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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전술 (125/270)

맞춤 전술

‘이번에는 별로 안 달라붙네? 저번 경기까지만 해도 징글징글할 정도로 달라붙는 놈들이 둘, 아니, 셋은 됐는데. 이러면 나야 편하지.’

모리스톤 타운 AFC의 에이스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지난 세 경기에서 합쳐서 2골 3도움이라는 기록을 세워가면서 본인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이번 경기에서도 자신이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세 명이 달라붙어도 뿌리치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고작 한 명 정도야. 이번 경기는 지난 세 경기보다도 더 쉽겠네.’

지난 경기들에서 밀집도니 수비를 헤집고 골을 만들어내던 그에게 지금 베이포트 FC의 수비는 그야말로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처럼 보였다.

‘공만 오면 이정도 수비 벗겨내는 건 일도 아니니까. 정말로 여긴 쉽다니까. 어렸을 때가 생각날 정도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익숙한 느낌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게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실감, 그라운드 내의 누구보다 자신의 존재감이 강하다는 자각. 그것이 지금 그에게 참을 수 없이 기분 좋은 감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매 경기마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유스 선수로 스페인 유스 신기록들을 전부 깨고 다닐 때에는 언제나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상이 잦아지고, 본래 받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순간, 그는 자신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닌 그저 평범한 선수였다. 그것을 자각한 이후로 그는 예전처럼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버렸다. 그 무대에서 자신은 가장 빛나는 선수가 아닐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모리스톤 타운 AFC는 그가 과거에 가지고 있던 꿈과 현실의 타협점과도 같았다. 세계 최고의 무대 중 하나인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설 수 있는 팀이면서 동시에 당장 자신이 팀에서 에이스가 될 수 있는 팀, 만일 나중에 프리미어그로 승격된 후 다른 선수들이 영입된다고 해도 팀에서 자신의 자리는 이미 공고할 것임에 분명한 팀.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모리스톤 타운 AFC였다.

‘여기서라면 예전처럼 쉽게 쉽게 수비들을 제치고 골을 넣으며 환호성을 받을 수 있으니까. 패스만 오면 이 정도 수비진이야 껌이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 지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었다. 중원에서 볼 배급이 원활하게 된다는 전제.

그러나 그 전제가 잘못된다면 그의 예상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생각한 쪽이랑은 다르게 흘러가는데…….’

알베르토 브루노는 그라운드를 보면서 혀를 찼다. 공격적으로 나오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수비 라인을 붕괴시킬 거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전반전이 시작된 지 어느덧 20분이 되어가는 지금 그의 표정에는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전광판의 숫자는 20분 전과 동일한 0 대 0이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상대 수비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골이 터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공이 로드리게스에게 거의 가질 못하고 있어.’

모리스톤 타운 AFC의 최대 장점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이끄는 공격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가려지는 점이 바로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볼 탈취다. 강한 태클과 피지컬로 공을 뺏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그들의 역할은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볼 탈취에서 가지는 강점도 결국 공을 로드리게스에게 전달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베이포트 FC가 노린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전까지 주로 442를 쓰던 것을 버리고 이번 경기에서 3명의 중앙 미드필더로 구성한 이유가 이거였어!’

공을 탈취하고 곧바로 로드리게스에게 넘겨주어야 할 중앙 미드필더들이 수적 열세에 밀려 공을 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망할, 미드필더와 수비 라인을 내려서 블록을 만들어두지 않은 것은 이걸 위해서였나…….’

같은 시각, 동민은 반대로 안도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까진 생각한 그대로 아니, 생각 이상이야.’

중원에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로 이어지는 볼 배급 라인을 잘라야 한다는 동민의 생각은 주효했다. 전체적으로 개인 기량이 높은 모리스톤 타운 AFC의 선수들이라지만 결국 더 뛰어난 점과 모자란 점은 존재한다. 상대 공격을 끊어내는 것이 강점인 모리스톤 타운 AFC의 중원은 패스나 탈압박에 대해서는 그만큼 뛰어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역할은 상대의 공을 끊어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개인 기량에서 우리가 밀린다지만 그것도 1대1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거지, 지금처럼 처음부터 중원 싸움을 2 대 3으로 끌고 가면서 수적 우세를 얻으면 쉽게 밀리지 않아.’

게다가 동민의 그 생각을 더욱 완성시킨 것은 휴즈 감독이었다. 그는 더욱 효과적인 수 싸움을 위해서 오늘 양 날개를 맡고 있는 선수들을 평소와는 다르게 구성했다.

‘제임스 더커에 피터 아일랜드, 두 사람 모두 윙에서의 스피드와 크로스를 중시하는 평소 휴즈 감독의 첫 번째 선택이랑은 거리가 멀어. 그렇지만 오늘 경기에서는 저 두 사람만큼 어울리는 선수가 없지.’

[제임스 더커]

26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14.9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4 / 20

선호하는 플레이: 상대를 압박함, 몸싸움 선호

장점 - 강철 몸

단점 - 부정확한 크로스

현재 컨디션: 7/10

[피터 아일랜드]

30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4.6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6 / 20

선호하는 플레이: 2 대 1 패스 선호, 얼리 크로스 선호

장점 - 정확한 태클

단점 - 느린 발

현재 컨디션: 6/10

압박 가담을 장점으로 삼는 제임스 더커와 태클이 좋은 피터 아일랜드를 좌우 측면 미드필더로 내놓고 중원에서의 힘 싸움에 가세시킨 것이다. 거기에 두 명의 투입은 그 이상의 효과도 있었다.

중원에서의 수적 우세도 계속해서 로드리게스로의 볼 배급을 막아내는 것은 아니다. 결국 공은 빠지게 되고 이 공이 로드리게스에게 연결되어 그가 속도를 붙이기 직전, 제임스 더커가 달라붙어 몸싸움으로 공을 뺏어내거나 방해한다.

‘지난 경기에서 몇 명의 선수들을 붙이더라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드리블을 막아내지 못한 것은 그가 공을 달고 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준 뒤에 붙었기 때문이야. 뛰기 시작해서 이미 속도를 받은 그를 막기는 힘들지만, 그가 아직 속도를 받기 전에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이 밀어낸다면 막을 수는 있어.’

날카로운 심판의 휘슬 소리가 경기를 정지시켰다. 측면에서 고립되던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내려와 공을 잡는 순간, 제임스 더커가 거센 몸싸움으로 그를 내팽개쳐 버린 것이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그의 장기인 좁은 공간에서의 드리블을 보여주기도 전에 그라운드를 뒹굴기 일쑤였다.

‘게다가 로드리게스가 있는 한, 우측으로 쏠리기 때문에 반대쪽인 좌측 공격은 무게가 덜하다. 그 말인즉슨 피터 아일랜드가 중원싸움을 더 마음 놓고 뛰어들 수 있다는 거지.’

동민의 생각대로 베이포트 FC의 중원에는 최소 3명에서 최대 5명 이상의 선수들이 상대 중원을 압박했고, 이는 곧 처참한 전진 패스 성공률로 이어졌다. 베이포트 FC의 공격적인 전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의 공격 기회를 가장 앞쪽에서 차단하는, 수비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보는 전술이 된 것이다.

‘지금까진 괜찮아. 그렇지만 안심할 수는 없어.’

물론 상대의 공격을 원천 봉쇄하고 있는 듯한 모습과는 반대로 베이포트 FC의 전술은 보고 있는 동민에게 등골이 서늘한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중원에서의 커팅 실수, 제임스 더커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마크하는 타이밍 미스, 번갈아가면서 중원과 측면을 지원해 줘야 하는 수비의 어긋남. 모든 것이 조금이라도 빗나간다면 모리스톤 타운 AFC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당장이라도 수비 라인을 휘저으며 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잘 만들어진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하나하나가 전부 맞물려야만 상대의 공격을 시작부터 막아내고 그들이 계획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 몇 개 있지. 하나, 아무리 훈련했어도 본래 우리 팀의 스타일과는 차이가 꽤 크다는 점. 지금이야 연습한 대로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지만 이따가 집중력이 떨어질 타이밍이 되어도 그렇게 해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는 거지. 지금까지 몸에 배인 움직임을 짧은 시간에 바꿀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니까.’

동민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잘 맞춰진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던 선수들이 후반까지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실수가 없는 편이 더 이상하다. 그런 실수가 나왔을 때, 베이포트 FC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동민이 생각하는 첫 번째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의 변화였다.

‘만약 상대가 지금의 상태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집중된 공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를 교체하게 되면… 오히려 한 명의 에이스에게 좌지우지되는 지금의 상황보다 막기 힘들어.’

모리스톤 타운 AFC가 베이포트 FC보다 훨씬 상위의 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을 상대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강점을 무력화시키고 약점을 파고드는 맞춤 전술뿐이다.

그렇다면 상대가 그런 맞춤 전술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가장 큰 무기인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버리고 변화를 추구한다면, 그를 막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의 베이포트 FC또한 전술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적어도 지금과 같은 균형을 계속 유지시키고 싶은 그들에게 그리 달가운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결국 전반전까지는 이렇게 유리한 분위기를 가져간다고 해도 후반전은 상대의 대처에 따라, 혹은 선수들의 집중력에 따라 달라져. 지금 잘하고 있다고 흡족해질 수가 없다는 거지.’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던 그의 눈에는 휴즈 감독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금까지의 선수들의 모습이 퍽 흡족한 듯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잘하고 있지만 불안하다, 라는 동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지금의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이지?’

동민의 눈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휴즈 감독의 얼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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