이니까.’

휴즈 감독의 그런 생각을 알 리 없는 동민은 그저 그의 대답에 고마워할 뿐이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확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동민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휴즈 감독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전에 오후부터 있을 훈련에서가 먼저라고 생각하는데요.”

“아…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땠어?”

“뭘 말하는 거야?”

해리 맥스웰은 제임스 더커의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대답했다. 앞, 뒷말이 다 잘려 있는 질문에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던 탓이다.

“조금 전에 있던 전술 브리핑 말이야. 평소에는 휴즈 감독이나 멘데스 코치가 했는데 오늘은 지금까지 비디오 분석관이던 강동민 코치가 했잖아. 그것도 평소랑은 꽤나 다르게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쪽이었고.”

그의 말 안에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어 있었다.

평소 전술 브리핑에서는 상대의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 하나하나 해체하듯 알아보는 것과는 달리, 주의해야 할 점 몇 가지만 골라내고 그에 대한 대응은 선수들이 스스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쪽이었다. 이는 가능한 그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움직이게 만들려는 휴즈 감독의 배려였다.

“그게 왜? 이런 방식도 좋지 않나?”

반대로 오늘 동민의 방식은 세세했다. 상대의 키 플레이어들을 따로 정하고 움직임을 하나하나 쪼개듯 나누면서 어떤 점이 위험한지, 어떤 점을 공략해야 하는지, 그리고 선수들마다 어떤 장점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그 방법은 휴즈 감독이 그들에게 상대 선수를 어떻게 공략할지 떠올리게 만드는 익숙했던 방법과는 달리, 해야 할 일을 전부 정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선수에게 맞지 않는 플레이를 주문하게 된다면 오히려 선수의 자신감이나 경기력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방법이었지만-

“막상 이야기 들어보면 아예 말이 안 되는 걸 주문하는 것도 아니잖아?”

동민에 한해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일이 없었다. 스테이터스로 상대 선수들을 분석하는 이상으로 베이포트 FC 선수들을 잘 알고 있는 그인만큼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각각의 선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직접 지시해 줄 수 있는 것, 스테이터스를 보는 동민이 다른 사람들보다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긴 한데……. 뭔가 지금까지랑은 많이 다르다 보니까 느낌이 좀 이상하더라고.”

제임스 더커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슬쩍 찡그렸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움직이던 것을 하나하나 지적받고 제한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뭐 이번 경기부터 직접 뛰면서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일단 휴즈 감독이 생각한 게 있을 테니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되겠지. 네가 생각한 대로 뭔가 이상하면 그때 가서 케인이나 여러 사람한테 이야기해 볼 수도 있는 거고. 일단 벌써부터 그런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그의 말은 평소처럼 진지하고 차분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을 이야기하는 동민의 행동에 불만을 표시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결과가 안 좋다고 해도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다.

“…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맞는 거겠지. 일단 결과가 나와봐야 아는 거니까.”

새로운 변화에 어딘가 어색함과 불쾌함을 느꼈던 제임스 더커도 결국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한 거냐? 평소에는 비싸다고 메일밖에 안 하던 놈이.”

-아하하, 죄송해요. 감독님이 언제든 된다고 하시길래 이 시간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혹시 폐가 됐나요?

병렬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제자의 목소리에 투덜거리면서도 입가에 슬며시 떠오르는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폐는 예전부터 끼치고 있던 걸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하기는. 요즘 안 그래도 잠이 안 오던 참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잘 채비를 하던 것을 멈추고 전화기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래서, 뭐가 그리 급해서 전화까지 다 한 거냐?”

그의 말에 동민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코치? 그거 잘됐구나.”

휴즈 감독의 제안으로 비디오 분석관에서 전술 담당 코치로 변경됐다는 동민의 이야기에 그는 오랜만에 아무런 꾸밈 없이 그대로 동민을 칭찬했다.

‘이놈이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메일로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U18 팀에서 퍼스트 팀으로 옮겨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거기서 아예 전술 담당 코치로 변경됐다는 사실은 그의 예상보다도 빠른 이야기였다. 동민이 자주 이야기하곤 하는 휴즈라는 감독은 동민에 대해서 상당히 신뢰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성남 때의 그 황주안 그 인간하고는 딴판이로군. 천만다행이지.’

그런 감독 아래에서 동민이 커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동시에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런 사람에게 소개시켜 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었다. 동민 스스로 그가 커갈 수 있는 곳을 찾아내고, 기회를 잡아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그는 결국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놈이 영국으로 건너간 건 우리나라에서 한 번 실패를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곳이 이놈을 키울 만큼 커다란 곳이었던 게야. 여기가 부족했던 거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를 보낼 때 가졌던 마지막 아쉬움이나 걱정을 모두 담아 날리는 한숨이었다.

-어쨌든, 오늘 첫 전술 브리핑이랑 훈련을 참여했었는데, 감독님이 떠올라서요. 성남에서도 팀 훈련에 참여해 본 적은 있지만 그건 당시 감독을 돕는 정도거나, 참여는 했어도 팀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들뿐이었으니까요. 뭔가 감개가 무량하다고 해야 하나, 그랬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동민의 밝은 목소리에서는 지난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거, 쓸데없는 것도 떠올리는구먼. 네가 잘하고 있으면 된 거지, 거기서 내가 나올 필요가 없어. 어쨌든 기회를 잡았으면 앞으로 잘해라. 국제전화비 많이 나오니 얼른 끊고. 이렇게 전화할 돈 있으면 부모님한테나 연락 잘 드리고 살아.”

딱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병렬의 목소리에 동민도 웃으며 답했다.

-네, 다음번에 또 연락드릴게요!

그 말로 전화가 끊어지고, 남은 것은 마지막 남은 안도와 아쉬움의 찌꺼기를 담은 병렬의 한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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