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아직 부족한 것
체스터필드 원더러즈를 상대로 한 크리스 러셀의 선발 투입은 해리 맥스웰을 집중 공략하려던 상대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크리스 러셀의 패스의 부정확함, 그것이 바로 베이포트 FC가 가진 한 가지의 불안 요소였다.
‘아, 저건 위험한데!’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동민의 눈이 크게 떠졌다. 크리스 러셀이 수비진을 보고 내준 패스가 빗나가 버린 것이다. 그런 안일한 패스를 그냥 넋 놓고 바라볼 체스터필드 원더러즈 선수들이 아니었고, 패스를 가로챈 그들의 빠른 역습은 순식간에 수비수 3명 대 공격수 4명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역습을 가져가려던 타이밍에 나온 재역습은 수비진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루어졌고, 결국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공격수 제이미 왓슨의 깔끔한 골로 마무리 지어졌다. 지금껏 단단하기 그지없던 베이포트의 수비진이었지만 너무나도 허무하게 내준 선제골이었다.
‘전반전 거의 내내 안정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결국 크리스 러셀의 패스 실수 한 번이…….’
동민은 체스터필드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초반부터 상대를 고전하게 만드는 경기를 펼쳤지만, 그 불안 요소 하나가 결국 선제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면 진짜 골치 아파지는데…….’
상대가 많이 뛰면서 주도권을 잡는 것을 효율적으로 막으면서 역습을 노리던 베이포트 FC였지만, 이런 식으로 선제골을 내주게 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지게 된다. 수비벽을 탄탄히 하면서 상대의 뒤 공간을 노리던 그들의 전술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체스터필드 원더러즈가 자신들이 고집하던 전술을 바꿔서 수비에 조금만 더 중점을 둬도 우리 쪽에서 생각했던 그림들은 죄다 막히니까. 이렇게 되면 후반전에서는 변화를 주거나 해야 할 텐데. 특히…….’
동민의 걱정스러운 눈은 크리스 러셀을 향했다. 크리스 러셀의 나이는 23세, 빈말로도 아직 경험이 많다고 할 선수는 아니다. 얼마 전까지 U1 8팀에 속해 있었던 동민은 어린 선수들이 한번 실수를 저지르고 나면 얼마나 더 무너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선수들일수록 실수했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더 무리하거나 평정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이 많았지. 경험 많은 선수들이라면 실수를 하고 나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경기에 집중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선제골로 이어진 실수 이후, 크리스 러셀은 눈에 띄게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공을 내줄 곳을 못 찾고 허둥지둥하거나 해리 맥스웰에게 공을 받은 위치를 잡지 못하고 애매한 위치에 머물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동민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역시 여기서는 크리스 러셀을 교체하고 더 공격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동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반전의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렸다. 답답한 베이포트 FC 팬들의 마음을 놀리듯 느릿한 소리였다.
‘혹시나 안 좋은 반응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동민은 입술을 깨물고 생각했다.
“무슨 일입니까?”
휴즈 감독은 하프 타임에 자신을 찾아온 동민을 보면서 물었다. 동민은 그를 바라보며 말을 고르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이건 감독님의 권한에 도전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 약간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해 봐요. 당신이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 무슨 말은 하든, 그것에 관한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니 이야기하기 전부터 그렇게 주눅 들어 있을 필요 없습니다. 내가 여러 번 말했듯이 당신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나에게 스스로의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나한테 달려있는 거니까요.”
동민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휴즈 감독은 그를 달래듯 말했다. 그런 휴즈 감독의 말에 동민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경험이 많진 않지만 U18팀에서 어린 선수들을 많이 봤을 때, 큰 실수를 저지른 선수들은 곧바로 자기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반전 실점 후, 크리스 러셀 선수의 움직임을 보면…….”
“실점 후 자신감을 잃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고 있으니 후반전에는 그를 교체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휴즈 감독이 어떻게든 돌려서 완곡하게 표현하려던 말을 그대로 말해 버리니 동민은 곤란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반전까지 그대로 출전시켰다가는 더욱 실수만 반복하면서 경기도 패배하고, 선수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동민은 휴즈 감독에게 좋지 않은 반응이 돌아올 수도 있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흠… 생각해 볼 만한 의견이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러나 휴즈 감독은 그 말을 웃으면서 거절했다. 동민이 동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신 생각도 틀리지 않아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면 경험이 적은 어린 선수들은 그 실수를 만회하려고 무리하다가 더욱 실수를 연발하거나, 반대로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죠.”
“…그러면 어째서…….”
“나한테는 내 방식이 있으니까요. 상황과 선수를 보고 결정하는데 지금은 교체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뿐이에요. 당신의 의견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는 내 생각이 있으니 그대로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선제골을 내주고 1 대 0으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 아닌 듯한 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동민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 이야기가 끝이라면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하프타임은 한정되어 있고, 그리 길지 않으니까요.”
그 말을 남기고 휴즈 감독은 동민에게서 등을 돌려 걸어갔다.
‘확실히 경험에 따르는 것은 좋지만… 조금 더 다방면으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직 이런 점은 너무 부족해.’
앨런 휴즈는 조금 전 동민의 말을 떠올리고 혼자 생각했다. U18 팀에서 어린 선수들을 많이 보았다는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 번의 실수에서 나비효과가 일어나듯 자신감을 잃고 마는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나, 그리고 선수 개개인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어.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은 제대로 보지만 그런 심리적인 부분은 아직이란 건가. 참 재밌는 녀석이란 말이야.’
그에게 동민은 예상을 벗어나는 모습들의 연속이었다. 생각보다 세세하게 선수들의 역량이나 상대의 전술을 파악하는 모습이 있는 한편, 심리적인 면에 대한 파악은 늦는 대조적인 모습이 대표적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겠어.’
휴즈 감독의 입가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어렸다.
비록 선제골을 내준 상황이긴 하지만, 그가 생각한 것처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체스터필드가 전술을 바꾸지만 않는다면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승산은 있다. 아니, 바꾼다고 해도 걱정한 것보다는 나아.’
걱정이 가득했던 동민의 표정과는 다른 그의 표정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휴즈 감독은 대체 무슨 생각이지? 분명히 크리스 러셀은 선제골 이후 흔들리고 있어 보이던데…….’
휴즈 감독과의 대화 후, 동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행동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탓이었다. 그러나 이내 동민은 고개를 저으며 그라운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자기 생각이 있다고 했으니까.’
휴즈 감독의 생각이 맞았을지, 틀렸을지는 후반전의 결과가 말해줄 것이니까.
후반전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그라운드에 자리한 양 팀의 선수들은 전반전과 다르지 않았다. 베이포트 FC는 물론이고 체스터필드 원더러즈까지 전반전에 있던 선수들과 전술을 그대로 이어나가려 하는 것이다.
“…뭐지?”
베이포트 FC라면 몰라도 전반전에 베이포트 FC의 수비에 고전하면서 겨우 선제골을 넣은 체스터필드 원더러즈까지 전반전의 전술을 그대로 들고 나온 것을 보고 동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키기만 하면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게임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던 탓이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우리 팀이라면 몰라도 저쪽은 왜…….”
의문에 빠진 동민을 두고 양 팀은 전반전처럼 치열하게 경기를 진행해 가기 시작했다.
‘생각한 그대로야. 예상과 정말 조금도 다르지 않군.’
같은 시각, 앨런 휴즈는 그라운드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감독인 스콧 맥카시는 그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지난 시즌 6위로 승격의 희망까지 봤던 그들이 우리를 상대로 1 대 0에서 만족하고 자기 플레이를 그만둔다? 그것도 개막전에서 원정까지 따라온 팬들을 눈앞에 두고? 그럴 리가 없지.’
앨런 휴즈가 선제골을 내주고 걱정했던 한 가지는 상대가 개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원정 경기라는 점은 생각해서 안정적으로 전술을 바꾼다면 분명히 이길 확률이 낮았지만, 선제골 이후 그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기세를 올리고 공격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은 그에게 미소만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그렇다고 전반전 전술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크리스 러셀이 실수를 했다고는 해도 그 전까지는 오히려 경기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던 것은 우리였다. 그렇다면 바꿀 필요도 없지. 전반전에 유리하던 것은 우리였고, 상대도 우리도 전반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승리할 확률은 우리가 높다.’
한 가지 불안 요소라면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크리스 러셀의 부정확한 패스였지만, 그는 크리스 러셀에 대해서도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만약 동민이 말했던 것처럼 평정을 잃고 허둥댄다면 또 한 번 이쪽에 위기가 올 수도 있지만…….’
그의 눈길은 그라운드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뛰어다니는 크리스 러셀을 보았다. 그의 표정에서는 전반전 막바지의 다급한 모습도, 절망적인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점을 막아주는 게 베테랑과 감독의 일이지.’
그는 하프타임 내내 크리스 러셀에게 매달려 그의 평정을 되찾으려 애썼고, 경기장 안에서는 다른 베테랑 선수들이 그가 과열되지 않도록 돕고 있었다.
“그러니까 능력을 보는 것은 좋지만 조금 더 다방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던 거지. 아직은 더 경험을 쌓아야겠어.”
휴즈 감독의 혼잣말은 들리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뒤쪽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 동민을 향해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후반전 상황을 보면서 그는 승리의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골로는 만족할 수 없다. 지난 시즌 두 번의 경기에서 저 뱀 같은 작자 때문에 전부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번엔 달라. 원정 팬들 앞에서 승격까지 바라보던 우리와 겨우 중하위에서 놀던 팀의 차이를 보여야 해.’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감독 스콧 맥카시는 상대 벤치를 노려보았다. 지난 시즌 있었던 두 팀의 맞대결은 대부분의 도박사들은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0 : 0, 1 : 1의 무승부였다. 그것은 더 우위에 있는 팀이라는 평가를 듣던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와 스콧 맥카시의 자존심을 지금까지 건드리는 약점이었고, 오늘이야말로 원정 대승을 거둬 그 약점을 없애고 싶었다.
‘상대는 이미 선제골을 먹힌 이상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급해질 테니 우리 플레이를 계속한다면 어렵지 않게 추가골을 뽑아낼 수 있겠지.’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승리는 확정된 사항이고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몇 골이나 넣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그 탓에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급해진 마음에 허둥댈 거라 생각한 상대가 치밀하게, 그리고 확실히 반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당황하지 말자. 아까 실수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전반전 초반에 하던 대로만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후반전이 시작한 지도 어느새 15분이 지난 지금, 크리스 러셀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그라운드를 질주하고 있었다. 어린 선수들은 멘탈이 불안정하다, 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실수를 하더라도 그걸 되돌리려 무리하거나 기죽을 필요 없다. 감독님도, 다른 선수들도 말했잖아. 내가 하던 대로 하면서 팀이 이길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돼. 전반전에 그 실수만 빼면 충분히 잘했다고 했고 선발로 쓴 보람이 있다고 했어. 이대로만 유지하자.’
어린 선수들이 실수를 저지르고 난 뒤 무너지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두 가지가 있었다. 힘들게 기회를 잡은 만큼 뭔가 보여줘서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다가 실패하거나, 자신이 유스 무대에서 하던 것과는 달리 성인 무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불안감 때문에 자신감을 잃는 것. 그 두 가지가 어린 선수들이 맥없이 무너질 때 보이는 가장 많은 두 가지 패턴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크리스 러셀은 그 두 가지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주전 경쟁에 관한 것은 감독인 앨런 휴즈가 직접 실수는 했지만 크리스 러셀 자신만의 색채를 보여주었으니 만족스럽다고 말했고, 성인 무대에서 통하지 않을 거란 불안감은 반대로 그에게는 자극이 되었다.
‘통하고 안 통하고를 지금 당장 신경 쓸 필요 없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난 마이클을 따라잡아야 하니까.’
1부 리그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중앙 수비수로 활약 중인 그의 형, 마이클 러셀은 그에게는 따라잡고 싶은 지표와도 같았다.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달리는 그에게 불안감은 더욱 추진력을 높이는 연료가 되어줄 뿐이었다.
10대 초반에는 형보다 더 큰 재능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성장이 정체되면서 그의 평가는 나이가 들수록 낮아졌다. 그리고 지금은 2부 리그의 베이포트 FC의 일원인 그는 형보다 더 대단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불안감에 헤맬 여유 따위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처럼, 실수는 신경 쓰지 말고.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전반전 후반처럼 실수에 휘둘리는 게 가장 멍청한 짓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계속해서 그 말을 되뇌었다. 최면은 효과가 있던 듯, 그의 움직임은 놀랄 만큼 유연하고 침착했다. 해리 맥스웰이 압박을 당할 때에는 공을 안전하게 받아줄 위치에 서 있었고, 자신이 동료들에게 패스를 주기에 위험한 위치라면 허술한 패스 대신 그의 강점인 드리블과 피지컬로 상대 중원을 뚫어내면서 안전하게 공을 내주었다.
그 결과 후반전 베이포트 FC의 경기력은 오히려 전반전 초반보다 더욱 좋아져 지금은 반대로 체스터필드의 공격을 중간에 끊어내 역습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후반 23분, 드디어 그와 베이포트 FC의 모두가 그토록 바라던 광경이 벌어졌다.
‘이거다!’
체스터필드의 공격수이자 선제골의 주인공 제이미 왓슨의 허술한 볼 터치를 틈타 조나단 케인이 공을 끊어냈고, 곧바로 해리 맥스웰에게 공을 옮겼다. 상대 선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해리 맥스웰을 압박했지만 공은 이미 그의 발을 떠난 이후였다.
‘다시 내줄 곳은…….’
공을 받기 전에 그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봤지만 마땅히 공을 줄 상대는 없었다. 해리 맥스웰은 아직 상대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로날드 조던이나 에딘 페트로비치가 있는 공격진은 지금 공을 넘겨주기엔 그의 패스로는 너무 난이도가 높았다.
‘어쩔 수 없지.’
그는 공을 가지고 다시 전방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빠른 드리블에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수비진은 당황하고 있었다. 체스터필드의 미드필더들은 그가 안정적인 패스를 고집하는 것을 눈치채고 그가 공을 내줄 수 있는 해리 맥스웰이나 측면 공간을 막고 있었고, 그 말은 그의 돌파를 막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공을 내줄 거라 생각한 체스터필드 선수들의 생각과는 달리 크리스 러셀의 돌파는 어느새 페널티 박스 앞까지 이르렀고, 공격수 세 명과 수비수 네 명의 상황에서 그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공을 몰고 달려드는 크리스 러셀을 막아설 것인가, 아니면 뒤 공간을 노리고 달려드는 로날드 조던에게 붙을 것인가, 그도 아니면 연계를 노리고 측면으로 빠지는 에딘 페트로비치를 막을 것인가.
짧은 순간 그들은 빠르게 선택했고, 그들의 선택은 뒤로 빠져 들어가는 조던을 최우선적으로 막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곧 막대한 후회를 불러왔다. 그 이유는.
“어?”
동민은 입을 쩍 벌리고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한 명의 수비수가 달라붙으려 하는 상황에서 그가 택한 것은 로날드 조던이나 에딘 페트로비치 쪽으로의 패스가 아니라 수비수가 붙기 전에 한 박자 빠른 슈팅이었다. 훈련 때에도 보이지 않던 크리스 러셀의 모습에 동민은 탄식을 내지르려 했다. 패스를 할 때에도 부정확한 패스를 하던 그인 만큼 슈팅에서도 정확도가 부족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동민의 생각을 뒤집어엎듯 크리스 러셀의 발끝을 떠난 공을 깨끗한 궤적을 그리며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선제골의 시발점이 된 실수를 만회하는 크리스 러셀의 동점 골이었다.
동민은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던 크리스 러셀이 놀라운 플레이로 만들어낸 동점 골을 시작으로 베이포트 FC는 강력한 반격을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역습에 허둥지둥하는 것은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였고 베이포트 FC는 단순한 방식으로, 그러나 효율적으로 그들의 뒤를 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가 전반전만큼 뛰어다니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조금씩 라인을 올려가며 공격에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
“세일러(베이포트 FC 팬들의 별명)들의 영웅으로 떠오른 역전 골의 주인공은 로날드 조던! 놀라운 집중력으로 역전을 만들어냅니다!”
경기장에 들뜬 목소리와 홈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경기가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상대의 활동량이 줄고 속도가 떨어지는 점을 노려 후반 34분, 로날드 조던이 뒤 공간을 파고들어 낮은 크로스를 골로 연결한 것이다.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다시 한 번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환호로 가득 찼다.
“쐐기 골의 주인공은 에딘 페트로비치!”
시간이 줄어감에 따라 공격적으로 올라오는 상대의 공을 끊어낸 해리 맥스웰의 롱패스를 그림 같은 헤딩슛으로 마무리 지은 골이었다. 동시에 마지막까지 추격하려던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의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골이기도 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리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경기장이 떨릴 정도의 함성이 뒤를 이었다.
총 스코어 3 대 1. 동민에게는 믿기 힘들 정도의 역전승이었다. 짜릿한 역전승에 환호하는 팬들의 함성과 예상치 못한 결과에 눌려 동민은 멍하니 경기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멍하니 있는 거 같은데.”
자신에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브라운 키드 수석 코치가 안면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기분 이해해요. 이만큼의 환호를 받는 이들 중에 한 사람이 나라는 걸 생각하면 멍해질 수도 있죠. 나도 퍼스트 팀의 코치가 되어서 시즌 첫 경기를 치렀을 때 엄청난 감동이었으니까요. 확실히 시즌이 시작되니 유스 팀하고는 다르죠? 경기 자체도 환상적인 역전승이었고 말이에요.”
그가 생각하는 동민이 멍하니 있는 이유는 조금 빗나간 것 같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방금 전 끝난 경기의 여운이 아직도 그에게 남아서 대답할 말조차 찾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동민이 입을 연 것은 한참 뒤였다.
“…놀랐어요.”
“그 기분 알죠. 관중처럼 바라보는 것과 이 벤치에서 저 환호성을 듣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니까요. 그래도 얼른 익숙해지는 게 좋을걸요. 당신도 퍼스트 팀 스태프의 일원이니까요.”
그는 동민을 달래듯 말했다.
“아뇨, 그것도 있지만…….”
“응? 경기 내용인가요? 경기 내용도 완벽했죠.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긴 했어도 그걸 뒤집었으니. 감독님이 전술을 그대로 가져가려고 고집을 부린 게 잘 먹혀들어갔어요. 상대가 시즌 첫 경기를 재미없는 수비 축구로 끝내려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적중한 거죠. 시즌 첫 경기부터 자기네 특기도 아닌 지루한 전술로 원정까지 따라온 팬들에게 실망을 주려고 하진 않을 테니까요. 뭐, 결과적으로는 패배로 더 큰 실망을 줬지만요.”
브라운 키드는 그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 말에 동민은 어째서 하프타임에 휴즈 감독이 그렇게 자신 있는 태도로 말했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경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 틀렸던 이유도. 그가 경기 내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생각한 것과는 달리, 휴즈 감독은 시즌 첫 경기라는 점과 상대의 생각까지 예측하고 움직인 것이다.
‘…이래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던 거였어. 자기한테 생각이 있다고……. 내가 단순히 상대가 이기려 들면 이렇게 하겠지, 하면서 생각한 거랑은 다르게 외적인 부분까지 전부 고려해 가면서 결론을 낸 거야.’
동민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시 한번 깨닫는 동시에 앨런 휴즈라는 사람이 얼마나 날카로운 사람인지 다시금 깨닫고 전율하고 있었다.
시즌 첫 경기를 만족스러운 역전승으로 끝낸 팬들의 환호 속에서 동민은 말을 잃고 멍하니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