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스 윌드 더비 (130/270)
  • 노스 윌드 더비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는 더욱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경기 양상은 짧은 패스와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상대의 수비를 뚫으려 하는 손우드 FC와 확실한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노리는 베이포트 FC의 모습으로, 서로 상대의 허점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챔피언십 팀들의 수준인가. 단순히 2부 리그라고만 보기엔 경기 템포는 프리미어리그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빨라.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은 떨어지지만 그것을 빠른 경기 템포나 활동량으로 커버하는 느낌이고.’

    그녀는 자신이 봤던 프리미어리그 경기들을 생각하며 동민에 대한 평가를 더 높일 만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조사할 때나 인터뷰를 할 때에는 챔피언십 팀의 비디오 분석관이라는 그의 위치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던 그녀였지만, 경기를 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지워지고 있었다. 그저 심형만에 대한 기사의 곁다리 정도로 생각하던 강동민이 속한 팀의 보여주는 경기력이 그녀의 예상 이상이었다.

    ‘단순히 한국인 최초의 잉글랜드리그 코치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했던 생각을 정리할 때, 막상막하로 흘러가던 경기의 선제골이 터졌다.

    베이포트 FC의 좌측면에서 이어지는 강력한 크로스를 장신 공격수인 에딘 페트로비치가 머리로 떨어뜨려 주고, 뒤이어 침투한 로날드 조던이 강력한 슈팅으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전반전 29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던 것도, 더 많은 패스를 뿌리던 것도 손우드 FC였지만, 베이포트 FC의 간결하고 효과적인 공격 방법으로 순식간에 경기의 추가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경기를 잠깐 사이에 망쳐 버렸어!’

    손우드 FC의 중앙 미드필더인 폴 허들스톤은 자신의 실수에 이를 갈았다.

    조금 전 베이포트 FC의 선제골 상황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실수였다. 계속해서 상대 수비의 틈을 노렸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순간적으로 조급해져서 무리한 패스를 시도하고 뺏긴 것이다.

    감독의 지시는 빠르고 짧은 패스로 상대 수비의 틈을 노리되 그것이 제대로 안 될 경우에는 반대편으로 공격 방향을 전환하거나 뒤로 돌려서 다시 기회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많은 볼 점유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기회를 만들지 못해 조급해진 그의 실책이 실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쳐 버리겠네, 진짜.’

    조급해 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무엇에라도 홀린 것처럼, 무리한 패스 한 번으로 팽팽하던 경기의 균형을 깨뜨려 버린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그의 속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실수를 더욱 자책하는 이유는 그 실수로 인해 벌어질 상황이 단순한 한 번의 실점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양 팀의 맞대결인 노스 윌드 더비의 결과는 4승 2무 2패로 손우드 FC의 우세였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었다.

    ‘감독님이 가장 강조했던 것 중 하나가 최근 8번의 맞대결 중 5번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팀이 승리를 가져갔다는 거였지. 그만큼 어떻게 해서든 먼저 골을 내주지 말고 넣으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두 라이벌 팀의 경기는 대부분 한 골 차의 승부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먼저 상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자신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는 선제골은 더욱 귀중했다.

    최근 8번의 경기에서 5번이나 선제골을 넣은 팀이 이겼다는 것은 먼저 골을 내주고 경기 결과를 뒤집은 것은 8번 중 2번의 무승부를 빼면 단 한 번뿐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손우드 FC의 감독인 알렉스 말우드나 베이포트 FC의 감독 앨런 휴즈, 두 사람 다 양 팀의 선수들에게 선제골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강조했던 만큼 조금 전 폴 허들스톤의 실수는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최대한 빨리 동점골을 만들어서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게 해야 해.’

    그는 이를 악물고 경기장을 누볐다.

    ‘이런 망할!’

    그러나 이미 선제골을 넣은 베이포트 FC의 골문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리드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더욱 단단히 잠겨 있었다.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공을 잡고, 더 많은 패스를 성공시키면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자신들인데 정작 확실한 찬스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은 그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러나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인 추가시간, 폴 허들스톤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우측에서 뒤 공간을 노리고 빠르게 날아온 땅볼 크로스를 베이포트 FC 수비진이 걷어낸다는 것이 빗맞아 골문 앞으로 쇄도하던 그의 앞쪽으로 날아든 것이다.

    ‘이거다!’

    상대 골키퍼는 크로스를 잡아내려다 무너진 신체 밸런스를 아직 잡지 못했다. 수비진은 예상치 못한 실수에 그에게 붙어서 슈팅 각도를 줄이지 못했다. 그를 마크하는 인원은 단 한 명도 없는, 완벽한 슈팅 찬스를 잡은 것이다.

    그는 아까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골문 상단 코너를 노리고 강하게 공을 찼고 이내 골대는 강한 충격으로 흔들렸다.

    ‘아!’

    공은 골대의 좌측 상단을 강하게 때리고 하늘 높이 떠서 뒤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번 기회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상대가 노스 윌드 더비 상대인 베이포트 FC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그가 찬 공은 골대를 맞히고 골라인을 넘어갔다.

    분명히 골이라고 확신하던 원정 팬들의 아쉬운 한숨과 등골이 오싹했던 홈팬들의 안도를 담은 야유와 환호가 그라운드를 가득 메웠다.

    폴 허들스톤은 선제골을 내주었을 때보다 더 큰 절망감에 얼굴을 감싸 쥐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가 채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전반전의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이 되자 혜지는 가만히 앉아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던 경기의 여운에 잠겨 있었다.

    ‘정말 정신없는 45분이었어…….’

    손우드 FC의 짧은 패스로 이어지는 빠른 공격과 이에 맞서는 베이포트 FC의 롱볼을 이용한 역습,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만들어낸 선제골과 마지막에 나온 폴 허들스톤의 중거리 슈팅까지.

    모든 것들이 그녀를 홀딱 반하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로 임팩트 있었고, 흥미로웠다.

    그녀를 전율하게 만든 또 한 가지는 관중들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알지 못했지만 베이포트 FC와 손우드 FC의 노스 윌드 더비라는 상황은 경기장 안의 모든 상황마다 관중들의 강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원정 팀인 손우드 FC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야유가 이어졌고,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이 터졌을 때에는 가슴속까지 뒤흔들 정도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경기 전 내심 2부 리그라는 생각에 낮춰보았던 그녀의 생각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돌아가면 베이포트 FC 라는 팀을 더 알아봐야겠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기에 그녀의 흥미는 원래 메인으로 하려던 심형만보다도 강동민과 베이포트 FC라는 팀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었다.

    전반전의 여운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하프타임은 어느새 모두 지나갔고 경기는 후반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후반전에 접어들자 1골 뒤지고 있는 손우드 FC가 먼저 전술 교체라는 카드를 빼 들었다. 전반전에는 원 톱을 고수하던 그들은 후반전이 되자 중앙 미드필더인 톰 허들스톤을 빼고 공격수를 투입하면서 투톱을 내세워 더 공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이른 시간에 따라잡아야 해. 감독님이 걱정하던 것도 이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따라잡을 확률은 더 줄어든다는 거였으니까.’

    손우드 FC의 중앙 수비수이자 주장인 빈센트 레넌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이 전반전부터 상대보다 더 많은 활동량을 가져간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보다 더 지치기 쉽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알렉스 말우드는 더욱 선제골의 중요성을 강조했었지만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단순했다. 역습과 후반 막판 체력 고갈의 위험성을 감수해서라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동점골을 넣는 것. 그래야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습보다 수비에 집중하려고 하는 베이포트 FC의 골문을 노릴 수 있었다.

    ‘아무리 홈이라지만 지난 시즌하고 같은 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그는 지난 시즌 그들의 홈에서 벌어졌던 두 번째 맞대결을 떠올리고는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통 한 골, 많아봐야 두 골 정도의 차이로 승부가 결정되는 노스 윌드 더비답지 않게 그때는 4 대 0이라는 손우드 FC의 대승으로 끝났었다. 동시에 그 경기는 라이벌인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한 3연승이라는 점에서 이제는 베이포트 F 보다 자신들이 한 단계 더 위의 팀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경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의 경기로 그 자신감은 다시 주저앉고 있었다.

    ‘공을 아무리 많이 잡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패스를 돌려도 정작 결정적인 찬스가 나왔던 것은 전반전 끝나기 직전 톰의 중거리 슈팅 단 한 번뿐이었어. 아예 패스가 이어지지 않을 정도로 미드필더 지역에서 압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가장 중요한 찬스를 만드는 것만큼은 막아내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그는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고 교체당한 톰 허들스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될 듯 될 듯 되지 않는 것만큼 인내심을 갉아먹는 것도 없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내 경기에 집중하려 애썼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과거에 한 번 뒤집은 전례가 있는 만큼 충분히 역전승을 할 수 있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날아드는 상대의 크로스를 끊어냈다.

    아직 경기는 40분 가까이 남아 있었다. 아직 경기를 포기할 시간이 아니라며 그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홈팬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가 경기장 안을 뒤흔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빈센트 레넌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3 대 0.

    전광판에 떠 있는 숫자가 마치 거대한 짐처럼 그의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위험을 안고 시도한 투톱은 결국 경기가 끝날 때까지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고, 오히려 체력이 떨어지고 팀 밸런스가 앞쪽으로 쏠려 버린 경기가 끝나기 직전 두 골을 연달아 허용하며 무너져 버린 것이다.

    지난 시즌 4 대 0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베이포트 FC를 무너뜨리고 노스 위드 더비의 승자가 누구인지 보여주었던 손우드 FC는, 3 대 0이라는 처참한 결과로 이번 시즌 첫 노스 위드 더비를 마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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