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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향한 발걸음 (98/270)

승리를 향한 발걸음

부산 히어로즈의 센터 백인 김우형은 어딘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얘네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부산 히어로즈를 상대로 역습을 시도하려는 팀들은 많았다. 극단적일 정도로 공격적으로 쏠려있는 그들의 뒤를 노리려는 시도는 일반적인 것을 넘어 당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은 모두 공격을 위해 나가 있는 형진과 경원이 맡고 있는 측면에 한정되어있었다. 텅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양 측면을 두고 굳이 두 센터백과 중앙 미드필더의 커버까지 들어오는 중앙을 노릴 필요가 없었다.

그 때문에 우형을 포함한 부산 히어로즈의 센터백은 형진과 경원의 수비 커버를 위하여 살짝 측면으로 빠져 있는 것이 기본적인 수비 형태였다.

그러나 지금 성남의 두 공격수는 달랐다. 양 측면으로 빠지려고 하기보다는 중앙 미드필더인 상민이 커버하는 중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경원이 형이나 형진이 형한테 부담을 주려고 측면으로 빠지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밑으로 내려가서 죽어라 압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뭘 노리려는 거지?’

우형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들의 생각을 알 수는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아차!’

중앙에서 측면으로 공을 뿌리려던 상민의 패스가 성남의 민성에게 막히자 곧바로 성남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민성은 기다렸다는 듯 진운에게 공을 넘겼고, 진운은 지금껏 제대로 공격 기회를 만들지도 못하던 울분을 풀 듯 곧바로 최전방으로 공을 날려 보냈다.

날아오는 공을 보며 평소처럼 측면으로 빠지려던 우형의 눈에 들어온 것은 중앙으로 쇄도하는 성남의 두 공격수였다.

‘측면이 아니라고?’

그제야 우형은 상대 팀이 노리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형진이나 경원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심리적 압박을 넘어 측면 수비 자체에 집중할 생각 자체가 없어 보였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그런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진운의 롱패스를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골을 노리는 방법이었다.

부산 히어로즈는 그라운드를 양 측면으로 넓게 쓰면서 계속된 패스로 상대의 수비를 흔들고 골을 만들어냈지만 성남 페가수스는 정반대였다. 그들은 수비도 공격도 중앙으로 모으고 장진운이라는 특출한 미드필더의 패스를 열쇠로 단 한 번에 상대 수비의 뒤를 노렸다.

‘안 돼!’

우형이 급하게 중앙으로 좁혀 들어가 봤지만 상민 혼자서 두 명의 공격수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빠른 역습에 실점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측면이 아니라 중앙이라니 완전히 생각도 못 했어…….’

우형은 허탈하게 웃었다. 지금껏 측면을 노리는 팀들만 상대해 온 경험 때문에 이 상황을 상상도 못 했다는 것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그래, 실점을 하더라도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따라붙기만 하면 돼.’

동민은 미소를 지으며 세진의 골 세리머니를 보고 있었다.

‘다행이야. 일부러 황세진과 신명우를 모두 중앙에 머물게 하길 잘했어.’

동민이 측면을 비우고 중앙에 집중하는 역습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측면 수비에 집중하지 않아도 이정호와 유민성, 오명진의 조합이 중앙에서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로 반대 발로 위치시킨 이정호와 유민성은 서로의 장점으로 김경원의 침투와 정형진의 크로스를 막고, 오명진이 수비 라인을 지휘한다면 실점을 아예 막지는 못해도 수비가 완전히 무너지진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두 번째는 무리한 역습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진운의 존재였다. 텅 비어 있는 측면도 아니고 상대 센터백들에게 막힐 위험성이 높은 중앙으로, 그것도 상대의 수비와 골키퍼 사이에서 공격수가 쉽게 공을 잡도록 패스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진운은 동민의 생각대로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중앙 공격수인 황세진과 신명우의 기용이었다.

‘우리 팀에 발 빠른 측면 공격수는 없어도 대신할 중앙 공격수인 저 둘이 있으니까.’

동민은 흐뭇한 얼굴로 세진과 명우를 보았다.

[황세진]

28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0.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7/20

선호하는 플레이: 상대를 강하게 압박함

특성:

장점 - 스프린터

단점 - 느린 판단력

현재 컨디션: 7/10

[신명우]

25세

잘 쓰는 발: 양발

성장 가능성 11.2/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3/20

선호하는 플레이: 오프사이드 트랩 파괴

특성:

장점 - 제공권 장악

단점 - 기름 발

현재 컨디션: 6/10

체격 조건이 좋은 신명우가 수비 뒤 공간으로 침투하면서 수비수와 경합을 하면, 함께 침투한 신명우가 더 빠른 발로 공을 이어받아 마무리를 한다. 그것이 동민이 구상한 역습 전술의 마침표였다.

‘전주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배워두길 잘했지.’

동민은 전주 드래곤즈의 감독인 손홍진을 떠올렸다. 동민이 지금 부산 히어로즈를 상대하기 위해 구상한 전술은 과거에 전주 드래곤즈가 상하이 레인저스를 상대하던 것과 흡사했다. 수비 전략이나 세세한 부분은 전혀 다르지만 발 빠른 투톱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뒤 공간을 공략한다는 기본적인 부분은 홍진의 전술을 쏙 빼닮아 있었다.

‘물론 전주 드래곤즈 전술의 핵심은 그 숨 막힐 정도로 끈끈한 지역 방어와 조직력이지만 지금 우리 팀으로는 그 수비를 재현할 방도도 없고, 재현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 빠른 역습만을 가져다 쓰면 되니까.’

그는 마음속으로 손홍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부산 히어로즈의 수비 중앙을 노린다는 생각은 했어도 그 방식까지는 떠올리지 못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진 생각대로 잘되고 있어. 아니, 생각 이상으로 잘되고 있는 거지. 전반전에 연속 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지지도 않았고, 골이 나오지 않았어도 상대가 자신들의 중앙 수비가 허점이라는 것을 깨닫기만 해도 좋은 상황에서 골까지 넣었으니까. 남은 건 이제 저쪽에서 후반전에 어떤 방식으로 나오느냐는 건데…….’

동민의 고민은 길게 울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에 끊어졌다.

‘일단 지금으로썬 내가 따로 뭔가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저 인간이 잘해주길 바라야지.’

동민의 눈은 주안을 향했다.

‘상대가 K리그에서도 상위권, 그것도 공격력만 따지면 최상위권이라는 취급을 받는 부산 히어로즈인데 1 대 1이라니. 어쩌면 정말로 우승할 수 있을지도 몰라.’

명진은 기대로 부푸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혔다. 아직 전반전밖에 끝나지 않았고, 하프타임 직전 동점 골을 넣었다는 것만으로 너무 들뜨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경험 많은 명진마저 기대감을 억지로 가라앉히는 상황인 만큼 다른 선수들은 꽤나 들떠있었다.

“형, 잘만 하면 정말로 결승전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K리그 팀도 제치고 우승할 수도 있단 거잖아요. 처음으로 우승할지도 모른다고요,”

들뜬 목소리에 명진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진운이 싱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또 들뜬 거 봐라. 하여간 이놈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가만히 못 있는 게 문제라니까. 정신 차려, 인마. 아직 경기 반밖에 안 지났어. 꼬맹이처럼 그러지 말라고.”

“예, 예. 물론입죠. 그래도 여기서 잘만 하면 결승전이라는 건 확실하잖아요. 침착하게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진운의 목소리는 명백하게 들떠 있었다.

‘하이고, 오늘도 감독이 저번처럼 딴 데 정신 팔린 모양으로 있으면 이놈 멘탈 잡아주는 건 오늘도 내 일이겠구먼. 하여간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조금만 헛바퀴 돌면 들뜨거나 가라앉거나 바쁜 놈이라니까.’

명진은 마음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주안이 저번 8강전처럼 의욕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들뜨기 좋아하는 에이스의 멘탈 관리는 그의 몫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아까 경기 시작 전에는 저번하고 다르게 꽤 기분이 좋아 보이던데 지금은 또 어떠려나. 만약 오늘도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면 그 양반이 FA컵 경기 자체에 갑작스레 의욕을 잃었다는 뜻인데……. 거기에 강동민 그 어린 친구가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고.’

명진은 불안감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라커 룸으로 들어섰다.

“모두들 잘하고 있어요. 공격 기회 자체는 상대가 더 많았지만 부산 히어로즈가 우리보다 강팀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명진의 불안은 완전히 쓸데없는 불안이었다. 주안은 FA컵 결승을 목전에 두고 있는 탓인지 평소보다도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쨌든 방심하지 말고 이대로 후반전까지 계속한다면 됩니다. 전반전 지금까지는 순조롭지만 이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면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고, 상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팀이에요. 확실하게 집중하고 경기를 재개합시다. 특히 장진운, 정신 풀어지지 말고 집중하세요. 후반전에 들떠 있으면 전반전에 잘했던 게 다 무너질 거예요. 그러면 후반전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자면…….”

주안은 그렇게 손에 든 수첩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었나?’

명진은 라커 룸에서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주안은 의욕에 가득 차 보였던 것이다.

‘그냥 지난 경기에서만 뭔가 다른 일이 있던 건가.’

저번과는 다른 주안의 태도에 명진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던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형 갑자기 뭐 해요? 가만히 서서.”

뒤에서 들리는 진운의 목소리에 명진은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넌 왜 안 가고 거기 있냐?”

“형이 길 막고 있으니까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어요, 그것도 통로 한가운데 가만히 서서?”

“…어떻게 하면 니가 나이에 맞게 행동할지 고민 좀 하고 있었다, 인마. 감독 그 양반도 딱 보고 니가 들떠 있다는 거 알자마자 곧바로 말하잖냐.”

명진은 진운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짐짓 화를 내듯 대답하면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감독님은 나한테는 항상 엄하시니까요. 그래도 그 덕에 잘하고 있잖아요.”

진운은 명진의 말을 반 장난으로 넘기며 그의 뒤를 따라 그라운드로 향했다.

“안 그래도 정신 좀 똑바로 챙기면 좋으련만. 얼른 가기나 하자. 후반전 잘해서 결승전이라는 곳 잔디 좀 밟아보자, 응? 전반전 하던 대로만 잘해보자고.”

명진은 웃으며 자신의 뒤를 따르는 진운과 함께 운동장으로 향했다. 더 이상 저번 시합에서의 주안이나 동민에 대한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 그에게는 후반전 45분이 남아 있었고, 이미 끝난 생각거리에 집중할 이유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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