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되는 첫 번째 시험 (87/270)
  • 시작되는 첫 번째 시험

    ‘전주 드래곤즈 감독이야말로 진짜 걸림돌이었어. 생각보다 더 눈치도 빠르고. 진심으로 걱정되는데 이거…….’

    경기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동민의 표정은 어두웠다. 생각한 것보다도 전주 드래곤즈를 상대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을 가진 선수를 그물처럼 겹겹이 조이는 수비, 발 빠른 두 명의 공격수로 순식간에 진행되는 역습, 그리고 그 모든 걸 만들어 내는 손홍진의 존재까지.

    ‘나도 이정호의 투입으로 확실하게 우위라고 생각했었으니 말 다했지. 그런 상황을 그렇게 금방 파악하고 뒤집는 걸 보면 확실히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능력을 얻은 후 처음으로 팀 자체나 선수가 아닌 감독을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동민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상대를 만난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지금껏 이 능력을 쓰면서 이 정도의 상대를 만난 적은 없었어. 8강을 넘어 위로 올라갈수록, 지금보다 더 큰 무대로 갈수록 더 강한 팀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는 그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달랐다. 곤란한 듯 쓴웃음을 짓는 그의 입과는 달리 그의 눈은 자신감과 흥분이 조금씩 비치고 있었다.

    “그래서 대응책은 생각한 거예요?”

    수연의 물음에 동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일단은요. 100퍼센트 확신한다고는 못 하겠지만 어느 정도 실마리는 잡았어요.”

    어깨를 으쓱이면서 하는 그의 말에 수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기만 믿으라고 떵떵거리라는 말은 안 하겠지만, 그렇게 자신감이 애매한 말을 들으면 조금 불안한데요.”

    “괜찮아요. 날 믿어달라니까요. 아, 잠시만 요. 방금 그 부분 잠시만 뒤로 돌려볼게요.”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팀 훈련 때 공중에서 찍었던 화면을 다시 보면서 누가 동민이 생각하던 가장 역할에 어울릴지, 선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영상에서도 그렇고 평소 훈련에서도…….”

    동민이 생각한 전주 드래곤즈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상대 공격을 조여서 무력화시키는 수비였다. 그것은 주안이 가장 신경 쓰던 점이었고, 동시에 전주와의 경기 이전부터 동민도 주목하던 점이었다. 그리고 동민이 내놓은 해답은 주안의 해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확실한 공격과 공에 대한 점유, 그것이 동민이 선택한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 파훼 법이었다.

    ‘결과는 안 좋았지만 결코 감독의 방향이 틀린 건 아니야. 역습이 무섭다면 그 위험을 가능한 한 봉쇄해 버리는 편이 낫지. 그것도 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쪽이라면 금상첨화고. 게다가 수비가 상대의 장기인 만큼 똑같이 밀고 나갔을 경우에는 우리가 실수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결국 이야기했던 역할은… 동민 씨?”

    주안이 추구하는 성남 페가수스의 기본적인 전술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다. 그것은 아무리 그가 튼튼한 수비를 밑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그들이 하루아침에 전주 드래곤즈만큼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고 빠른 역습을 노리는 팀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의미한다.

    ‘상대의 장점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장점을 증폭시키는 방법은 결국 점유와 공격뿐이니까 애초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 감독의 방법이 아예 틀린 건 아니야. 딱 한 발짝 모자랐을 뿐이지. 물론 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고.’

    “동민 씨.”

    ‘결국 조건은 두 가지야. 하나는 상대가 반격할 기회 자체를 줄이는 것, 그리고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결국 반격 기회가 아예 안 나올 순 없을 테니 어떻게 그 역습을 차단할 것인가.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법이 아니면 전주를 상대로 이기기는 힘들어.’

    “동민 씨!”

    “네?”

    머릿속으로 다시 조건을 정리하던 동민은 자신을 부르는 수연의 목소리에 다시 의식을 돌렸다.

    “뭔가 생각하는 건 좋긴 한데 지금은 제 말을 들어주면 안 될까요? 열심히 이야기 중이었는데 안 듣고 있으면 나만 바보 같은 느낌이잖아요.”

    “미안해요, 무슨 이야기하고 계셨죠?”

    동민의 말에 수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는데 동민은 처음부터 듣고 있질 않았던 것이다.

    “하아, 동민 씨가 말했던 역할은 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선수가 제일 나을 것 같아요. 최근 훈련에서는 확실히 움직이는 위치 자체가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기도 하고 주로 쓰는 발도 왼발이니까요.”

    수연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동민 씨는 대단하네요. 저는 그런 방법은 생각 못 했었는데.”

    그녀의 말을 들은 동민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직 이게 먹힌다, 어쩐다 하는 건 모르는 거니까요. 그리고 항상 말하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체크하는 건 수연 씨가 더 저보다 나으시잖아요. 수연 씨 말까지 듣고 나니까 좀 더 확신이 생기네요.”

    “강동민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동민은 기다려도 여전히 대답이 없는 주안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안은 방문할 때마다 으레 그렇듯 아무 말도 없이 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런 주안을 보며 동민은 그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서 종이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곧 있을 전주 드래곤즈와의 경기 준비 훈련 내용입니다. 설명은 어차피 듣길 바라지 않으실 테니 보고서에 적어두었으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저번에 이야기한 대로 경기 준비에 대해서는 전부 제가 생각한 대로 보고서에 있으니 다른 변경 없이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변경 사항이 생긴다면 그때는 곧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민의 말에 주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불쾌하다는 감정조차도 동민에게는 보이기 싫다는 주안의 무언의 항의 같았다.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동민은 체념한 듯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동민이 몸을 돌려 문을 나서려는 찰나 작고 낮은 목소리가 그를 막아섰다.

    “너는…….”

    뒤를 돌아보자 주안이 한 손에 보고서를 든 채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니가 진짜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이러는 거냐?”

    더 이상 표면적인 예의도 챙기지 않는 말투와 어딘가 텅 비어 있는 듯한 주안의 말에도 동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확신은 못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기 거는 사람이 자기 질 거라고 생각하고 걸 리가 없잖아요. 이길 자신이 없었으면 애초에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동민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말이 없는 주안을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주안은 닫혀 있는 문 너머로 걸어가는 동민의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듯 차가운 눈길을 향하고 있었다.

    “저 자식은…….”

    그는 이를 갈면서도 말을 다 내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부정적인 여러 가지가 뒤섞인 감정이 그의 가슴속에 가득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전주 드래곤즈와의 경기는 분명히 승리할거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의 역전패였다. 손홍진과의 맞대결에서 또다시 패한 것이다. 그런 상대를 상대로 동민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이길 거라 생각한다며 단언했다. 아주 조금의 망설임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저 빌어먹을 자식은…….”

    동민이 너무나도 건방졌다. 자신조차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대에게 승리를 얻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그는 말하고 있었다.

    손홍진에게 또다시 패배한 것이 너무나도 분했다. 이번만은 확실하게 준비했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몰아붙였지만, 상대는 그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며 경기를 뒤집었다. 달콤한 승리와 복수를 꿈꾸었던 그에게 주어진 것은 또 한 번의 패배뿐이었다. 자신은 이번에도 홍진을 넘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그의 성질을 건드리며 분노를 자아냈지만, 가장 그를 화가 나게 하는 것은.

    ‘저놈의 태도도 그렇고 심지어 나까지도 어쩌면 저놈이 진짜 이기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든단 건데…….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주안은 곧바로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쫓아 없애버렸다. 자신조차 손홍진과 전주 드래곤즈에게는 이길 수 없었다. 이번만은 다르다며 자신 있게 웃었지만 결국 그들을 넘을 수 없었다. 그런 상대에게 멍청한 애송이 하나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그저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허세가 아니라면 그저 우연에 따른 작은 승리의 티끌에 눈이 멀어 헛소리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흥, 그놈이 이길 리가 없지. 떠나기 전에 허세나 부리는 게 분명해.”

    주안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대충 책상 위에 내던져 두었다. 잠깐 사이에 습기가 찬 듯 손에 들고 있던 부분이 축축하게 달라붙는 감촉이 기분 나빠 그는 화장실을 향했다.

    그는 그걸로 결국 하고 있던 생각을 억지로 멈출 수 있었다.

    만약 동민의 태도가 허세가 아니고, 자만에 빠진 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더 비참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그의 머리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가장 회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생각은 결국 떠오르지 못하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잘할 수 있으려나. 확실히 눈앞으로 들이닥치니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긴 하는데.”

    동민은 경기를 앞두고 벤치에 앉아 머리를 긁적였다. 선발 명단을 주안에게 전달할 때에도, 주안의 뒤를 따라 처음으로 선수들과 함께 라커 룸에 들어갔을 때에도 떨리지 않던 그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손은 쉴 새 없이 다른 손을 만지작거리거나 자신의 머리를 오고 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씹으며 초조하게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주위에 보이는 모든 광경들이 그의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리는 것만 같았다.

    ‘아까까진 확실히 자신 있었는데 역시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더니. 자칫하다가는 이 경기를 끝으로 떠나야 한다는 게 실감이 나니까 뭔가 확 온단 말이야.’

    동민은 떨리는 손을 애써 그러모아 팔짱을 끼면서 떨림을 감추려 했다. 옆쪽에 앉아 있는 주안이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비웃을 것이 뻔한 마당에 굳이 그에게 그런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분명히 선수들 컨디션도 어제까지 확인했고 오늘 갑자기 어딘가 안 좋아 보이는 사람도 없었어. 경기가 생각한 대로만 돌아간다면 분명히 이길 수 있어.’

    동민은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끝난 것이다. 이제 그의 준비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확인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결과로 이끌 수 있도록 경기를 조율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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