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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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결과

“감독님,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일단 들어가 있어요.”

허벅지를 부여잡고 나오는 진운에게 주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 상황을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주안은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여러 가지 일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팀의 핵심 자원인 장진운의 부상도, 그 상황이 하필 동민이 맡기로 한 이번 경기에서 일어났다는 사실도 모두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당장 다음 경기부터라도 진운 없이 경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그는 곤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 부상 전까지 장진운이 보여줬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였다. 공격 작업을 시작하는 패스들, 전반전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부지런한 움직임, 그리고 평소의 그라면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드리블 돌파까지.

자신이 지금까지 지휘하던 선수와 같은 선수가 맞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는 안양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이정호가 강만엽을 지웠을 때 느꼈던 느낌을 지금은 장진운을 보면서 느끼고 있었다.

‘원래부터 잦은 부상만 아니면 K2리그가 아니라 K리그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녀석이었지만…… 오늘, 특히 후반전에 들어서 보여준 경기력은 무서울 정도였어. 저 녀석뿐만 아니라 오명진이나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지. 평소보다 더 잘하고 있으니까. 이건… 아니, 아니야.’

주안은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잡아 눌렀다.

‘그놈이 이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건 억지에 가까워. 아니, 확실한 억지다. 저놈이 한 건 해봐야 선수들을 자기 자리에서 뛰게 했다는 것뿐이지, 후반전에 들어서 전술상으로 크게 변화도 없었고 장진운에게 접촉도 없었다. 그저 선수들이 잘한 거지 저놈이 뭔가를 한 게 아니야. 그저 운이 좋은 것뿐이지 저놈이 잘한 게 아니야.’

주안은 그렇게 생각을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동민이 어떤 일을 하든 그는 결코 동민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한때 동민의 재능을 이용할 마음을 먹게 했던 상황들도 이제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 게다가 이제 장진운이 빠진 이상 저놈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유민성을 대신 투입하고 이주성의 위치를 조금 변경해 달라는 동민의 요청을 들어주면서도 주안은 그를 비웃고 있었다.

동민이 짜둔 전술은 장진운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상대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는 장진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이주성과 이정호를 쓰고, 그 수비에 대한 책임을 오명진에게 집중시킨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장진운이 빠진다면 지금까지의 계획은 전부 물거품이 된다. 유민성이 들어가 봐야 지금까지처럼 공을 돌리는 데엔 큰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이주성은 장진운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녀석이 못 되니까.’

주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동민의 전술이 이제 곧 무너질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자신의 팀이 FA컵에서 떨어지는 것도, 전주 드래곤즈에게 연속으로 패배하는 것도 불쾌했지만 그 이상으로 주안은 동민이 지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만에 하나 정도로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은 했고, 어떻게든 생각은 있지만 막상 닥치니까 골치가 아프네.’

동민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성남 페가수스 공격의 핵심인 장진운이 나간 이상 경기 장악력 자체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동점골을 허용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끌려갈 수 없다는 듯 공격의 날을 점점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 차라리 지금 유민성이 나오는 게 다행이지. 점점 더 튀어나오려 들 걸 생각하면 오명진 혼자서는 공격을 다 막아내긴 힘들 테니까.’

동민의 눈은 교체로 들어온 유민성에게 향했다.

[유민성]

29세잘 쓰는 발 : 왼발성장 가능성 13.1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7 / 20

선호하는 플레이 : 슬라이딩 태클을 선호함

특성 :장점 - 정확한 태클, 강철 몸

단점 - 아둔함현재 컨디션 : 7/10

오명진과 함께 성남 페가수스의 주전 수비진을 구축하는 선수답게 수비적인 안정성만은 탁월했지만, 지금 동민에게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단점에 보이는 아둔함이 문제지. 상황 판단이 늦거나 실수라도 나는 날에는 대형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고, 지금까지 이주성이 하던 것처럼 패스의 활로를 같이 찾아주기도 힘들어. 첫 경기부터 모 아니면 도라니, 나 참.’

동민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급하게 생각해 둔 것은 있지만, 그의 생각처럼 잘 움직여 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잘 되겠지.”

남은 경기 시간은 22분.동민은 주먹을 꼭 쥐면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장진운 없는 이상 쫄아 있을 필요 없어! 계속 움직이고 바로바로 역습하란 말이야! 더 빨리 움직이라고!”

홍진의 호통이 전주 드래곤즈 선수들의 귀에 꽂혔다.

장진운이 나간 이후, 성남의 공격 작업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주성과 이정호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이 장진운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계속해서 물 흐르듯 매끄럽게 흘러가던 패스는 어딘가 어색하거나 끊어지기 시작했고, 그만큼 전주 드래곤즈의 공격은 늘어났다.

그러나 공격 기회가 늘었다고 해서 전주 드래곤즈가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유민성이 성남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어버렸어.’

측면에서 또다시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끊어내는 유민성을 보며 홍진은 이를 갈았다. 장진운의 부상으로 교체 투입된 유민성이야말로 지금 홍진의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주범과도 같았다.

장진운이 있을 때에는 역습 기회 자체가 적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역습 기회를 많아도 그 공격 찬스들을 계속 꺾어버리는 유민성이 있었다. 단순하게 장진운의 자리를 이주성으로 대신하고, 이주성의 역할을 맡을 거라 예상했던 그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유민성이 원래 이주성의 위치에 서는 것까지는 그의 예상대로였지만 이주성은 전방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오명진이 전보다도 더욱 아래쪽에 위치하며 다른 선수들의 커버를 하면서 전체적인 수비 라인 자체가 밑으로 내려간 것이다.

‘경기 운영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안정적으로 서로 치고받아 보겠다 이건가 본데 어디 생각처럼 쉽게 일이 풀릴지 두고 봐야겠군.’

이렇게 되자 동점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전주 드래곤즈였다. 뒤로 물러나 역습을 노리는 상황에는 익숙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급작스럽게 서로 치고받는 것은 어색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공격을 주도해 나간다면 더 편하게 상대할 수 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자꾸 색이 변하는 성남의 전술은 홍진에게 여러모로 골치 아픈 문제를 낳고 있었다.

‘저번 경기를 하고 나서 아예 이를 갈고 나온 건지, 아니면 FA컵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는 건지. 지금까지 상대하던 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예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나오는 게 그 늙은이가 무슨 약이라도 한 것 같다니까.’

그가 부임한 이후, 지금껏 성남 페가수스와 전주 드래곤즈의 맞대결은 언제나 비슷하게 흘러갔다. 전주의 수비를 뚫으려는 성남과 성남의 공세를 막아내고 그 뒤를 노리는 전주의 모습으로 경기는 고정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아니, 저번 경기에서부터 이미 조금씩 이렇게 될 가능성은 있었던가. 항상 같았던 수비를 바탕으로 경기를 지배한다는 모토에서 어느 정도 더 공격적으로 바뀌었으니. 그래도 지금처럼 아예 점유율 자체를 내주고 안정을 꾀할 줄이야. 이렇게 되면 오히려 흔들리는 쪽은 우리가 될지도 모른다. 빠른 변화에 익숙하진 않지만 해내야만 해.’

지금껏 없던 성남의 변화에 홍진은 골치를 썩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막고, 역습을 한다’

.지금껏 그 한 가지만을 열정적으로 파고들어서 성공적인 팀을 만들어가는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다른 대안을 내놓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후반 41분, 성남 페가수스의 역전골이 터진 것이다.

‘아!’

이주성은 자신의 패스가 중간에서 상대 미드필더에 끊어지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정신없이 오고가던 양측의 공격 속에서 그의 위치는 본래 주문했던 센터백의 위치가 아닌 미드필더까지 올라와 있었다. 등 뒤에서 명진이 라인을 지시하려 했지만 내려앉은 수비 라인과 앞으로 붙으려는 미드필더 라인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고, 그는 그 사이에 붕 떠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리 훈련을 했다지만 생소한 위치에서 역할 변화까지 생겨 버린 상황이 만들어낸 실수였다.

‘여기서 놓쳐 버리면……!’

주성의 당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패스를 가로챈 전주 드래곤즈는 곧바로 달려 들어가며 측면으로 길게 연결하려 했다. 주성이 자신의 실수에 절규하며 쫓아가려 하던 찰나, 측면으로 빠지던 공은 누군가의 발에 걸리며 멈췄다.

“뛰어오지 마! 앞으로 가!”

명진은 달려오려는 주성에게 소리를 지르고 민성은 곧바로 주성에게 공을 차냈다. 뒤로 눌러앉으며 하는 역습에 강한 전주 드래곤즈에게 가장 익숙하지 않은 상황은 공격을 위해 위로 올라오는 상황이며, 그것을 노려야 한다는 것을 명진은 이미 반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주성은 받은 공을 측면으로 보냈고, 이는 낮고 빠른 크로스로 돌아와 순식간에 전주 드래곤즈의 골문을 갈랐다.

그것이 이 경기의 마지막 골이었다.

동민은 경기가 끝나고 자신이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가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 냈다는 사실에 환호를 했었다는 사실과 소리를 죽여 안도와 축하를 표하는 수연의 말, 그리고 자신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던 주안의 눈 정도였다.

“정말로 생각보다 더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이기긴 이겼구나.”

동민은 자신의 방 벽에 기대 새삼스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진의 역습 전술도, 진운의 정신적인 흔들림과 부상도 모두 그의 예상외의 일이거나 예상한 것보다 큰일이었지만, 어떻게든 그는 승리를 거머쥐고 다음 경기를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직접 지시 내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진짜로 지쳤어.”

동민의 혼잣말에는 깊은 피로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오늘의 승리를 제대로 만끽하고 깨닫는 것보다도, 지금은 그저 쉬고 싶었다.동민은 침대에 눕지도 않고 앉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의 입가에 남은 미소에는 해내고 말았다는 달성감이 뚜렷하게 남아 그가 이겼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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