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터뷰 이후 (129/270)
  • 인터뷰 이후

    “어머, 강. 인터뷰는 잘 했어요? 얼마 후면 이야기만 듣던 한국에서 온 과자들을 얻어먹을 수 있는 건가요? 버턴 유나이티드의 한국인 선수인 심형만에게 매주 날아온다는 엄청난 과자들 이야기는 꽤 유명하잖아요. 우리 팀에서도 그런 광경 볼 수 있는 거죠?”

    다음 상대 자료를 찾아 자료실에 오자 샐리가 놀리듯 그에게 물어왔다. 한 명뿐인 한국인인 그에게 자국의 언론사가 인터뷰를 왔다고 하는 사실은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의 입을 통해서 어느새 팀 전체에 퍼져 있는 듯 했다.

    “샐리, 제발 부탁이니 놀리지 마요.”

    그런 그녀의 말에 동민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짧게 대답했다.

    “흐음, 반응이 듣던 것에 비해서 꽤 무미건조하네요. 제임스나 브라운 수석 코치 이야기로는 꽤나 재밌는 반응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그의 반응에 실망한 듯 말하는 그녀를 보며 동민은 머리를 부여잡고 싶었다.

    “…비슷한 말을 지금 몇 번이나 듣는 내 입장도 생각해 줘요. 키드 수석 코치 덕분에 이런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계속 듣는 데다가 다들 내 말을 들어주지도 않고 계속 놀린다고요. 이젠 무슨 말을 해도 인터뷰 이야기가 먼저 나올 정도라고요.”

    브라운 키드에 의해 퍼져 나간 소문은 어느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농담이 섞여 한국에서는 동민이 유명 인사가 되어 있는 거냐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었다.

    ‘그만큼 어찌 보면 선수도 아닌 일개 비디오 분석관, 그것도 챔피언십의 비디오 분석관이 따로 인터뷰한다는 것이 특이해서 벌어지는 일이겠지. 난 한국인 최초의 잉글랜드 리그 코치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른다고.’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친 듯한 그의 반응에 샐리는 장난이 과했다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다들 반응이 재미있다길래 별생각 없이 했는데 당신이 스트레스 받았다면 그만둘게요. 미안해요.”

    “아뇨, 괜찮아요. 다만 이번 일로 키드 수석 코치한테 넘어간 비밀은 곧바로 팀 전체가 다 알게 된다는 걸 깨달았네요. 심지어 아까 만난 로이터 선수도 남는 과자 좀 주지 않겠냐고 했다니까요. 키드 수석 코치 그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 건지. 심형만 그 선수가 그렇게 한국 과자를 받는다는 것도 난 이제야 알았다고요.”

    동민은 이러다간 레이미 볼든 구단주조차 자신에게 농담을 걸어올 것 같다며 푸념했다. 말 그대로 어느새 팀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소식을 듣고 장난을 쳐오고 있던 것이다.

    “그만큼 당신이 팀 내에 잘 녹아들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잖아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는 그를 위로하며 미소 지었다. 맡은 일의 특성상 자주 보지 못하는 선수들조차도 그에게 농담을 걸어올 정도라면 U18팀에서 올라온 그가 얼마나 팀 내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뭐, 그렇게 이야기하면 할 말이 없지만요.”

    동민은 조금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답했다. U18팀에 있을 때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팀에 이 정도까지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방금 전 자신의 푸념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면서 샐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의 이런 솔직한 면면 때문에 다들 그에게 장난을 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거라는 말을 그녀는 결국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U18팀에 있을 때에는 사람들을 피하는 쪽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이런 게 휴즈 감독이 좋아하는 성장이란 건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돌렸다.

    “농담은 이쯤 하고 제가 뭔가 도울게 있나요? 따로 찾는 게 있다면…….”

    “아뇨, 괜찮아요. 필요로 하는 자료는 이미 다 찾았고 지금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는 것뿐이니까요. 이미 다음 경기 보고서 제출은 끝나기도 했고요.”

    그녀의 제안에 동민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료 담당인 샐리를 제외하면 이곳에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사람인 그는 어느새 그녀의 도움 없이도 알아서 자료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알았어요. 그러면 혹시 도울게 생기면 이야기해 줘요.”

    “고마워요.”

    동민은 웃으며 대답하면서 놀리지만 않는다면, 이라는 전제 조건은 입속에 삼켰다.

    “흠… 여긴가. 의외로 사람 진짜 많네.”

    혜지는 손에 들고 있는 A4용지를 보면서 인상을 썼다. 그 A4 용지에는 베이포트 FC의 홈구장, 브리큰돈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길이 그려져 있었다.

    ‘해봐야 2부 리그라는 생각에 표는 남아돌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제 혹시 몰라서 인터넷으로 구하길 잘했지.’

    그녀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브리큰돈 스타디움의 앞은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만약 미리 표를 구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자리에 앉아 경기를 보는 것은 포기했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의 인파였다.

    ‘아무리 2부 리그라고는 해도 우리나라 K2리그 하고 비교할 관중 숫자가 아니구나.’

    그녀는 새삼 그녀가 있는 이 곳이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엷게 웃음을 지었다. 물론 아무리 이곳이라도 모든 경기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다. 이번 경기는 베이포트 FC와 과거부터의 악연이던 손우드 FC와의 경기로 현지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경기였지만, 그녀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여기서 프리미어리그도 아닌 챔피언십 경기를 보는 상황은 예정에 없었지만…….”

    그녀가 예정에 없던 베이포트 FC와 손우드 FC의 경기를 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심형만 선수의 부상으로 버턴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강동민, 그 사람이 말하던 게 생각났으니까.’

    그녀의 머릿속에는 인터뷰 때에 동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5위라는 현재 성적도 충분히 자랑스럽지만 그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 그전 시즌까지 하위권 전전하던 팀이 이번에 갑자기 치고 올라오고 있는데? 그것도 여름 이적시장에 한 명의 선수 영입도 없었다고 하고… 대체 어떤 팀인지 직접 봐야 알 것 같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해서 일이 마무리된 이후 이 곳, 브리큰돈 스타디움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돌아가는 비행기 날짜가 그나마 좀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지.’

    혜지는 그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발걸음을 향했다.

    손우드 FC는 베이포트 FC와 먼 옛날부터 내려온 앙숙 같은 사이였다. 서로 붙어 있는 연고지에서부터 시작된 그 악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갔고, 지금은 노스 윌드 더비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라이벌전이 되었다. 성적이 좋은 두 강팀과의 더비도 아니고 양 팀 다 훌리건으로 유명한 팀은 아니어서 유명한 맞대결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중요한 맞대결이었다. 그렇기에 양 팀의 팬들에게 오늘의 경기는 단순히 리그 순위를 위한 경기 중 하나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가 되어 있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들어오니까 양 팀 팬들의 열기가 더 장난이 아니네.’

    혜지는 경기 시작 전부터 몸을 푸는 양 팀의 선수들에게 엇갈려 쏟아지는 야유와 환호들에 그녀는 압도된 상태였다. 특히 야유는 원정 팀인 손우드 FC의 선수들에게 쏟아지면서 이곳이 베이포트 FC의 홈구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이 정도인데 시작하고 나면 어떨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었다. 동민의 이야기에 약간의 흥미가 생겨 온 것이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곳의 분위기에 그녀는 흥분하고 있었다. 이윽고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가 들리자 환호와 야유의 소리는 더욱 커졌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어느새 경기에 푹 빠져 있었다.

    ‘강동민 그 사람이 말한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데.’

    혜지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선수들 개개인의 개인 기량은 원정 팀인 손우드 FC가 더 위로 보였지만, 베이포트 FC는 선수들끼리의 호흡으로 개인 기량에서 밀리는 상황을 커버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손우드 FC의 좌측 윙이 공을 잡고 안쪽으로 파고들려 했지만, 어느새 그가 파고들 자리에는 2명의 미드필더와 1명의 수비수가 공간을 틀어막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결국 그는 옆으로 공을 돌리려 했지만 그조차도 압박하는 선수의 등쌀에 밀려 공격권을 잃을 뻔하고 뒤로 내줄 수밖에 없었다.

    ‘공수 전환 자체가 굉장히 빨라. 이런 팀이 지난 시즌엔 리그 하위권에 머물면서 강등 걱정을 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공격을 나가면서도 항상 5명 이상의 선수들이 자기 진영에 남아 수비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공을 뺏기는 즉시 나머지 인원들도 빠르게 복귀해 다시 수비벽을 세운다. 단순히 말로 표현하면 쉬운 일이지만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집중력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의 해외 부서로 옮기기 전 K리그를 담당할 때에 자주 보았던, 훨씬 강팀이라 여겨지는 팀이 한 번의 역습에서 실점하고 결국 경기를 패배하는 상황에서 경기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심지어 지금 베이포트 FC와 손우드 FC의 상황은 오히려 손우드 FC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이번 시즌에야 베이포트 FC의 순위가 더 높은 상황이지만, 지난 시즌만 해도 겨우 강등을 면한 팀이었어. 게다가 공격진의 개인 기량만 봐도 양 팀 사이에서는 꽤나 차이가 있고.’

    상대 수비의 빈 공간이 보이면 언제든 파고들 시도를 하며 그중 몇 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손우드 FC의 공격진과는 달리, 베이포트 FC의 공격은 수비에 집중하는 만큼 세밀하지 못하고 속도에 의지하는 편이었다.

    몇 명의 선수를 이용하는 빠른 역습이라는 것은 재역습을 당했을 때의 위험 부담은 줄지만 그만큼 그 몇 명의 개인 기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베이포트 FC의 공격진은 적어도 지금까지 보면 그런 포인트를 찾기 힘들었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든든한 방패를 가진 대신 비교적 부실한 창을 가진 베이포트, 그리고 그 방패의 빈틈을 노리고 계속 찔러대는 손우드라… 아, 너무 일할 때처럼 생각했나?’

    그녀는 잠시 머릿속에서 떠오른 기사 내용에나 들어갈 듯한 비유를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고는 다시 그라운드에 집중했다. 지난 시즌 하위권에 머물던 팀이면서 이번 시즌 단 한 명의 영입도 없이, 베이포트 FC는 공격력은 모자라도 이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동민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점점 더 경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