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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2) (91/270)
  •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2)

    ‘명진이 형 말대로 확실히 아까는 너무 성급했어. 차근차근 해보자. 아직 경기는 반밖에 안 지났어.’

    진운은 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공을 돌렸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선제골을 허용했다는 사실은 이미 머리에서 지웠다. 그 사실을 기억해 봤자 지금은 마음을 급하게 만드는 요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마음만 급해져 봐야 오히려 역효과일 뿐이란 걸 알고 있었으면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명진에게 이야기를 듣고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상대가 전주 드래곤즈라는 사실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경험도 없는 어린 선수처럼 행동했다는 사실에 그는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말려들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급해져서 허둥대 봐야 저쪽에서 원하는 대로 될 뿐이야.’

    그렇게 마음을 먹고 움직이자, 같은 그라운드 위의 같은 광경이지만 어딘가 달라 보였다. 무조건 빠르게 전진 패스만 고집하면서 무의식중에 지나쳐 버리던 패스 루트들이 보였고, 최전방에만 고정되어 있던 시야가 다시 넓어지자 폭넓게 움직이는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조금씩, 조금씩 깎아간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보다 보면 분명히 틈이 생길 거야.’

    공을 잡고 측면으로 연결하는 진운의 모습에서는 아까까지 느껴지던 조급함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좋아, 확실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네. 다행이야.”

    동민은 가벼워 보이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진운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반전이 시작된 후 괜찮아 보이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일까 걱정하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진운은 확실하게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제 장진운이 잠그려고 마음먹은 전주의 수비를 상대로 얼마나 능력을 펼쳐줄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하이고, 역시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 선제골을 허용한 게 부담이 큰데.’

    본래 동민의 계획은 전반전에 착실하게 상대를 압박하면서 가능하면 골을 노리고, 넣지 못한다고 해도 부담감을 줘서 틀어박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선제골을 전주 드래곤즈가 가져간 이상 그의 계획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상황이었다.

    ‘이미 공격적으로 많이 기울어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노리겠다고 더 공격적인 자원을 투입했다가는 지금 간신히 오명진이 맞추고 있는 팀 밸런스 자체가 무너질지도 몰라. 그렇다고 전술을 바꾸자니 오히려 후반전 시작 후 다시 붙잡고 있는 분위기를 넘길지도 모르고. 지금으로써는 일단 지금 자원들이 잘 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 버린 전반전을 생각하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지만 지금으로썬 어쩔 수 없었다. 후반전 시작 직후 다시 그들의 템포를 되찾은 선수들에게 기대를 걸면서 동민은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지금이 70분에서 80분 정도라면 도박이라도 걸듯이 더 도박수를 둬보겠지만 지금 그러기는 아직 이르니까. 앞으로 30분, 아니 20분 안에 골을 만들든, 그게 아니면 확실하게 분위기를 뒤집을 무언가가 필요해. 그래야만 늦게라도 역전을 바라볼 수 있을 거야. 장진운이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어줘야 할 텐데…….’

    동민은 주먹을 그러쥐면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는 20분이나 필요하지 않았다.

    동민이 그렇게 생각한지 15분 뒤인 후반 20분,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동점 골이 터진 것이다. 시작은 홀로 팀의 후방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명진에게서 시작되었다.

    후반전에 들어서 급격히 줄어버린 상대의 역습을 또다시 완벽한 태클로 가로막은 오명진은 중앙에서 달리는 장진운에게 직접 공을 연결했다.

    본래라면 장진운에게 직접 공을 연결하기보다는 그의 주위를 번갈아가며 맴도는 이주성이나 이정호를 통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며 그가 주문받은 방식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장진운이었다.

    후반전 시작 후, 전반전의 부진을 씻으려는 듯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진운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 탓이기도 했다.

    ‘아까까지 흔들렸던 것도, 그리고 그걸 바로잡으려고 뛰어다니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잘 좀 해보라고.’

    명진이 차낸 공은 진운의 옆쪽으로 빠져나갔다. 진운은 그 공을 굳이 잡지 않고 부드럽게 흘리면서 속도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상대의 중앙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평소 드리블보다는 패스를 선호하며 드리블로 상대를 돌파하는 모습은 없었던 진운의 의외의 돌파에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진은 한순간 당황으로 몸이 굳었다. 지금껏 드리블 돌파라는 선택지가 없다시피 하던 진운이기에 패스 경로를 막고 압박하는 방법을 택했던 그들이었다. 그 때문에 갑자기 중앙으로 파고들어오는 진운의 모습은 단어 그대로 예상외였다.

    “뭐하냐! 제대로 붙어야지!”

    홍진의 노호에 정신을 차리고 따라붙기 시작했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은 진운을 뒤에서 따라잡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진운의 돌파를 막기 위해서 돌파 경로의 끝에 있던 중앙 수비수가 앞으로 달려 나오는 결과를 낳았고,

    ‘이거야!’

    그것은 진운이 노리고 있던 상황 그대로였다. 수비수의 발이 닿기 직전 그는 공을 살짝 띄워서 찼고, 공은 급하게 달려 나오느라 텅 빈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며 골문 앞으로 날아갔다. 수비수와 강하게 충돌해 공중에 떠서도 진운의 눈은 공의 궤도를 향했고, 그 공이 향하는 방향의 끝에서 익숙한 유니폼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진운이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수를 끌어당기자 그 빈 공간은 텅 비어 버렸고, 성남 페가수스의 공격수인 이진형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대로 가볍게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렇지!”

    동민은 벤치에서 일어나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장진운은 그가 어째서 성남 페가수스 팀의 기둥인지 동민의 기대 이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전반전 마지막에 자신이 했던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의 활약에 동민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져 나갔다.

    그러나 곧 그의 웃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골을 넣은 진형과 하이파이브를 하던 진운이 허벅지를 부여잡고 다시 주저앉은 것이다.

    ‘설마 방금 충돌로…….’

    동민은 불현듯 찾아오는 안 좋은 예감이 틀리기만을 바랐지만 결국 교체 사인을 보내는 진운을 보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필 동점골 넣고 부상으로 아웃이라니!’

    스테이터스에 있던 진운의 특성 중, 단점이었던 유리 몸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걱정한 거에 비해 이번 시즌이 시작되고 반이 지나가도 부상 한 번 없이 지나가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필 이런 상황에…….’

    특성에 유리 몸이 있는 것에 비해서 이번 시즌에는 부상이 없다고 안심하고 있던 동민의 뒤통수를 때리는 얄궂은 상황에 동민은 한숨을 쉬었다. 부상의 깊이가 얼마나 되든 지금은 그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교체를 하면서 장진운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꿔 나갈지 고민해야 했다.

    ‘답은……’

    동민은 잠시 고민을 하고는 몸을 일으켜 주안에게 향했다.

    ‘이걸 나가기 직전까지 귀찮게 했다고 화를 내야 할지, 감탄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홍진은 씁쓸한 눈으로 부산스러워진 상대의 벤치를 바라보았다. 성남 페가수스와 경기를 할 때마다 경계 대상 1순위로 삼고 막아온 장진운이지만, 후반 시작 후 동점골이 나오기까지 20분 동안은 지금껏 본 장진운의 플레이 중 가장 무섭고 또 매력적이었다.

    ‘전반전에 심하게 흔들려서 후반전이 수월할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오히려 그 탓인지 더 움직이면서 찬스를 만들어내려 하더니 결국 이렇게 동점골까지 만들어버렸어.’

    홍진은 대량 득점까지 기대했던 경기가 진운의 투지 탓에 어그러져 버리자 입을 다물었다. 이번 시즌이 시작되고 선제골을 넣은 이후 동점을 허용하는 일은 매우 적었다. 그리고 동점을 넘어 역전골까지 허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거기까지는 아쉬워도 다시 수비진을 단단히 하면 큰 걱정은 안 돼. 진짜 문제는 그 상황을 만들어낸 장진운이 이제 빠지는 상황에서도 그 불안감이 이어진다는 거지. 그런데 어쩌면… 오늘 그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어.’

    장진운이라는 상대 팀 최고의 에이스이자 공격의 핵심이 부상으로 빠지는 상황을 보면서도 홍진은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저번 경기에서의 단점을 최대한 보강한 초반의 전술, 그리고 선제골을 허용한 상태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따라오는 집념. 그 모든 것들이 홍진에게는 불안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곧 그런 생각을 머리에서 몰아냈다.

    “병준이 명호 니들 똑바로 먼저 안 붙어! 그렇게 멍 때리고 있으면 동네 똥개도 니들 사이로 다 뚫고 지나갈 수 있겠다!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런 불안감 따위에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며 홍진은 더 열을 올리면서 선수들에게 집중을 주문했다.

    ‘동점골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여기서부터는 자칫하다가 기세가 오른 상대에게 연속 실점을 허용하고 무너질 수도 있다. 어떻게든 상대의 분위기를 끊고 다시 분위기를 돌려놔야 해.’

    동점골은 뼈아픈 실책이지만 상대의 중심인 장진운이 빠진 상황을 어떻게든 이용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역전골을 허용하는 상황만은 막기 위해서 홍진의 머리는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뚝심 있게 계속 생각한 대로 밀어붙인다. 상대가 아무리 화려한 경기력을 뽐내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아도 우리는 우리대로 묵묵히, 열정적으로 막아내고 반격한다. 잊지 말자. 어떤 상황에서도 이것만은 바뀌지 않아.’

    “…이상입니다.”

    옆에 다가와 속삭이듯 말을 하는 동민을 보면서 주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감독님?”

    “아닙니다. 유민성, 최대한 빠르게 몸 풀면서 교체 투입 준비하세요.”

    멍하니 침묵을 지키는 주안을 보면서 동민이 재촉하듯 말을 걸자 그제야 주안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고 민성이 급하게 교체 투입될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리로 돌아온 동민은 어딘가 어색한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확실하게 부상인지 어떤지 모른다지만 팀의 핵심이 부상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건 이상해.’

    동민은 지금까지 이번 경기에 주안이 무신경한 모습을 보여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팀 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일인 진운의 부상에도 아무런 말이 없는 주안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인간은?’

    동민의 눈초리는 주안을 향해 고정되었지만 그는 그저 무심한 태도로 교체 투입을 위해 달려 나가는 민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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