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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의 해답(2) (89/270)
  • 동민의 해답(2)

    경기의 양상은 갈수록 일방적인 것으로 보였다.

    두 명의 센터백과 장진운이라는 엔진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공을 돌리는 성남 페가수스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뒤로 물러나 벽을 쌓은 전주 드래곤즈는 수비를 하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보이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젠장 할, 이렇게까지 해도 역시 쉽지 않아.’

    진운은 측면에서 파고드는 이영준 쪽으로 공을 연결하려 했지만, 영준의 뛰는 타이밍이 살짝 늦은 탓인지 공은 그대로 사이드라인을 넘어 전주의 드로잉으로 이어졌다.

    ‘주성이나 정호까지 올라오면서 확실히 패스가 이어지는 건 매끄러워졌고 나한테 걸리는 부담을 줄었지만… 그래도 꼭 마지막에는 막혀 버려. 정말 제대로 된 찬스는 나오질 않아. 이대로 가다가는 저번 경기의 되풀이가 될 뿐인데.’

    아직 전반전이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진운의 마음은 조급해져 갔다. 지난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두 골을 내주며 역전패를 했던 기억이 그의 마음을 조르고 있었다.

    ‘거기다가 지금은 상대를 압도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리는 건 우리야. 압도할 때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야만 해.’

    전반전이 끝으로 향할수록 진운의 플레이는 점점 더 공격적이고 모험적으로 변했다.

    ‘이거 뭔가 상태가 좀 이상한데…….’

    동민은 조금씩 흐트러져 가는 경기의 템포를 보면서 눈을 찡그렸다. 천천히 여유 있게 공을 돌리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무리해서라도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전방으로 공을 연결하려는 모습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급하게 움직이려는 사람은 장진운이었다. 아까까지 보여주었던 여유 있는 볼 처리와 우아한 패스들은 어디로 갔는지, 마음만 앞선 것이 보이는 부정확한 볼 처리와 성급한 패스들을 남발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어딘가 상태가 이상해진 진운을 보면서 동민은 스테이터스를 살펴보았지만 스테이터스는 아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장진운]

    27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13.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7/20

    선호하는 플레이 :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특성 :

    장점 - 플레이 메이커, 정확한 패스

    단점 - 유리 몸

    현재 컨디션: 5/10

    ‘스테이터스상 뭔가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어. 컨디션이 조금 낮긴 하지만 이건 아까부터 마찬가지였고, 이 정도면 좋지는 않아도 보통 컨디션에서 약간 떨어졌을 뿐 나쁘다고 볼 정도까진 아니야. 그럼 대체 뭐가 문제지?’

    동민은 예상외의 사태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문득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이런 게 처음 보는 건 아니야. 내가 이런 일을 또 어디서 봤더라?’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안양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강만엽의 모습이 떠올랐다. 계속된 성남의 수비에 휘말려, 골키퍼조차 없는 빈 골대라는 절호의 찬스조차 놓치던 그 모습이 지금의 진운과 겹쳐 보였다.

    ‘그래, 저번에 안양 타이거즈의 강만엽도 스테이터스에 비해서 플레이가 완전히 망가졌었어. 그때 이유는……’

    강만엽의 플레이가 무너졌던 이유를 그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스테이터스에 나오지 않는 요인으로 망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지. 그리고 아마 그건 심리적인 요인일 가능성이 크고.’

    그 경기로 동민은 스테이터스에 나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강만엽의 상황을 지금 장진운의 상태에 대입시켜 본다면 동민의 머리로도 답은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장진운한테 지금 영향을 미칠 심리적인 요인이라… 원래 혼자서 짜증 내는 성격이 아닌 데다가 지금 경기에서 누구랑 충돌할 상황도 없었지. 그러면 역시 그것뿐인데.’

    동민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지난 시즌 있었던 경기에서 상대 수비에 완벽히 제압당했던 것과, 지난 경기에서도 도움은 기록했지만 결국은 패배했다는 점. 그 점이 진운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난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연달아 두 골을 허용하면서 졌으니까 더 마음이 급해지겠지. 저걸 어떻게 해야 하지?’

    진운이 겪고 있는 상황이 스테이터스적인 문제라면 아직 남아 있는 포인트를 써서라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포인트를 가능하면 결승까지 남겨두려는 생각이었지만, 자칫하다 8강전에서 허무하게 패배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지금 진운의 상태가 스테이터스에 나오지 않는 문제인 만큼 그가 포인트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봐야 5로 떨어져 있는 컨디션을 올리는 것 정도인데 컨디션을 올려봐야 저렇게 심리적으로 흔들리면 그다지 효과는 없을 거야. 오히려 마음은 급한데 몸은 가벼우니 더 무리한 움직임을 하다가 팀 밸런스를 개판으로 만들 수도 있어. 이걸 어떻게 한다…….’

    동민은 이를 악물며 고민을 했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심리적인 문제가 맞다면, 그걸 뭔가 대화라든지 교류로 풀어야겠지만…….’

    동민이 아무리 이번 경기를 맡았다고 해도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동민과 주안, 그리고 수연 정도가 끝이었다. 동민과 주안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다른 코치들도 그들의 내기에 관해서는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주안에게는 굴욕과도 같은 내기이며, 그 내기가 성립된 이유가 퍼지면 곤란한 것도 주안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게 입단속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내가 다른 선수들 다 보는 앞에서 장진운과의 대화로 심리적인 부분을 풀어준다? 말이 안 되잖아. 감독이 해야 할 표면적인 일까지 내가 하게 되면 누가 봐도 이상한 걸 눈치챌 텐데.’

    동민은 입술을 씹어대며 고민을 계속했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없었다.

    ‘내가 이 인간한테 나 대신 장진운과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해도 이 인간이 들어먹을 리가 만무하고… 분명히 경기 준비나 경기에서의 전술 변화들은 대신 해주기로 했지만 그런 건 이야기에 없었다고 거절하겠지. 내가 왜 이런 걸 생각 못 했을까…….’

    동민은 머리를 부여잡고 주안 쪽을 째려보았지만 주안은 아무 감정도 없는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동민이 담당하기로 한 경기인 이상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뭔가 해결 방법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인간을 써먹을 순 없을 텐데.’

    동민이 갑자기 생겨난 고민거리로 끙끙대고 있을 무렵 진운의 플레이는 더욱 흔들리고 있었다. 점점 더 급해져만 가는 그의 패스에 공격진 또한 상대 수비를 앞뒤로 뒤흔드는 움직임 대신 날아오는 롱패스를 어떻게든 붙잡으려 앞으로만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상대 수비는 아까보다도 더욱 손쉽게 성남의 공격을 봉쇄하고 역습에 나섰다.

    진운이 공격적으로 올라간 자리 탓에 주성과 정호 또한 위로 올라갔고, 진운의 마크를 미드필더가 맡을 수 있는 이상 주형규는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생각에 잠겨있던 동민이 고개를 들어 그라운드를 봤을 때는 이미 상대의 긴 패스가 주형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튼튼한 수비를 자랑하는 오명진이지만 동시에 두 명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전주 드래곤즈의 역습은 주형규의 슈팅이 골 망을 가르며 마무리되었다.

    ‘결국 이렇게 되나. 거기에 주형규 저놈은 분명히 스테이터스의 단점에 기름 발이 있을 정도로 골 결정력은 별로인 걸로 아는데 저걸 마무리 지어버리네. 운도 더럽게 없지.’

    전반전 시작부터 확실하게 밀어붙여 우위에 서려던 동민의 계획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어그러져 버린 것이다.

    “이걸 해결할 방법이 필요한데…….”

    동민은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며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전반전을 마치는 휘슬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질 때까지 그가 직접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내가 직접 움직이는 방법은 말이지…….’

    동민의 눈은 전반전이 끝나고 라커 룸으로 향하는 선수들로 향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결국 한 번의 실수가 이런 결과를 만드는 건가. 아니면 주장으로서 진운이 저놈한테 한 소리를 미리 하기라도 했어야 하나.’

    명진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라커 룸을 향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동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동민은 평소에는 선수들과 이야기하는 일이 적었다. 특히 주안과 사이가 틀어져 보이는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왜, 동민 코치?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며 동민을 보면서 묻자 그는 입을 열었다.

    “감독님이 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셔서요.”

    “감독님이?”

    생각지 못한 말에 동민의 입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되묻자 동민은 작게 미소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오가는 여기서는 좀 그런데 잠깐이면 되니 이쪽으로 와주시면 안 될까요?”

    “잠깐이면 뭐.”

    명진이 동민의 말대로 그를 뒤따르자 동민은 복도 구석 쪽에서 입을 열었다.

    “이건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감독님이 오명진 선수한테 부탁하고 싶어 하시는 일인데요.”

    “그래, 알았어. 그래서 그게 뭔데?”

    명진의 말에 동민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감독님이 장진운 선수한테 오명진 선수가 본인 대신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번 경기 탓인지 너무 신경 써서 급해 보인다고요.”

    “…진운이한테? 왜 본인이 직접 안 하고?”

    명진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주안이 선수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타입도 아니며, 두 사람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자신에게 맡겨서 하는 이유를 그는 알 수 없었다.

    “아하하, 그게… 감독님 성격 아시잖아요. 가능하면 위로하는 쪽으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런 쪽은 서툴러서 그러신가 봐요.”

    명진의 말에 동민은 쓴웃음을 더욱 짙게 하면서 대답했다. 이런 말조차 자신이 전한다는 것이 어색한 듯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나보고 진운이 좀 위로해 달라, 그런 말인가.”

    “따지고 보면 그렇죠. 감독님이 보기에는 저번 경기 때문인지 너무 마음이 급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가능하면 위로하는 쪽으로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하시던데요.”

    동민의 말에 명진은 아무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윽고 작게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알았어, 동민 코치도 참 고생이네.”

    “네, 감사합니다.”

    명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동민에게서 등을 돌려 다시 라커 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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