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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수비는 공격 (95/270)
  • 최선의 수비는 공격

    “저기 부산 쪽 두 풀백 말이야, 진짜 장난 아니네.”

    언제 끝난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간 전반전이 끝난 후, 경태는 감탄을 담아 입을 열었다.

    “확실히. 걱정이 태산이네, 하이고야.”

    “아, 그러고 보니 너는 부산 히어로즈랑 있을 경기 때문에 미리 정찰한다고 온 거였지. 경기 보다가 잊고 있었어. 미안하다.”

    경태는 진심으로 잊고 있었다는 투로 말했다. 그의 말에는 과장이나 동민을 놀리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런 것을 잊고 있을 정도로 경기에 빠져 있던 것이다.

    “됐어. 그럴 만도 하지 뭐.”

    자신 또한 상대의 전술과 선수들의 스테이터스를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저 감탄하면서 경기를 관람했을 거라며 동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전반전 동안 부산 히어로즈가 보여준 경기는 그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롱패스로 이어지는 한쪽 측면에서 다른 측면으로 이어지는 빠른 전환은 상대가 제대로 된 수비를 갖추기 전에 풀백부터 무너뜨렸고, 좌우를 막론하고 이어지는 그들의 공격은 동민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속도감이 있고 화려했다.

    그리고 그런 부산 히어로즈의 공격에 방점을 찍어주는 것은 일반인인 경태조차 감탄하게 만든 양 풀백, 정형진과 김경원 이었다.

    정형진은 정확한 크로스와 강력한 킥력으로 최전방의 공격수나 반대편의 김경원에게 공을 전달해 주거나, 기회를 보고는 아예 직접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골문을 노리기도 했다.

    김경원은 정형진 만큼의 킥력과 크로스의 정확성은 없었지만, 반대로 빠른 발과 침투 능력으로 상대 센터백과 풀백 사이의 공간에 파고들면서 균열을 만들었고 심지어 부산 히어로즈의 선제골을 기록하기까지 했다.

    ‘볼수록 측면 수비수라고는 믿기 힘든 선수야. 골 장면만 생각해도 그래.’

    중앙에서 측면으로 이어진 패스를 받은 정형진은 지체하지 않고 페널티박스로 빠른 크로스를 날렸고, 이는 상대 수비에 걸려 높이 뜨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김경원은 특유의 빠른 발과 침투로 공의 낙하 지점으로 달려갔고, 크로스를 막느라 그에게서 잠시 신경을 돌렸던 수비들은 그의 슈팅을 막지 못했다.

    ‘아무리 오늘 상대가 K리그에서 하위권에 있는 강원 디어즈라고 해도 저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그 후 또다시 정형진의 크로스를 받은 공격진의 골로, 경기는 2 대 0으로 부산 히어로즈의 리드 아래 계속되고 있었다.

    “요즘 하도 정신이 없어서 축구는 거의 못 보는데 저 두 사람은 진짜 볼수록 감탄스럽네.”

    “응?”

    “측면에서 공격을 만들어가는 게 수비수라기 보다는 공격수잖아, 거의.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계속 뒤흔들고 있던데.”

    경태의 말에 동민이 되묻자, 경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부산 양쪽 윙어보다 저 두 사람이 더 공격적으로 많이 움직였을걸. 한 명은 1골에 한명은 1도움에 수비수한테 걸린 패스까지 합하면 두 골 전부 개입했으니까.”

    동민은 더더욱 어떻게 저 둘을 막아야 할지 골치를 썩고 있었다. 차라리 풀백이 아닌 윙어였다면 더 막기가 수월했을 지도 모른다. 상대 진영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윙어라면 미리 맨투맨 마크를 시켜서 묶어두거나, 혹은 손홍진이 전주 드래곤즈를 이끌던 것을 모방해 측면만이라도 그물을 치듯 구역을 나눠 막아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윙어가 아닌 풀백이었다. 수비 시에는 자신의 진영에서 머물고, 기회다 싶은 상황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는 중앙 수비 라인보다 조금 더 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대를 염두해 두고 맨투맨 마크를 지시한다면 상대 윙어를 놓칠 수도 있고, 구역 방어를 하기에는 위치가 낮아 공을 줄 곳이 너무 많았다.

    ‘진짜로 골치 좀 썩겠는데. 기본적인 선수들의 개인 기량으로만 따지면 강원 디어즈는 성남 페가수스랑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나은 편이야. 뭔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처럼 전반전부터 무너질지도 몰라.’

    동민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씹어대며 생각했다.

    “그런데…….”

    “응?”

    생각에 잠겨 있던 동민은 경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만약 저쪽 중앙 수비수라면 좀 피곤할 거 같긴 하다.”

    “뭐가?”

    “예전 우리 팀에서야 공격수 출신이던 영우는 그렇다 치고, 시영이나 민혁이 같은 애들이 공격을 하면서도 계속 한 명쯤은 내려와서 같이 수비 균형을 맞춰줬지만 저긴 아니잖냐. 역습 상황이 되었을 때 미드필더에서 커버가 조금만 늦으면 바로 중앙 수비수 두 명이 수비를 다 떠맡아 해야 하는 건데. 부산 팀 컬러 자체가 닥치고 공격하는 쪽이기야 하지만 중앙 수비수는 신경 무진장 쓰일 것 같아서.”

    선수들과 일개 동아리였던 자신들을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만, 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경태였지만 동민의 귀에는 그 말이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커버 없이 두 명이 되니 신경이 쓰인다, 라……. 당연한 이야기긴 하지. 그래서 그걸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중앙 미드필더 두 명은 전방에 머무는 것 대신에 죽어라 뛰어다니면서 커버에 더 힘쓰기도 하고.’

    특히 양 풀백인 김경원과 정형진이 위로 올라가는 타이밍에는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이 무조건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두 명의 센터백보다 조금 위쪽 위치에 서서 정삼각형을 이루는 것이다. 공격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선택지이자 상대의 공격을 먼저 끊어내는 역할을 맡는 것임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게 부산 히어로즈가 양 풀백을 전부 올려가며 공격할 때에도 포기하지 않는 유일한 안전 장치인 셈인데 만약 그게 잘못된다면 어떻게 될까……’

    동민은 머릿속에서 그 유일한 안전 장치를 망가뜨릴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려 애썼다.

    “단순하게 사람을 붙인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하거나… 아니면…….”

    “아까부터 혼자서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뭔 귀신이라도 들렸나.”

    또다시 혼잣말을 하면서 그라운드에 시선을 고정한 동민을 보면서 경태는 고개를 저었다. 근래에 바빠서 자주 보지 못했던 이 동생은 피곤 때문인지 혼잣말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에휴. 야,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경태가 동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지만 동민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듯 이제는 고개까지 숙여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거 요즘 진짜 어딘가 맛이 가긴 갔구먼. 이래서 사람이 일에 치이면 치일수록 안 좋아진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화장실로 향했던 그가 돌아온 것은 하프타임도 거의 끝나 양 팀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진영에 서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시작 안 했네. 야, 아직도 생각하고 있냐?”

    자리에 돌아온 경태는 동민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직도 머릿속의 정리가 끝나지 않은 듯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가능성은 있는데 그 역할을… 두 사람 중 누구에게 붙느냐는 것도 중요하고… 아니면 확 갈라져서 두 방향을 모두…….”

    “야, 야. 귀신 들린 거처럼 혼자 중얼중얼거리지 좀 말고 경기나 봐. 곧 시작할 거 같은데 너 그러고 있는 거 보면 무서워 죽겠어, 인마.”

    “어? 아, 아아. 땡큐. 상대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거든.”

    “아무리 그래도 귀신 들린 놈처럼 그러고 있지 좀 마라. 옆에 앉기 무서울 정도였다니까.”

    경태는 동민의 머리를 툭 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뭔가 좋은 방법은 생각해 봤냐?”

    “어, 일단은 생각난 게 있긴 해. 후반전에 좀 더 보고 더 고민해 봐야지.”

    “아주 이제 이쪽 사람 다 된 느낌이네. 동아리도 못 돕겠다고 빽빽댈 때가 엊그제 같은데.”

    “빽빽대긴 누가 빽빽대. 이 사람이 기억 왜곡하고 있네. 그리고 벌써 예전 일이거든.”

    서로 툭툭 말을 던져가면서도 두 사람의 눈은 그라운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 완벽한 게임이었네. 아무리 하위권 팀이라지만 이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어.”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경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면서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강원 원정 팬이 들었으면 뒤통수에 벽돌 박힐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그리고 강원 디어즈가 하위권이라고 해봐야 지금 9위고 K리그인 이상 내가 있는 성남 페가수스랑 비교하기도 힘들어. 그냥 이번 경기는 부산이 장난 아니게 잘한 거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눈앞에 있는 전광판에는 오늘 경기의 결과가 적혀 있었다.

    5 : 0. 부산 히어로즈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전반전에 두 골을 만들어냈던 부산의 두 풀백들은 후반전에도 쉬지 않고 활약을 펼쳐 또다시 두 골을 만들어 냈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무너진 강원 디어즈의 자책골이 그들의 패배를 더욱 명확히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래? 늦은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갈 모텔이라도 찾아볼까? 저녁밥도 제대로 안 먹어서 배가 등가죽에 붙겠다, 야. 기왕 부산에 왔으니 빨리 차 두고 나와서 한잔하자. 회도 좋고 아니면 돼지국밥이라도 난 괜찮은데. 둘 다 소주 한잔 딱 하고 들어가서 자기 좋잖아.”

    고개를 숙이며 경기장 밖으로 향하는 강원 원정 팬들을 잠시 지켜보던 경태는 나갈 준비를 하고서 동민에게 물었다.

    그러나 동민은 경태의 물음에 잠시 머리를 긁적이고 대답했다.

    “미안, 나는 일단 오늘 경기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 술은 좀 그런데…….”

    “응? 벌써 정리해 두게?”

    “일단 지금 떠올린 거나 상대 정보 같은 걸 잊어먹기 전에 적어둬야지. 온 목적이 그건데 괜히 다른 길로 빠지면 안 되지.”

    동민은 빽빽하게 적힌 수첩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아이고, 장난 아니게 열정적이시구먼. 그래, 별수 없지. 그럼 일단 대충 배 채울 거리라도 사고 모텔 방 잡아서 들어가자. 후딱 나가야겠네.”

    “응? 형 배고프다면서?”

    동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경태를 바라보자 그는 손바닥으로 동민의 머리를 툭 치며 대답했다.

    “너 일단 일부터 해야겠다며. 그럼 일 끝내고 먹으면 되지 뭐. 너 일하겠다는데 혼자 밥 먹고 들어간다고 하리?”

    경태는 당연하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그의 대답에 동민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 대신 일 끝내면 내일 점심까지 니가 사라. 기왕이면 비싸고 맛있는 걸로. 내일은 술 못 마시니까 적어도 그 정도는 해줘야지. 거기다가 부산까지 태워다 준 택시비가 얼마야. 안 그렇습니까, 일에 몰두하시는 후배님?”

    “…어차피 사줘도 술 못 마시게 됐다고 투덜거릴 거면서 뭘.”

    삐죽대듯 뒤늦게 대답하는 동민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이것아. 아무튼 빨리 가자. 더 늦게 나갔다가는 차 빼는 것도 지옥 같겠다.”

    두 사람은 서둘러 다른 사람들을 따라 출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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