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펼쳐지기 시작하는 마법
“벌써 다 끝났나요?”
“네, 말씀하신 샘포드 시티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동민이 보고서를 내밀자, 휴즈 감독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능한 한 빠르게 해달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적어도 며칠은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민은 일을 맡긴 지 겨우 3일이라는 시간 만에 보고서를 가지고 온 것이다.
‘게다가 샘포드 시티에 관한 자료야 있겠지만 강동민은 정작 아직 퍼스트 팀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할 텐데. U18 코치로 있으면서 선수 개개인에 대한 분석은 확실히 좋았지만 그들이 팀에서 어떻게 맞춰지는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 팀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상대 팀만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강점이나 약점은 확실하게 눈에 띄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주 사소한 것이 상황이나 팀에 따라서 치명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U18팀에서 동민의 분석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놓칠 수 있는 작은 부분들을 현재 상황에 맞추어 커다란 강점이나 약점들로 알 수 있게,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휴즈는 동민이 평소처럼 분석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퍼스트 팀에 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시간까지 고려해 시간을 상정했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동민이 더 유능하거나, 혹은 의욕이 앞선 나머지 급하게 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동민의 재능에 관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퍼스트 팀으로 부른 휴즈 감독이었지만, 지금 동민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의심이 묻어나왔다.
“알았어요. 곧 확인해 보도록 하죠. 수고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동민이 웃으며 방을 나간 후, 휴즈 감독은 물끄러미 보고서를 노려보았다.
“과연 둘 중 어느 쪽이 맞을지는… 이걸 읽어봐야 알겠군.”
그는 손을 뻗어 동민이 두고 간 보고서를 쥐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빠르게 보고서 위를 좌우로 왕복하기 시작했다.
“후, 그래도 그렇게 많이 늦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 휴즈 감독 표정이 기분 탓인지 뭔가 요상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름대로 재빠르게 한다고는 했는데…….”
휴즈 감독의 방에서 나오면서 동민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신으로서는 요 며칠간 잠까지 줄여가며 퍼스트 팀과 샘포드 시티에 관해 알아본 것이지만 휴즈 감독이 바라는 능력은 그보다 더 높은 위치의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 한 번에 감독 입맛에 들기도 쉽지 않겠지. 앞으로 더 노력하는 수밖에. 게다가 프리시즌 경기라서 미리 상대 선수들의 스테이터스를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더 힘들고. 시즌이 시작되고 나면 확실히 미리 알아볼 수 있으니까.’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보았던 샘포드 시티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 팀이랑 팀 전술 자체는 비슷했지. 롱패스를 이용하는 점도, 세세하지는 않아도 빠른 공격 진행도 모두 내가 봤던 우리 팀의 특징과 같아. 다만 다른 점은 그런 선이 굵은 축구를 하면서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점이지.’
영상으로만 봤기에 정확한 스테이터스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한 명의 선수였다.
‘33번이던 스티븐 데이비스라는 선수, 그 선수가 들어오면 투박하게 최전방만 바라보는 롱패스 위주의 공격에서 곧바로 짧고 정확한 패스도 가능하니까. 정확한 것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스테이터스를 봐야 알겠지만 분명히 그 선수가 나오는 순간 샘포드 시티의 공격 방식에 새로운 방법이 추가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베이포트 FC와 비슷한, 뒤에서의 롱패스 한 방으로 골을 노리는 방식의 전술을 보이던 샘포드 시티가 단숨에 짧은 패스까지 이용할 수 있게 만들던 스티븐 데이비스를 생각하며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 일단 확실한 건 경기를 가봐야 알겠지. 내가 한 게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그때 확실해 질 테니까.”
“…예상은 했었는데 이건 좀…….”
동민은 그라운드를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시작된 경기는 그로 하여금 선수들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그의 눈에 비친 선수들의 스테이터스는 대부분 그가 생각한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스티븐 데이비스]
28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5.6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5.4 / 20
선호하는 플레이: 등지고 서서 공을 받음, 슈팅보다 패스를 선호
특성 :
장점 - 정확한 패스, 넓은 시야
단점 - 새가슴, 허약 체질
현재 컨디션: 7/10
‘최전방 공격수이면서 패스가 좋고 찬스를 만드는 움직임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의 특성들로 구성되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이쯤 되면 최전방 공격수가 아니잖아.’
직접 그의 눈으로 본 스티븐 데이비스는 최전방 공격수라는 자리보다는 차라리 미드필더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넓은 시야나 정확한 패스나 둘 다 중원에서 플레이 메이킹을 하는 선수들한테 주로 많은 특성이야. 그런데 최전방 공격수의 특성이 저렇다니.’
그의 머릿속에서는 한 선수가 떠올랐다. 예전의 성남 페가수스 시절, 그가 미드필더, 그리고 센터백에서까지 여러모로 활용했던 선수인 이주성이었다.
‘플레이 메이커에 가까웠던 이주성도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라는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 게다가 단점 중 하나인 새가슴이라는 건 선호하는 플레이와 함께 생각하면 그만큼 골 찬스에서 자기가 직접 해결하기 힘들어 한다는 거니까. 저런 선수를 미드필더가 아닌 최전방에서 활용하는 이유는… 역시 그런 건가.’
스티븐 데이비스의 특성, 선호하는 플레이 모두 그가 흔히 생각하는 스트라이커의 모습보다는 다른 선수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유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스티븐 데이비스의 출전 이유를 그는 단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소위 나쁘게 말하면 뻥 축구인 두 팀의 경기에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세세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경기 영상을 보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던 거니까 그렇게 크게 놀랍진 않지만, 스테이터스를 직접 보니 역시 예상 이상이야.”
동민은 감탄하면서 스티븐 데이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다르게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생각한 것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아. 휴즈 감독이 내 분석을 보면서 이미 답을 찾아냈다면, 아무리 프리시즌 첫 경기라지만 분명히 이길 수 있어.’
동민은 이 경기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라인업을 들었을 때부터 느꼈지만, 경기 시작도 참 재밌어.’
베이포트 FC의 감독, 앨런 휴즈는 그라운드를 보면서 작게 웃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한 지 5분 남짓 된 상황인 만큼 경기 내용이 만족스러워 짓는 웃음은 아니었다.
그를 웃음 짓게 만든 이유는 첫 번째, 프리시즌이라는 상황인 만큼 같은 리그 팀을 상대하는 경기여도 압박감 자체는 적었다. 이는 결국 다음 시즌에 펼쳐볼 전술의 시험장이거나, 혹은 반대로 다음 시즌 상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있는 무대였다.
‘저번 시즌에는 우리 상대로 거의 꺼내지 않거나 후반 조커로 기용했던 스티븐 데이비스라……. 만만하게 봤거나, 아니면 비슷한 타입인 우리를 상대로 다른 무기를 손에 쥐고 싶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어.’
선발로 나온 스티븐 데이비스를 보면서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느 쪽이든 저들이 생각한 거라고는 다르겠지만. 리그에서 이런 상황일 때 써볼 것을 미리 시험하는 느낌이군.’
그리고 그가 웃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경기의 준비, 더 나아가 동민의 분석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빠른 시간에 나와서 허술한 게 아닐까 했는데, 제대로 일하기 시작한 첫 번째부터 마음에 들다니.”
동민이 그에게 제출했던 보고서는 상대의 전술이나 선수들의 역할이 알아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다음이었다. 샘포드 시티가 기본적으로 취하는 전술이 베이포트 FC와 비슷한 만큼, 두 팀의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선수들의 컨디션, 집중력, 그리고 샘포드 시티의 공격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스티븐 데이비스라는 것이었다.
‘지난 시즌에 샘포드 시티는 우리를 상대로는 데이비스를 제대로 내보낸 적이 없었다. 한 번 결장, 한번은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7, 8분 정도 그라운드를 뛰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런데 프리시즌에 이렇게 나온다는 건 참 재미있어. 그것도 강동민이 그런 이야기를 하자마자 말이야.’
그의 눈은 스티븐 데이비스를 향해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봐야겠군.’
샘포드 시티의 공격수인 스티븐 데이비스는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시작부터 영 생각처럼 안 풀리는데.’
442의 투톱 중 하나로 출전한 그가 맡고 있는 역할은 간단했다. 길게 날아오는 공을 받아 나머지 한 명의 공격수인 로아두 케이타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것, 혹은 측면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것.
말 그대로 골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찬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임무였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쉽지 않았다.
‘원래 베이포트가 이런 식으로 수비를 하던가?’
그는 마음속으로 스멀스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록 프리시즌이지만 이럴 때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팀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커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막히는 것은 정말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마음속에서 어떻게 하든, 상대 수비는 계속해서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보통 베이포트 FC의 수비라 하면 조나단 케인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피지컬과 수비 장악력으로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시키는 수비가 유명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달랐다.
‘나한테는 제대로 붙지도 않고 오히려 다른 동료들이 받을 자리를 미리 다 막아버리고 있어.’
베이포트 FC의 수비수들은 그에게는 중거리 슈팅을 때리거나 파고들 만한 공간을 충분히 내주면서도 집요하게 로아두 케이타에게는 마크를 붙이고, 다른 동료들에게는 블록을 쌓으며 방어해 내고 있었다.
넓은 그라운드 위에서 그는 홀로 떨어진 외딴섬 같았다.
‘이런 빌어먹을. 나를 뭣같이 본다 이거군.’
상대 수비의 그런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도 잘 알 수 있었다. 찬스를 만들고 연계를 이어나가 골을 만드는 일에는 능한 그지만 자신이 직접 골을 넣는 일만큼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차분히 먹으려 해도 골문 앞에서 슈팅을 하는 순간만큼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것이다.
“젠장…….”
프리시즌 친선경기라는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게 이를 악물었지만 그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