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승의 시작 (103/270)
  • 결승의 시작

    ‘딱히 컨디션이 떨어져 있는 선수는 없고…… 역시 이러면 팀의 기둥이 될 만한 선수들부터 올리는 게 좋겠지.’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들리고, 동민의 눈은 바쁘게 그라운드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 경기에 두 명까지밖에 컨디션을 올릴 수 없게 한정되어 있는 이상, 가장 먼저 컨디션을 올려줘야 할 선수들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컨디션이 낮아져 있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선수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동민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장진운]

    27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3.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8/20

    선호하는 플레이: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특성:

    장점 - 플레이 메이커, 정확한 패스

    단점 - 유리 몸

    현재 컨디션: 7/10

    [오명진]

    31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2.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9/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진 컨트롤

    특성:

    장점 - 강철 몸

    단점 - 부정확한 패스

    현재 컨디션: 6/10

    동민이 컨디션을 올리려는 대상은 팀의 주장이면서 오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을 명진과 명실상부한 성남 페가수스의 에이스인 진운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중요했지만 오늘의 경기는 이 두 사람이 활약해 주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전보다 0.1씩 수치가 올랐어. 경기를 계속할수록 스테이터스가 조금씩이라도 변한다는 걸까. 그렇다면 좋겠는데… 일단 오명진부터 해볼까.’

    진운에게 시선을 집중하자 이제는 익숙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기본 포인트: 0]

    [얻은 포인트: 4]

    [현재 포인트: 4]

    [1포인트로 강화 가능]

    “강화하겠어.”

    동민의 속삭임이 입가에서 떠돌자 곧바로 보이던 문장이 변화했다.

    [포인트 사용 조건: 없음.]

    ‘없어? 아무것도 안 해도 곧바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동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껏 몇 번이나 선수들의 컨디션을 올려왔지만 사용 조건 자체가 없는 경우는 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

    ‘역시 저번에 생각한 것처럼 랜덤이거나, 아니면 선수들에 따라서 다른 건가. 무언가 다른 제약 없이 포인트를 사용 가능하다는 건 또 새롭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문장은 또다시 변화했다.

    [강화 조건 충족]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포인트: 3]

    ‘진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올랐네. 이건 오명진이 특별한 건가, 아니면 내 능력이 뭔가 바뀌기라도 한 걸까?’

    [오명진]

    31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2.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9/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진 컨트롤

    특성 :

    장점 - 강철 몸

    단점 - 부정확한 패스

    현재 컨디션: 10/10

    동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 봤지만 명진의 스테이터스에 적힌 컨디션은 확실하게 상승되어 있었다.

    ‘아냐, 아냐. 오명진의 컨디션 상승에 따로 조건이 필요 없는 건 나중에 생각하자. 어쨌든 다음은 이제 장진운이다.’

    동민의 눈은 이제 중원에서 볼을 잡고 있는 진운을 향했다.

    B22

    [기본 포인트: 0]

    [얻은 포인트: 4]

    [현재 포인트: 4]

    [1포인트로 강화 가능]

    “강화한다.”

    동민의 말이 입가에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다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포인트 사용 조건: 정신적인 안정감이 필요함.]

    ‘장진운은 또 사용 조건이 존재하네. 저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나 참. 그나마 이번에는 좀 예측할 수 있는 방향이라 다행이야.’

    동민은 곧바로 일어나 공이 빠진 사이드라인으로 향했다.

    “장진운 선수!”

    진운은 공이 빠진 틈을 틈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동민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전술분석관님? 무슨 일이에요?”

    자신을 부를 일이 없는 동민이 자신을 부르자, 그는 의문을 느끼며 동민이 있는 사이드라인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하자 동민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 뭐야. 감독님이 표현이 거치셔서 혹시나 말씀 안 하셨나 해서 따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예? 무슨 말을요?”

    동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진운을 보면서 말을 시작했다.

    “감독님이 평소에도 표현이 별로 없으신 분이시긴 한데 특히 이번 경기에서 장진운 선수의 활약이 꼭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조금 전에 그렇게 혼자 말씀하시던데 평소 감독님 성격상 직접 이야기 안 하셨을 것 같아서요. 감독님이 평소에 장진운 선수한테 거시는 기대가 큰 만큼 더 엄격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경기 전에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상황이 안 되어서요.”

    “어…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진운의 반응에 동민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네, 그래도 이번 경기에서는 특히 기대가 크신 만큼 따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이런 말은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편이 더 동기부여에도 좋잖아요? 감독님이 장진운 선수를 믿고 계시다는 게.”

    동민은 믿고 있다, 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저번 전주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도 느꼈지만 장진운은 실력에 비해서 명진 같은 베테랑보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잦은 부상 때문이겠지만, 지금은 그만큼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해.’

    동민의 예상은 적중했다. 진운은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싫지 않은 듯했다.

    “아, 감독님이… 알았어요. 고마워요.”

    “뭘요. 스태프가 선수를 위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오늘 경기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러면 가볼게요.”

    동민은 말을 마치고 다시 벤치를 향했다. 그런 동민을 보면서 진운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어라? 갑자기 몸이 좀 가벼운 느낌인데. 방금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이상 감독님의 믿음을 저버릴 순 없지. 확실하게 믿음에 보답해야겠어.’

    진운은 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그라운드의 한가운데를 향해 뛰어갔다.

    [강화 조건 충족]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포인트: 2]

    ‘후, 둘 다 해결인가.’

    동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진운의 스테이터스에서 눈을 뗐다.

    [장진운]

    27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3.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8/20

    선호하는 플레이: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특성:

    장점 - 플레이 메이커, 정확한 패스

    단점 - 유리 몸

    현재 컨디션: 10/10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오명진이 이끄는 수비와 장진운이 시작하는 공격. 두 사함 다 K2리그에서 상위권인 실력인데 컨디션까지 올려놓았으니 저 둘은 개인 기량에서 크게 밀리지 않겠지. 남은 건 내가 생각한 덫이 언제쯤 수면 위로 올라오느냐, 인데……. 경험 많은 만큼 오명진이 잘해주길 바라야지.’

    동민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수원 블루 데빌즈의 에이스인 심형만은 마음이 가벼웠다.

    ‘그놈의 껄끄러운 부산 히어로즈보다야 훨씬 낫지.’

    이번 시즌 수원 블루 데빌즈는 이미 부산 히어로즈와의 맞대결에서 이미 한 번 패했던 탓에 부산 히어로즈의 가공할 공격력을 잘 알고 있었다. 형만이 아무리 공격을 잘 이끌어도 상대도 똑같이 위로 올라오며 치고받는 난타전이 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먼저 선제 골을 넣고도 4 대 3이라는 결과로 질 줄 누가 알았겠어. 하여간 공격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런 부산 히어로즈에 비해서 지금 상대인 성남 페가수스는 여러모로 부담감이 덜한 상대임에 틀림없었다.

    ‘아무리 이변의 주인공이니 뭐니 이야기가 있지만 1부 리그랑 2부 리그의 차이는 확실하지. 부산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부산 히어로즈가 공격에 비해서 수비가 부실하고 운이 안 따라줘서 진 것 같지만 우리는 다르니까.’

    형만은 공을 잡고 가볍게 상대 측면 수비수를 제치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봐, 쉽잖, 어?’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곧 달려드는 상대 수비수와 충돌해 그라운드 위를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 못한 빠른 스피드와 몸싸움에 완전히 밀려 버린 것이다.

    “에헤이, 거 젊은 친구가 힘이 부족하네. 운동 부족인가? 그렇게 쉽게 나가떨어지면 어떻게 해?”

    그라운드를 거칠게 구르고 난 이후에 들려온 것은 상대 수비수의 놀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형만의 관자놀이에는 핏대가 올랐다.

    “뭐요!”

    형만은 그 말에 거칠게 일어서며 반응했다. 고작해야 2부 리그의 수비수가 이번 시즌이 끝나면 유럽행이 확실한, K리그 최고의 선수인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뭘 반칙도 아닌데 그렇게 오버를 하면서 구르고 있어? 잔디 감촉이 그렇게 좋은가? 아니면 어제 잠이 좀 부족했어?”

    “뭐 이런 씨… 하아.”

    입에서 곧바로 육두문자가 나오려던 것을 형만은 억지로 눌러 참았다. 경기 초반부터 깝죽거리는 상대 수비에 말려들 필요는 전혀 없었다. 저런 어쭙잖은 상대에게 최고의 복수는 눈앞에서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생 2부 리그에서 썩고나 있는 사람 주제에 시비 걸지 말지 그래요? 이따가 골 먹히고 얼마나 창피를 당하려고.”

    형만은 낮게 으르렁거리고는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의 뒤통수를 잡아끌었다.

    “이야~ 누가 창피를 당할지는 봐야 알지. 2부 리그 팀 상대로 한 골도 못 넣는 게 진짜 창피 아냐?”

    형만은 한순간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이를 갈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저 새끼가 경기 시작하자마자 진짜… 이따가 저놈 앞에서 꼭 멋들어지게 세리머니 하면서 멘탈 터뜨려 버리고 만다.’

    형만은 그렇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대 수비진에 대한 분노를 속에 품고 경기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저놈 저거, 분명히 경험도 많은 놈인데 참 도발 한번 잘 걸려드네. 본인도 아는데 성격 때문에 고쳐지질 않는 건가.’

    심형만을 도발한 장본인인 오명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여유 있게 웃고 있었다. K2리그 팀인 성남 페가수스 소속으로 몇 년이나 뛰었던 만큼 상위 리그라도 유명 선수인 형만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도발을 해도 쉽게 걸려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정도로 잘 걸려들면 오히려 생각보다 쉽게 흘러가겠어. 몇 번은 찔러봐야 좀 먹힐 줄 알았는데 너무 빠르잖아.’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명진은 웃으면서도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어쨌든 이걸로 감독이 주문했던 건 반쯤은 성공이네. 남은 건 얼마나 빠르게 저놈이 이성을 잃느냐는 건데… 뭐, 한두 번 만에 되진 않겠지만 보아하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어.’

    명진은 어딘가 주안을 닮은, 닳고 닳은 미소를 지으며 형만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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