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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을 막아설 비책 (124/270)
  • 크랙을 막아설 비책

    모리스톤 타운 AFC의 경기는 간단히 요약하면 ‘거칠고’, ‘빠르며’, ‘화려했다’. 중원에서의 태클과 몸싸움으로 상대의 공을 끊어내고, 측면에 위치한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에게 공을 내주면 그때부터 그라운드는 그의 독무대가 되었다.

    “과연…….”

    혼자서 공을 몰고 세 명의 수비수 사이를 뱀장어처럼 종횡무진 하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감탄의 한숨을 흘렸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부드러운 볼 터치와 세밀한 드리블은 그가 지금껏 경기에서 만나본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다.

    ‘웨인 베인스의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베인스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었던 것도 있고, 젊었을 때에도 저런 식의, 좁은 곳을 이리저리 헤쳐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빠른 스피드와 순간적인 페인트로 파고드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저런 타입은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서 여러 명의 수비수를 허수아비처럼 만들며 달려 들어가는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를 보면서 동민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가 뛰어나다는 점이 역으로 다른 측면의 공격이 힘을 못 받게 만든다는 건데,’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라는 무기가 얼마나 유용한지는 상대 팀도, 모리스톤 타운 AFC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자연스럽게 모리스톤 타운 AFC의 공격은 그가 있는 우측으로 쏠리게 되었다. 이는 반대로 모리스톤 타운 AFC의 좌측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는 그걸 이용하려 해도 상대 우측 공격을 막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도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는 상대의 좌측면을 유린하면서 수비를 끌어당기고는 상대의 뒤 공간으로 스루패스를 찔러 넣었다. 패스는 자로 잰 것처럼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의 공간으로 흘러들어 갔고, 모리스톤 타운 AFC의 공격수인 카일 루카스가 깔끔한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개인 기량이 만들어낸 손쉬운 골이었다.

    ‘진짜 너무 쉽게 골을 만들어내는데.’

    공이 연결되기만 하면 그는 곧바로 수비진 사이를 헤집었고, 그에 맞춰서 홈 팬들의 탄성이 뒤따랐다. 다른 선수들의 개인 기량도 충분히 높지만 로드리게스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기량을 보여주면서 그라운드 위의 보석이 되고 있었다. 그런 로드리게스의 활약에 모라스톤 타운 AFC는 3 대 0이라는 완승을 거두고 홈 팬들의 환호를 품에 안았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동민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모리스톤 타운 AFC에서 가장 위험한 선수를 고르자면 생각할 것도 없이 세르히오 로드리게스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주의할 선수들은 있어.’

    [찰리 도슨]

    29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6.6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6.4 / 20

    선호하는 플레이:

    특성:

    장점 - 정확한 태클, 몸싸움 선호

    단점 - 불같은 성격

    현재 컨디션: 6/10

    [닉 앤더슨]

    30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6.6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6.3 / 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정확한 슈팅 선호

    특성:

    장점 - 빠른 발, 골게터

    단점 - 아둔함

    현재 컨디션: 7/10

    ‘중원에서 거칠게 압박하면서 어떻게든 공을 끊어내니까 로드리게스에게 공이 연결될 수 있는 거고, 로드리게스가 만들어내는 공간에 순식간에 침투해서 골을 만들어내니까 그 한 명에게만 정신을 팔 수 없는 거야. 그나마 비교적 약한 곳이 수비 라인이라지만 그것도 비교적 약하다는 거지, 우리 팀 공격수들이 쉽게 뚫어낼 수 있다는 건 전혀 아니고.’

    동민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경기를 보면서,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지금까지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남 페가수스를 이끌고 수원 블루 데빌즈를 상대할 때보다도 더욱 머리가 아파지는 상황에 그는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 수준은 되는 크랙에, 그 크랙이 날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팀원들, 그리고 그 무기들을 확실하게 이용할 줄 아는 감독까지. 진짜 쉽지 않겠어.’

    동민의 걱정을 담고 비행기는 런던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엔 평소보다 늦었네요?”

    휴즈 감독은 놀랐다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 그가 말했던 시간보다 항상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하던 동민이 이렇게 아슬아슬한 시간에 일을 끝마치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뇨, 책망하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당신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처음 봐서요.”

    그 말을 뒷받침하듯 휴즈 감독의 목소리에서는 그를 향한 비난이나 책망이 아닌 의문이 담겨있었다.

    “…좀 생각하느라고요.”

    “알겠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내일 있을 정기 회의에서 듣기로 하죠. 수고했습니다.”

    동민이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방을 나선 뒤, 휴즈 감독은 천천히 동민이 내려놓은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후, 진짜 당장이라도 쓰러지겠네.”

    동민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을 향했다. 스완지에서 돌아온 직후, 그는 이틀간 잠을 안 자다시피 하면서 이미 보았던 지난 시즌 모리스톤 타운 AFC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들을 다시 돌아본 것이다.

    선수들의 스테이터스를 직접 본 만큼 그전에 봤던 것과는 다른 점들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도저히 이대로는 해법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섞여 한 행동이었다.

    ‘사실 내가 대응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상대 팀의 분석이 그가 맡은 일인 이상, 따지고 보면 굳이 그가 상대에 대한 대응 방법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분석하면서 그런 점까지 고려하는 것이 스스로의 장점으로 평가받는 것을 아는 이상 그만둘 수 없었다.

    “실제로 어떻게든 생각은 해냈으니까. 휴즈 감독이 보고 어떻게 판단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해볼 만할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점들까지 파악하면서 전략을 짜는 휴즈 감독인 만큼, 자신이 생각한 것이 받아들여질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확신했다. 제대로 된 대응 방법 없이 휴즈 감독과 운에 맡기는 것보다는 지금이 나을 것이라고.

    ‘이제 내일이면 휴즈 감독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있겠네.’

    동민은 수면이 부족해 조금은 멍해진 머리로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보다 얼어 있는 것 같은데, 괜찮아요?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휴즈 감독은 초조한 듯 두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동민을 보면서 말했다.

    “아뇨, 그게…….”

    그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동민은 결국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꽤 도박성이 짙은 게 아닌가, 해서요. 까딱하다간 대패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막상 경기가 시작되려 하자 새삼 걱정하는 그를 보면서 휴즈 감독은 웃으며 말했다.

    “나랑 반대로 생각했네요. 난 적어도 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때문에 이런 선발 명단과 전술을 계획한 거고요.”

    “네?”

    동민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휴즈 감독을 바라보았다.

    “확실한 건 경기가 시작되어 봐야 알겠지만요.”

    휴즈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의 웃음이 끝나기 전에 그 웃음을 잇듯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렸다.

    ‘로드리게스에 대한 대비를 아예 안 한 건가? 상대 팀이지만 너무 무모한데.’

    모리스톤 타운 AFC의 감독인 알베르토 브루노는 상대 진영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리스톤 타운 AFC를 상대하는 챔피언십 팀들의 전술은 앞선 세 팀에서 보여주었듯 비슷했다.

    측면에서부터 파고들어 오는 로드리게스의 위험성을 알기에 최대한 아래쪽에 수비 라인을 형성해 두고 미드필드들까지 수비에 집중시키면서 빽빽한 수비 블록을 만들어낸다. 역습을 노리는 것은 공격수 한 명 정도거나 혹은 아예 없이 실점을 막아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챔피언십이라는 작은 무대에 달려든 공룡 같은 모리스톤 타운 AFC를 상대로 득점에 대한 기대보다는 최대한 실점을 막아내 무승부를 노리려는 전략.

    흥미로운 경기를 기대하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전술 선택이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팀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한 시즌에 46경기나 치러야 하는 길고 힘든 여정을 지나야 하는 입장에서 생태계 교란종과 같은 모리스톤 타운 AFC와의 일전은 승점 3점을 위한 경기보다는 1점이라도 건지면 좋은 경기거나, 혹은 진다고 해도 대량 실점만은 피해야 하는 경기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앞선 세 팀은 모두 공격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밀집 수비와 핵심선수인 로드리게스에 대한 이중, 삼중의 마크를 붙였던 것이다.

    ‘그런데 베이포트는 좀 다른데.’

    일단 경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수비 라인을 심하게 내리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로드리게스가 휘저을 것이 뻔한 상대 좌측에 대한 수비는 풀백 한 명이 거의 떠맡으려는 듯, 윙어 또한 극단적으로 내려가기보단 언제든 공격과 수비를 함께하려는 듯 일정 선 이상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우리 공격에 공격으로 맞대응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꽤 재밌게 돌아가는데.”

    챔피언십에 오면서 자신들을 상대로 보지 못할 거라 생각한 공격적인 전술에 알베르토 브루노는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팀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것까지는 아니지만, 상대와 비교했을 때 공격과 공격에서 밀릴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번 시즌 1승 2무로 아직까지 괜찮은 분위기를 타고 있다지만 상대는 지난 시즌 17위에 불과했던 팀이다. 그것도 그들의 무기는 오히려 선수비 후 역습이었다. 그런 팀이 우리를 상대로 공격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뭐지? 홈경기인 만큼 자신 있다 이건가? 아니면 앞선 세 경기 결과가 괜찮으니까 이참에 모리스톤 타운 AFC라는 대어라도 잡아보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어설프다. 리그에서 살아남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가볍게 생각했다가는 패배가 패배를 물고 따라오는 연패의 구렁텅이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홈팀이라는 어드밴티지 하나로 대어를 낚아보겠다고 이런 준비를 한 상대가 우스웠다.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프리미어리그에선 순식간에 사냥감이 될 텐데. 만년 2부 리그 팀다워. 그래, 어디 할 수 있으면 골을 노려봐. 비기겠다고 나왔을 경기라도 질 판에 이기겠다면서 무리를 해보라지. 홈 팬들 앞에서 대량 실점 후 참패라는 굴욕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상대를 웃었다. 상대를 비웃으며 얕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분수를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 그는 베이포트 FC라는 팀에 악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어디 신나게 털려보라고.”

    그는 가볍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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