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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28/270)

인터뷰

“여긴가. 시간은 늦진 않았고…….”

동민은 약속 장소인 커피숍 앞에 서서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에 나름대로 신경 쓴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구단에서 내주는 유니폼을 입거나, 혹은 트레이닝복 같은 가벼운 옷차림이 대다수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도 그런 옷차림으로 나설 수는 없으니까.’

가벼운 인터뷰겠지만 언론에 노출되는 상황에까지 가벼운 옷차림을 고수할 생각은 없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오니까 긴장되기도 하고 말이지. 경기를 앞두고 있을 때와는 뭔가 다른 긴장인데…….’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커피숍 안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인터뷰를 앞두고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정혜지는 들려오는 한국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 곳에는 오늘의 인터뷰 대상인 강동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아뇨, 저도 좀 전에 와서요. 원래 약속 시간보다 훨씬 전이니까요. 오히려 아침부터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를 처음 보고 그녀가 느낀 것은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더 어려 보인다는 것이었다.

‘올해 스물일곱,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걸로 들은 것 같은데… 20대 초반이라고 말해도 믿겠어.’

그녀가 생각한 것은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선수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접었다가 돌아온 만큼 어딘가 날이 서 있는 그런 인물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쭈뼛거리는 모습에 어딘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고 있었다.

“아뇨, 원래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서요. 오래 안 기다리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모습은 그녀가 찾던 사람이 그가 맞는지 조금 의심이 들 정도였다.

‘뭐, 사람들 첫인상이 생각한 거랑 다른 일은 많으니까. 일단 인터뷰를 시작해봐야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품 안에 있던 수첩과 녹음기를 꺼냈다.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려도 될까요?”

혜지의 말에 동민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현재 잉글랜드 리그 챔피언십에 속한 베이포트 FC에서 비디오 분석관으로 일하고 있는 강동민이라고 합니다.”

“…이만하면 기사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다 들은 것 같아요. 인터뷰를 승낙해 주신 걸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제가 더 영광이죠.”

동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혜지는 벌써 꺼놓은 녹음기를 가방 안에 넣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짜 좋은 의미로 한 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사람이네.’

한 시간 가깝게 인터뷰를 하고 난 뒤 그가 정혜지라는 기자에 대해 가진 생각은 그것이었다. 그녀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동민의 대답을 듣고 곧바로 뭔가 적으며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저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첫인상하고는 다르게 유능해 보이긴 하네.’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보고 동민이 처음 든 생각은 의구심이었다. 자신이 만나러 온 사람이 인터뷰를 목적으로 하는 잡지 기자였는지 아니면 방송국 아나운서였는지 헷갈릴 정도의 미인이었던 것이다. 맵시 있게 차려입은 캐주얼 정장에 단발머리를 한 모습은 기자라는 미디어 뒤쪽의 사람보다는 앞쪽에 서는 것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빠르게 메모를 확인하며 조금 전 인터뷰를 정리하는 모습은 그런 생각을 지우고 있었다. 조금 전에도 미리 준비했던 질문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물었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건 따로 녹음하지도, 기사에 싣지도 않는 개인적인 질문이니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으시면 안 하셔도 되는데요.”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던 그녀의 말에 동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그… 만나뵙기 전에 현성고등학교의 이병렬 감독님을 먼저 뵙고 여쭤보려고 했는데 되게 경계하시면서 끊으시던데… 혹시 예전에 언론 관련해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그녀의 질문에 동민은 자신의 은사를 떠올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웃음을 흘렸다.

‘감독님한테 먼저 연락을 했던 건가. 그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는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사과하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확실히 감독님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갑자기 웃음이 나왔네요. 그분은 예전부터 굉장히 조심스러운 분이라서요.”

동민이 기억하는 병렬의 겉모습은 전형적인 옛날 스승의 모습에 가까웠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칭찬보다는 훈계와 잔소리를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하는 태도도 보통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그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은 미리 원천봉쇄하는 조심성도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칭찬보다 훈계와 잔소리를 택하고 퉁명스러운 태도를 고집했던 것은 어린 나이부터 마음이 들뜨게 되면 실력보다는 겉멋이 들어 퇴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랬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예전에는 조금 버거워한 적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나처럼 일찍부터 코치 쪽으로 선회한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지만 그런 방면으로는 여전하시구먼.’

병렬이 그가 지도하는 선수들에게 자주 말했던 것은 쓸데없는 헛바람이 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가장 실력이 늘어야 할 시기에 겉멋만 들어 제대로 된 성장을 못 한다며 그와 다른 동료들 앞에서 겁주듯 이야기했었다. 그랬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인터뷰 또한 왜 그가 먼저 이야기를 듣고도 동민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선수로서 10대처럼 지금이 내게 가장 성장해야 할 시기라고 보신 거겠지. 그러니까 별로 탐탁찮아 하신 거고. 하여간 태도랑은 딴판으로 과보호하신다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예전에 언론 관련해서 무슨 일 있으셨던 건 아니고요?”

“감독님 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제가 선수 때부터 헛바람 들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 연장선상이겠죠. 아직까지 감독님이 저를 꽤나 과보호하시나 봐요.”

동민의 대답에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여러 번 말씀하실 정도로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걸요. 여기까지 열몇 시간 날아오신 기자님이 더 대단하죠.”

동민의 너스레에 그녀는 처음으로 만들어놓은 듯한 미소를 지우고 언뜻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제 곧바로 돌아가시나요?”

“아뇨, 아직 예정이 남아 있어서요.”

“그런가요. 어쨌든 기사 잘 부탁드립니다.”

커피숍을 나오면서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헤어진 뒤 동민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예상은 했지만 저 정혜지라는 기자의 태도와는 별개로 잡지사 자체에서의 취급은 다른 일정에 끼워 맞추기였나 보네. 인터뷰 방향은 덤이고.’

조금 전까지 입가에 있던 미소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는 이 인터뷰의 방향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눈치챈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잉글랜드 리그 코치, 부상으로 꿈을 접었던 비운의 선수, 그리고 코치로 다시 축구에 대한 꿈을 꾸는 사람. 대충 그런 식의 키워드 주렁주렁 달아서 내놓겠구먼.’

그 스스로도 자신의 과거가 언론 쪽에서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보니 그리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든 그냥 와 특이하네, 대단하네, 정도로 압축되는 것 같으니까 기분이 좋을 리가.’

자신이 한국인 최초의 잉글랜드 리그 코치라는 사실도 인터뷰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 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셨는지 조금 이해가 가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여러모로 신기한 사람이었어.’

정혜지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인터뷰했던 강동민이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그녀의 생각 밖의 사람이었다. 아직 어려 보이는 외견에서 미루어 분명 자신감 넘치고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인물이 아닐까 예상했지만, 그는 생각과는 달리 한국인 최초의 잉글랜드 리그 코치라는 사실을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며 말하는 그의 표정은 진심으로 놀란 것처럼 보였다. 또한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접게 된 선수로서의 꿈에도 그다지 미련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스스로에게 주어진 일에 신경 쓰고 싶다는 그의 말은 평범했지만 진실성이 보였다.

‘그냥 언론 노출에 대해서 조심하느라 안전한 이야기만 한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인지 모르겠는데. 만약 원래 그런 성격이라면…….’

그런 사람을 상대로 이제 한국인 최초의 잉글랜드 리그 코치, 부상으로 꿈을 접었던 비운의 선수, 그리고 코치로 다시 축구에 대한 꿈을 꾸는 사람 등의 몇 가지 키워드에만 집중해서 기사를 쓸 것을 생각하니 다시금 양심이 찔려오는 그녀였다. 그녀는 과거나 자신의 위치에 신경 쓰지 않고 일에 집중하려는 사람을 그 일보다는 과거나 위치에만 집중해서 기사를 써야만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은 손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계속해서 그녀의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만약 동민이 알았다면 놀랄 정도로 그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판 웃었겠지만, 그녀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아냐, 이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지금 일은 못 하니까. 그리고 사실 내가 일부러 안 좋은 쪽으로 몰아서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할 이유도 없잖아.’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털어냈다.

이 일에 종사한 지 이제 막 2년 차가 된 그녀였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 만한 기사를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가능하면 지금 당장 잘하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기사를 쓰길 바랐다. 그들의 이야기는 일부러 특정한 쪽으로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그런 생각은 강동민뿐만 아니라 이번 인터뷰 대상에게도 동일했다.

그녀는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 귓가에 가져다 댔다.

“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 강동민 씨하고의 인터뷰는 끝났고, 이제 심형만 선수 인터뷰하러 가는 중입니다. 네, 네.”

그녀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동민에 대한 미안함이나 씁쓸함을 모두 비워 버리고, 다음 인터뷰 대상인 심형만에 대한 사전 정보로 가득 채웠다. 그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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