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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즌의 첫 발걸음 (121/270)
  • 새 시즌의 첫 발걸음

    베이포트 FC의 홈구장, 브리큰돈 스타디움은 홈 개막전을 앞두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열기는 라커 룸에 있는 휴즈 감독과 베이포트 FC의 선수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지고 있었다.

    “오늘 경기의 중요성은 내가 더 강조하지 않아도 다 알 거라 믿는다. 첫 번째 경기부터 확실하게 승점을 쌓아가야만 목표로 했던 성적을 이룰 수 있다는 건 너희들도 경험으로 알고 있겠지.”

    휴즈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에서 분위기나 흐름이라는 것은 공 점유율이나, 슈팅 횟수처럼 숫자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는 단순히 한 경기 안에서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시즌 전체를 두고 달리는 우승과 잔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새 시즌의 시작부터 승점을 얻지 못한 상태로 시작한다면 그다음 경기에서의 부담감은 조금씩 늘어날 테고, 만약 연패를 하기라도 한다면 무너져 버린 팀 분위기를 다시 돌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가서 첫 발걸음을 확실하게 떼도록 하자. 우린 이번 시즌에도 할 수 있다.”

    그의 말은 선수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동시에 힘을 주는 듯했다. 그렇게 휴즈 감독의 말이 끝나고, 베이포트 FC의 모두는 새 시즌의 산뜻한 출발을 위해 경기장으로 향했다.

    ‘잘 되어야 할 텐데…….’

    동민은 각자의 자리로 향하는 양 팀 선수들을 보면서 긴장감에 손을 꾹 쥐었다. 오늘의 상대인 체스터필드 원더러즈는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강한 전방 압박과 짧은 패스의 빠른 역습을 장기로 하는 팀이다. 지난 시즌에는 그 무기를 바탕으로 승격 플레이오프권까지 노릴 정도로 탄탄한 경기력을 보여준 팀이었다. 그런 만큼 수비 라인이나 미드필더 라인에서 실수가 나온다면 베이포트 FC의 무기인 역습을 되려 자신들이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체스터필드 원더러즈 공격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패턴은 상대 수비 라인까지 나가 압박하면서 실수를 이끌어내거나, 혹은 실수까지는 나오지 않더라도 상대가 원하는 빌드 업을 방해하면서 언제든 공을 뺏어 역습하는 것. 우리처럼 후방에서 롱패스로 시작하는 역습이 아닌 상대진영에서 시작하는 역습,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야.’

    자신의 진영에서 수비벽을 두텁게 쌓아 수비하고, 거기서부터 롱패스로 역습을 노리는 베이포트 FC의 방식은 분명히 장단점이 존재한다. 수비에 중점을 두는 만큼 수비적인 안정성은 뛰어나지만 역습은 몇몇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맡기는 면이 크고, 역습을 위한 패스가 끊어지면 다시 수비벽을 만들기 전에 빠른 공격에 당할 가능성이 있다.

    상대 진영에서부터 역습을 노리는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방식 또한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상대의 공격을 시작 부분인 수비 지역부터 방해하면서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상대가 제대로 수비벽을 만들기 전에 발 빠른 역습으로 공격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압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의 공격 방해도, 역습도 하지 못하고 압박을 위해 올린 수비 뒤 공간을 당하기 쉬운 것이다.

    “결국 이 경기는 양 팀 다 하던 대로만 한다면 분명히 먼저 실수가 나오는 팀이 질 가능성이 큰데…….”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고, 이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길게 경기장 안에 퍼져 나갔다.

    베이포트 FC의 미드필더, 해리 맥스웰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조나단과 나한테 달린 거나 다름없다고 했었지. 우리 둘한테 상대의 압박이 몰릴 거라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휴즈 감독이 경기 전에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휴즈 감독은 지나 시즌을 참고하여 자신이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입장에서 베이포트 FC를 상대로 전방 압박을 펼친다면, 집중 공략해야 할 곳은 두 곳이라고 생각했다. 후방에서의 빌드 업을 막고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 수비의 핵심인 조나단 케인을 압박, 그리고 베이포트 FC의 역습 때 반드시 공이 거쳐야 할 해리 맥스웰.

    반대로 그 두 곳에서 상대의 압박을 무력화시키기만 한다면 상대의 전술 핵심은 빛을 잃고 자신들의 마음대로 경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공을 잡기만 하면 두셋씩 달라붙어.’

    수비진에게 공을 연결받자마자 달라붙는 상대 미드필더들의 모습에 해리 맥스웰은 순간 얼굴을 찡그렸다. 공을 잡고 넘겨줄 곳을 확인하는 시간에 곧바로 그를 둘러싸 버리면 베이포트 FC의 역습을 시작하는 롱패스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은 전방의 공격수가 아닌 가까운 측면을 향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나 한 명이 다가 아니란 거지.’

    그는 공을 전방으로 길게 차 날리는 대신, 측면으로 빠져 공을 기다리는 동료에게 짧게 넘겼다. 그의 발 빠른 패스로 순식간에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전방 압박은 힘을 잃은 것이다.

    “어디 계속 달라붙어 봐라. 내가 눈 하나 깜빡하나.”

    해리 맥스웰의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휴즈 감독의 전술이 지금까지는 생각보다 잘 먹히고 있어.’

    동민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해리 맥스웰의 측면으로 빼주는 롱패스는 분명 위협적인 역습 찬스를 만드는 초석이며, 혹은 직접 공격수에게 전달하는 어시스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롱패스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었다.

    [해리 맥스웰]

    25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5.8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9 / 20

    선호하는 플레이: 공을 잡고 템포를 조절, 롱 패스 선호

    특성:

    장점 - 절묘한 위치 선정, 빠른 발

    단점 - 제공권 장악 불가

    현재 컨디션: 6/10

    ‘공을 잡고 롱패스를 내줄 곳을 찾는데 시간이 필요하단 거지. 시야가 좋아서 곧바로 내줄 곳을 찾는 타입이 아니니까. 공을 잡고 줄 곳을 찾고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해봐야 몇 초지만, 그 몇 초만으로도 상대가 파고들기엔 충분하니까. 그리고 상대는 지난 시즌에도 그 점을 파고들려고 했던 거고.’

    해리 맥스웰이 공을 내줄 곳을 찾는 시간에 빠르게 압박을 시작하는 것이 지난 시즌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 전술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 경기에서 해리 맥스웰은 강한 압박에 평소처럼 패스를 줄 수 없던 것이다. 역습을 시작하는 해리 맥스웰 쪽에서 공이 끊기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휴즈 감독은 그를 도울 도우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도우미로 낙점된 선수는.

    [크리스 러셀]

    23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4.8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4.1 / 20

    선호하는 플레이: 상대를 압박함, 중앙 돌파

    장점 - 두 개의 심장, 강철 몸

    단점 - 부정확한 패스

    현재 컨디션: 8/10

    ‘끊임없는 움직임과 많은 활동량으로 계속해서 해리 맥스웰의 숨통의 트이게 만들어야 하는 역할에는 저만한 선수가 없지. 패스는 불안해도 강한 체력, 압박이 들어와도 한 명 정도라면 어찌어찌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게 가능한 수준이니까.’

    동민은 해리 맥스웰에게 공을 받아 경기장 중앙을 빠르게 달려 나가려는 크리스 러셀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체력과 많은 활동량을 자랑하는 그가 이번 경기에 나서면서 받은 지시는 단 하나였다.

    상대가 노리는 해리 맥스웰에 대한 압박을 풀 수 있도록 계속 공의 배출구가 되고, 해리 맥스웰이 후방으로 내려오면서 상대의 압박이 느슨해지면 다시 공을 돌려라.

    그것이 지난 시즌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강한 전방 압박에 쓴맛을 볼 뻔했던 휴즈 감독의 대처였다.

    ‘상대가 눈치채고 전방을 전체적으로 압박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중심이 뒤로 물러서 있는 우리 팀은 후방에 남아 있는 선수가 7명, 골키퍼까지 8명 이상, 맥스웰 같은 공을 내줄 특정 선수를 보호한다면 공을 내줄 곳은 많아.’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대로 전방으로 달려가던 크리스 러셀은, 자신에게 2명 이상의 압박이 달라붙자 곧바로 공을 압박이 느슨해진 뒤로 돌렸다. 그 공을 받은 조나단 케인은 다시 해리 맥스웰에게 공을 전달했고, 그는 아까와는 다른 낮은 위치에서 안전하게 공을 잡고 전방으로 롱패스를 뿌렸다.

    체스터필드 원더러즈가 자랑하는 전방 압박이 크리스 러셀이라는 의외의 카드에 막힌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이후로도 그들은 해리 맥스웰을 겨냥한 전방 압박이 들어올수록 크리스 러셀을 이용해 상대 압박을 분산시키고, 공을 돌리면서 압박을 풀어냈다.

    ‘하나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크리스 러셀의 패스가 불안하다는 점. 그래서 휴즈 감독이 최대한 안전한 패스 루트만 고르게 했지만 그래도 까딱하면 상대한테 공을 내주는 일이 될지도 몰라. 그 점만 아니면 확실하게 리드할 수 있어.’

    동민의 눈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같은 시각, 휴즈 감독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 러셀을 이용한 상대 압박의 분산은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골이 터지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상대의 전술이 헛돌게만 만들면 후반전은 확실히 유리하다. 패스나 수비력이 조금 부족해도, 러셀을 이용해 맥스웰 한 명에게 있을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자는 생각은 적중했어.’

    강한 전방 압박을 바탕으로 하는 팀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경기 후반이나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그 경기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선수들에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압박을 하게 만들어도 모든 선수가 후반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뛸 수는 없다. 결국 선제골을 넣으면서 경기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체스터필드 원더러즈의 전술이 거꾸로 그들의 목을 죄어오는 것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이대로 상대의 체력을 빼거나, 상대가 지금과 같은 압박 전술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러셀의 선발 효과는 충분하다. 여기서 역습에 성공해서 선제골이라도 나오면 더 좋겠지만… 거기까지 바라느니 실수 때문에 선제골을 내주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먼저 선제골을 내줄 경우에는 그가 준비한 전술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급한 것은 그들이기에 지금처럼 무게중심을 뒤로 잡고 상대의 뒤 공간을 노리는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가능하면 이대로 상대의 체력을 잔뜩 빼놓으면서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후반전이 지나갈수록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우리일 테고, 그때 몰아칠 수 있으니까.’

    휴즈 감독이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었다. 그러나 전반전 36분, 그의 바람은 빗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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