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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배워야 하는 것 (123/270)
  • 진정 배워야 하는 것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와의 시즌 첫 경기가 짜릿한 역전승으로 끝난 뒤, 동민은 숙소에 돌아와 조금 전 경기를 회상했다.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후반을 맞이할지 미리 예상을 했단 거지. 작년 6위 팀이 17위 팀을 상대로 한 골로 만족하고 수비적으로 진행할 리가 없다, 그것도 시즌을 시작하는 첫 경기부터. 휴즈 감독의 머릿속에서는 아예 그 생각이 자리 잡고 있던 거야.’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자신은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경기를 경기 내적으로만 보고 있던 그와는 달리 외적인 부분까지 눈을 돌리고, 상대의 심리적인 부분을 꿰뚫어 보는 휴즈 감독의 판단은 그에게는 따라할 수 없는 묘기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는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던 크리스 러셀의 활약은 동민으로 하여금 자신과 휴즈 감독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게 했다.

    ‘크리스 러셀이 다른 어린 선수들과 다르게 그런 상황에서도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거나, 휴즈 감독이 손을 써서 안정시켰거나. 아마 둘 다일지도 모르지.’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와의 경기는 베이포트 FC라는 팀으로서는 큰 승리이면서 동시에 동민 개인에게는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값진 경험이었다.

    ‘결국 이번에 나와 휴즈 감독의 가장 큰 차이점을 하나로 줄이면 다른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했느냐, 그리고 그것을 상황에 맞게 얼마나 적용시키느냐. 그거네.’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감독 스콧 맥카시가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 크리스 러셀이 무너질지 무너지지 않을지 그는 알지 못했고 휴즈 감독은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경험의 차이인가.”

    동민이 쿠션에 털썩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따라갈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 차이는 동민에게 있어서 하나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는…….”

    자신도 그의 밑에서 배우다 보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힘들걸요.”

    브라운 키드는 맥주를 들이켜면서 짧게,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기도 그렇지만, 감독님의 그런 점은 배우려고 노력한다고 잘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아…….”

    동민은 그의 대답에 어깨를 늘어뜨렸다. 조금 전 휴즈 감독처럼 다른 사람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악하는 점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에 대한 브라운 키드의 대답은 단호한 부정이었다.

    “그래도 배우다 보면…….”

    “제가 팀을 옮기면서 감독님하고 함께 일한지 10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못 이겨본 게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조심스러운 동민의 말을 자르듯 툭 내뱉는 그의 말에 동민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물으려 했지만, 그는 그저 맞춰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글쎄요.”

    동민은 그게 뭔지 자기가 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맥주를 비웠다.

    “포커, 아니, 웬만한 카드게임 전부 다요. 그동안 몇 번을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죠.”

    그 말에 동민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감독님은 다른 사람 표정이나 심리 읽는 데에는 타고난 사람이거든요. 밑에서 배운다고 그런 점을 전부 흡수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한번 아니라고 대답할게요. 저건 타고나는 점이니까요.”

    “아…….”

    쐐기를 박는 듯한 그의 말에 동민은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동민의 어깨가 처졌다.

    ‘누군가 나를 본다고 내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비슷하다는 건가. 타고난 재능이란 건 어쩔 수 없나.’

    동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즈 감독의 밑에서 자신이 가장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 것을 브라운 키드는 안 될 거라며 고개를 저은 것이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요?”

    “네?”

    브라운 키드의 질문에 동민은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그는 브라운 키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알아냈고, 그 점을 강점으로 하는 사람의 밑에 있다면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브라운 키드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강, 당신은 언젠가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었죠? 그렇다면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어요.”

    “무슨 말인가요?”

    동민이 게슴츠레한 눈에 의문을 담고 묻자 그는 마지막 남은 맥주를 털어 넘기고 입을 열었다.

    “감독님이 선수들이나 상대의 심리적인 부분을 꿰뚫어 보는 것에 능하지만 반대로 강 당신처럼 상 대팀 전술이나 선수 기량을 짧은 시간에 알아보지는 못하죠. 대신 당신이 지금 이 팀에 있으면서 그것을 해주는 거고요. 팀이란 그런 겁니다. 한 사람이 완벽할 필요가 없어요, 특히 감독은 더욱 그렇죠. 자신이 완벽해서 혼자 전부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다른 코치들과 스태프들이 있는 거죠.”

    그의 긴 말은 평소처럼 스코틀랜드 억양이 짙어서 전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 말에 내포된 의미만은 확실하게 전해져 마치 탄환처럼 그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가는 듯했다.

    “지금껏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선수들과 코치들을 봤어요. 그들이 혼자서 모든 일을 전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선수가 골키퍼부터 스트라이커까지 전부 소화하던가요? 지금 코치들이 하는 일들을 전부 감독님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봐요?”

    “…아니요.”

    “중요한 건 혼자서는 못해도 팀이 할 수 있다는 거죠. 각자가 자신의 강점을 펼치고 그 것들로 하여금 팀이 움직이는 거니까요. 당신이 감독이 되고 싶다면 정말 감독님 밑에서 배워야 할 건 배울 수 없는 감독님의 강점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팀이 움직이는지, 감독이라는 자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이끌고 팀을 운영하는지가 아닐까요?”

    그의 말이 끝나고 둘 사이에서는 깊은 침묵이 자리 잡았다. 그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깬 건 동민이었다.

    “…그러네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수석 코치님.”

    동민의 말에 그는 술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헛소리가 길어졌다며 맥주를 한 번 더 시키는 것으로 대답했다. 맥주를 시키려 고개를 돌리는 그의 귓가는 평소보다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경기를 보러 비행기라니 거 참 적응 안 되네.”

    동민은 스완지 공항에 도착해서 기지개를 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인 400킬로미터를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다는 것은 그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성남 페가수스 시절에는 부산까지 경태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가 하면, U18팀에선 거리가 먼 곳이어도 주로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퍼스트 팀은 예산 자체가 다르네.”

    다음 경기 상대인 모리스톤 타운 AFC의 경기를 위해서 아침 일찍 버스나 기차를 타야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휴즈 감독의 반응은 간단했다.

    ‘구단에서 비행기 표를 이미 준비했는데 뭐 하러 기차나 버스를 타려고 합니까?’

    저가 항공이라도 이 정도 거리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동민은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여기서 리버사이드 스타디움까지는 별로 안 멀다 이거지.”

    동민은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오기 전 찾아보았던 모리스톤 타운 AFC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19위로 강등된 팀, 이건 같이 강등된 다른 팀들도 있으니 그다지 문제 될 것은 없다. 문제는…….’

    동민은 긴장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보통 대부분의 팀들은 강등당하면 줄어드는 수익금 탓에 핵심 선수들을 이적시키면서 지출을 줄이지만, 이번 모리스톤 타운 AFC는 달랐다. 구단주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대부분의 선수들을 지켜냈고, 선수들은 자신들의 커리어가 1년 낭비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팀에 남아 다음 시즌 승격을 노리고 있었다. 또한 강등이 확정된 상태에서도 과거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던 알베르토 브루노 감독을 데려오면서 반드시 승격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진짜 프리미어리그급 팀이 내려와 버린 거지. 그것도 큰 전력 누수 없이. 어쩌면, 아니, 분명 이번 시즌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라고 해도 될 정도야. 강등되면서도 대부분 온존한 전력, 꽤 전이지만 명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감독, 그만큼 다시 승격하겠다는 동기부여까지. 확실히 저 이상의 우승 후보는 없겠지.’

    체스터필드 원더러즈를 시작으로 시즌의 시작을 기분 좋게 연 이후 1승 2무를 기록하며 3경기째 무패를 기록 중인 베이포트 FC지만 이번만은 강적을 만나고 만 것이다.

    ‘거칠고 공격적인 팀으로 보였는데 과연 직접 보면 어떨지…….’

    동민은 그렇게 모리스톤 타운 AFC의 홈구장인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와…….”

    경기가 시작된 직후 동민은 감탄을 흘렸다.

    ‘대충 봐도 선수들 개개인의 스테이터스가 16 이상은 되어 보이는데…….’

    베이포트 FC에서 핵심 선수들이라는 평가를 받는 조나단 케인이나 해리 맥스웰, 로날드 조던의 현재 스테이터스가 15 초반에서 중후반을 오르내리는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선수가 베이포트 FC에서 핵심 취급을 받는 선수들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한 단계 위의 팀이라는 이야기네.”

    어느 정도 차이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까지 차이가 클 줄은 몰랐다며 동민은 혀를 찼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성남 페가수스 시절에 상대했던 부산 히어로즈나 수원 블루데빌즈 선수들도 내가 있던 성남 페가수스 선수들보다는 적어도 한 수 위의 전력들이었어. 그런 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거나, 적어도 비등비등한 싸움을 만들어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분명…… 아.’

    그렇게 생각하는 동민의 눈에 한 선수가 들어왔다.

    [세르히오 로드리게스]

    27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8.9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7.2 / 20

    선호하는 플레이: 우측면에서 안쪽으로 드리블 선호, 정확한 슈팅 선호,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특성:

    장점 - 트릭스터, 왼발의 마법사

    단점 - 깃털 몸, 유리 몸

    현재 컨디션: 6/10

    ‘저 선수가…….’

    동민은 세르히오 로드리게스의 능력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 스페인 유스 선수신기록들을 갈아치우면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는 찬사를 받았던 그였지만, 잦은 부상으로 성장이 정체되고 지금은 모리스톤 타운 AFC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기량은 챔피언십에 있을 만한 선수의 능력이 아니었다.

    동민은 지금껏 자신이 상대했던 선수들 중 가장 개인 기량이 좋은 선수를 보면서 그 팀을 이길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진짜 쉽지 않겠는데.’

    동민은 입술을 깨물면서 그라운드를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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