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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그리고 선수 (126/270)
  • 팀, 그리고 선수

    ‘모리스톤 타운 AFC쪽에서 섣불리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빼는 수를 써오지는 않을 테지.’

    휴즈 감독은 곧 시작될 후반전을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그는 오랜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정도의 유명한 선수를 지도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도해 보진 않았어도 그런 선수들이 어떤 생각이나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팀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팀에게 스타플레이어란 위기에 몰릴수록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지. 지금 당장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는 존재에 대한 의존이 문제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쉽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포기하고 플랜B로 넘어가긴 어려울 거야.’

    팀의 에이스이자 최대의 스타플레이어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는 선수를 빼자니 그의 경기 영향력이 아쉽고, 계속해서 그에게 기대를 걸자니 베이포트 FC의 맞춤 전술이 껄끄러운 상대의 상황은 그에게 미소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선수 입장에서도 지금 교체를 당하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 자신이 전반전에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도 아닌데 이른 시간의 교체를 당하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일이나 마찬가지야. 그것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처럼 어릴 적부터 주목을 받던 선수라면 더욱 그렇겠지. 떠받들어지는데 익숙한 선수에게 감독의 외면은 더 차갑게 박힐 테니 말이야.’

    그의 머릿속에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마음속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어릴 적부터 주목받던 선수지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외면 받던 과거, 그리고 그런 과거를 지나면서 더욱 비틀리는 자존감. 그것이 그가 예상하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면, 상대가 그를 빼고 전술상의 변화를 가져가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

    ‘팀의 에이스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까지 이른 변화를 가져가긴 쉽지 않겠지. 과거에 슈퍼스타들과의 불화설도 몇 번 있었던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이라면 더 그럴 테고. 유명해지는 것도 참 곤란한 일이라니까.’

    팀에게 있어서의 에이스의 존재, 팀의 키 플레이어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상태,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리는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까지. 휴즈 감독이 예상하는 모든 것이 상대가 이른 전술변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가 되어 그를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이 경기, 분명히 이길 수 있다. 만에 하나 이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기는 것까지는 가능해.’

    그렇게 생각하는 그의 표정에는 이유 있는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어떻게 한다…….’

    알베르토 브루노는 곧 시작될 후반전을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향하는 공을 막아내면 모리스톤 타운 AFC의 공격이 전부 먹통이 된다는 사실을 상대가 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간단하게 대응하려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빼고 다른 선수들로 공격진을 구상하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겨우 저런 팀을 상대로 우리의 가장 큰 무기를 쓰지 못한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오히려 지금 로드리게스를 교체하는 것이 상대의 노림수일지도 몰라. 그리고 이대로 물러선다면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나오는 상대마다 로드리게스를 빼줘야 할지도 몰라. 우승하고 곧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가는 것을 노리는 우리인데 이런 곳에서 발목을 잡힐 수는 없다고!’

    알베르토 브루노는 이를 갈면서 붉어진 눈으로 후반전이 시작하기 직전의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굳어진 얼굴로 상대 진영을 바라보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정해졌다.

    ‘우승을 위한 로드리게스의 성장을 위해서도 지금은 그대로 유지하는 편이 좋겠어. 지금 당장 교체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교체를 해줘야 하니까. 팀의 에이스라면 위기에서 팀을 구해낼 거라는 기대에 응하기도 해야 하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로드리게스의 교체를 진행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를 교체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를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구구절절 생각하는 그 이면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를.

    과거에 이탈리아 세리에A의 중위권 팀들을 주로 맡아 중상위권으로 올리면서 명장이라는 평가까지 받던 그는 상위권 팀에만 가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팀 내의 슈퍼스타들을 통솔할 수 없어 생기는 불화, 그것이 그가 가는 팀마다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도 모르게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는 새로운 팀 내의 핵심 선수를 또다시 통솔하지 못할까 그가 원하는 대로 풀어주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눈치채지 못할 거짓말까지 되뇌이면서.

    “여기선 그대로 갈 수밖에 없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알베르토 브루노의 목소리는 어딘가 굴절된 듯한 열기가 담겨 있었다.

    ‘이딴 놈들이……!’

    후반전이 시작되어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오는 공은 적었고, 공을 잡기만 하면 상대의 거친 몸싸움이 뒤따랐다. 그 거친 몸싸움을 뚫고 어렵게 상대의 골문 앞까지 간다고 해도 계속된 압박에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공을 뺏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깟 2부 리그 들러리들 주제에 끝도 없이 달라붙고 있고……!’

    쉬울 것이라 예상했던 경기가 예상과는 반대로 흘러가자 그의 마음속은 점점 더 급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특출 난 선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신이 주목받을 수 있는 무대로 왔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주목받지 못하고 마음대로 플레이할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그 사실이 그의 마음을 더욱 극한까지 내몰고 있었다.

    ‘감독이 교체하려 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나한테 공만 오면 확실히 뚫을 수 있는데 저 멍청이들은 지금 그것도 못 하고 있잖아! 감독이면 감독답게 어서 저 머저리들을 빼고 제대로 해줄 수 있는 녀석들을 내놓아야 할 텐데.’

    자신에게 공만 제대로 오면 충분히 골을 만들어낼 수 있다, 라는 생각은 경기의 반이 지나간 지금도 여전했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공이 제대로 오고, 상대의 방해가 오기 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충분히 골을 만들어낼 수 있다, 로 점점 더 좁혀지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경기를 좌지우지 하는 것, 그라운드에서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고집을 가속화시킬 뿐이었다.

    ‘기회만 오면 할 수 있어. 저 바보들이 공만 제대로 연결해 준다면, 조금이라도 공간을 만들 수 있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어.’

    그는 이를 갈면서 더욱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노력에도 먼저 골문을 열어젖힌 것은 베이포트 FC 쪽이었다. 후반 18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이어지는 패스를 다시 끊어내고 우측면으로 공은 연결하자, 피터 아일랜드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재빠른 얼리 크로스를 연결한 것이다.

    그전까지 그런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수비에 막힌 것과는 달리 크로스는 이번에는 정확히 수비와 골키퍼 사이의 공간에 절묘하게 파고들었고, 이는 발 빠른 로날드 조던에게는 최고의 찬스가 되었다. 그의 발을 떠나 골문 구석으로 깔리는 강한 슈팅은 골 망을 흔들고 베이포트 FC의 선제골이 되었다.

    동민은 홈 팬들을 보면서 포효하는 로날드 조던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보다 한 수 위의 팀을 만나도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고 결국 선제골을 만드는 휴즈 감독의 능력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다급해진 것은 모리스톤 타운 AFC측. 계속해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는 주 무기를 믿을지, 아니면 그를 빼고 그가 영입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발 빠른 공격을 선택할지 둘 중 하나겠네. 나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를 택할 테지만…….’

    동민에게는 상대에게 계속 끌려가는 경기력의 원인이 되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테이터스로 선수들을 보면서 그들의 조합으로 어떻게 팀을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그로서 팀 내 에이스에 대한 믿음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대로 끝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미 성급해지기 시작한 것은 저쪽이니까 우리 쪽에서 실수만 없다면 이 경기는 이길 수 있다.’

    아까까지 가지던 불안감이 승리를 향한 자신감이 되어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의 끝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경기장 안을 울리고, 동민은 가만히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전광판의 숫자는 1 대 1. 63분 로날드 조던의 선제골과 88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동점골이 각각의 숫자 밑에 적혀 있었다.

    ‘아무리 맞춤 전술을 했다지만 결국 팀을 구해내는 것이 에이스라는 건가.’

    익숙치 않은 전방 수비에 수비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진 단 한순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늦은 시간에도 자신의 장기인 드리블과 볼 컨트롤을 보여주며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무슨 생각이든 자신을 빼지 않은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의 신임에 대답하는 그의 동점골에 모리스톤 타운 AFC의 원정 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시작이 우리 선수들의 압박 실수라고 해도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속도를 올리면서 파고든 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실력이야. 경기를 준비하면서도 승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경기를 놓치니 아쉽긴 하네.’

    동민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나 아쉬운 얼굴이네요.”

    날아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휴즈 감독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손에 들어왔던 승리를 놓쳤으니까요. 불안감이 더 큰 경기이긴 했지만 막상 이길 뻔한 경기가 비기니 어쩔 수 없네요.”

    동민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도 충분하죠. 경기 전에 말했잖아요. 적어도 지지는 않을 경기가 될 거라고 했고, 실제로 지지 않았죠. 언제나 승리를 향한 향상심은 좋지만 그걸 조절하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전해질 뿐이니까요. 리그는 길어요. 그 긴 리그에서 한 경기 한 경기에서 감독이 울고 웃다가는 선수들이 지치기 십상이죠. 다른 이들에게 영향이 갈까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은 좋지만 스스로도 지칠 수 있으니 너무 빡빡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특히 감독을 목표로 한다면.”

    그의 말에 동민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잠시 숨을 골랐다. 과거 KFC의 감독을 할 때 자신의 모습이 문득 기억을 스쳐 지나갔다. 선수들에게 보일 정도로 감정을 참지 못했던 그 때보다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보기엔 아직 먼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동민은 그렇게 휴즈 감독의 밑에서 또 한 가지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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