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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히어로즈 (94/270)
  • 부산 히어로즈

    병렬과의 만남 이후로 동민은 억지로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듯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안과의 사이는 그대로 냉랭했지만 상대 팀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찾아가며 보고서를 작성했고, 다음 FA컵 경기를 위해서 훈련 때마다 선수들의 특징과 모습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가 이토록 일에 전력을 쏟는 이유는 단순했다.

    ‘감독님이 했던 말을 인정할 수 없어. 일단 참으라고?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동민은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병렬의 말처럼 지금 자신이 주안에게 굽혀야 할 이유를 그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인간이 주도해서 다른 사람을 짓누르는 걸 그냥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예전처럼 느껴지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생활일 때에도 이런 사람들은 있었다.

    그때의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조용히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어떻게든 그런 상대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이라면 감독님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내가 밀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그때랑은 달라. 적어도 실력으로 저쪽이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 수 있어. 내가 FA컵을 우승시킨다면 적어도 그 인간이 입 하나 뻥끗 못할 상황이니까. 감독님 말을 존중은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동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병렬이 말하던 뜻은 그 것이 아니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뒤로 물러서는 생활 방식은 사고를 당한 이후로 더 심해졌고, 그 결과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도 못하는 결과뿐이었다.

    그러나 능력이 생긴 후부터 동민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자신의 주장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어느새 반대로 그것이 우선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해 있었다.

    ‘먼저 그 인간이 찍소리도 못하게 결과를 내놓고, 감독님한테도 내가 옳았다는 걸 보여주고 말겠어.’

    동민은 그렇게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동민 씨, 괜찮아요?”

    자판기 앞에서 마주친 수연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나왔다.

    “네? 저요? 뭐가요?”

    “요 며칠 동안 되게 피곤해 보여서요. 지금도 눈이 퀭한데요. 면도도 못 하신 것 같고요.”

    동민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의 턱을 매만져 보았다. 까칠까칠한 느낌이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끼며 그는 며칠 동안 면도를 할 정신도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아요. FA컵 4강전 상대가 정해진 이상 미리미리 해둬야 할 일이 많으니까요. 아, 그래도 면도는 해둬야겠네요.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안 좋으니.”

    “그런 문제가 아닌데… 정말로 괜찮은 거 맞죠? 그러다가 몸이라도 해치면 큰일 나요,”

    “괜찮아요. 멀쩡해요.”

    동민은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8강전에서 만났던 전주 드래곤즈는 객관적인 전력 차가 난다기보다는 서로의 전술이 아귀가 맞지 않아 힘들었던 거지만 이제부턴 달라. 4강전 상대부터가 아예 K리그 팀 중에서도 꽤나 강팀으로 꼽힐 만한 부산 히어로즈니… 오히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상위권 팀을 안 만나고 할 만한 팀들만 만난 게 운이 좋았던 거지. 거기에 8강 이하라면 K리그 팀들은 리그 때문에 로테이션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4강부터는 우승이 욕심나는 게 당연할 테고. 진짜 힘들어질 건 지금부터야.’

    얼마 전 발표된 FA컵 4강전의 상대는 K리그에서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는 부산 히어로즈였다. 어지간한 K리그 팀도 제대로 승부가 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 동민은 그야말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그나마 상대가 K리그에서도 강팀 중 하나인 만큼 찾을 수 있는 정보만은 많아서 다행이지. 자료량이 장난이 아니구먼.’

    동민은 멈춰 있던 동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요 며칠간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를 영상을 보면서 동민은 피곤함을 담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레벨이 다르긴 다르구나. 확실히 선수 한 명, 한 명부터가 차이가 커보여.’

    영상 속의 부산 히어로즈의 모습은 화려하고 재빨랐다. 중앙에서 몇 번의 패스로 시선을 끌다가도 어느새 측면으로 공을 돌리고, 거기서 곧바로 올라오는 낮고 빠른 크로스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대 수비를 뚫고 골을 만들기 일쑤였다.

    ‘우리랑 비슷하면서도 달라. 경기장을 넓게 쓰면서 순식간에 빠른 템포로 측면을 통한 공격을 시도하는 걸 보면 어지간한 수비로는 순식간에 뚫리고 골을 헌납하기 십상이야.’

    공격적인 전술은 성남과 비슷하지만, 중앙에서부터 공을 점유해 나가는 타입의 성남과는 달리, 점유율을 신경 쓰기보다는 더 빠르고 직접적인 공격을 선호하는 모습에 동민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중에서도 동민의 눈을 가장 사로잡는 것은 측면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침투하는 부산 히어로즈의 양 풀백이었다. 한쪽에서 공을 몰거나 패스를 주고받으며 수비의 시선을 끌면, 반대편 풀백은 기다렸다는 듯 파고들며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평소처럼 쓰리백을 하면서 측면 수비가 헐거워지기라도 했다가는 곧바로 박살 나겠는데. 저 두 선수 모두 빠르고 워낙 크로스가 좋아서 한 번이라도 놓치면 크게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상대 윙어에 정신 팔렸다가는 양쪽 풀백에 이리저리 휩쓸려서 무너지는 꼴밖에 안 보이겠지.’

    이런 상대를 만날 거라고 미리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알면 알수록 골치가 아파지는 듯했다.

    “직접 스테이터스를 보기라도 하면 얼마나 더 피곤해질지…아이고.”

    동민은 미리 예매해 둔 부산 히어로즈의 경기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래서, 어떨 거 같냐?”

    “아직 경기 시작은커녕 경기장 안에도 못 들어가 봤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동민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거 여기까지 태워다 준 은인한테 대답하는 본새 봐라. 에라이, 배은망덕한 자식아.”

    동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경태는 짐짓 입을 비쭉거리며 툴툴댔다.

    “내가 태워 달랬나. 형이 드라이브하자고 먼저 말했잖아.”

    “얌마, 아무리 그래도 그게 부산이 될 줄 알았냐! 이 양심도 없는 자식아!”

    며칠 전 장만한 중고차의 시승식도 할 겸 드라이브를 하자며 동민에게 연락을 했던 경태는 정말 바보처럼 손쉽게 동민에게 낚이고 만 것이다.

    “드라이브 가는 김에 내가 표 살 테니까 축구 경기나 보자고 하니까 형도 좋다고 했잖아.”

    “그때는 그게 부산이고 네 일 때문에 온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안 했잖아. 하이고, 소리 지르니까 머리가 다 아프네.”

    “그러니까 자꾸 소리 지르지 말고 들어가기나 하자고.”

    동민은 머리를 붙잡고 있는 경태와 함께 경기장 안으로 향했다. 경기 시작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경기장 안쪽은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열광적인 서포터즈로 유명한 부산 히어로즈답게 일찍부터 팬들이 모인 모양이었다.

    “야, 근데 이거 일하러 온 거면 내 표까지 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청구할 때 너 한 사람 표값만 될 거 아냐. 숙소도 그렇고.”

    “표는 당연히 개인 돈이고 숙소야 나 한 사람 자든 두 사람이든 방 하나 값인 건 똑같잖아. 어차피 형도 요즘 스트레스 회사에서 받니 어쩌니 하고 있었고.”

    동민의 말에 경태는 의외라는 얼굴로 그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나 참, 하여간 세심한 건지 아닌 건지 지 멋대로야.”

    경태는 그 말을 남기고 눈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잠시 후,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려 퍼지고 동민은 입술을 깨물며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동영상에서 봤을 때에도 느꼈지만 직접 스테이터스를 보니 더 확실하네. 대부분의 선수들이 적합도가 12 후반대에서 13이야. 아예 성남 선수들하고는 개인 기량이 꽤나 차이가 나. 그중에서도 제일 문제는 저쪽이지.’

    동민은 눈을 찌푸리며 부산 히어로즈의 양 풀백을 보았다.

    [김경원]

    28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2.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5/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우측면을 따라 드리블 선호

    특성:

    장점 - 정확한 슈팅, 빠른 발

    단점 - 깃털 몸

    현재 컨디션: 6/10

    [정형진]

    30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2.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7/20

    선호하는 플레이: 좌측면을 따라 드리블 선호

    특성:

    장점 - 캐논 슈터, 정확한 크로스

    단점 - 부정확한 위치 선정

    현재 컨디션: 7/10

    ‘저 특성이 측면 수비수가 가진 특성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냐고. 스테이터스만 보면 오히려 공격적인 윙어라고 해도 믿겠다.’

    동민이 영상들을 볼 때부터 경계했던 두 측면 수비수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선호하는 플레이에는 보통 측면 수비수에게 있기 힘든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장점에 ‘캐논 슈터’나 ‘정확한 슈팅’이 있기도 했다.

    “캐논 슈터야 킥력이 뒷받침되는 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수비수의 특성 중에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라니 정말로 상상을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데.”

    지난번 박주현을 볼 때도 떠올렸던 것이지만 그가 알기로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라는 것은 공격수의 스테이터스에 주로 있던 플레이였다. 최전방에서 직접 골을 노리는 공격수들에게 있는 특성이 수비수인 김경원에게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무슨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거야?”

    “아, 아무것도 아냐.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옆자리에서 들리는 경태의 말을 적당히 둘러대면서 동민은 반쯤 패닉에 빠진 정신을 정리했다.

    ‘플레이를 보면서 공격적인 풀백들이구나, 하고 생각이야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무슨 수비수가 수비에 관한 특성은 없고 죄다 공격적인 장점만 있어. 거기다가 정형진은 오히려 단점이 위치 선정이라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동민은 이 경기를 보러온 것도, 자신에게 스테이터스를 보는 능력이 있는 것도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남 페가수스와 동민은 양 사이드에 윙어가 두 명이나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부산 히어로즈를 대책 없이 상대해야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본다고 해도 곧바로 뚜렷한 대책이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던 거보다야 훨씬 낫지.’

    동민은 수첩을 들어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스테이터스도 꼼꼼하게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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